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이름 부르기 챌린지"]
"자네 때문에 내가 지금 얼마나 민폐를 겪고 있는지 알기나 해?"
"…. 죄송합니다."
"이유는 알면서 죄송하다는 건가?"
"…. 그게…."
예기치 못한 상사의 불호령에 헤메라, 미스 리아는 오늘 아침 출근 전에 봤던 TV 방송 프로그램 [오늘의 운세] 코너를 떠올렸다.
***
'쌍둥이자리'의 운세는 최하위. 꼴찌.
-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타인과의 트러블 조심. 연인이 있다면 말조심 -
- 오늘은 꼭 조심해야 하는 [액일]이군요. 마침, 제가 쌍둥이자리라서. 하하 -
- 거봐요. 츠지야마씨. 오늘은 말조심하시고 구설에 오르면 안 됩니다. -
- 이것 참, 명심하겠습니다. -
출근 준비를 하던 중, 유명 코미디언과 신인 아나운서의 반복되는 만담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던 그녀는 '그러고 보니'라며 문득 무언가를 떠올려버렸다.
조직 내 코드네임 헤메라, 본명 스스키 리아의 생일은 6월 13일. 마침, 방송에서 조심하라고 이야기 중인 '쌍둥이자리'였던 것이다.
'…. 에이, 저런 건 미신이라니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당장만 해도 주의가 부족하면 물건은 잊어버리기 일쑤. 타인과의 트러블은 365일 대기 중인 상태.
이런 경우에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장착하게 된 회피 스킬 레벨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거다.
마지막, 말조심. 이건 연인이 있든 없든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들으니 안 좋은 말은 모두 머릿속으로, 그조차도 안되면 혼자만이 볼 수 있는 자물쇠 잠금장치의 다이어리에 피의 문구를 수백 장씩 깜지 해서 쓰면 그만인 거다.
응? 마지막 항목이 묘하게 구체적이라고…?
뭐, 그럴 수도 있다는 일종의 예시이니 신경 쓰지 말라.
"…. 이전에는 그러든 말든 내 알 바도 아녔는데"
현재로써 신경 쓰이는 단어가 한마디 추가되었다고 할까. 그래, 연인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한 인간이 한 명 존재하는 것이다.
세부 카테고리로 따지면 조직 명왕성의 CEO이자 그녀의 상사에 해당하는 인물이지만 말이다.
새삼 연인이라는 단어를 신경 쓰자니 이른 아침부터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조심…. 해야겠지?"
다른 건 평소에도 주의를 기울이기도 하는 사항인 만큼 문제는 없지만, 별자리가 일치해 버린다는 것을 알아버린 지금은 마지막 사항이라도 지켜보자며 마음속으로 다짐하였다.
그렇게 만면의 준비를 하고 출근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이후부터의 일은 그녀의 결심과는 전혀 다른 방향성으로 나아가기 시작해 버린 것이다.
***
평소처럼 사무실에 출근 후, 눈앞에 놓인 시곗바늘이 정각 9시를 가리키는 가운데, 대뜸 들려온 내선 전화의 벨 소리.
"당장 찾아오게"라는 그 남자의 얼음장 같은 목소리를 수화기 너머로 전해 들은 그녀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30초간 고민에 빠져버렸다.
오늘은 대체 무슨 일 때문에 그런가. 혹여나 그에게 있어서 오늘이라는 날은 유달리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인가?
어제까지만 해도 휘파람을 불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분위기던데 대체 무엇 때문에?
아니, 그만하자. 전화를 끊은 순간부터 1초 간격으로 숫자를 세고 있을 그 남자를 생각하면 지금 당장 나가지 않으면 다시금 재촉 전화가 걸려 올 것이다.
그녀는 생각을 포기하고 언제나처럼 최상층에 자리한 그의 집무실을 향해 찾아가기로 하였다.
"케르베…. 아니, 케르…."
"…."
"…. 저기, 케르베로스"
혹여나 자신이 저지른 실수가 있다면 이 자리에서 고개라도 숙이고 사죄하고는 사후 처리라도 돌입하겠지만 현재로써는 짐작 가는 바가 없다.
최근 진행된 플랜에 대해서는 성대한 성공과 더불어 보너스까지 받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그 이전의 플랜에 관한 건가?
그 이전 플랜이래봤자 별다른 시행착오도 커다란 실패조차 없던 것으로 기억한다.
"…. 케르베로스. 어떠한 부분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저에게도 이해할 수 있게끔 설명해 주십쇼."
