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Smoky Valentine

 

 

 

 단테는 말없이 제 손아귀의 반절 정도를 채운 담뱃갑을 바라보았다. 낯선 포장 속의 내용물은 더더욱 낯설다. 원통형의 막대는 평소 단테가 입에 물어온 것과는 거리가 먼 칠흑색이었고, 갑을 열자마자 풍겨오는 단내의 원천이 저라는 듯 손가락 사이로부터 익숙지 않은 향을 잔잔히 내뿜고 있었다. 익숙지 않다고는 하나 그 향취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저 담배와 연관 지은 적이 없어 어색할 뿐 아니던가. 단테는 때가 탄 감이 있는 은빛 라이터를 꺼내 들고 능숙한 몸짓으로 궐련의 끄트머리에 불을 붙였다. 종이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숨을 들이켜자 달큰한 초콜릿 향이 단테의 감각을 어지럽힌다.

 

 본디 단것을 즐기는 성정이 아닌 그에게 발렌타인데이는 있으나 마나 한 기념일이었으나, 그의 연인은 달랐다. 히마와리가 매년 질리지도 않고 2월 14일을 챙기는 것은 그녀 본인이 초콜릿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받고 싶은 만큼 남에게도 주고 싶다고 했던가. 그 꾸준한 기브 앤 테이크 정신에 기반해 단테는 입에 잘 대지도 않는 초콜릿을 매번 받아왔다. 서너 개를 겨우 맛보고는 남은 몫을 히마와리에게 돌려주곤 했지만. 그래서인지 올해 그녀가 준비한 것은 담배였다. 초콜릿 향이 나는 담배라며 그의 손에 슬쩍 쥐이고 나중에 후기 알려줘, 라며 기대감이 서린 눈으로 웃었던가. 하여 지금, 그 바람대로 단테는 단내를 무릅쓰고 제 연인의 성의를 한 모금 들이켜는 것이다.

 

 부드러운 향이 곧은 콧등을 타고 미끄러진다. 매캐한 탄내 대신 훅 끼치는 초콜릿 향에 단테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그는 술을 마실 때도 호로요이 따위의 주스에 가까운 것보다 맥주나 위스키 정도의 정석적인 종류에 손을 뻗는 인물이었으므로, 검은 궐련을 두어 입 더 피워본 끝의 감상은 불호에 가까웠다. 이 말을 전하면 너는 분명 그 붉은 눈에 그득 찬 아쉬움을 내보일 테지. 절반도 채 타지 않은 담배를 비벼 끈 단테가 마지막 한 모금을 내뱉는 소리는 한숨을 닮았다.

 평소대로라면 바람을 더 쐬어 잔향을 떠나보냈겠으나 이번만큼은 바로 들어가도 상관없겠지 싶다. 히마와리가 후기를 바라지 않았던가. 네 선물을 사용해 보았노라는 티를 낼 요량이었다. 짧은 외출을 마친 단테는 옅게 남은 초콜릿 향을 굳이 털어내지 않은 채 간단히 입을 헹구었다. 입가의 물방울을 훑던 혀에 단맛이 스치자 그의 미간에 다시금 주름이 졌다. 정말이지 마뜩잖은 단맛이었다. 그의 연인이 속내를 읽었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으리라. ‘당신 마음에 드는 단맛이라는 게 있기는 해?’ 라고. 그에 돌려줄 답은 명백한 긍정이라는 것을, 히마와리는 알까. 유려한 입술이 느슨한 곡선을 그린다.

 

 단테가 기꺼워하는 단맛은 검은 궐련의 그것처럼 인공적인 것도, 흉통을 부풀리고도 남는 부피로 온몸에 들러붙는 것도 아니었다. 애정이 깃든 주관으로 하여금 비로소 미각마저 뒤틀고 마는 것, 간신히 입술을 축일 만큼의 박한 양으로 조바심에 무게를 더하는 것. 겨우 그 정도의 섭취만을 허락하는 주제에 평생의 갈증을 대가로 삼는 부당한 감미. 마치 단 세 방울로 세상에서 가장 높은 존재에게 세상에서 가장 낮고 짙은 어둠을 취하길 요구한 어떤 신화 속의 붉음처럼…….

