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언제 오는 거야?”
미나기가 집을 비운 지 이틀하고도 몇 시간 째.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않고 어영부영 하루를 보내던 쿄스케는, 기다림에 지친 나머지 소파에 드러누워 큰 소리로 한탄했다.
‘금방 다녀올게, 집 잘 보고 있어.’
미나기는 분명 금방 다녀온다고 말했었다. 시티에 볼일이 있어 잠깐 가는 김에 용건이 해결되면 유세이랑 만날 거긴 하지만, 정말로 할 일만 하고 올 거라 해서 그냥 보내준 거였는데.
노을이 지려고 하는 하늘을 힐끔 바라본 그는 괜히 듣는 사람도 없는데 계속 목소리를 내 지껄였다.
“내가 집 보는 개도 아니고.”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같이 따라가는 게 좋았을 걸 그랬다. 적어도 오늘 새벽에는 올 줄 알았는데, 아직도 오지 않을 줄이야.
제 입으로 안 간다고 해놓고 후회하는 건 웃기지만, 어쩌겠는가. 키류 쿄스케에게 후회는 일종의 습관과도 같은 것이었다. 지금에서야 그 빈도가 줄었을 뿐이지, 그는 자의식이라는 게 자리 잡았을 때부터 후회할 일을 너무 많이 했었다.
물론 후회하기 전에는 너무나도 만족스러웠으니, 그건 후회보다는 반성 같은 걸지도 몰랐지만…. 지금 드는 이 감정은 후회가 맞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지금은 듀얼 갱이 깽판 치는 세상이 아니다. 겨우 몇 년 전 일이긴 하지만, 그 사이에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시티와 새틀라이트 사이에 다리가 놓이고, 세상이 망할만한 일도 어떻게든 해결되어 평화가 찾아왔지. 그러니 미나기에게 위험한 일이 생겼을 가능성은 적었다.
애초에 위험한 일이 생긴다 해도, 미나기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그 상황을 이겨내겠지.
미나기는 ‘후카세 미나기’였을 때부터 어디서 지고 오는 사람이 아니었다. 남자랑 주먹싸움하고도 이겨 올 정도로 싸움도 잘했고, 그만큼 듀얼도 잘했다.
오죽하면 팀 새티스팩션으로 활동할 때도, 모두가 미나기의 눈치를 봤을 정도였지. 비록 눈치를 본 이유는 각자 조금씩 달랐겠지만, 다들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는 미나기를 무서워하긴 했다.
‘…옛날에도 이랬던가?’
그 시절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의문이 떠올랐다.
자신은, 옛날에도 이렇게 하염없이 미나기만 기다렸던가.
그 시절에도 미나기는 혼자 외출해서 며칠간 들어오지 않는 날이 있었다. 자주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한 달에 두어 번은 그런 날이 있었다. 제가 살던 보육원에 가서 보호자를 도와주고 온다며 나가거나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면 자취를 감추었는데, 언제나 3일 이상을 외박하지 않고 두 손 가득 먹을 걸 들고 돌아오곤 했는데.
‘그때는….’
잘 기억나진 않지만, 그 시절에는 이 정도로 심심하거나 외롭진 않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그때는 미나기 말고도 함께 지내는 이가 많았으니까. 유세이도 있었고, 잭과 크로우도 있었지. 넷이서 떠들썩하게 놀다 말고 갑자기 미나기가 보고 싶다고 하소연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허전하지는 않았다.
‘역시 가족이 더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이제 결혼도 했으니, 아이가 있으면 좋겠는데. 이왕이면 자신보다는 미나기를 더 닮은 아이로. 성별은 관계없다. 딸이라도 아들이라도, 자신과 미나기의 아이라면 목숨 바쳐 사랑하고 예뻐할 수 있는데.
“쿄스케, 나 왔어.”
아내와의 동의도 없이 멋대로 2세 계획을 세워보고 있던 그는 기다리고 있었던 이의 목소리를 듣곤,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서 와락 끌어안고 왜 늦었냐고 잔소리하고 싶었지만…, 그것보다는 재미있는 장난을 치는 쪽이 더 만족스러울 것 같아서였다.
“뭐야, 자는 건가?”
눈을 감고 늘어진 쿄스케의 옆으로 다가온 미나기는 시티에서 사 온 선물들을 탁자 위에 올려두고, 그의 옆에 앉았다.
“잘 거면 침대에서 자면 될 걸, 불편하게….”
한숨을 푹 쉬며 말하고 있지만, 목소리는 따뜻했다.
제 머리카락을 쓸어넘겨 주는 손길에 괜히 마음이 간질간질해진 쿄스케는, 결국 참지 못하고 두 눈을 번쩍 떴다.
“오랜만이야, 미나기.”
“으아악!”
놀라게 하려는 그의 작전은 대성공했다. 문제는 너무 성공적이라서, 뜻밖의 보상까지 함께 왔다는 거겠지.
깜짝 놀란 미나기는 방어본능으로 크게 팔을 휘둘렀고, 환상적인 스윙에 어깨를 얻어맞은 쿄스케는 맞은 부위를 감싸 쥐고 끙끙거렸다.
“윽, 으으….”
“미, 미안. 아니 그런데 깨어 있었으면 티를 내지 뭐 하는 거야?”
“그거야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했지. 아, 근데 진짜 아픈데….”
“네가 애야? 그런 장난을 왜 해!”
제 손이 얼마나 매운지 아는 미나기는 얻어맞은 부위를 매만져주긴 했지만, 정작 입은 쓴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3일 만에 본 건데 오랜만은 웬 오랜만?”
“하루라도 못 보면 오랜만인 거 같아서. 미나기는 아냐?”
“흠.”
이게 뜸 들여서 대답해야 하는 질문인가. 침음을 흘리는 미나기를 보며, 쿄스케는 그렇게 생각했다.
진지한 얼굴로 답을 고민하던 미나기는, 의외의 대답을 내뱉었다.
“우리가 너무 붙어살았나 보다, 쿄스케.”
“뭐야, 그래서 싫어?”
“아니, 오히려 좋아.”
히죽 웃은 미나기는 꼭 아이처럼 제 남편의 품에 안겼다.
보기 드문 행동에 놀란 그는 잠깐 멈칫했지만, 이내 이걸 바래 왔다는 듯 덥석 품 안의 몸을 마주 안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