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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임버스AU

* 미성년자의 흡연

 

 

 

 

토우야 아키라는 재킷 깃을 가다듬으며 쇄골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확인했다. 옷을 단정히 차려입으면 다행히도, 보이지 않았다. 너구리(タヌキ)라는 알 수 없는 글자가.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겨울날, 아키라는 목이 타는 듯한 뜨거움에 잠에서 깼다. 어떻게든 식혀야겠다는 생각에 근원지인 왼쪽 쇄골 부근을 붙잡고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손에 닿는 감각은 전혀 뜨겁지 않았다) 화장실로 향했다. 세면대에 찬물을 받으며 상태를 확인하고자 몸을 거울에 가까이 한 아키라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쩐지 고급스러워 보일 정도로 정갈한 글자가 세 자 적혀 있었다. 아키라가 이것이 현실이 맞는지 몇 번이나 의심했는지 모른다.

네임의 존재를 모르지는 않았다. 네임이 아닌 부부 사이에서 네임인 자식이 태어날 확률은,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벼락에 맞을 확률보다 더 적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극악의 확률이었다. 자기의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마 부모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여태껏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것이겠지. 아키라는 수도꼭지를 잠그고 세면대에 가득 찬 물로 세수를 했다. 머리를 식히기 위함이었다. 조금 진정하고 다시 거울을 보니 그리 숨기기 어려운 위치도 아니었다. 아키라는 글자를 문지르며 생각했다. 숨긴다, 숨겨야겠다. 벌써 몸에 이름이 새겨진 애들이 아키라 주변에도 몇 있었다. 숨기지도 못하는 곳에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이름 따위가 적혀 있는 애들은, 가십거리가 되기 딱 좋았다. 바둑 이외의 것으로 주목받긴 싫었다. 이상한 소문이 따라다닐 것을 생각하며 더욱.

 

 

 

“안녕하세요, 신입생 여러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학생회장 츠즈라누키 카오루입니다.”

그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가장 앞에 앉아 있는 덕에 동그란 머리통이 다 보였다. 아키라는 목이 갑갑해 무심코 셔츠를 잡아 내리려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갈 곳 잃은 손을 무릎 위에 곱게 포갰다. 처음 입는 교복이라서 아직 어색한 탓이겠지. 빨리 익숙해지지 않으면 위험할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살짝 올려 단상 앞에 서서 막힘없이 말을 늘어놓는 카오루를 봤다. 뻔한 말로 점칠된 축사일 뿐인데도, 이렇게 집중하게 할 수가 있나. 소문 치고는 수수한 사람으로 보였는데, 소문보다 더 대단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아키라는 생각했다.

츠즈라누키 카오루는 유명했다. 카이오에 입학할 아키라도 그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듣게 되었다. 카이오의 햇살이라고 했던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인사를 하며 지어내는 미소도, 사무적인 그것이었지만 분명 따스할 것 같긴 했다.

 

 

 

“괜찮아요?”

바닥에 부딪혀서 얼얼한 엉덩이를 붙들고 있으니 위에서 손이 불쑥 다가왔다. 아키라는 반사적으로 그 손을 잡았다. 덕분에 편하게 몸을 일으킨 아키라는 손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하자마자 손을 뗐다. 어정쩡하게 웃는 얼굴을 한 카오루가, 아키라의 앞에 서 있었다. 아키라가 아무런 반응도 없자 대신 올라간 재킷 끝부분을 정리해주며 말했다.

“미안해요. 내가 지금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하는데. 다친 곳이 있다면 언제라도 괜찮으니 꼭 말해줘요. 미안해요.”

