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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 드림

 

  오스카가 장담하건대 ‘사랑에 빠지는 속도’와 같은 종목이 기네스북에 있었다면 그의 여동생은 이미 1위를 차지하고도 남았다. 전 여자친구와 깨지고 밤새도록 운 지 얼마나 지났다고, 운명의 만남이라며 돌진해서 새로 여자친구를 만들어 오다니. ‘록산은 정말 사랑스럽고…’ 중얼거리는 여동생의 애인에 대해 아주 조금 궁금하긴 했지만, 어차피 또 차이고 또 금방 다른 사람에게 반할 걸 오스카는 알고 있었다.

 

  물론 그 여동생은 오스카의 그런 말에 ‘일주일마다 여자친구가 바뀌는 오스카는 그런 말 할 자격 없거든!’이라고 성질을 냈다. 지나가던 바스티앙이 그걸 보고 둘 다 질린다는 표정을 했지만, 같은 아버지를 둔 입장이라 마냥 웃기기만 했다. ‘바스티앙은 사랑을 좀 더 해 봐야 해.’ 뒤에 대고 아델이 중얼거리는 말에 오스카가 격하게 동의해줬다. 어쩌다 첫 연애를 아빠 여자친구 딸(엄밀히 따지자면 바스티앙이 먼저였지만)이랑 하는 바람에, 사랑에 대한 신뢰도가 또 밑바닥을 찍어버린 남동생의 다음 사랑은 언제 찾아올지 작은 내기를 하며 그날의 대화는 끝났다.

 

  그리고 다음 날, 밸런타인까지 이틀을 남긴 날, 아델은 집에 오는 길에 초콜릿을 사 왔다. 초콜릿만이 아니라 달걀에 우유에, 생크림 등 마트에서 수제 초콜릿을 만들기 위한 재료는 전부 쓸어온 거다. 집에 이미 있는 걸 굳이 새로 사 오는 이유를 오스카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부엌으로 들어가는 아델의 발걸음은 신이 나 있었다.

 

  “만드는 법은 알고?”

 

  따라 들어간 오스카가 넌지시 던진 질문에 아델이 콧노래를 부르며 답했다.

 

  “검색하니까 다 나오던데?”

  “요리해본 적 없잖아.”

  “위고 아저씨 따라서….”

  “아저씨가 울기 직전이던 그때군.”

 

  곧바로 날아오는 아델의 매서운 눈초리에 오스카는 알겠다는 듯 두 손을 들고는, 초콜릿 한 조각을 가지고 거실로 돌아갔다. 아델이 부엌에서 틀어둔 유튜브 목소리가 들렸다.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녹인 초콜릿에 넣고 잘 섞어주세요. 아델이 요리를 끔찍하게 못 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았지만, 초콜릿이라면 녹이고 굳히는 정도만 하면 되니까 별문제 없을 거라고 오스카는 안일하게 생각하며 다시 헤드셋을 끼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다녀왔습니다.”

 

  예상보다 이르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레오폴딘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스카가 시간을 재차 확인했지만, 확실히 이른 시간이었다. 방으로 들어가려다 오스카를 발견한 레오폴딘은 소파로 가방을 던져놓고 그 옆으로 앉았다. 그리고는 오스카가 단번에 파악할 수 없는 말을 던졌다.

 

  “원래 남자들은 전부 그 꼴이야?”

 

  뭔지는 몰라도 단단히 화난 게 있는 모양이었다. 폴 아저씨가 또 약속을 어겼나. 아니면 얼마 전에 사귄 남자친구가 또 말실수했나. 어느 쪽이든 이상할 건 없었다.

 

  “그래서 첼로도 빼먹고 왔어?”

  “그럼 내가 오늘 걔 얼굴을 봐야 해?”

 

  남자친구군. 오스카가 확신하는 사이 레오폴딘은 울분을 쏟아냈다. “자기가 잘못해놓고 어떻게 그래?” 어딘가 낯익은 말들이다. 꼭 실비가 헤어질 때 했던 말들 같은데…. 그런 기시감은 무시하려고 애쓰며, 오스카는 아델에게서 가져왔던 초콜릿을 하나 더 뜯어 진정하라며 레오폴딘에게 주었다.

 

  “초콜릿보단 마카롱이지 않아?”

