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림주 ≠ 지휘사 (플레이어 캐릭터) 이며, 별개의 인물입니다.
# 00◆40◎
사락 하고 누군가 나뭇잎을 쓰다듬는 듯한 소리가 들린 듯 했다. 그 덕에 잠겨있던 의식이 떠올라 그와 함께 눈꺼풀이 들어 올려진다. 찰나의 순간이 지나 초점을 맞춘 시야에 들어온 광경은 비어진 침대였다. 꿈의 향기에 취했던 정신이 그 광경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기까지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유라?"
잠에 빠지기 전, 포근한 침대 위에 누워있었던 인물의 이름을 무의식적으로 불렀다. 허나 그 이름의 주인의 답변은 들려오지 않았으며, 나타날 기미조차도 없다. 그녀가 없다는 사실이 인식이 된 순간 밀려오는 놀람과 서늘함에 정신이 강제적으로 완전하게 각성한다. 뇌가 무어라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몸은 이미 문을 열고 있었다.
허나 문을 연 복도는 여느 때보다 더욱 고요하여 누구도 없음을 주장할 뿐이다. 전등이 꺼진 복도는 어두우면서도 창으로 들어오는 빛으로 옅게 밝혀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창밖으로 향한 시선에 두 가지를 알게 되어 아직 혼란스러운 뇌에 새겨진다. 지금은 검은 하늘에 보름달이 떠오른 밤이며, 그 밤하늘 아래 자신이 찾던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을 반복하면서 제 다리를 열심히 움직인다.
"사유라."
정원으로 나가자 바로 보이는 존재에게 향하며 나온 자연스러운 부름. 누군가의 이름을 입에 담는 길지 않은 시간, 그 찰나의 시간 그는 제 심장의 존재를 강제적으로 실감했다. 묵직하고도 서늘한 감각에 짓눌리고도 얼어붙은 심장이 아파왔었다. 아픔으로 자신의 존재를 강압적으로 알린 심장의 고동이 잠잠해지지 않을 것만 같던 우류였다.
하지만 그 아픔은 맥이 빠질 정도로 간단히 사라졌다. '시선이 마주쳤다.' 라는 단순한 행위의 결과로 인해 아직 인간으로 남은 부분 중 하나인 심장이 평온을 되찾아 조용해진다. 그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할 상대방의 시선은 조용히 이어진다. 고요함을 두른 시선에 심장의 고동이 다시 들려올 것만 같았다. 그것이 아까의 아픔과 비슷할 정도의 두려움으로 다가와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좋은 밤이에요. 우류씨."
정적을 유지하던 작은 입이 움직이더니 밤의 인사를 건넨다. 딱 자신이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건네져 온 인사는 마치 부탁과도 같이 다가옴을 우류는 의심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봐와서 일까, 아니면 사람들을 봐와서 일까, 아니면 기억나지 않는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서 일까. 여성의 잔잔한 달밤의 인사는 '더 이상 다가오지 말아주세요.' 란 부탁이자 애원으로 들려왔다. 미소가 띄워지지 않은 얼굴의 눈동자는 창문을 통해 바라봤을 때와 달리 달빛이 담겨있지 않았으며, 대신 그늘의 얇은 베일로 덮여 있었다. 살짝 연한 갈색의 눈동자가 베일에 덮여 제 색이 제대로 보이지 않음에 아쉬움이 몰려왔다.
"좋은 밤이야."
조심스럽게 그도 인사를 건넨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눈앞의 존재가 자신이 모를 이유로 어딘가로 가버릴 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논리적이지 못한 이유가 맞았던 것일까, 사유라는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아직 힘이 없지만 자신에게로 향해지는 미소에 그는 안심하며 그녀에게 미소로 답해주자 일순 그녀의 눈동자가 미미하게 흔들린 모습을 보였다. 무엇이 상대방의 마음을 흔들게 만들었는지 생각하며, 우류는 입을 연다.
"걱정했어. 일어나 보니 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아, 깜박 잠이 든 내가 잘못한 일이지만."
"아니요. 우류씨의 잘못이 아니에요. 아무런 말도 없이 움직인 제 잘못이죠."
"아니, 환자를 간병하다가 잘못한 내 잘못이야."
"아니요, 제 잘못이에요. 보육원 일도 하시는 우류씨가 제 간병까지 하시면 지치는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서로의 잘못이라 얘기하면서 거기에 양보를 하지 않는 두 사람. 그러한 자신들의 다툼이라 하기엔 어설픈 말다툼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간은 흘러가고, 세상은 움직인다. 둘만이 있는 세계가 아님을 그는 잘 알았지만 대화하는 그들의 정신은 그걸 잊고 있었기에 누군가의 개입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자신들을 바라보던 자신의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두 사람에게 누군가가 입을 연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 다 사랑싸움은 그만하고 쉬세요."
