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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라_1분기_우류.png

*드림주 ≠ 지휘사 (플레이어 캐릭터) 이며, 별개의 인물입니다.

*드림캐 우류의 엔딩에 대한 스포내용이 담겨있어, 스포에 대해원치 않는 분들은 읽기를 권장 드리지 않습니다.

 

 

 

 

 

 

# 00◆40◎

 

 

눈을 뜬다. 그건 자신이 선택할 기회도, 판단할 틈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행위다. 허나 곧 보여 온 밤에 가까운 짙은 잿빛의 색의 시멘트 천장과, 코 안쪽으로 침투하는 미미한 퀴퀴한 먼지 냄새에 마음이 먼저 반응한다. 숨을 쉬기도 전에 밀려들어오는 감정은 후회와 슬픔이었다. 또한 허무함이 이제는 몸에 없을 상처 대신 깊이 박혀온다.

 

 

"아아, 실패했어. "

 

 

바싹 마른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목소리는 듣기 흉하도록 갈라져 있었다. 입술만이 아니라 입안과 목도 마른 것을 느끼며, 눈을 천천히 감는다. 그러자 어둠뿐일 세계에 펼쳐지는 꿈의 풍경은 제 가슴을 도려내는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그 곳은 분명 부서져 가는 세계이며, 광기에 물든 신자가 불타는 세계이며, 신이 버린 세계이며, 어린아이들이 우는 세계이며...... 상냥한 사람이 원치 않는 멸망의 검을 든 세계였다.

푸른 불꽃이 코앞까지 다가오는 환각, 꿈의 잔재에도 자신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누군가의 눈동자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불길에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보라색의 불꽃이 그를 덮어 기이한 가면을 만들어내는 모습 또한 바라만 본다. 이내 신이 내린 불꽃이 모든 것을 집어삼켜 불태우는 속에서 가만히 서 있는 남자를 바라만 볼 뿐이다. 뒤에서 누군가들의 외침이 들려오나 자신은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구원이 사라진 세계의 단편을 이미 봤던 자신은 그 끝을 보려 한다. 아직도 울고 있는 누군가를 혼자 두고 싶지 않았기에...

 

 

"바보....."

 

 

누군가를 향한 것인지 모를 말을 입에 묶어두고 눈을 뜬다. 변함없는 잿빛의 천장이 자신을 맞이함에 따른 비틀려진 안도감을 집어삼키고 나갈 준비를 시작한다. 여전히 자신의 눈꺼풀 뒤쪽에 들러붙은 보라색 불꽃의 열기를 응시하며 말이다.

시간이 지난 뒤,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어 빠져나온 건물을 뒤돌아본다. 거기엔 누군가 살기를 꺼려할 만큼 낡았다 보다는 부서져 더 빨리 풍파 된 한 시멘트 건축물이 서 있다. 주의의 같은 느낌의 빌딩들과 건물들로 인해 햇빛도 들지 않는 그 건물은 스산한 기운이 든다고 해도 납득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한 곳에서 나온 자신은 타인의 눈에는 아마 이상하게 비쳐지겠지만 상관이 없다. 누구도 보지 않고, 더욱이 이 건물은 이제 익숙해져 버린 자신이다. 더불어 더 긴 시간이자 횟수 동안 신세를 질 장소이기도 하며, 눈에 띄지 않는 장소이기도 해서 이제는 싫지만은 않다. 귓가에 복수의 목소리들의 잔소리이자 걱정이 아른거리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그저 흘러 넘긴다.

 

 

"이번에는 어떻게 할까. 중앙청? 아님 동방? 아니면... 연구소..."

 

 

느긋한 걸음걸이로 어느새 사람들이 다니기에도 문제없는 거리를 걸어 나간다. 앞을 제대로 본다는 착각에 빠진 채, 생각에 잠긴 채 걸어 나간다. 바람이 스쳐 지나감에 들리는 어디에 있는지 모를 나뭇잎들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시야 한구석으로 들어오는 파랑은 분명 하늘일 것이다. 아아, 그렇구나. 일단 이번은 맑은 날씨구나. 심드렁한 중얼거림이 내 안에 울리는 것을 느끼며 발걸음을 옮긴다.