"…. 정말 짐작 가는 데가 없나?"
"…. 아무리 생각해도 없습니다."
이 이상 생각해 봤자 더는 없다.
오늘 아침 근처 식당에서 먹은 생선구이 정식의 맛과 풍미, 어머니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된장국과 달콤한 계란말이의 맛이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디테일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말이다.
"좋아. 우선, 이 내용을 확인해 보게"
"…. 음? 이것은…."
"최근 우리 명왕성에서 개발 중인 최신형 사내 앱이라네. 자네가 확인해야 할 건 직원 게시판이야."
"….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몇 달 전, 그런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다. 이런 중요한 시스템 개발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아침 회의 중에 진행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렇다면 분배받은 직원 수첩에 해당 내용이 적혀있을 테니 자리로 돌아가게 되면 찾아봐야겠다.
조용히 머리를 굴리던 그녀는 눈앞의 상사가 건네준 태블릿 PC 속 내용에 주목하였다.
"…. 이, 이건?"
"…. 더 읽어보던가."
케르베로스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꾸하였다.
사내 앱은 제목을 일일이 클릭해야만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게시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카테고리는 크게 몇 가지로 구분되어 있는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공지 사항, 리퀘스트, 사진첩, 잡담. 이렇게 네 가지였다.
그 중, 그가 중점으로 잡은 카테고리는 [잡담 게시판]
최근 들어 조금은 활성화가 된 듯, 최신 업로드가 된 글만 해도 어제 자 밤 11시쯤 올라온 글인 듯하였다.
그리고 제목에 하나같이 적혀 있는 글은 이른바....
"케르...응?"
"…."
"…. 어. 보자. 케르케르 ㅋㅋ 음. 이건 인터넷상의 용어로 상대방을 비웃을 때는 쓰는 일종의 속어…."
"…. 자네 입 다물고 본문이나 제대로 읽어보게"
"…. 죄송합니다."
여기서 더 말대꾸했다가는 태블릿 PC로 한 대 처맞을 것 같은 분위기다.
그녀는 입을 다물고는 조용히 손가락을 움직여 전체적인 내용을 확인하며 중간중간 말을 잇지 못하겠다는 듯 "아….", "으음…."이라는 추임새를 발하였다.
- 최근 그 둘이 수상한 건 알고 있는데 -
- 최근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랬지. 원년 멤버라면 눈 가리고 아웅 급 -
- 물론 최근은 아니지만 그 뭐냐. 최근 들어 좀 핑크빛….-
- H가 말이야. 최근 K에게 그만의 애칭을 -
- 야, 케이케이도 아니고 ㅋㅋㅋ도 아니고 [케르케르] -
- 케르케르 (웃음)(웃음)-
- 밤이면 밤마다 오는 게 아닙니다. H의 K를 향한 케르 -
전반적인 사태를 모두 이해한 그녀는 서둘러 태블릿 PC의 전원을 냅다 꺼버렸다.
"…. 이봐, 누가 전원 끄라고 했나"
"…. 죄송합니다. 제 눈이 썩을 것 같아서"
"다 읽어는 봤나 보군"
"…. 그, 뭐라 해야 할지…."
그녀는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해당 직원들은 전날 모두 다 색출 완료했네"
"…. 그, 그렇군요"
직원들 모두 타르타로스 행까지는 아니어도 당분간 정시 퇴근은 물 건너갔다 보면 될 것이다.
다행히도 헤메라 본인이 보기에 눈살이 찌푸릴 정도의 음담패설은 없었지만 그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한 내용들이 들쑥날쑥 튀어나오는 가운데 케르베로스로서도 기분이 결코 좋을 일은 없을 것이다.
"…. 이런 일이 발생한 원인을 모르겠습니다만"
"자네, 진짜 모르겠다는 건가?"
모르겠다. 왜 케르베로스가 갑자기 [케르케르]라는 이름의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하며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지. 어째서 이 일에 자신도 연루되어 있는지.
그녀로서는 여전히 짚이는 구석이라고는 추호도 없었다.
고개를 숙인 채 영문을 모르겠다며 중얼거리는 그녀를 바라보던 그는 귀찮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는 일의 발단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 애초에 말이야, 최근 들어 헤메라. 네가 나를 부를 때 유달리 말을 더듬는 이유는 대체 뭔가? 그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자고"
"…. 아."
그녀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는 "그랬구나!"라며 이해했다는 듯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것은 흡사 '심 봤다'의 표정.
