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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임버스 AU

 

 

 

“시간 날 때 올게요. 잘 있어요, 선배.”

“응. 잘 다녀와.”

 

출근 전 아내에게 배웅받는 남편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키라는 빠르게 집을 빠져나왔다. 아키라는 카오루의 이름이 새겨진 곳을 문지르며 길을 나섰다. 이제 완전히 버릇이 되어 버렸다.

 

 

카오루는 여태까지 어디서 누구랑 어떻게 지내는지 몇 번을 물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아키라는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 하나.

- 그렇게 살지 말고 차라리 저랑 같이 살아요.

카오루는 망설이다가 결국 그러자고 했다. 그날 바로 작은 아파트를 찾아 그가 머물 곳을 마련해줬다. 마련해줬다고는 해도 대금은 카오루가 지불했으니 마련해줬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같이 살자고 했지만, 실질적으로 같이 사는 것은 아니었다. 아키라에게는 가족도 있고 바둑도 있었다. 시간이 나면 카오루의 집에 들러 잠깐의 시간을 보내거나 가끔 함께 밤을 지내는 정도였다. 카오루는 그런 부분도 예상하였는지 별다른 말을 얹지 않았다.

 

아니, 카오루는 그게 아니어도 아키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키라를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아키라의 이야기는 귀 기울여 들었지만 먼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청한 적은 없었다. 아키라 역시 그가 궁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바둑뿐이었던 인생에 새로운 형태의 끌림은 그를 애타가 만들기 충분했다. 그저 재촉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선배, 휴대전화 사줄까요?”

“응? 아, 음…….”

 

아키라의 기대와는 다르게 카오루는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보통의 카오루는 아키라의 부탁이라면 아무리 곤란한 것이어도 일단 생각해본다는 대답이 바로 나오곤 했다. 아키라는 카오루를 기다렸다. 지금과 같은 반응이 처음이라 자신도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바로 캐치하지 못했다. 카오루는 머뭇거리다가 오히려 아키라에게 질문을 했다.

 

“그게 왜 나한테 필요한데?”

“그냥, 있으면 좋잖아요. 연락하기도 더 편하고. 선배는 싫어요?”

“아니 그건 아닌데…….”

 

다음에 나올 말이 예상이 갔다. 토우야가 그러고 싶다면 그렇게 하자. 그래서 아키라는 카오루의 말을 멈췄다. 남들은 모두 가지고 싶어 하는 휴대전화를 사주겠다는데, 꺼리는 확실한 이유를 듣고 싶었다. 무엇이 그를 고민하게 만드는지 알고 싶었다.

 

“어차피 나한테 연락 올 사람 토우야 밖에 없고, 또, 난 밖에 잘 나가지도 않는데 굳이…….”

 

아키라는 카오루의 말에 모든 사고를 정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본인은 자기가 한 말이 얼마나 파급력 있는 말인지 알지 못하는 것 같다만.

카오루는 아키라의 표정을 읽어내려는 듯 카오루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곤 결국 예정된 수순을 밟는다.

 

“그래도 토우야가 원한다면 뭐어, 나도 좋아.”

 

 

그렇게 해서 카오루는 제대로 사용할 줄도 모르는 휴대전화가 하나 생겼다. 아키라와 똑같은 것으로. 아키라의 번호는 처음부터 저장되어 있었고, 그래서 카오루는 번호를 저장하는 법조차 알지 못했지만 궁금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다른 번호를 저장하게 될 일도 없을 것이다.

 

 

 

 

휴대전화를 처음 받을 날, 카오루는 사용 방법이 너무 어려워서 자기가 잘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카오루는 전화를 제때 받은 적이 거의 없었고, 문자에는 답장이 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먼저 휴대전화로 연락이 온 적도 없었다. 그래서 연락은 전처럼 거의 집 전화로 했다. 하필 카오루가 집에 없는 시간에 전화를 걸어 연락이 닿지 않았을 때나 용건을 문자를 전하는 정도였다. 그래도 문자를 확인하는 방법은 아는지 이로 인한 문제는 없었다.

어차피 연락이라고 해봤자 언제 집에 도착할 거라느니 오늘은 자고 갈 거라느니, 그게 전부였다.

 

 

 

쇄골 부위에 강하게 느껴지는 통증에 저절로 잠에서 깼다. 잠결에 통증이 느껴지는 부위를 감싸고 있었는지 손이 저릿저릿했다. 이런 종류의 통증은 네임이 생길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 아키라는 잠에서 확 깼다.

