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등장하는 건 피해달라고 말했을 텐데요, 미케지마 씨."
"하하. 미안, 미안~ 그래도 이번 건 재밌지 않았어?"
제 눈앞에 놓인 하늘색 상자를 유키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하늘에서, 위에서 툭 하니 내려온 상자였다. 제가 가던 길을 막은 물체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제게 이런 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특정 지을 수 있었으니 상대를 유추하는 일이란 꽤 쉬운 편이었고, 유추한 상대가 그 사람이란 사실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대가 싫다기보다는 그에게 휘말리는 쪽이 더 싫은 거지만. 제 말에 반응하듯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나타나는 마다라 쪽을 향해 유키나는 시선을 두었다. 갑자기 보인 상자에 대한 평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람은 왜, 가끔 나한테 서프라이즈를 시도하는 걸까. 저와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도 아니면서. 딱 잘라 싫다고 말할 수 없지만, 탐탁지 않은 감정. 어느 때는 히비키 씨가 어메이징! 하면서 등장하던 걸 미케지마 씨로 착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는 어렸을 때도 깜짝 선물을 자주 하곤 했었다.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모르는 아이처럼, 작은 물건을 손 안에 숨긴 채로 조심스레 펼치고 제 반응을 기다리는 때가 있었다. 그때의 저는 어떤 선물을 받든 웃었는지, 지금처럼 솔직한 반응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어쨌든, 그때의 우리는 지금보다 더 사이가 좋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행동할 수 있었으니 지금보다 뭐든 나았으리라. 차라리 그때가 행복했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그랬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겨우 화이트데이에 답례로 받는 사탕에 기뻐하기에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유키나는 하늘색 상자에 손을 뻗었다. 제게 주는 선물일테니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있다면 그가 누군가에게 주는 선물이란 건 오로지 저만을 위한 선물이길 매 순간 바라고 있었다. 그래, 저는 그런 마음인데. 상대는 그렇지 않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왜 하늘색이죠?"
제게 있어 하늘색이 떠오를 만한 요소가 있던가, 하면 스스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제 머리 색은 검은색이고, 눈 색은 금색인데. 하다못해 상대가 생각날 만한 요소로 하늘색이 있던가? 갈발에 녹안. 다른 부분을 생각하려고 해도 하늘색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 이가 하늘색 상자에 선물을 담아준다. 심지어 화이트데이 아닌가. 답례라고 한다면 분명 저는 발렌타인데이에 분홍색 하트 모양 상자, 초콜릿에도 대놓고 LOVE라고 써 있는 진심전력 초콜릿을 준 기억뿐이다. 상자를 열어보고 감탄했던 것도 그쪽이었는데. 조금은 불퉁한 표정을 짓자 마다라는 예상했다는 듯이 제 머리를 긁적였다.
"으음, 크게 의미가 있는 건 아닌데에…"
"…됐어요, 어차피 그 정도의 마음은 아니라는 의미겠죠."
이해해요, 하고 유키나는 작게 말을 덧붙였다. 언제나 더 좋아하고, 더 진심을 쏟는 건 제 쪽이었다. 저와 그의 마음이 같지 않다고 은근히 돌려서 말하고 있다면, 그에 대해 직접 듣기보다 혼자 생각하는 편이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했다. 정말 괜찮냐고 한다면, 전혀 다른 문제겠지만. 유키나는 상자를 들고 마다라를 바라보았다.
"지금 열어봐도 돼요?"
"물론이지! 기대해도 좋단다아~ 이번에는 확실히 자신 있으니까 말야!"
"그 정도로…"
대단한 걸 넣었다고요, 당신이? 내뱉기 직전의 말은 상자 안에 든 물건을 보고 나서야 입을 다물었다. 상자 안에는 작은 향수병이 들어 있었다. 병에는 하늘색 라벨과 리본이 장식된 채로 라벨에는 화이트데이라는 이름이 영문으로 쓰여 있었다. 유키나는 그 병을 바라본 채 한참 눈을 깜박였다. 이게, 뭐예요? 당황스러움, 놀라움과 함께 섞인 기쁨이 오히려 말을 내뱉지 못하게 했다. 표정관리를 위해 제 입을 꾹 다물고 난 뒤 다시 고개를 들었다. 평소처럼 웃는 낯으로 저를 마주하는 마다라가 있었다.
"포장은 가게에 맡겼는데, 그렇게 해주더라고오? 너에 대해 마음의 태도가 드러난 건 아니야. 그랬다면 애초에 향수를 주지 않았겠지이? 이걸로 대답이 되었을 거라고 마마는 생각한단다!"
그러고 마음에 들어? 하면서 웃는 낯에 유키나는 고개를 숙였다. 분명 얼굴이 붉어졌겠지. 제가 어떤 부분에 약한지 그가 알고 있는 탓이다. 화이트데이에 받는 화이트데이 테마 향수 같은 건, 누군가에게 있어 유치하다고 할 만한 취향이었다. 그러니 유키나는 이를 남한테 얘기한 적이 없었다. 제 이름에 따라오는 히라이 가문의 긍지, 품격, 명예. 분명 그딴 것들이 더 유치할 텐데도 벗어날 수 없는 위치에서 저를 숨기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니 미케지마 마다라를 사랑한다 말하면서도, 그가 다가오면서 좋은 티를 낼 수 없었다. 그가 제 이름에 걸맞지 않는 사람이란 이유만으로. 분명 제 입장을 그도 알고 있을텐데. 제가 불편하지 않을 정도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모습을 마다라는 보여줬다. 그게 좋으면서도, 예상을 뛰어넘는 모습에 기대게 된다. 이마저도 그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진 기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잘 쓸게요."
"그래주면 고맙지이."
"내가 준 초콜릿은 맛있었어요?"
"응, 맛있었어."
"그거면 됐어요."
그거면 됐어, 그거면. 유키나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웅얼거렸다. 지금 여기서 만족하지 않으면 더한 욕심을 낼 게 분명한 탓이었다. 맑은 파랑과 어울리지 않게 여전히 붉은 얼굴이겠지만, 조심스럽게 그를 바라보며 웃어 보였다. 화이트데이, 사람마다 느껴지는 감각은 달라도 제게 있어 맑고 연한 파랑의 느낌으로 자리 잡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