정처 없이, 도착지를 정하지 않았을 터인데도 내 다리는 멈추지 않는다. 뇌는 끝임 없이 여러 가지에 대해서 정리와 선택, 수정 등을 행하며 바쁘다. 하지만 그 외의 기능들은 마비되어 감각이 무뎌진 상태라고 멍하고도 태연하게 자가 진단을 한다. 이럴 때는 누군가는 잔소리를 하고, 누군가는 장난을 걸었다.

 

 

"그는 걱정을 하신 경우가 많았지..."

 

 

생각만 했어도 충분했을 터인데 흘러나온 문장은 자신이 들어도 미련 덩어리다. 노골적으로 이름으로 부르지 않은 인물의 모습이 아른거리기 시작한다. 투명하고도 평온한 거리에 어울리는 자의 모습이 꿈의 잔재를 걷어낸다.

'거짓말'

딱 부러진 목소리가 뇌를 가격한다.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고 믿던 시야가 바뀐다. 찬란하도록 햇빛에 감싸이던 거리는 일순 어둠과 불꽃으로 뒤덮인다. 어둠 속에서 빛을 만들어내지 않는 푸른색과 보라색의 불꽃들이 성나게 일렁이며 타오른다. 코와 입의 구멍으로 들어와 늘러 붙어오는 재 가루. 두 색의 불꽃에 경계가 사라질 만큼 타버린 거리와 그 안의 모든 것들은 색을 잃어 사라져 간다.

계속 달라 붙어있던 꿈의 열기가 눈의 안쪽으로 타고 들어온다. 이윽고 온 몸으로 퍼지는 열에 숨을 쉬기 어려워지고, 지독한 두통과 현기증이 머리를 뒤흔든다. 광신도의 웃음소리가 이명과도 같이 귀 깊숙이 울려 퍼져 광기를 전염 시키려 한다.

 

 

"끝난 세계야."

 

 

지독하게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나의 목소리다. 볼품없고도 나약한 나의 목소리다. 결국 무엇 하나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자의 목소리다. 지나간 꿈들의 짙은 잔재에 나날이 무너져 가는 자의 목소리다. 사실은 끝난 것에 대한 미련만이 가득한 자의 목소리다.

초록으로 감싸인 상냥한 그의 모습이 불꽃에 휩싸여 원래의 모습을 잃게 된다. 언제나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들던, 그의 상냥함을 담은 듯이 은은한 녹색으로 빛나던 검은 불길함으로 감싸인다. 잘 정돈된 얼굴의 반을 가리는 보라색의 가면은 기이하다. 아직 가려지지 않은 오른쪽 얼굴에서 한 방울의 물방울이 흘러내려 멸망에 물들여지는 그와 대조 된다. 하지만 곧 그 눈물은 세계를 집어삼키는 불꽃으로 인해 사라진다.

 

 

'사유라.'

 

 

환청, 환청이다. 꿈이 새겨진 내게 들려오는 환청이 광신도의 목소리를 지우고 파고 들어온다. 그 사람이 이 순간 나를 부를 리가 없으니까, 나를 알지도 못할 테니까. 그는 언제나 꿈에서 끝이나 나를 기억하지 못했으니까. 꿈의 잔재를 붙잡고 있는 건 나 혼자였으니까. 그러니까 환청이다. 상냥한 이 목소리는, 끔찍한 불타는 세계에서 들려오는 이 목소리는 꿈의 잔재다.

곧, 눈앞의 그는 사라질 거다. 불꽃에 타버려서 내 눈앞에서 사라질 것이다. 똑같이, 언제나처럼 내 눈앞에서 덧없고도 지독하게 바스라져 버릴 것이다. 죄책감과 미안함을 담아낸 짙은 갈색의 눈동자로 나를 본 채 그는 허무하게 꿈의 잔재가 될 것이다. 그러면 남겨지는 것은 나 혼자다. 언제나와 같이 언제나처럼 나 혼자만이 꿈의 잔재를 눈꺼풀 안쪽에 새겨 넣어 잊지 못할 거다.

