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난생 처음 만들어봤어요. 맛있어야 할 텐데……."
윤경이 조심스럽게 상자를 내밀며 말했지만, 무영은 그보다 다른 것이 더 신경쓰였다. 피곤함이 가득한 윤경의 얼굴. 왜 피곤한가 했더니, 오늘이 밸런테인 데이였지. 취재하고 기사 쓰기도 바쁜데 초콜릿까지 만들었으니, 오죽했으랴. 윤경의 성격상 분명 뭐든 대충 하진 않았을 것이었다.
"윤경 씨,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잠은 잤어요?"
"일하다가 졸지 않을 만큼은요."
"내가 말했죠, 무리하지 말라고."
"알아요. 하지만 그래도."
윤경은 무영과 시선을 마주했다. 윤경이 그렇게 바라볼 때면 무영은 가만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윤경이 중요한 이야기를 할 거라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만들고 싶었어요. 좋아서. 무영 씨가 좋아서. 나는 초콜릿 만들면서 무영 씨 생각하고, 무영 씨는 초콜릿 먹으면서 내 생각하고, 그러면 더 좋을 것 같아서."
"……."
"좋아하는 사람 위해서 일하는 건 피곤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 안해도 돼요."
정말 대책 없다. 가끔 무영은 윤경의 사랑이 너무 저돌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단순히 잘생겼기 때문만은 아닐 텐데. 하지만 어이 없게도, 윤경이 직진하는 만큼 자신도 윤경에게 대책 없이 끌렸다.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속이는 이 세상에서, 윤경은 마음을 숨기지 않아서 좋았다.
"그런데 초콜릿 모양 안 예쁘다고 놀리면 안돼요. 맛없는 건 놀려도 되지만……."
이런 것까지 안 숨기고 말할 필요는 없는데. 왜냐하면.
"윤경 씨, 너무 걱정 안해도 돼요. 고마워요."
그런 것쯤은 말하지 않아도, 무영은 다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윤경의 말이 맞았다. 초콜릿 모양은 투박했다. 그래도 맛은 나쁘지 않았다. 윤경 같은 초콜릿이라는 생각이 무영의 머릿속을 스쳤다. 윤경과 같이 나눠 먹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그럴 수 없었다. 초콜릿을 받자마자 무영은 다시 애국신문 컨테이너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갔지만, 써야 할 기사가 있었다..
자판을 치던 손이 자연스럽게 초콜릿을 집었다. 기사를 쓰는 일은 꽤 많은 기력을 소모하는 일이었고, 이럴 때 초콜릿은 꽤나 도움이 되었다. 달콤한 맛이 한 번씩 입안을 감쌀 때마다 무영의 손가락도 조금 더 빠르게 키보드 위를 움직였다.
초콜릿을 하나.
또 하나.
그리고 또 하나 더 집으려던 때였다.
다른 손이 그 초콜릿을 먼저 집어갔다.
무영이 급히 고개를 들었다.
"서 기자야?"
동료 기자다.
"형 초콜릿 받았어?"
동료 기자가 한 명이 아니다.
"그만 하고 할 일 해."
무영은 이럴 때가 제일 난감했다. 서 기자와 관련된 무언가만 보이면 애국신문 사람들은 꼭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격세지감이다, 진짜. 한무영이 밸런타인 초콜릿도 받고."
"아, 국장까지 왜 이래요, 정말."
국장까지 합세하자 무영의 목소리가 다소 커진다.
"먹으면서 일 열심히 하란 소리지."
"어쨌든 좋겠다, 형."
"서 기자한테 잘해."
저마다 흩어지는 말들이 무영의 귀에 꽂혔다. 이제 더 안 건드리겠지. 무영은 다시 초콜릿을 하나 집어 먹고, 기사를 마저 쓰기 위해 자판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초콜릿 만들면서 무영 씨 생각하고, 무영 씨는 초콜릿 먹으면서 내 생각하고, 그러면 더 좋을 것 같아서."
윤경 씨, 소원 이뤘네요. 무영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기사 다 쓰면 윤경에게 전화 한 통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는 무영의 손가락은 점차 더 빠르게 자판을 누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