카오루는 고개를 몇 번씩 수그리고는 아키라를 스쳐 지나갔다. 가까이서 보는 거 처음이야. 갑작스럽게 밀쳐진 탓인지 여즉 두근거림이 멎지 않았다. 아키라는 멍하니 카오루의 손길이 닿은 옷 끄트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방금 전의 일을 되새겼다. 그러다가 겨우 걸음을 뗀 발에 무언가 채었다. 사각형의 작은 상자였다. 제 것은 아니었으니, 아마 카오루의 것이겠지.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테니 빨리 쫓아가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물건을 주웠다. 하지만 카오루에게 돌려주러 가지는 못했다. 아키라는 미어캣마냥 주위를 살피며 그것을 조심스럽게 자신의 주머니 안에 넣었다. 그야, 그도 그럴 게, 이거, …….

 

‘담뱃갑이잖아!’

 

 

 

“저어, 혹시 츠즈라누키 선배 있나요?”

아키라는 다음날 첫 쉬는 시간을 맞자마자 카오루의 반을 찾았다. 카이오의 얼굴이 몇 반인지는 너무 유명해서 따로 찾을 필요도 없었다. 바둑이 아닌 다른 문제로 꼬박 하루를 고민하는 것은 처음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오랜만이었다.

아키라에게 팔을 붙잡힌 여학생은 아키라는 가볍게 훑더니 도로 반으로 들어갔다. 눈으로 그녀를 쫓으니 다른 학생들과 이야기 중인 카오루가 보였다. 그녀가 무어라 말을 걸자 (아마도) 양해를 구하곤 곧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키라를 알아보는지 놀란 듯한 표정을 보였다가, 금세 예의 ‘학생회장다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토우야 군? 역시 어제 일로 문제가 있는 건가요?”

아키라는 입만 몇 번 벙긋거렸을 뿐 준비한 말을 꺼내지 못했다. 다시 얼굴을 마주하니 주운 그것의 주인이 이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은, 아무래도 들지 않았다.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는 게 좋을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했다. 아키라가 3학년 교실을 찾은 1학년인 탓인지 이유도 없이 학생회장을 어쩐지 주위에서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 묵직한 오른쪽 바지 주머니를 감싸 쥐었다. 이 안에 든 물건까지도 보일 것 같았다.

“여기에서 이야기하기는 조금, 어려운가요? 장소 옮길까요. 사람 없는 곳으로.”

아키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오루는 반에 들어가려는 학생을 붙잡아 급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늦으면 선생님께 잘 말 해달라며 부탁하곤 아키라를 가로질러 먼저 자리를 떴다. 빠른 걸음은 아니었지만, 아키라는 카오루의 발을 보며 한 걸음 뒤에서 그를 쫓았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이라 예상하는 것일까. 아니, 무슨 이야기를 할지 예상하는 걸까. 아키라는 시선을 올려 카오루의 뒤통수를 보았다. 시선을 느꼈는지 카오루가 뒤를 돌봤다. 학생회장의 얼굴. 역시나 따스해 보이는 미소였다. 정전기라도 일어났는지 목 부분이 따끔거렸다.

 

“여기라면 괜찮겠죠? 편하게 이야기해주세요. 그때는 완전히 제 과실이었으니…….”

카오루는 난간 가까이에 자리 잡곤 아키라를 돌아보며 말했다. 옥상 문은 점심시간에만 개방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것도 학생회장의 일이었는지 그는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아키라는 속으로 양 열 마리를 세곤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손에 쥐었다. 어떠한 오해도 생기지 않길 바라며 조심스럽게 카오루에게 내밀었다. 너무 떨릴 땐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는데 딱 그 모양이었다.

“저어, 이거를…….”

아키라는 실눈을 뜨며 카오루의 반응을 살폈다. 카오루는 놀란 듯 눈을 크게 깜빡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눈빛도 날카로워졌다. 이런 표정은, 차가우려나. 역시 오해할 만한 상황인가 싶어 변명이라도 하려고 했으나 카오루가 한 박자 빨랐다.

“토우야는 말야.”

어라, 말투 바뀌지 않았어? 머리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했다.