"답답해 미치겠군. 케르베로스라는 호칭을 이제 와서 못 부르겠다는 건 아닐 테고"
"…. 앗, 그건 아니고. 케르, 음…. 그 반대예요 반대"
"반대?"
"…. 반대…. 그, 저 저번 주에 그런 말을 했었잖아요."
새빨갛게 달아오른 뺨을 양손으로 가리며 그녀는 "애당초 이 일의 원인은 당신의 그 말 때문이었다고요."라며 중얼거렸다.
***
2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언제나처럼 둘이서 한 베개를 베고 나른해진 몸을 끌어안은 채 체온을 나누던 어느 주말의 날이었다.
평소와 같이 식사하고 보고 싶은 영화를 보며 여가 생활을 한껏 즐긴 한 쌍의 커플은 그 이후, 언제나처럼 사랑을 나눴다.
그런 날의 일상 속, 문득 그가 이런 말을 꺼낸 것이다.
"…. 자네. 아니…. 리아, 너는…."
"…. 앗, 네"
"언제까지 날 [케르베로스]로 부를 셈이야?"
"…. 네?"
"설마 이후에도 평생 날 [케르베로스]로 부를 생각인가?"
"…. 아, 아뇨. 그건 아닌데…."
평소와 같은 나날이면서 그날의 그만큼은 평소와 달랐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 답답하다는 목소리.
"그러면 뭐야? 이런 상황에서까지 나는 이름을 부르고 넌 직장에서의 호칭 그대로 부를 셈?"
"…. 그, 그건 아닌데"
그건 아닌데, 다만….
"케르베로스가 케르베로스가 아닌 건 상상이 안 가요…."
"…. 내가 무슨 날 때부터 케르베로스가 되기 위해 태어난 줄 알아?"
"…. 음, 왠지 그런 분위기가 물씬…."
마치 세상을 바꾸기 위해 태어난 '박혁거세' 같은 느낌이 물씬 들거든요.
당신은 있잖아, 태어났을 때부터 정장 차림에 회중시계를 손에 쥐고 응애라는 소리 대신 '좋은 여행 떠나길'이라는 한마디를 남길 것 같은. 그런 포스가…
이런 말을 꺼냈다가는 모처럼의 침대 위 정담이 엉망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리아는 결코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차며 "또 이상한 상상 중이군"이라고 중얼거렸다.
"…. 내 이름을 모르는 건 아니지?"
"에이, 그럴 리가요! 그건 아니죠"
한차례 떠보는듯한 말투였지만 묘하게 진지한 표정을 한 그의 모습에 리아는 서둘러 대꾸했다.
이 남자, 설마 내가 몇 년 동안 함께 해온 연인의 이름조차 기억 못 하는, 멍청하고 아둔한 여자로 보이는 건가?
하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내색조차 보이지 않던 그가 이런 말을 했다는 소리는 그만큼 이름을 불러주길 기다려왔다는 소리인 거겠지.
리아는 상반신 나체의 모습으로 몸을 반쯤 일으키고는 고개를 숙였다.
"반성합니다."
"…. 그게 침대 위에서 여자가 할 행동인가? 참 분위기라고는 지지리도"
"…. 그렇게 말할 거면 나중에 말하지, 그랬어요."
"하도 답답해서 그렇다. 이 여자야."
침대 위에서 서로서로 관계를 맺는 상황에서 한쪽은 이름을 부르고 한쪽은 [케르베로스]라는 호칭이라니, 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상황인가.
그 또한 반쯤 몸을 일으켜 침대에 기댄 채 한숨을 푹 쉬며 응대하였다.
"…. 그, 그건…. 죄송하게 됐네요"
오래된 연인 관계에 서로 간 이름도 안 부르는 건 아무리 그대로 말이 안 되는 행동이라는 걸 리아 또한 이해는 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대꾸했다.
"저, 노력해 볼게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 지금부터?"
"..케.. 켄…. 케르."
"...."
"켄…. 씨…?"
"…. 됐다. 잠이나 자라"
그는 급기야는 귀찮다는 듯 침대 옆 자그마한 스탠드 불을 끄고는 냅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 자기가 해달라고 해놓고는"
자냐? 잠이 오냐? 얼씨구. 잠 잘 자네. 나는 내일부터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돼서 잠을 못 자게 생겼는데 발 뻗고 잘 잔다. 1분 만에 답 슬리핑이야? 부럽다. 부러워.
그녀의 기억은 여기서 끊긴다. 그래, 이런 일이 있었던 거다.