 

 

"사유라!"

 

 

아, 이번 환청은 제법 목소리가 크시다. 아니 이 장면에서 그는 나를 이렇게 부른 적이 없을 터인데, 다른 꿈과 겹친 걸까. 하긴 이제 제법 그 수가 많으니 뒤죽박죽 섞여도 어찌할 수 없었지. 아아, 얼른 이 환상과 환청이 끝나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차라리 아까 거처에서 보였다면 더 편했을 텐데. 이런 길거리보다는 더 침착하게 있었을 텐데, 더 쉽게 무너질 수 있었는데.

한 번 더... 한 번 더... 저 환각인 그에게 안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한 번 더 맹세를 듣고 싶은데, 그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 아아, 정말이지 신은 내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말이지. 아니, 그 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 이런 일을 당하는 걸까나. 어느 쪽이든 이 환청이 끝나는 날은 아마 멀거나 힘들겠지. 차라리 이번은 이대로 끝나 꿈이 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

 

 

"사유라!"

 

 

쨍하고 큰 목소리와 함께 꿈의 광경이, 환각이 깨진다. 말도 안 된다. 이러한 일은 한 번도 없었는데, 누가 무슨 짓을 한 걸까. 혼란스러운 머리가 필사적으로 돌아가며 상황을 파악하려 한다. 불꽃과 어둠이 가득하던 환각이 사라진 내 시야로 들어온 건 투명한 햇빛이다. 그리고 그 빛을 받으며 나타나는 인물의 얼굴에 스스로도 알 만큼 눈이 커진다.

녹색으로 물들여진 긴 머리카락, 머리에 달린 잘 다듬어진 두 개의 뿔, 오른쪽 눈에 난 상처. 그리고 짙은 갈색의 눈동자. 그 모습의 , 눈앞의 인물을 나는 알고 있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도 집착하고 있는 사람의 등장은 내게 기쁨보다는 다른 절망으로 다가온다. 굳어버린 내 대신 '내'가 소리 없는 의문을 만들어낸다. 그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에, 그가 나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기이한 보라색의 가면이 없고, 눈물을 흘리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걱정이 담긴 눈동자가 슬퍼 보인다. 내 착각이겠지. 그래, 착각이겠지. 아니면 이것 또한 환각일까 하고 손을 뻗어본다. 조심스레 만져본 그의 오른쪽 볼은 부드럽고도 따스했다. 꿈의 눈물은 거기에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다 나를 기억하고 있다. 그 사실 만으로,어쩌면 다른 상황일지도 모르나 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었다. 꿈의 그와 같이 내 오른쪽 눈동자에서 흘러내리는 촉촉한 눈물의 차가움에 가슴이 차가워진다.

 

[ 잘 있어. ]

 

꿈의 끝에서 내게 누구보다 상냥하고도 슬픈 미소를 지은 채 이별을 고한 그가 눈앞에 있다. 아아, 하지만 아직 시야 한 구석에서 푸른색과 보라색의 불꽃이 일렁인다. 아직도 '그'가 내게 미소를 짓고 있다. 너무도 아파서, 너무도 괴로워서, 그럼에도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나는 이내 눈을 감아 버린다. 귓가에 다시 그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이번에는 꿈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모른 채 나는 찰나의 순간 생각해본다. 구할 수 없던 꿈이었던 그가 다시 내 눈앞에 있어 아까의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허나 곧 바보 같다면서 비웃고는 어둠에 몸을 맡긴다. 어둠 속 아직도 일렁이는 푸른색과 보라색의 불꽃을 응시하며 그의 이름을 부른다. 언젠가 사랑을 속삭였던, 결혼의 맹세를 했던, 나를 끌어 안아줬던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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