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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네가 건넨 첫 마디였다. 나이와 맞지 않는 무채색의 하카마 차림과 대비되는 파란 머리카락에 먼저 시선이 닿았다. 눈썹 위로 올라온 짧은 앞머리, 그 아래로 짙은 회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내게 한 인사인 걸 알았다. 처음 보는 너를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더니, 너는 혼자 말을 이어나갔다.

 


“너지? 사토루. 고죠 사토루.”


“넌 누군데.”


“나 몰라?”

 


알 리가 있겠냐고, 퉁명스러운 대답에도 뭐가 재미있는지 쿡쿡 웃는 모습이 처음엔 실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네가 그렇게 대단하다며? 어른들이 그러던데. 근데 나도 대단하다고 그랬어. 어쩌면 두서없이 늘어놓는 말들을 잠자코 듣고 있던 그때부터, 네가 없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야, 너. 놀란듯한 목소리에 문득 고개를 돌려 다시 네 쪽을 봤을 때, 너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묻기도 전에 금방 고개를 든 네 눈동자가 붉었다.

 


“대단한 거 맞구나….”


“너 괜찮냐? 눈이…….”

 


너는 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굳어 있는 걸 보고 또 눈매를 접어 웃었다. 뭐야, 걱정했어? 겁 먹었어? 한참을 웃더니 눈가에는 눈물까지 고여 있었다.

 


“별 거 아닌데, 평소에는 안 이래.”

 


정말이야. 오늘은 그냥, 네가 먼저 얘기 안 해줄 것 같아서. 할머니는 내가 어려서 그렇대. 조금만 더 크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데, 사실 지금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아, 어른들한테는 비밀이야. 또 여기저기 끌려다니기 싫거든. 묻지도 않았는데 술술 말하는 게 신기했다. 남의 몸에 새겨진 술식이 보인다고. 그 술식을 그대로 베낄 수도 있다고. 조금은 흥미가 생기는 이야기였다. 방금은 내 술식이 다른 사람들 것보다 복잡해서 그런 거라고. 그 와중에 덧붙이는 말이 마음에 들기도 했다.


네가 우리집에 머무르는 동안, 우리는 자주 그런 시간을 보냈다. 네가 혼자 무언가를 잔뜩 떠들면 나는 가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그걸 본 네가 소리내어 웃는 시시한 순간들이였다.

 


“…넌 왜 그렇게 키가 작아?”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다. 너는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멀뚱멀뚱 보다가 또 웃음을 터뜨렸다. 사토루는 바보구나. 그 말을 듣고서야 너에 대해 모르는 것들이 떠올랐다. 답지 않게 쭈뼛거리며 네 이름을 물었다. 네가 나보다 두 살 어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날 나는, 너에게 물어볼 것들을 한참 고르다 잠에 들었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눈을 떴고, 너는 아침 일찍 떠났다고 했다. 하루종일 이유도 모르고 심통을 부렸다. 나보다 두 살 어린, 파란색 머리의 여자애에게 바보 소리를 들은 게 분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이 하는 네 이야기를 들었다. 술식을 복사하는 술식, 그 술식이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가문과 그 가문에서 여태 없던 재능. 그 술식이 얼마나 이용 가치가 높은지, 네가 그 힘을 얼마나 잘 다루는지. 그리고 네가 각지를 돌아다니며―너는 끌려다닌다고 표현했지만― 다른 가문의 주술을 모으고 있다는 것까지. 네가 해준 적 없는 이야기들이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쥬몬지 가의 아이가 우리 사토루와 결혼하면 더할 나위 없겠다느니, 고죠 가의 술식을 보여주었으니 보답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느니,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이야기도 점차 나오지 않게 되었다.

 

 

 


“안녕.”

 


낯설지만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였다. 스구루에게 새로 바꾼 대기화면을 보여주고 있는 사이에, 등 뒤에서 웃음기 어린 인사가 들려왔다.

 


“……? 안녕. 신입생?”

 


스구루는 금새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눴다. 다짜고짜 반말을 던지는 신입생에게 버릇 없다는 소리를 하거나, 인상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나는 두 사람이 하하호호 하며 메일 주소까지 교환하는 장면을 보고서야 입이 벌어졌다. 하? 외마디가 볼품 없이 둘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사토루?”

 


내 친구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그 옆에서는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너는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벌써부터 눈가에 눈물이 맺힌 것처럼 보였다. 들리지도 않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스구루는 분위기를 살피듯 너와 나를 몇 번이고 번갈아가며 보고 있었다. 역시나 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웃음을 터뜨렸다.

 

 

 


“바보 같아. 사토루.”


아마도, 그건 내 평생을 통틀어 가장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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