“토우야는 정직하네. 직접 돌려주러 오고. 교내에서 이런 걸 주우면 보통은 선생님한테 가져다주지 않나? 게다가 내 거라고는 생각 안 하지 않으려나. 내 거라고 생각했다면 뒷소문 내기 바쁠 테고.”

아키라는 카오루의 말을 묵묵히 듣기만 했다. 사실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심장이 올라왔던 목구멍이 따끔거려서 긁고 싶다는 충동을 참는 것에 온 신경을 쓰고 있어서 더 그랬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

“네에…….”

“앞으로도 그래줘.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 줘. 부탁이야.”

부탁. 츠즈라누키 카오루에게서 부탁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잠시 허공을 떠돌던 이성이 돌아올 만큼 어색한 말이었다. 아키라는 이것만큼은 제 의지로 대답할 수 있었다. 카오루가 부탁하지 않았어도 그럴 요량이었다. 아키라의 답에 카오루는 긴장했던 것인지 길게 숨을 토해냈다. 그리곤 아키라에게 웃어줬다. 카오루의 얼굴에 점차 따스함이 피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희미하게 종소리가 들렸다. 이어 복도가 소란스러워졌으니 맞게 들었을 것이다.

“종, 울렸는데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카오루는 이젠 완전히 학생회장이었다. 햇살을 바로 보기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아키라는 올곧게 자신을 향하는 시선을 슬쩍 피했다. 카오루는 아키라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더니 아키라는 스쳐 지나갔다. 아키라는 몸을 굳어 고개를 돌리지도 못했다.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에 만났을 땐 이렇게 딱딱하게 굴지 않아도 괜찮아요, 토우야 군. 그럼 저 먼저 갈게요. 아, 나올 때 문 잠그고 와주세요. 약속은 꼭 지켜주시구요.”

문이 닫히고 바쁘게 내딛는 카오루의 발소리는 점점 멀어져 어느 순간부터 들리지 않았다. 아키라는 펜스에 어깨를 기대곤 주르륵 미끄러지듯 앉았다. 이번 수업은 도저히 제정신으로 듣지 못할 것 같았다. 보건실에 누워 있었다는 핑계라도 대야 할까. 아키라는 카오루의 말을 되새기며 고민했다. (하지만 누구도 토우야 아키라가 수업을 빠지는 것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으므로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 토우야…….”

카오루는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주춤거렸지만, 상대를 확인하곤 금세 당황한 기색을 지웠다. 이젠 옅은 미소만이 걸려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쪽도 저번처럼 바보 같은 모습은 없다고. 아키라는 성큼성큼 카오루에게 다가섰다. 그는 이런 것까지 전부 예상했던 것인지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일이 있어 조퇴하기로 한 날이었다. 학교를 나서기 전 옥상에 들려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정말 뜬금없이, 그냥 갑자기. 점심시간이 아니었기에 열려 있을 리도 없겠지만 아키라는 본능을 선택했다. 예상과는 다르게 옥상은 손쉽게 열렸다. 문 너머에 누가 있을지 뻔히 보였다.

탁 트인 공간이기는 해도 뒤로 조금 뺸 손에서 올라오는 하얀 연기와 특유의 쾌쾌한 냄새는 아주 감출 수는 없었다. 아키라는 카오루의 바로 앞에 서서 담배가 들린 손의 손목을 잡았다. 카오루는 실소했다. 아키라에게서 손을 빼내곤 벽에 담배 끝을 지져 껐다.

“여긴 왜 왔어. 바쁘잖아. 토우야 아키라는 말야.”

“그걸 어떻게,”

“나? 난 학생회장이잖아.”

학생회장이 보통 그런 것까지 알던가. 키시모토나 다른 3학년 부원들에게 들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카오루가 그런 의미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아키라도 알았다.

아키라가 또 명확한 답 없이 우물쭈물하자 카오루는 펜스에 등을 기대앉더니 옆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아키라는 몇 초 고민하다가 결국 카오루의 옆에 앉았다. 일부러 일찍 나왔으니 이곳에서 시간을 조금 보냈다고 늦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왔다는 건 보여줄 결심이 들었다는 거잖아.”

