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03
첫인상은 살짝 멍한 아이라 생각했다. 아니, 아이라고 한다면 그녀에게 실례일까. 아니, 살짝이라고 했으나 결국 멍하다고 표현한 시점에서 실례다. 하지만 그 감상은 어찌할 수 없었던 우류다. 그날 본 그녀는 멍한 상태였다.
조금은 강한 바람이 스쳐 지나가도, 아이들이 커다란 목소리로 웃으면서 지나쳐도, 고양이가 다리에 부비면서 애교를 부렸어도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늘인지 머나먼 풍경인지,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없는 눈동자가 움직인 건 한참 후였다. 교회의 신관이 나타나 어깨를 건드려서야 움직였던 여성이었다. 그제야 자신의 발치에 몇 마리의 고양이가 모인걸 알아차렸던 그때는 이름을 몰랐던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오늘부터 함께 할 신기사다."
"......"
믿기 힘들었다. 그게 우류가 여성에게 몇 번째로 가진 감상이다. 웬일인지 안화에게서 세츠가 누군가를 소개하기 위해 찾아올 거란 연락이 왔었다. 그 이후, 얼마지 않아 찾아온 세츠의 곁엔 공원에서 몇 번을 본 여성이 함께였다. 그리고 딱 맞춰 단말기로부터의 안화의 말을 우류는 바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도 중앙청에 속한 신기사이기에 그들의 연령대가 정해져 있지 않음을 알고 있다. 아직은 어른의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 또한 신기사가 된 경우를 잘 알고 있는 우류다. 허나 어째서 일까, 눈앞의 여성에 대해선 신기사가 절대 아니다란 무의식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은 외견만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친 적이 있음에도 상냥한 고아원의 원장은 그 답지 않은 실수를 한다.
"보통은 이렇게 따로 소개를 하지 않지만, 그녀는 고아원을 포함한 이 근방을 주 담당하기로 정해졌다. 그래서 고아원 원장인 너에게 소개하는 것이 나을 거라 판단한 거다."
"그런 거였군."
안화의 설명에 우류는 이 상황에 대해 이해했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여성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허나 상대방은 그와 한 번도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다른 곳을 볼 뿐이다. 언제나 공원에서 보던 때와는 다른 분위기에 그가 위화감을 느끼며 입을 연다.
"안녕, 나는 우류. 이 고아원의 원장을 하고 있어."
"......"
무의식이었을 거다. 평소보다 더욱 부드럽고도 자상한 목소리로 우류는 인사를 건넨다. 그 얼굴에 맺힌 미소는 사회적 자리의 미소와도 아이들을 향할 때의 미소와도 틀렸다. 허나 본인도, 세츠도 알아차리지 못한 표정을 받은 여성은 보지 않는다. 여전히 어딘지 모를 장소를 향한 시선은 누구에게도 돌려지지 않는다. 미동도 없는 그 모습은 숨을 쉬는지도 의심하게 만들 정도였다. 짧은 정적에 그때까지 조용하던 신관이 결국 참지 못하고 움직인다.
"하하하, 미안해요 우류씨. 이 아이가 조금 멍하달까, 낯을 가린달까."
"괜찮아. 내가 무서울 수 있으니까."
"..... 그건 아니에요."
"응?"
검지의 끝으로 여성의 볼을 살살 누르면서 세츠가 미안함을 담아 사과하면서도 여성을 감싼다. 이미 공원에서 함께하는 둘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 우류는 새삼 둘의 거리감이자 친밀함을 느끼게 된다. 일순 목 안 쪽이 답답한 기분이 되었으나 그는 개의치 않은 채 입을 연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과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그녀의 심정을 멋대로 결정한다. 정말로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고 훗날 후회할 말을 나무 아저씨는 입에 담는다.