 

  그걸 당연하게 오스카가 애인에게 주기 위해 샀다고 생각한 레오폴딘이 물었다. 입에 단 게 퍼지니 기분이 좋아졌다.

 

  “당연히 난 마카롱이지. 초콜릿은 아델이…”

  “망했어!”

 

  그때 딱 좋게 부엌에서 아델이 튀어나오며 소리 질렀다. 뒤로 매캐한 연기가 부엌에서 따라 나왔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길래. 동생을 따라 들어간 부엌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레오폴딘이 중얼거렸다.

 

  “끔찍하네….”

 

  아델은 식탁 의자에 앉아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실패에 높고 높은 자존심이 꺾였다. 그사이 오스카는 어디에서 연기가 올라왔는지 알아챘다. 전자레인지 속 그릇에 담긴 초콜릿은 지옥의 진흙탕 같은 모습이었다. 부글부글 끓는 초콜릿이 그릇 밖으로 안 넘치고 탄 연기만 뿜어낸 건 기적이다. 그리고 하나 더 실패한 흔적이 있었다. 뜨거운 물에 푹 빠진 초콜릿이다. 동생의 실패에 이런 말을 하기는 그렇지만, 정말 대단했다. 부엌이 조용할 때 뛰어와서 봤어야 하는 건데. 오스카는 갑자기 아빠가 예전 여자친구에게 요리해주겠다고 나서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야 요리법 연구도 하는 사람이니, 실력에 의심할 부분이 없다. 그리고 이어 아델이 부엌에 들어갈 때마다 일어나던 일을 떠올렸다. 얘는 왜 하는 족족 이렇지? 동생의 불행에는 미안하지만, 어이없을 정도의 실패작들에 오스카도 레오폴딘도 웃음을 완전히 감추기는 어려웠다.

 

  “…록산은 기성품보다는 수제가 좋대.”

 

  아델이 참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초콜릿이랑, 마카롱이랑… 전부 내가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중탕부터 실패하는 게 말이 되냐고!”

 

  결국 급발진했지만. 울상이 된 사촌을 내버려 둘 수도 없어 레오폴딘이 새로 그릇을 하나 꺼내고, 초콜릿도 포장을 뜯었다.

 

  “중탕은 내가 해줄게. 엄마 가게에서 많이 해봐서 할 줄 알아.”

 

  레오폴딘의 말에 아델의 눈이 반짝 빛난 건 착각이 아닐 거다. 초콜릿을 칼로 자르는 레오폴딘의 시선이 꼭 스트레스를 초콜릿 써는 거에 쓰는 것 같다는 것도 착각은 아닐 테고. 오스카는 싱크대 물을 틀어 엉망이 된 그릇들을 담갔다.

 

 

-

 

 

  레오폴딘이 중탕한 초콜릿은 완벽했다. 옆에서 보기에 그 과정은 정말 너무 간단해 보여서, 오스카는 왜 자기 여동생이 저것도 못 해서 다 태운 건지, 아델은 왜 자기가 저것도 못 해서 다 망쳤던 건지 생각해야 했다. 그래도 초콜릿을 손가락 끝에 살짝 찍어 먹고는, 행복한 게 훨씬 앞선 아델이 웃었다.

 

  “레오는 안 만들어?”

  “나는 받아야지. 아무것도 없이 넘어가기만 해봐. 정말 끝이야.”

  “초콜릿이어도 찰 거잖아.”

  “아니, 초콜릿은 고민해볼 거야.”

 

  그거 찬다는 뜻이잖아. 너무 쉽게 헤어지는 거 아니냐며 오스카가 웃는 거에 레오폴딘이 여자친구가 매일 바뀌면서 할 소리냐며 피식 웃었다. 어제부터 왜 자꾸 다들 저걸로 공격인지. 그러다 문득, 핸드폰으로 다음 레시피를 보던 아델이 레오폴딘에게 물었다.

 

  “엘리엇에게도 안 줄 거야?”

  “갑자기 엘리엇은 왜?”

 

  뜬금없이 나온 형제의 이름에 오스카가 먼저 반응했다. 잠깐 멈칫한 레오폴딘을 놓치지 않고, 아델이 연이어 물었다.

 

  “엘리엇을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그건 아니지!”

 

  레오폴딘이 단박에 반박했다.

 

  “그건 정말 아니야!”

