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를렌 르 블랑은 손재주가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또래에 비해 월등하게 풍요로운 생활을 한 덕분에 안목은 있는 편이었다. 그녀가 입는 옷, 입에 대는 음식, 심지어 그녀를 둘러싼 가구들조차 르 블랑 가문의 기준을 충족시켜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본인이 직접 만드는 경험은 현저하게 부족했다. 열한 살이 체험할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있겠냐마는. 초콜릿은 본디 녹여서 모양을 잡는 음식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은, 마를렌 본인에게도 충격이었다.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는, 고급스러운 포장을 한 초콜릿도 좋았지만 직접 만들어주고픈 마음이 앞섰다.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초콜릿이라고 생각했건만, 모든 초콜릿이 같은 건 아니라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문제는 그녀의 마음만 앞섰다는 점이다. 한번은 초콜릿을 중탕하다가 물이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버터와 카카오 가루가 뭉쳐서 덩어리지는 바람에 진흙처럼 꾸덕꾸덕해진 초콜릿을 버린 마를렌은 이내 기죽지 않고 새로운 시도에 착수했다. 다른 한 번은 지나치게 데운 탓에 새까맣게 타버리고 말았다.
올해는 그나마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말린 오렌지 조각과 아몬드, 그리고 피스타치오를 올려놓은, 제법 그럴듯한 바크 초콜릿이었다. 당연히 전문적인 솜씨가 아니었기에 울퉁불퉁한 요철이 남아있었지만, 마를렌은 자신의 작품이 자랑스러웠다. 이 기쁨을 샬럿과 나눈 마를렌은 첫 번째 조각의 영광을 그녀에게 주었다. 빌로시티에서부터 함께 지낸 두 사람은 친자매보다도 가까웠다. 만약 동생이 있었더라면 이런 느낌일까, 마를렌은 가끔 상상하곤 했다. 샬럿은 그 엉성한 초콜릿 조각에도 조심스러워하는 아이였지만, 이걸 받지 않으면 초콜릿 가게를 전부 사들이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에 못 이겨 초콜릿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래도 마를렌은 샬럿이 맛있다며 초콜릿을 입에 넣고 굴리는 모습을 보자, 지금까지의 고생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마를렌은 헬리오스의 다른 이들에게도 초콜릿을 나누어주고, 본인이 제일 멋진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다이무스 홀든에게도 자신의 작품을 주었다. 항상 그랬듯이, 다이무스는 마를렌을 어린아이가 아니라 어엿한 숙녀로 대해줬고, 마를렌은 뿌듯함을 숨기지 못한 채 치맛자락을 들어서 공손하게 인사했다. 이제 줘야 할 사람들에게는 다 줬다.
단 한 사람만을 제외하고.
* * *
마를렌은 소피아를 생각하면 어쩐지 기분이 미묘해졌다. 다이무스의 아내라는 걸 알았을 때 가슴속에서 왈칵, 뜨거움이 솟구쳐서 불퉁하게 대했지만 소피아는 그 뒤로도 마를렌에게 정중했다. 대부분의 어른처럼 그녀를 르 블랑가문의 상속녀로 대하지 않았고, 철없는 꼬마로 대하지도 않았고, 그녀의 동생이나 다름없는 샬럿에게도 다정했다. 마를렌이 “고마워”해야 하는 사람에 소피아가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줄 수 있지? 마를렌이 직접 홀든가(家) 저택에 찾아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다이무스에게 전달해달라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누군가를 통해 전달한다고 그 마음이 퇴색되는 것도 아닌데도, 마를렌은 꼭 소피아에게 직접 주고 싶었다. 고민하던 소녀의 시야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다이무스의 사무실에서 걸어 나온 여자는, 단정한 버건디색 투피스 차림이었다. 머리에 얹은 검은색 모자에서 깃털이 살며시 삐져나왔다. 커피에 우유를 잔뜩 넣은 머리카락과 선명한 녹색 눈동자를 확인한 마를렌은 부지런히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나 좀처럼 거리가 좁혀들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해져만 갔고, 그 조급함이 마를렌의 목을 타고 터져 나왔다.
“…소피아 아줌마!”
숙녀라면 모름지기 걸음은 사뿐히 내디디고, 목소리는 차분하게 내야 하는 법이거늘 마를렌은 자기 입술에서 튀어나온 소리에 얼굴에 화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자기 이름을 들은 소피아는 마를렌을 책망하거나 비웃기는커녕, 뒤돌아 그녀를 발견하고 활짝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소피아는 늘 그랬다. 마를렌이 그녀를 올려다볼 때 힘들지 않도록 눈높이를 맞춰주었다. 마를렌이 정말 좋아하는, 소피아의 남편과 비슷한 배려에 소녀는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달싹였다. 이거……. 길게 늘어뜨린 목소리 끝에 수줍은 손길이 앞으로 나왔다. 아이의 작은 손에는 마찬가지로 작은 상자가 들려있었다.
“아줌마도 줄게요.”
초콜릿이에요! 마를렌의 말에 소피아는 작은 상자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남색 리본이 엉성한 매듭으로 묶여있었다. 손끝까지 따뜻한 다정함이 번지는 기분에 그녀가 상자를 가슴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직접 만들었어요? 대단한걸요?”
“다, 당연하죠! 흠, 저도 이 정도는 할 수 있거든요?”
소피아의 칭찬에 마를렌이 양손에 허리를 대고 허세를 부렸다. 그녀가 고개를 치켜올리자 윤기 나는 검은색 머리카락이 살랑거렸다. 소피아는 단정하게 묶은 양 갈래 사이로 붉게 달아오른 귓바퀴를 보고는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아직은, 제 감정에 솔직하지 못할 나이였다.
“고마워요, 르 블랑 양.”
이렇게 훌륭한 선물을 받는데 제가 그냥 돌아갈 수는 없죠. 그렇게 말한 소피아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남편의 데이트 신청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거절한 소피아가 싱긋, 웃으며 마를렌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여기, 모퉁이를 돌아가면 맛있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는데. 샬럿 양도 모시고 가고 싶어요.”
마를렌은 자기 혼자 간다면 가지 않겠다고 말하기 위해 벌린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아주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샬럿은 아이스크림보다 사탕을 더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