***
"…. 이런 일이 있었잖아요"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짤막한 회상을 끝으로 서로 간 고개를 끄덕이며 "기억해요?", "내가 꺼낸 말인데 그럼 기억 못 하겠냐?"라며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는 이 둘을 제삼자가 바라본다면 좀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야 조금 전까지 불호령 떨어지기 1초 전인 분위기로 부하를 자신의 집무실로 호출한 상사가 어느샌가 개도 안 먹는다는 연인 간의 정담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니 말이다.
"그래서요, 저는 노력했다고요!"
"…. 그게 지금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을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못 했나?"
"못했죠. 설마 거기서 [케르케르]가 나올 줄…."
조금 전 읽은 게시글의 내용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 웃음보가 터지려는 그 순간, 헤메라는 마음을 무의 경지로 만들어 웃음을 참아냈다. 하지만
"…. 그게 지금 웃음을 참았다는 태도인가?"
"…. 앗,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래서?"
그는 조금 전까지의 [연인]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다시금 불호령이 떨어지기 3초 전의 [명계의 지옥견 케르베로스]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 케르베로스, 그리고 켄.L.벨로즈. 이 이름의 유사성을 생각하면 전 더 빨리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 그 결과는?"
"….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케르베로스와 켄. 케르와 켄. 이 상호작용의 유사성을 생각하면 저는 몇 년간을 쭉 함께해온 당신의 이름을 제 머릿속 두뇌에 다섯 글자로 명왕성 문신처럼 박아놓았기에"
"…. 이봐, 켄.l.벨로즈도 다섯 글자야."
"아니죠. 저는 당신의 이름인 [켄]을 불러야 하는 달성 목표가 존재합니다. 이름 다섯 글자와 한 글자 차이는 너무나도 크단 말이죠"
"…. 자네, 최근에 프로젝트 준비하느라 두뇌가 반쯤 날아간 것 같군"
그녀의 두서없는 말에는 영양 가치가 한 스푼도 없다는 걸 오랜 기간 함께해온 그는 알고 있었기에 차갑게 잘라낸다.
"…. 어휴, 그러니까요. …. 아직 적응 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빠른 인정만큼은 칭찬해 줄 만하군"
"…. 으아…."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 뭔가요?"
크게 실패했다는 듯 언제나처럼 축 늘어진 어깨와 함께 복이 들어오기는커녕 당장 도망갈 것 같은 표정으로 한숨을 쉬는 그녀를 향해 케르베로스는 물었다.
"사적인 장소라면 이해라도 해. 나도 사적으로는 의식적으로 자네 이름을 부르려고 하고 있으니까"
"…. 네"
"다만 어째서 조직 내에서까지 이름을 부르려고 한 건지, 그게 잘 이해가 안 가는군."
심지어 자네 성격과는 동떨어진 행동에 가깝지 않은가?
굳이 실패를 기반으로 직장에서까지 이름을 부르려고 한 이유가 뭐야?
그는 한차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웬만한 건 모두 파악해도 해당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 그건요…."
말하자면 길어지지만 그러니까, 결론은….
"케르, 아니. 켄. 당신의 본명을 부르려면 명왕성에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어렵다고요"
"…. 어째서?"
아무렇지도 않게 불린 본명에 그는 살짝 놀란 듯 눈썹을 달싹거리며 왜냐고 묻는다.
"…. 그야, 당신과 나는 명왕성에서 만났으니까"
"…. 그건 그렇지"
"…. 케르베로스는 지금도 저를 [미스 리아]로 부르잖아요"
"…. 그건 과거의 잔재가 있고 여전히 버릇이 돼서…."
"저도 같은걸요…."
그녀라고 사랑하는 남자의 이름을 부르고 싶지 않을 리가 있나. 하지만, 처음부터 기반은 조직 '명왕성'이었다.
명왕성의 [케르베로스]로써 마주한 그녀에게는 눈앞의 남자는 영원불멸한 [케르베로스]로써 존재하는 것이다. 해당 부분은 연인이 되어도 달라진 적이 없다.
처음 남녀 관계를 맺었을 때도, 연인으로서 잠자리를 가져도, 둘만의 장소에서 데이트하게 돼도, 1박 2일 여행을 갔다 와도, 그녀. 미스 리아에게 그 남자는 유일무이한 [케르베로스] 그 자체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름으로 부르고 싶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분명 자신 또한 그 남자가 가진 성씨를 그대로 따르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이 남자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라며 아주 잠깐 부끄러운 망상에 빠져있던 시기도 존재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침대 위에서만큼은 연인으로서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이 또한 입에 붙지 않는 거다.