 

  오스카가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는 눈으로 레오폴딘을 보았다. 폴 아저씨를 집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서 레오폴딘과 엘리엇이 거실에서 섹스하는 척 대본을 짠 적도 있으니, 그게 계기인가.

 

  “흐응, 난 레오가 엘리엇 보고 신경 좀 써보라고 애인까지 만든 줄 알았지.”

 

  아델은 아랑곳하지 않고 폭탄을 던졌다. “아니야!” 레오폴딘은 부정하고, 오스카는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언제부터야?” “정말 아니거든.” 레오폴딘이 질색했지만, 오스카가 엘리엇을 떠볼 생각이 가득한 건 얼굴에서부터 드러났다. 둘이 그러거나 말거나, 아델은 끓인 생크림을 초콜릿에 부었다. 그리고 휘적휘적 젓기 시작하는데,

 

  “…어라?”

 

  뭔가 이상했다.

 

 

-

 

 

  아델은 조금 쉬기로 했다. 너무 서둘러서 자꾸 세세한 부분을 놓치니까 초콜릿을 망치는 거라는 의견에 셋 모두 동의했다.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생크림을 초콜릿과 비슷한 온도까지 낮춰서 섞으라는 말을 못 읽고 그냥 끓이자마자 섞어버리는 등의 행동 말이다. 레오폴딘은 그래도 마카롱은 잘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줬고, 오스카는 마카롱이 더 어려운 데 되겠냐는 소리를 했다가 결국 아델에게 등을 한 대 맞았다.

 

  바람을 쐬며 머리를 비울 겸 초콜릿 재료도 사러 셋이 같이 나간 사이, 집에는 다른 셋이 도착했다. 엘리엇이 학교에선 클라라를, 유치원에선 길리베를 데리고 돌아왔다. 평소라면 어른들이 할 일이지만, 신혼여행(세 번째 결혼인데도)에 출장에 데이트에 여러 가지로 올 예정이 없거나 늦을 예정인 어른들을 엘리엇은 잘 대신했다.

 

  클라라는 돌아오자마자 배고프다며 부엌으로 달려갔고, 그 뒤를 길리베가 쪼르르 쫓았다. 그리고 클라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을 마주했다. 아빠와 목장에 갔을 때 본 말똥과 정말 너무 닮은 갈색 덩어리가 그릇에 한가득 담겨 있었다. 물론 향은 정말 달았지만, 그렇다고 단번에 초콜릿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끔찍한 비주얼이다. 이상한 것에 압도된 기분에 클라라는 그대로 잠시 굳었다가 정신을 차렸다.

 

  “엘리엇!”

 

  클라라는 섣불리 건드려 보는 것 대신 현명하게 정체를 알고 있을 법한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클라라와 길리베가 들어오면서 전부 바닥에 떨어트려 놓은 짐들을 줍던 엘리엇이 클라라의 부름에 곧장 부엌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별일 없을 거란 걸 알지만, 동생이 부르는 일은 항상 불안하다. 최근의 엘리엇은 왜 엄마가 그렇게까지 자신을 싸고돌았는지 이해했다.

 

  “이게 뭐야?”

 

  그리고 마주한 것을 보고 엘리엇이 보인 반응은 클라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초콜릿이란 것 정도는 경험으로 곧장 알아봤다. 뜨거운 생크림을 넣고 섞은 게 분명하다. 누군가 망친 게 분명한데, 오늘 그들보다 먼저 집에 있을 사람이 오스카 말고는 마땅히 없다.

 

  “오스카가 한 건가?”

 

  애인과 초콜릿 플레이를 하려던 것만은 아니길 바란다. 엘리엇의 잡념은 길리베가 호기심에 손가락으로 찍어보려 시도하는 걸 보고 떨쳤다. 엘리엇은 급히 길리베를 번쩍 들어 말렸다. “초콜릿 아니야?” 길리베가 형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엘리엇은 살짝 떨떠름한 목소리로 혹시 모르니까 먹지는 말자고 답해줬다. 길리베는 얌전히 형 말을 들었다.

 

  “똥 같아.”

 

  엘리엇의 품에 갇힌 길리베가 그릇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클라라도 엘리엇도 말로 내지는 않았던 걸 길리베는 망설이지 않고 날렸다. “우리 목장 갔을 때, 본 거랑 닮았다.”

