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벼루와 드림주는 전 동료관계라는 설정이 포함이 되어 있으며 원작 캐릭터 외의 드림주의 연인인 모브 캐릭터가 나옵니다.
안녕. 단정히 머리 묶고 끼고 있던 선글라스가 살짝 아래로 내려가자 눈이 드러난다. 저를 보며 웃으며 인사하던 그의 모습에서 잠깐 어릴 적의 모습이 떠올랐다. 처음 만났을 땐 저런 얼굴은 아니었는데. 자신이 나이가 많으니 반말하겠다고 저보다 어린아이가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제게 다가오던 악령을 쫓아내주며 지켜줬던 그때의 얼굴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나자 잠깐의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왔다. 쓰고 있던 선글라스가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고 한걸음 걸으면서 선글라스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밟힌다. 뭐라고 중얼이던 그는 다시 한번 인사를 하면서 저와 함께 멀어지며 눈이 떠진다. 그때 일이 충격이긴 했나 보다. 같은 꿈만 벌써 5번째다. 이건 뭔가 계시가 아닐까. 옥벼루는 제 폰을 챙겨든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지금쯤이면 괜찮지 않을까. 어릴 적부터 알던 사이고 나이 차이는 있지만 꽤 친하다고 생각을 했으니까.
“오랜만이네. 그동안 잘”
“누구세요?”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저를 보는 그를 벼루는 당황해한다. 분명 꿈에서 봤던 그와 앞에 있는 사람은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저를 보른다고? 오랜만에 보는 거긴 해도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니었다. 그 사이에? 고민을 하던 차에 그의 옆에 있던 다른 이가 저를 흘깃 보다 그에게 말을 건다.
“누구야?”
“글쎄 자기야. 사람 착각하신 것 같은데요.”
라고 말하며 엄지를 들어 옆을 가리킨다. 평소 그가 하던 제스처였다. 같은 사람이 맞구나. 그렇다면 이 사람이 그를 영연에서 나가게 했던 사람이었다. 눈동자를 굴리려 하자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그가 저를 노려본다.
“사람을 그렇게 쳐다보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은데요. 저한테 할 말이 있으면 잠깐만 저기 공원에서 기다려 주세요. 잠깐 집에 들렀다 나올 테니까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제 일행과 함께 사라진다. 저를 걱정하는 상대를 보며 괜찮다고 웃으며 뺨을 다정히 쓰다듬어 준다. 그저 일행이라기엔 그 이상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나란히 걷는다. 저에게 웃어줬던 그 얼굴이 이제는 저쪽으로 향하는구나.라고 생각을 했다가 고개를 젓는다. 둘이 그런 사이도 아니었고 계속 있었다면 저와 함께 오래 일을 했을 사람이었는데 원인이 저 사람이었으니 안 좋게 보일 수밖에. 자신도 공원 쪽으로 가면서도 사이좋은 두 사람이 보기가 좋지 않았다.
주변으로 몰려드는 악령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공원이라고 해도 이곳은 삼도천동. 낯선 사람의 등장에 몰려드는 걸 애써 무시한다. 주먹을 쥐고 꾹 참으며 그가 오기를 기다린다. 곧 올 거라고 했던 그가 빨리 오길 기다렸다. 예전엔 무슨 일이 있어도 저를 우선시해줬기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우선시하던 사람을 위해 일을 그만뒀기에 당연한 상황임에도. 주변을 둘러보던 귀신이 점점 제 귓가로 다가가 말을 걸며 장난을 치던 때였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주변에서 들리던 을씨년스러운 소리는 혼비백산하며 멀어진다.
“우리 회장 대리가 무슨 일로 온 거야?”
“그냥 생각이 나서.”
“그래서 내 여자친구를 노려봤어?”
저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엔 불만이 가득 찼다. 그냥 보던 건데 아무래도 감정이 서려 있었나 보다.
“그… 미안.”
“말 짧게 하지마.”
“내가 너보다 나이 많은데.”
“그랬구나. 그래서?”
웃으면서 제 얼굴 옆으로 빠르게 팔을 뻗는다. 순간 자신을 때리려는 줄 알고 깜짝 놀라 어깨가 들썩이며 옆으로 피하며 손을 따라간다. 어느새 제 뒤에서 붙으려던 악령의 목이 그의 손에 붙잡힌다. 그러고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제 뒤쪽으로 휙 던지고선 제 옆에 앉는 그에게 벼루는 옆으로 살짝 옮기며 자리를 내준다.
“…네. 그렇네요.”
“그리고 난 이제 영연 사람이 아닌걸.”
“아직도 돌아올 생각은 없는 거…예요?”
“가면 꼰대한테 시달려야 하잖아.”
“하하…….”
안 그래도 영매사가 적은데 회장이 200살 가까이 되는 탓에 제 생각을 강요하는 경우가 있었다. 어느 정도는 직원들이 그렇지 뭐 하고 지나가긴 했지만 결혼에 있어서는 조금 집착을 보였다. 회장, 이산심 눈에 들었던 그가 대표적인 피해자이기도 했다. 처음부터 사이가 나쁘지 않았기에 알아서 하겠다는 말로 마무리를 했었다. 그가 여자친구와 사귀게 된 후로 본인을 설득하려 했으나 넘어가지 않았고 그렇게 되니 화살은 자연스레 그의 여자친구 쪽으로 향했다. 그것을 안 그가 화가 나 이산심에게 대들었고 그러면서 싸우게 되며 일을 때려치우게 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싶었다.
“미안.”
“벼루 네 잘못이 아니잖아.”
“그래도 다시 한번 좋게 생각해 주면 안 될까? 요즘은 회장님도 강요하진 않으니까.”
“그래.”
감정 없이 툭 답을 내뱉고 주머니를 뒤적이며 무언가를 꺼내 입에 문다. 물고 있는 담배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니 주변에 있던 귀신들이 거리를 둔다. 영연 시절 때 즐겨 사용하던 담배는 사실 담배가 아닌 향초였기에 옥벼루와 함께 있을 때면 늘 피우곤 했다. 그가 직접 만드는 향초는 귀신을 쫓는 향이 들어있었기에 가끔 불만 붙이고 쓰라고 옥벼루에게 쥐여주거나 했었다. 그때의 추억을 잠깐 떠올렸던 벼루에게 그는 숨을 푹 내쉰다.
“내가 뭐가 좋다고 그러냐, 너는.”
“당연히 좋지. 널 싫어할 리가 없잖아.”
“…다음에 네가 불러주면 그땐 생각해 볼게.”
“고마워.”
“말은 놓지 말라니까.”
“네.”
벼루의 빠른 대답에 결국 그는 웃음을 보이고 말았다. 어릴 때부터 함께 했던 탓인지 저도 벼루와의 추억을 떠올린 탓임이 틀림없었다. 저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버릇없는 제 행동을 받아주었고 영연을 나오자 가문에서 저를 내쫓으려고 했을 때 손써준 사람이었다. 알면서도 당시엔 기분이 좋지 않았기에 넘어갔었지만. 여자임에도 저를 하찮게 보던 가문 사람들과 다르게 잘 대해줬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니 그에겐 나름 보답을 해주고 싶었다.
“진짜야. 네 일로 불러주면”
다른 향초를 손에 쥐어 라이터로 불을 붙인 뒤 벼루의 손에 쥐여준다.
“그때는 내가 도와줄게. 한 번은.”
그 말만 들어도 조금은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만나러 오길 잘했다. 벼루는 이대로만 몇 번을 만난다면 곧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생각이 곧 뒤집어질 일이 생길 거라곤 알지도 못한 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