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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_2분기.png

“반갑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담백한 소개 뒤로 밝은 인사가 이어졌다. 칠판을 등진 채 이쪽을 마주한 네 얼굴이 아직 앳된 것을 보니 우리보다 두 살이 어리다는 조금 전 소개가 다시 떠올랐다. 저러니 신입생이라고 착각할 수 밖에, 아무리 봐도 중학생 정도잖아. 이 시기에 신입생이 올 리는 없지만… 따위의 생각을 했다. 


사정이 있어 전학했다더니, 교토 고전에서 왔단다. 그런 것 치고는 사투리를 안 쓰네. 사토루하고는 어떻게 아는 사이일까. 혼자 시시한 의문을 품으면 마치 이쪽의 속내를 들은 양, “처음부터 이쪽으로 입학할 예정이였는데, 여러모로 계획이 바뀌었거든.” 하고 덧붙였다.

 


“술식에 대해 밝힐 수 없다고?”


“으응. 어차피 곧 알게 되겠지만, 아직은.”


“기대되네. 굉장한 술식인가 봐.”


“그, 그렇지도 않아~ 쇼코 씨도 참….”

 


소개가 끝난지 얼마나 됐다고, 너는 금새 쇼코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기 입학생이라기에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가 싶었는데. 빈말 한 마디에 부끄러워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게 영락없이 어린애 같았다. 눈까지 접어가며 웃는 걸 보니 더 이상 볼 것도 없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휘어진 눈매 사이로 언뜻 붉은 빛이 비치는 듯 했다.


눈…? 시선이 저절로 돌아가 사토루에게 닿았다. 턱을 괸 채로 두 사람을 지켜보다 “쳇.”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저쪽은 어느새 쇼코의 술식으로 주제가 옮겨졌다.

 


“오히려 대단한 건 쇼코 씨 쪽이면서? 그… 반전 술식.”


“……어이, 너 지금…”


“아아아아, 사토루! 쉿, 쉿!”

 


특별히 이상할 것 없는 한 마디에 사토루가 말을 얹었다. 아니, 얹으려다 그대로 말허리가 끊겼다.  눈썹을 비죽이며 표정이 일그러진 사토루는 그대로 네게 한 쪽 팔을 붙잡혀 밖으로 끌려나갔다. 교실에 남겨진 나와 쇼코는 잠시 두 사람이 나간 문을 쳐다보다 금새 시선을 거두었다.


몇 분의 시간이 흐르고서 사토루는 여전히 뚱한 얼굴로, 너는 지친 얼굴로 돌아왔다. 네가 내 옆자리에 앉아 말을 걸려고 하자 사토루가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차지했다. 너는 “저기 스구…” 까지 말하다 한숨을 쉬었다.

 


그 후로 며칠간 비슷한 반복이 이어졌다. 우연히 단둘이 있게 되었을 때에나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불편하게 게토 씨, 게토 씨 하는 게 듣기에도 민망하니 부르고 싶은대로 부르라는 이야기. 사토루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 시시콜콜한 잡담이였다. “있지. 스구루의 술식 말이야…”까지 말하는 순간 교실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임무에서 막 돌아온 사토루가 화난 표정으로 서있었다. 그대로 한참동안 이쪽을 노려봤다. 정확히는, 너를 노려봤다. 미안, 하고 짧게 사과한 네가 터덜터덜 걸어나갔다.

 


“그걸 꼭 해야 해?”


“……안 할 이유가 없잖아.”


“적어도 말을 하고 해.”


“그건……….”

 


듣기 싫어도 고장난 문 틈새로 대화 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주어 없는 대화가 이어지다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웅얼거리는 말소리에서 신경을 끄려는데, 별안간 사토루가 큰 소리를 냈다.

 


“너…!!!”

 


못들은 척 하기엔 목소리가 너무 크잖아, 사토루. 그럴 일은 없겠지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복도로 나가자, 이마를 한 손으로 짚은 너와 그런 네 어깨를 붙잡은 사토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리까지 지를 건 뭐야. 쪽팔리게…….”


“그거야, 네가 또……!”


“네에, 네에. 괜찮으니까 이것 좀 놔주라아. 아직도 네 살 짜리 꼬맹이인줄 안다니까, …아.”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었네. 사토루의 손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젓는 네 눈이 붉었다. 어색하게 눈이 마주쳤다. 네가 잠시 웃었던 것 같다. 사토루는 짜증이 잔뜩 서린 얼굴이었다. 나까지 한숨이 나왔다.

 


몇 주가 지나고서야 1학년들에게만 네 술식이 알려졌다. 사토루는 원래부터 알고 있던 것 같고, 나나 쇼코도 크게 놀라진 않았다. 나는 복도에서의 그 일이 있었고 쇼코는…… 여자의 감이라나. 덤으로 그 일의 전말도 들을 수 있었다. 


전학온 첫날부터 쇼코의 술식을 복사하고, 그걸 목격한 사토루는 어릴 적 제 술식을 복사하다 잠시 비틀거렸던 네 모습을 떠올렸다. 그래서 내 술식을 복사하지 못하게 막으려고 했다. ……누가 들으면 유별난 시스콤이라고 생각할 걸, 사토루. 너는 기어코 복도에서 설교하던 사토루에게 또 능력을 써버렸고, 그 뒤로는 내가 본 그대로. 그 와중에도 내 술식은 제대로 복사했다고 자랑까지 했다.

 

 

 


“……이렇게 보니까 반가운데?”

 


그랬던 네가, 내 앞을 막아섰다.

 


“전혀 반갑다는 얼굴이 아닌 걸.”


“뭐 하자는 거야, 지금?”


“글쎄…….”

 


사토루에 이어 너까지. 의미 없는 실소가 새어나왔다.

 


“다음에 만나면……. 그땐 널 죽일 거야.”


“그래.”

 


나는 그대로 발걸음을 돌렸다. 너는 아마 화를 내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 울고 있었나.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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