 

  “이건 분명 아델이 했을 거야.”

 

  클라라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아델은 나보다도 베이컨을 못 굽잖아.”

 

  근거도 있었다. 분명 다른 사람들과 같은 팬, 같은 베이컨으로 구웠는데 혼자만 새까만 베이컨을 가져왔던 것이 그 첫 번째다. 길리베는 그걸 살짝 입에 대봤다가 너무 써서 울 뻔했다.

 

  “그리고 어제 밤새 초콜릿 영상을 틀었어!”

  “나도 들었어!”

 

  근거가 많았다. 클라라와 길리베가 같이 쓰는 방은 아델의 바로 옆이라 소리가 너무 잘 들린다. 아델이 분명하다며 쫑알거리느라 바쁜 둘을 달래며, 엘리엇은 길리베를 내려놓고 그릇에 든 걸 쓰레기통에 긁어서 버렸다. 설마 이걸 먹으려고 남겨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

 

 

  “네가 너무 눈치가 없는 거지!” 한편 마트에서 새로, 이번엔 조금 더 제대로 하자며, 코팅 초콜릿인지 커버춰 초콜릿인지도 확인하고, 동물성 생크림인지 식물성 생크림인지도 확인해가며 고르고 있던 아델과 두 사람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난 다시 사귈 생각 없어.” 이어지는 어린애 주제에 염세적인 목소리까지 익숙하다. “차일까 봐 무서운 거겠지. 사랑 좀 하라니까, 답답하게 굴고 있잖아. 대놓고 신호를 보내는 데도…”

 

  “…셋이 왜 여기 있어?”

 

  세 사람을 먼저 발견한 쥘리에트가 타고 있던 스케이트보드를 멈추고 삐딱하게 서서 물었다.

 

  “우리는 같이 외출도 못 해?”

  “셋이서 클럽도 아니고 여길?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 아델이 요리하겠다고 한 건 아니지?”

 

  맞는 말이긴 한데 뭔가 억울했다. 바스티앙의 빈정거림에 아델이 노려봤지만, 바스티앙은 누나가 그러거나 말거나 겁먹을 사람이 아니다. 그 옆에서 쥘리에트는 아델이 들고 있는 장바구니에 들어있는 것을 보았다.

 

  “그렇네, 초콜릿이야.”

  “부엌에 불나겠네.”

  “이미 한차례 태워 먹었을지도 몰라.”

 

  방금까지도 둘이 티격태격하던 건 싹 잊었는지, 아주 둘이 연이어가며 비꼰다. 아델이 화가 끓어서 터지기 전에 레오폴딘이 말을 끊었다.

 

  “너네야말로 말해봐. 사귄다니 무슨 소리야? 아빠 여자친구 딸이랑 다시 연애하려고, 바스티앙?”

 

  바스티앙이 꽉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쥘리에트의 입까지 막았다. 이겼다. 레오폴딘이 내미는 주먹에 아델은 웃으며 가볍게 주먹을 맞댔다. 그때까지도 조용히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받느라 바쁘던 오스카가 말했다.

 

  “바닐라액도 넣으면 괜찮다는데?”

  “누가?”

  “에디트.”

 

  모두가 아는 이름이다. 그럼에도 쥘리에트는 물었다.

 

  “뺨 맞고 차였던 에디트?”

  “지금은 친구지.”

  “내가 저러니까 사랑을 안 믿는 거야.”

 

  바스티앙이 진저리쳤다. “뻔하잖아. 아델도 매번 세기의 사랑이라고 떠들면서 얼마 안 가 차이고는 다시 친구로 지내잔 말에 넘어가잖아. 깨질 게 뻔한 걸 왜 자꾸 하는 거야? 사랑하고 있는 자신에 취하고 싶은 거겠지.” 그러고는 바스티앙은 가게 안쪽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뒤에서 아델이 쟤는 누굴 닮아서 저렇게 예민하냐며 투덜거렸다.

 

  “누구긴 누구야, 소피 아주머니지.”

  “그보다 아녜스 이모가 더 예민하잖아?”

  “생각해보니 클로드 아저씨는 예민한 사람이 취향인가 봐.”

  “확실한 건 필리프 아저씨 유전자는 아니란 거지.”

  “아니야, 필리프 아저씨도 가끔 보면 예민해.”

