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류민현_2분기.png

*명탐정 코난 24권(애니 자막176~178/국내 더빙 3기 18~20화)을 보지 않으신 분껜 이 글이 스포일러가 될수 있습니다…

 

 

 

     일 때문에 호텔에서 며칠을 지내고 곧 떠나야 할 때가 왔다. 마지막 하루. 거쳐를 옮기기도 해야 했고 더 힘든 일이 있을 예정이라 그전에 이정도는 여유롭게 지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그 후로 여유를 즐기는 것 까진 좋았지만 제 눈앞에 마음에 든다며 남자가 주고 간 명함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보던 베르무트는 과거의 그날이 떠올랐다. 처음이 아닌 두 번째 만남. 임무 때문에 온 이곳 하이도 시티 호텔에서 열린 추모회를.

 

     ‘어? 저기…….’

 

     첫 번째의 만남에서 강한 인상을 준 호텔 직원으로 위장한 형사가 그때와는 다르게 검은색 정장을 입고 나타나 자신을 알아보았다. 첫 번째 만남이 인상에 깊어 그를 알아보는 건 정말 쉬웠다. 대답을 안 하니 잘못 안 건가 싶어 사과하는 그에게 저도 모르게 알고 있다고 답했다. 단순한 호기심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크리스 빈야드였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답하는 그에게 울려주다 그가 함께 있던 아이들에게 들키면 되지 않았기에 자리를 피하려 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반했습니다. 그, 그리니까 계약이든 뭐든 괜찮으니 저와 만나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때를 다시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살인사건 장소에서 사건 해결이 되지 않은 그 상황에서 자신이 내뱉은 말에 후회하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얼굴은 첫 번째의 만남을 떠올리게 했었다. 그런 얼굴을 보고 누구나 자신과 같을 거다. 베르무트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저도 모르게 뱉어낸 대답과 함께 전화번호를 준 것을… 그리고 연락은 없었다. 어째서일까. 역시 경찰이었기에 번호를 받기만 하고 연락을 안 준 걸까. 거짓말이었다면? 어차피 대포폰이라 상관은 없었지만. 그런데도 대포폰을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건 단순한 변덕이었다.

     눈앞에 있는 명함을 두고 일어나려는데 뒤쪽에서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처럼의 쉬는 날. 살던 집을 리모델링 하는 동안 임시로 묵는 호텔에서 쉬려고 하는 것까지 좋았다. 전날 아니, 며칠 밤을 새우고 일한 탓에 피곤은 했지만 잠이 안아 일단 호텔 안 카페로 가서 배를 채우려고 어기적거리며 걸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걸 주문했다. 금방 직원이 들고 오는 커피와 샌드위치를 받아들어 먹는다. 피곤했다. 제 옆을 지나가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어디서 본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제 뒤로 자리 잡고 앉는지 의자가 움직이 자신이 앉아있던 등받이에 부딪치지만 피곤해서 샌드위치를 먹는 것에 집중을 한다. 별일이 없기도 했고.

     뒤쪽에 있던 두 사람은 연인은 아니고 그저 이곳에서 처음 만난 사이인지 남자가 상대에게 제 명함이라고 말한 뒤 연락을 달라며 다시 제 옆을 지나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명함 하니 자신에게 전화번호를 줬던 한 여자가 떠올랐다. 분명 외국의 배우였는데. 피곤함에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분명 자신이 마음에 들어 했던 사람인데 그래서 번호를 받아놓고선.

     한 번은 제일인 폭발물 처리를 하던 중, 또 한 번은 살인사건과 아가사 박사님과 함께 지내는 아이가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다쳐왔다. 이어지는 폭발물 처리와 죽은 동료를 떠올리게 했던 사건을 겪고 나니 반복이 잊고 있었다. 전화를 해야지 하면서 번호는 휴대전화에 저장은 해놓은 상태인데. 자신이 반한 사람이 외국 배우이기 때문에 연락을 하는 순간 없는 번호라고 뜰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 음식이 들어오니 어느정도는 눈앞이 트여 메뉴판을 집어 들어 다시 직원을 부르려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눈앞에 일렁이는 백금발이 보이자 찢어진 종이에 번호를 적어준 그 사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크리스 빈야드…….”