그러자 들려온 누군가의 작은 목소리. 우류도 아닌, 세츠도 아닌, 더불어 안화의 것도 아닌 목소리의 주인은 한 사람 뿐이었다. 두 남자의 시선이 움직여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본다. 분명 다른 모습이 보일 거라 여긴 두 사람이지만 여성의 모습은 변함이 하나도 없었다. 돌려진 고개도, 다물어진 입도, 어디를 향한 것인지 모를 시선도. 아직 인사도 하지 않은, 이름도 알려주지 않은 여성이 말했다는 사실을 일순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할 만큼 변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다시 정적을 유지하려는 오늘의 주인공에 두 남자도 들은 사실에 대한 확신이 없어 입을 열지 못한다. 미묘한 정적이 그들을 감싸기 시작하는데, 그걸 부수는 기계 너머의 이 만남의 주선자다.
"코드네임 모멘트(Moment), 이건 일이다. 원만한 일을 위해서도 현지인이자 동료와의 인사는 제대로 해두도록."
"......"
안화의 냉철하고도 흔들림이 없는 말에 모멘트라 불린 여성은 눈동자를 미미하게 움직인다. 살짝 내려간 시선은 감성에 잠긴 듯 하면서도, 미약하게 뚱한 느낌이기도 했다. 허나 결국은 표정이 없는 얼굴에 어느 쪽인가 이전의 문제로 감정 자체를 읽을 수 없는 신관과 원장이다. 그저 그들이 그러하지 않을까 라고 멋대로 추측할 뿐이었다. 두 남자의 속을 모를 여성은 눈을 감아버린다. 우류는 그 몸짓에 미미한 위화감을 느끼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잠시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조각상과 같이 미동도 없던 여성이 움직인다. 첫 번째는 가슴, 조금 깊게 숨을 쉬었는지 눈에 보일 정도로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분명 그건 한숨이라고 표현할 수 있었다. 비록 코로 내쉬었지만 그건 분명한 한숨이라 불리는 행위였다. 두 번째는 입술, 안화의 말에도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틈이 벌어진다. 허나 그 안에서 나온 건 한숨도 인사도 아닌 아주 작은 중얼거림이었다. 세 번째는 눈꺼풀, 감음으로서 거부감을 나타냈던 얇은 장막이 들어 올려진다. 천천히 떠진 눈꺼풀 사이로 다시 햇빛을 받아 반짝인 연갈색의 눈동자가 보여 왔다.
그리 길지도 않은, 오히려 짧다고 할 수 있는 행동에 우류는 아까의 위화감을 또 느낀다. 하지만 결국 그 이유를 그는 알아내지 못한 채 자신에게로 향해지는 시선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들려온 목소리에 한 번 더 위화감이 가슴을 쓸어내린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 이름은 시와가리 사유라. 고아원과 함께 이 구역을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
차갑다는 아니었다. 그러나 결코 부드럽다나 따스하다는 감상은 들지 않았다. 예의가 바르다고, 정중하다고 할 수 있었다. 허나 그 안에서 어떠한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통보만이 담긴 그 인사에 우류는 바로 반응할 수가 없었다. 가슴이 이상하도록 서늘해지는 감각이 그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미소도, 멍함도 없는 여성의 모습이 낯설다 못해 형태를 가져 보이지 않는 손으로 목 안쪽을 짓누른다.
겨우 우류는 알 수 없는 감각들을 견뎌 미소를 만들어낸다. 자신이 잘 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눈앞의 여성은 한 때 괴물이라 오해 받은 자신을 무서워하는 건 아니다. 더불어 경계도, 불쾌감도 보이지 않았다. 상냥한 나무 아저씨라 불리는 그지만, 인간은 제 속으로 감출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확신할 수 있었다. 눈앞의 여성은 자신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지 않았음을.
"정중한 인사 고마워. 나도 다시 자기소개를 할게. 나는 이 고아원의 원장을 맡고 있는 우류. 만나서 반가워, 시와가리양."
"......"