 

 그것을 품고 있는 당사자는 고급스럽게 포장된 상자의 리본을 한 손에 쥐고 다른 한 손에는 반절을 베어 문 초콜릿을 들고 있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마주친 눈은 마치 몹쓸 짓이라도 하다 들킨 것마냥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기어코 엇……, 하는 볼품없는 외마디를 토해내고 말았다. 아무리 초콜릿의 수령인이 손수 양도해주었다고는 하나 그보다 먼저 포장을 벗기고 한입 맛보았다는 점이 양심에 찔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굳었던 팔은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머지 반쪽의 초콜릿을 마저 입에 던져 넣었다. 단테의 연인은 이따금 그토록 뻔뻔한 표정을 지을 줄도 알았다.

 

 “왔어? 내가 준 거 피우고 오셨는가~”

 

 볼을 우물거리며 가까이 다가온 히마와리가 단테의 품에 코를 가져다 대고 공기를 크게 들이마신다. 낯설도록 부드러운 향이 가느다란 목을 감싸고 코끝을 맴돌자 붉은 눈이 곡선을 그렸다. 오, 진짜 초콜릿 향 나네. 별난 물건을 구해온 주제에 한 대 피워볼 수도 없었던 비흡연자로서는 제법 궁금증이 일었으리라. 어쩌면 포장 비닐 위로 향이 배어나기만을 바라며 애처롭게 킁킁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어때? 맛있어?”

 

 담뱃갑을 건넬 때 이상으로 기대가 찬 눈. 그토록 맑게 일렁이는 눈을 마주한 단테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진심으로 긍정적인 평을 바라는 것만 같아서.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그에게 있어 유일하도록 기꺼운 감미의 대상이 말이다. 단테는 배어나는 한숨으로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미욱한 제 연인을 향한 애정으로 허리를 숙였다.

 둥근 발음의 의문이 형체를 갖추기도 전에 사그라든다. 방금까지 작은 입이 녹여 넘겼던 초콜릿의 일부가 단테의 미각을 어지럽혔다. 그가 탐하는 것은 먹다 남은 기념일의 주역이 아닌 히마와리 그 자체였으므로. 차오른 숨과 함께 뻣뻣하게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목덜미를 찬찬히 주무르면서, 단테는 두 사람분의 열기가 제 취향의 감미로 가득 찰 때까지 숨을 이어붙인다. 그 숨의 끝은 언제나처럼 녹녹한 애정으로 뭉친 히마와리의 눈시울을 정돈하는 손길이었다.

 

 “이쪽이 훨씬 낫더군.”

 

 초콜릿이 아닌 자신의 맛을 본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한 그의 연인이 느리게 입을 뻐끔거렸다. 방금까지도 뻔뻔스레 굴었던 것이 헛것이라도 되는 양 눈에 띄게 상기된 낯이었다. 그, 그럼 내년에는 다시 초콜릿으로 준비……할게. 더디게 이어지는 목소리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초콜릿은 취향이 아니라고 했잖아’ 라고 당장 따질 겨를도 없는 듯 보였다. 실망한 건지 기쁜 건지, 혹은 몽롱해진 정신을 다잡기 바쁜 건지 모를 음성의 떠듬거리는 대답에도 단테는 그저 만족스레 웃을 뿐이다. 그래, 기대하도록 하마. 제가 음미하는 것은 초콜릿이 아닌 그에 휘감은 네 열애라는 문장을 가벼이 삼켜 넘기면서.

‌Copyright (c) 2022 by Esoruen

BGM : 魔王魂 

Free IMG : https://kor.pngtree.com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