"아..."
"리, 리리나?"
목소리가 들린 곳을 우류는 보았고 시야의 한 구석에 그녀 또한 보는 모습을 담아낸다. 그곳엔 창가에 턱을 두 팔에 괸 채 어딘지 지겨움이란 비슷한 감정을 담아 바라보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언제부터 소녀가 자신들을 보고 있었는지, 대화의 어디까지 들었는지에 대해 걱정하며 방금까지의 서로의 모습을 떠올린다.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공존하는 가운데 리리나는 생긋하고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창문의 바깥으로 퇴장한다. 개입한 소녀가 가버리자 두 사람은 말다툼을 잇지도 못하고 정적을 만들어 낸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동안 일어난 일들에 두 어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우류는 몇 초 그 정적을 곱씹다가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연다. 아니 열려고 했으나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눈앞의 그녀의 모습이 때문이다. 사유라는 시선을 고정한 채 움직이지 않은 채 작은 두 손을 기도하듯 꼭 쥐고, 입술을 살짝 힘을 주어 다물고 있었다. 그로 인해서였을까, 옅은 분홍빛이 감돌던 두 볼은 붉은 색으로 물들여지고 작은 두 입술은 하나가 되어 더 작아져 있었다. 아니 볼만이 아닌 그녀의 얼굴 전체가 진부한 표현으로 꽃과도 같이 붉게 물들여져 있었다. 사유라의 그러한 반응도, 모습도 본 기억이 없는 그에게 낯설고도 신선하며 귀엽고도 사랑스러웠다.
"리리나에게 창피한 모습을 보였네요."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팟하고 정신이 든 우류는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거기엔 고개를 숙이지도, 기도하듯 두 손을 쥐지도, 입술을 꾹 다문... 얼굴을 붉게 물들여 꽃과도 같던 여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두 손을 땅 아래로 늘어뜨리고, 힘을 주기는커녕 입술을 살짝 다문... 옅은 달의 푸른빛을 받아 조금 창백한 하얀 볼이 존재했다. 사유라는 붉은 색을 지니지 않고도 방금까지 떠올리던 모습과는 다르게 그 자리에 서있었다.
우류는 그제야 자신이 꿈의 광경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달이 떠오른 밤이 아닌 해가 떠오른 낮에 조용하고도 생기가 있도록 피어난 꽃과도 같던 꿈속의 그녀. 허나 눈앞의 여성은 달의 아래에서 고요하고도 쓸쓸하게 시들기 직전의 꽃과도 같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너무도 차이가 나도록, 마치 다른 사람인 듯이 꿈과 현실의 차이에 그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꿈이 현실과 같지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막상 맞닥뜨린 실제에 우류는 숨을 쉬지 못한다.
"우류씨, 인사가 늦었어요. 구해주셔서 간호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우류씨?"
"아, 응. 별 말씀을... 그리고 나야말로 인사가 늦었어. 오랜만이야, 사유라."
그러한 자신에게 말을 거는 그녀였으나 우류는 반응해주지 못했다. 자신을 보는 시선에도, 목소리도 어딘지 멀게 느껴져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허나 사유라의 부름에 겨우 정신을 잡아 목소리를 끌어올려 대답하였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기간을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재회의 인사를 건넨다. 자신의 인사에 아주 잠시 상대방의 눈동자가 미미하게 커져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와 물으려는 찰나 그녀의 표정이 바뀐다. 눈을 살며시 가늘게 입꼬리를 올려 방금 전까지 없던 환한 미소를 지은 그녀는 입을 연다.
"오랜만이에요, 우류씨."
달빛 아래의 미소를 진 그녀는 분명 아름다웠다. 허나 기억 속 어느 그녀의 미소들 중 가장 씁쓸하고도 아픈 미소로 다가왔다. 그렇기에 꿈속의 미소와 더욱 비교가 되고도 아쉬움과 슬픔이 몰려왔다. 다시는 붉은색으로 물들여졌던 사랑스러운 미소를 볼 수가 없을 거란 불안감이 들었기에. 하지만 그 마음을 꺼낼 수 없어 우류는 숨긴 채 그저 미소로 그녀에게 답할 뿐이다. 부디 자신의 부풀어진 걱정일 거라 생각하며, 분명 그 사랑스러운 미소를 볼 수 있을 거라 기도하며 우류는 사유라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