본인이 생각해도 이상하도록 그녀에 대해 의심을 가지지 않은 채 우류는 다시 인사를 건넨다. 스스로가 자각하지 못한 평소보다 더 부드러운 자신의 목소리를 모른 채 그는 상대방의 반응을 기다린다. 다시 말이 없어진, 방금까지 선명하고도 흐트러짐 없던 목소리를 내지 않는 사유라란 여성. 일순 안화의 명령에 따른 제 할 일을 끝내 다시 말이 없어진 게 아닐까란 불안감이 들었다. 허나 그건 그만의 착각이자, 괜한 걱정이었다. 극도로 말이 없고도 평소 멍했던 모습만 보던, 방금 이름을 알게 된 여성은 입을 연다. 그와 함께 바람이 불어와 그의 코를 간지럽혔다.
"저도 만나서 반가워요."
착각일까, 아까보다는 희미하게 부드러워진 듯한 목소리와 함께 옅은 꽃의 향기가 함께 스쳐 지나갔다. 오늘 처음 듣는 목소리일 터인데도, 기억에 없는 향일 터인데도 낯설지 않았다. 기억에 없을 터인데도 목소리의 차이를 알 수 있었다. 분명 맡은 적이 없는데도 희미하게 꽃의 형태와 색이 떠올랐다. 이상하도록 사유란 존재가 자신을 휘두름에 나무 아저씨는 눈앞에 여성을 살펴본다.
그러나 자신이 느낀 것이 사실이라기엔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감정이 없고, 꽃의 향은 맡아지지 않는다. 우류는 정말이었는지에 대해 차마 묻지 못하고 차를 대접하겠다고 했으나 사유라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희미하게 젓는다. 그러고는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자리를 떠난다. 미련이 하나도 없다고 고하듯 그 걸음은 흔들림이 없고도 공원에서 보던 느긋함은 없었다. 얘기 하나 없이 가버리는 그녀에 신관은 놀라더니 사과가 담긴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뒤를 따라간다. 곧 둘은 나란히 걸어간다. 신관의 하얀 옷과 여성의 검은 머리카락 동시에 흔들거리는 모습을 남겨진 자는 조용히 바라 볼 뿐이다.
"시와가리 사유라...양인가."
우류는 이미 자리를 떠난, 다시는 얘기를 나눌 수 없을 것만 같은 여성의 이름을 입에 담아본다. 목부터 올라온 작은 진동이 너무 생생하여 위화감을 느끼게 했다. 오늘 처음으로 담았던, 지금으로 2번째인 고유명사는 의심이 들 정도로 낯설지 않았다. 아직도 그의 귓가에 그녀의 목소리가, 코끝엔 이름을 모르는 꽃의 향기가, 눈동자 안쪽에 옅은 갈색의 눈동자가 아른거렸다. 분명 그의 기억 속에서 '시와가리 사유라'는 존재하지 않을 터인데도 낯설지 않았다. 허나 동시에 그 감정이 없는 눈동자와 목소리는 낯설다 못해 가슴을 어지럽혔다. 너무도 그녀와 어울리지 않다고 이제야 몇 번이고 자신을 흔든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차린다.
하아- 하고 그치고는 감추지 않은 한숨이 흘러 나온다. 아이들에게 보일까 혼자만의 걱정이나 피곤함을 감추는 상냥한 나무 아저씨가 말이다. 허나 정작 본인의 그러한 상태를 인지도 못한 채 어떠한 하나를 떠올린다. 자신에게 인사하기 전, 작은 입술이 담은 짧은 중얼거림을...
"21, 그건 무슨 의미일까."
두서없이 그녀의 입에서 나온 숫자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나이라고 하기엔 틀린 것 같았다. 자신에 대한 평가라고 하기엔 그러한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확실한 건, 그 순간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가장 무겁게 닿아온 소리였다는 사실이다. 어느새 제법 멀어진 두 사람을 바라보았던 우류는 이내 몸을 돌린다. 그 뿐인데도 고아원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을 터인데도 방금까지도 들려오지 않았던 희망의 소리들. 문득 만약.. 만약... 다음에 그녀를 만난다면 고맙다고 전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은 그녀는 자신과 아이들을 위해 일을 해주는 것이기에. 그때는 부디 진심으로 만나서 반가운 여성의 미소를 볼 수 있다면 좋겠다라고 상냥한 나무 아저씨는 작은 바람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