  “우리 엄마는 좀 예민할 필요가 있는데.”

  “마들렌 아주머니는 문법에 예민하시잖아.”

 

  마트야 한정된 공간이니 바스티앙과 다시 마주치는 것도 금방이었다. 바스티앙은 고른 토마토를 아델이 들고 있는 장바구니에 넣었다. 아델이 싫은 소리를 냈지만, 알아서 빼먹으면 되지 않냐는 반응들만 돌아왔다. 다섯씩이나 같이 장을 보는 건 항상 소란스럽다. 물론 여덟 명이 다 같이 볼 때보단 덜하지만. 어른들까지 섞이면? 그때는 걷잡을 수가 없이 산만하다. 어른들은 말이 어른이지, 어떤 면에선 그들보다도 더 어린애 같았다.

 

  “그런데 왜 직접 만들어? 위고 아저씨한테 부탁하면 되잖아.”

 

  초콜릿 시리얼과 캐러멜 시리얼 중 고민하다가 결국 초콜릿 시리얼을 골라 집으며 쥘리에트가 아델에게 물었다.

 

  “아무리 수제가 좋다고 말했어도 그렇지, 굳이 못하는 걸 해야 해? 어차피 주면 위고 아저씨가 만든 건지, 아델이 만든 건지, 못 알아챌걸.”

  “아니, 우리는 사랑하고 있어서 알아볼 거야.”

 

  아델이 확신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쥘리에트는 정말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사랑 따위 다 쓸모없다고 여기는 동갑의 사촌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쪽은 이쪽대로 엄청나게 징그럽지만. 쥘리에트는 고개를 저으며, 무슨 파가 더 괜찮은지 고르느라 바쁜 레오폴딘과 바스티앙 사이로 합류했다.

 

  “못 알아보면?”

 

  쥘리에트와 아델의 대화를 들었는지, 건너편 코너에 있던 오스카가 아델 곁으로 와 물었다.

 

  “위고 아저씨건 안 줄 거니까 그럴 일 없어.”

  “정말로 수제만 주려고?”

  “줘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 많아.”

  “그야 굳이 수제를 원하는 사람도 없고, 위고 아저씨한테 부탁하면 시판과는 다른데 완벽한 게 나오잖아.”

 

  런던에 분점까지 냈으니, 위고 아저씨의 실력은 의심할 게 없다. 다시는 연락하지 말자고 차 놓고는, 나중에 그 케이크는 어디서 샀던 거냐며 물어오는 애도 있었던 건 딱히 비밀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거에 취해있는 거 같아?”

 

  잠깐 조용하던 아델이 바스티앙이 했던 말을 그대로 들고 와 물었다. 그 말이 신경 쓰였나. 별로 섬세한 오빠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아델이 저 말을 곱씹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오스카는 잠깐 고민하나 싶더니 가볍게 말했다.

 

  “예쁜 여자를 너무 사랑하는 건 맞는 거 같은데….”

  “그건 오스카도 마찬가지잖아.”

  “아빠를 닮은 거지.”

 

  필리프가 들었다면 무슨 뜻이냐며 날카로운 눈초리를 하는 척하면서 웃을 말이다. 그 옆으로 동의를 표하는 여자가 둘은 있을 테고. 그리고 아델에게도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

 

  “사랑이 죄는 아니잖아.”

  “죄였으면 어른들은 전부 감옥에 갔지.”

  “아빠는 종신형이고.”

  “그 안에서도 결혼식을 올리겠지.”

 

  아델이 말하는 거에 오스카가 피식거리며 대꾸했다.

 

  “이번에는 정말 네가 말하는 운명일지도 모르잖아. 드디어 한 달의 기록이 깨질 수도 있어.”

  “당연하지! 이번엔 진짜야!”

 

  말을 그렇게 했지만, 살짝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델은 사랑을 진작 가벼운 것으로 여기고 즐기는 오스카와 사랑에 쉽게 빠지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 바스티앙과는 또 달랐다. 사랑이 자신을 떠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무엇보다 믿고 싶어 한다.

 

  “…이번엔 정말로 운명이야.”

 

  그렇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이젠 정말 살짝 무섭게 들려, 오스카가 괜히 아델에게 장난 섞어 속삭였다. “또 초콜릿을 태우면 끝이지만.” “성공할 수 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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