 

     백금의 물결이 움직임에 따라 일렁였다. 저를 보며 웃는 얼굴이 보이니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째서? 대답을 못하는 그를 보며 베르무트는 제 짐만 챙겨 몸을 일으키고 그의 맞은편 쪽으로 가 앉는다. 베르무트의 움직임에 따라 제 고개가 돌아가는 것도 모르는지 멍한 얼굴로 바라볼 뿐이다. 한참을 멍하게 있다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들리자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린다. 어떡하지. 고민을 하던 차 근처에 지나가던 직원을 불러 급히 자신이 마실 차를 주문하자 베르무트도 자신이 마실 것을 새로 주문한다. 미치겠네. 급히 물티슈로 손을 닦아낸 뒤 양손으로 얼굴을 문질러 마른 세수를 한다.

 

     “반갑…습니다.”

     “오랜만이네요.”

     “그렇네요… 죄송합니다.”

     “전화번호를 받아 가서 연락을 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뒤로 많은 일이 있었거든요. 알고 지냈던 아이가 다치고…”

 

     하던 말을 멈추고 그는 한숨을 쉰다. 그 뒤로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저 자신을 크리스 빈야드라고 알고 있는 그에게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바쁜 것도 알고는 있었지만…. 직원이 자신이 주문한 음료와 그가 주문한 차를 내어준 뒤 사라진다. 여전히 미안해하는 얼굴로 제 앞에 있는 찻잔을 만지던 그가 뒤늦게 이어 말한다.

 

     “이건 다 핑계죠.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경찰이라 그럴 수도 있는 거죠.”

     “아뇨. 이건 제 잘못이 맞으니까요. 불편하시면 그때 하기로 했던 계약은 없는 걸로 해야겠네요. 죄송했습니다.”

 

     조금 전까지 이 얼굴을 잊고 있던 자신을 탓했다. 할 말이 없다. 그는 상대가 자신을 때리건 욕을 하건 제 잘못이니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대답을 기다리는데 왜 그렇게 긴장이 되는지 손까지 떨려온다. 의자가 살짝 뒤로 물러나는 소리가 들리고 손이 다가오자 그는 몸을 움츠리며 눈을 질끈 감는다. 아. 망했다. 맞겠구나 싶었는데 그 후로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살짝 입가에 만져지는 느낌에 슬쩍 눈을 뜬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그와 함께하는 쿨가이와 엔젤을 보호하는 그가 쉐리의 행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정보를 빼앗기 위함이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저를 바라보는 그 순진한 얼굴로 그들에 대한 정보를 술술 털어놓을 거라 믿을 뿐이었다.

 

     “아… 네, 네! 잘 부탁해요. 크리스…! 미안해요. 고마워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정말 반가워요. 진짜 정말로.”

 

     놀란 얼굴이 곧 밝은 얼굴이 되어 제 한 손을 잡아들어 손등을 이마에 가져다 댄다. 상체가 숙여지고 사과와 고마움을 말하며 기뻐하는 행동에서 손등에서 느껴지는 축축함이 손가락을 타고 아래에 있던 테이블 위로 물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지는 것에 대해선 전혀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몇 번 어깨가 들썩이는 걸 보고 나서야 베르무트는 잡힌 손을 가볍게 빼내어 엄지로 그의 한쪽 눈가를 닦아낸다. 순진하고 바보 같다. 자신이 뭐라고. 정체를 아는 순간에도 그는 지금처럼 반응을 할까. 의문이 들었지만 곧 다른 쪽 눈가도 닦아내며 웃는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