아키라는 네임이기는 했어도 그것을 숨기며 살았으니 네임으로 살면서 마주할 수 있는 ‘어떠한’ 일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아키라가 아는 것들은 주위에서 어깨너머로 주워들은 이야기,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서 본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전부였다. 상대방이 죽으면 네임이 사라진다거나 어느 날 네임이 두 개가 된 사람도 있다거나 그런 이야기는 어디선가 접하기는 했는데, 정말로 그러한지, 흔하게 발생하는 일인지 여부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의 통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네임이 생길 때와 같은 통증이 다시 찾아온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었다. 운명의 상대와는 네임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그 상대에게 큰일이 생겼을 때 네임이 그것을 알려준다는 이야기를 정설도 받아들이고 있었다. 설마 나에게 네임이 사라진다거나, 그 주인이 사라졌다거나, 그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아키라는 땀범벅이 된 채로 침대에서 튀어 오르듯 일어나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을 보기 위해서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서기는 했으나, 아키라는 차마 확인할 자신이 없었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쿵쾅쿵쾅 이라는 것을 생경하게 느끼는 중이었다. 쇄골을 덮은 손에도 심장의 박동이 그래도 그에게 정말 심각한 일이 생긴 것이라면 사소한 두려움으로 지체할 시간이 없을 터였다. 아키라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조심스럽게 손을 아래로 내렸다.

타는 듯한 통증을 제외하면 왼쪽 쇄골에 새겨진 세 글자는 평소와도 같았다. 흐려졌다거나, 지워졌다거나, 주위가 부었다거나 혹은 그 외의 어떠한 자잘한 변화도 없었다. 아키라는 그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둔한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하고 있으니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 되려 이상한 수준이었다.

 

네임 때문에 생긴 통증이 아닌가 싶어 아키라는 통증을 식히기 위해 손을 찬물에 적셔 네임의 위에 몇 번이나 가져다 댔다. 하지만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았다. 아키라는 다시 통증 부위를 감싸며 세면대 아래에 주저앉았다.

‘내가 이렇게 아플 정도면 선배는…….’

 

아키라는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일어났다. 소란에 부모님이 깰까 조심스럽게 화장실 문을 열고 다시 방으로 향했다.

아키라는 어두운 방을 더듬으며 뒤져 휴대전화를 찾아냈다. 카오루의 이름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들리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제발 전화 받아주세요, 제발.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만큼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그야 당연했다. 아키라는 지금도 살점을 베는 듯한 고통을 이를 악물고 참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키라의 바람과는 다르게 연결음은 끝내 카오루의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고 끝나버렸다. 아키라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 자판을 꾹꾹 눌렀다. 간절한 바람을 담은 문자였다. 처음 한 통을 보내고 1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아키라는 그 순간이 10분, 아니, 30분처럼 느껴졌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방식으로도 재촉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아키라는 연이어 문자를 두 통이나 더 보냈다. 제발, 제발, 선배.

 

[선배 무슨 일 있어요? 왜 전화 안 받아요?]

[선배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이거 보면 전화해주세요]

 

아키라는 두 손을 모아 휴대폰을 붙잡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기도할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던데. 지금 아키라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가 전부였다.

아무 일도 없기를. 아무 일 없이 평온히 자는 중이라 답이 없는 것이기를.

아키라는 눈이 아플 정도로 눈을 세게 감았다. 몇 분을 그렇게 있었을까, 손안에서 약하게 울림이 느껴졌다. 아키라는 서둘러 자세를 고쳐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나 잘 있어]

 

발신인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아키라는 그 네 글자에 무너지듯 침대에 누웠다. 잘 있어, 잘 있었어. 카오루에게서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다. 그런데도. 화면 위의 문장은 평소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네임을 쑤시는 고통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아무리 그 의미가 퇴색되었다고 해도, ‘이름’과 ‘운명’은 별개 선상에 둘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키라는 침대에 바로 누워 답장을 고민했다. 그러나 온몸에 긴장이 풀린 아키라는 녹아내리듯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아키라는 일어나자마자 곧장 카오루의 집으로 향했다.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왔는데도 카오루는 변함없는 얼굴을 하곤 아키라를 맞았다. 어제의 일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평소에는 특유의 무관심이 서운했지만, 오늘만큼은 감사했다. 어제의 일을 그가 안심하는 선에서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밥 아직 안 먹었지? 먹고 갈래?”

“그럼 선배는…….”

“나는 또 만들면 되니까 괜찮아. 토우야는 금방 가야 하잖아.”

- 그렇게 카오루는 아키라의 아침을 먹게 되었다. 카오루의 집에서 카오루가 해준 아침밥을 먹는 것이 처음도 아니면서 괜히 들뜬다. 카오루는 앞에 앉아 평소 함께하는 식사 시간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제는 무얼 했고, 오늘은 무얼 할 예정인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말 어제 새벽에 보낸 문자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뭐 어때. 아키라는 카오루와 같은 공간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름이 새겨진 부위에 평소와는 다른 감각을 느꼈다. 어제와도 달랐다. 어제는 타는 듯한 뜨거움이었다면 오늘은 발끝까지 은은하게 감싸는 따스함이었다.

 

 

카오루는 아키라를 배웅하기 위해 앞치마 차림으로 현관 앞까지 나왔다. 이 모습도 벌써 몇 번을 봤는데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붉어지는 귀를 가려줘 다행이었다. 볼까지 열기가 번지기 전에 아키라는 빨리 카오루에게 인사를 건네고 나온다. 뒤에서 카오루의 인사가 들린다. 아주 일상적인 대화(인사)에 기분 좋은 웃음이 나왔다.

 

“다녀올게요. 잘 있어요.”

“그래, 잘 다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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