“네?”

“설마 너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카오루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아키라를 훑었지만, 아키라는 계속 어리둥절한 얼빠진 표정이나 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요 며칠 자신이 결심한 것이라곤 기껏 해봐야 바둑에 관한 것 정도일 텐데. 무엇을 결심했냐고 묻는 거지? 그 전에 무엇을 보여줘야 한다는 거지? 괜한 소릴 한 건가. 카오루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나랑 같이 있으면 뭔가, 반응이 오지 않아? 이상한 느낌이 든다거나.”

반응? 이상한 느낌? 알쏭달쏭했던 카오루의 말이 점점 자리를 찾아가는 듯했다. 피가 빨리 도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 아키라는 그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것들이 제자리를 찾으면 무엇이 완성될 지도 모르면서도 기대감에 휩싸였다. 채워지고 있다. 그 생경한 감각에 아키라가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으니 카오루는 오해했는지 작게 한숨을 내쉰다,

“아아……. 이게 이럴 수도 있나. 너라고 생각해서 얘기한 건데. 미안. 잊어줘.”

거기까지 들었는데 잊고 돌아서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키라는 밀고 올라오는 잡념을 떨쳐내기 위해 주먹을 세게 쥐곤 카오루를 돌아봤다. 대국 때처럼 무겁고 날카로운 눈빛이다.

“보여주세요. 선배 먼저.”

카오루는 왼쪽 바짓단을 잡아 올렸다. 양말까지 내리자 드러난 복사뼈 위에는 토끼(兎)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카오루의 몸에 적힌 글자는, 너무나도 자신의 글씨체를 닮아서 아키라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그 글자에 손을 가져가던 도중, 쇄골에 강한 통증이 느껴져 손은 카오루의 발목이 아니라 제 목으로 향했다. 카오루가 말한 반응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깨달았다. 결심도, 보여줄 것도, 전부. 전부 알았다.

단상 위에서 축사를 건네던 카오루를 보는 순간에도 느꼈던 이상한 느낌이다.

카오루는 다시 양말을 올리고 바짓자락을 정리했다. 깔끔하게 가다듬고 나선 아키라를 보며 미소 지었다. 분명 제대로 입꼬리도 눈도 호선을 그리고 있는데 희미하게 느껴졌다. 따스함은 없어도 애절함이 차 있는 듯해 그건 그것 나름대로 마음을 파고들었다. 이상한 느낌은 피를 타고 온 몸을 돌았다.

아키라는 셔츠의 가장 윗단추를 푸르고 깃을 잡아내려 어깨를 반쯤 드러냈다. 항상 감추기에 급급했던 부위를 남에게 보여준다.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쾌감만큼 저릿함이 세졌다. 카오루의 손이 글자 위를 가볍게 쓸었다. 간지러웠다. 손길에 단순히 ‘간지러움’을 느낀 것이 아니다. 피부가 아니라 속까지 간지러운 듯한,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 카오루의 손이 지난 곳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간직하고 싶은 감각이었다.

카오루는 아키라를 지켜보다가 손을 세워 내밀었다. 아키라는 그 손을 한 번, 카오루의 얼굴을 한 번 번갈아 봤다. 더 가까이 다가온 카오루의 손을 꽉 쥐었다. 10명에게 물으면 10명 모두 악수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을 지나쳤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카오루는 개의치 않는지 그저 웃으면서 인사를 건넬 뿐이다.

“안녕, 토우야.”

“안녕, 하세요. 츠즈라누키, …… 선배…….”

카오루가 손을 댄 그 부근이 마치 처음 이 글자가 나타난 그 날처럼, 아니, 그 날보다도 더 뜨거웠다.

 

운명이란 건 이런 거구나. 둘은 생각했다. 그리고 아키라는 아주 많은 것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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