"…. 있잖아요. [켄]이라는 이름을 부르려고 할 때마다 당신이 아닌 다른 남자를 부르는 거 같아요."
"…."
"그래서일까요? 침대 위에서조차 이름을 부르기 주저한다는 게…."
"…. 바보 같은 이유군"
"…. 저도 바보 같다고 생각해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정리가 되지 않는다.
내가 안기고 있는 남자는 케르베로스이고 날 품에 안고 있는 남자는 명왕성의 케르베로스인데, 갑자기 [켄]이라는 이름의 낯선 남자의 이름을 입에 담는 건….
"…. 배덕 적이라 생각해?"
"…. 예?"
조금 전까지 책상 의자에 앉아 있던 그 남자가, 어느샌가 그녀의 눈앞에 나타나 의미심장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좋네. 자네의 사고방식 재밌어."
"…. 케, 케르…?"
"케르케르 울부짖는 건 그만하면 어때? 나는 개구리도 케로케로도 아니라고"
"…. 어, 그…. 그게"
왜 갑자기 양복 재킷을 벗으시나요? 왜 갑자기 넥타이를 반쯤 풀기 시작해…. 왜 갑자기 바지…. 응?
"좋아. 이렇게 된 거 아침부터 가볍게 운동을 즐겨보는 게 어때?"
"…. 저, 저기? 저 출근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요?"
"자네 오기 전에 직원회의가 있다고 연락해 뒀어."
"…. 자, 잠깐만요…??"
어느샌가 단추가 반쯤 풀린 새하얀 블라우스 안으로 그의 커다란 손이 멋대로 들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을 비틀어 피하려 했지만, 그조차 불가능. 그는 이미 다른 한쪽 손으로는 입고 있던 스커트 지퍼를 내려버렸다.
"여기서부터는 명령. 첫 번째, 내 이름을 익숙해질 때까지 부를 것"
"…. 네?! 그건…!"
창밖 커튼 사이로 비춰오는 새하얀 아침 햇살 속 살포시 드러난 그녀의 살결에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자네. 내 이름마다 별개의 인물로 생각하며 즐기고 싶은, 그런 숨겨진 욕구라도 있는 건가?"
"예?! 말도 안 돼요!"
그의 손길이 정신없이 움직인다.
이대로 있다가는 그의 술수에 또다시 넘어가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항을 할 수 있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 미스 리아, 너도 용의주도한 여자야."
"…. 뭐, 뭐가…. 뭐가요?…! 읏"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감정과 더불어 거세게 밀려오는 쾌감과 그의 부드러운 손길에 이대로 눈을 감고 오늘 업무는 끝내버리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건 역시 커다란 죄인 걸까?
그는 쿡쿡, 하고 소리 내어 웃고는 그녀의 새하얀 허벅지를 매만지며 귓가에 속삭였다.
"…. 처음 왔을 때 문 잠가버린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 그, 그건…! 으읏…."
"처음부터 그럴 목적이었으면서 모르는 척 하긴."
그건 아니죠. 애당초 당신이 '호출'을 미끼로 삼아 지금껏 나한테 해온 게 있는데 나는 그저 당신 '루틴'에 적응하고 이해해 버리는 게 다라고요.
입 밖으로 불만을 표출하려 했지만, 그조차 소리 내어 말을 꺼내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 이번 기회에 켄인지, 케르베로스인지. 제대로 구분하기를"
지금 당장 터져버릴 것 같은 심장과 산소 부족으로 인한 호흡 곤란으로 머리가 멍해진 가운데 눈앞의 그가 어째서인지 상냥하게 미소 지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아, 역시 나는 어느 쪽이든 좋을지도'
명왕성의 케르베로스던 그의 본명인 [켄.L.벨로즈]도 어느 쪽도 나는….
- 쌍둥이자리의 당신. 오늘만큼은 연인에게 [솔직해지세요.] -
- 사랑의 고백은 오늘이 기회.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세요 -
- 오늘, 당신의 행운의 네잎클로버는 [연인] -
"…. 켄, 사랑…. 해요…."
뜨거운 열에 바스러질 것 같은 가녀린 목소리. 그는 놀란 듯 잠시 숨을 멈추다가 이내 활짝 웃어 대꾸했다.
"…. 나도 사랑한다고. 리아"
그의 품에 안긴 채 리아는 행복하다는 듯이 웃었다.
'…. 켄이든, 케르베로스든…. 둘 다 내 것이야. '
- 나만의 네잎클로버는 바로 당신이었어 -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