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큰달이 박문대였을 시절을 상정하고 작성하여 ‘큰달’ 대신 ‘박문대’로 표기된다는 점을 참고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월, 3학년이었던 애들이 한 살을 더 먹고 사회로 나가기 전 학교를 떠나는 졸업식이 있는 달. 지루하기 짝이 없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끝으로 끝난 졸업식은 생각보다 별 감흥 없이 끝났다. 어차피 고모랑 고모부는 자기 자식을 보러 갔을 테니 여기에는 없을 것이 당연했다. 친구들은 각자의 부모님이 건네는 꽃다발을 받아들고 있었다. 꽃다발이 없어 가져갈 짐이 적으니 나쁘지 않았다. 짐이 많아지면 버스 탈 때 불편해질 테니까.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나 하고 있던 순간, 강당 입구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졸업 축하드ㄹ, 으아아…!”

“? 아. 박문대!”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니 파도 풀 같은 인파에 휩쓸려 강당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 하는 박문대가 보였다.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같은 말들을 반복하며 녀석은 겨우겨우 내 앞까지 와 숨을 골랐다. 근데 얘 1학년―아, 이제 2학년이 될 예정이긴 했다.―아니던가? 왜 1학년에 3학년 졸업식에…. 숨을 고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시선을 느낀 것인지, 박문대는 머쓱해 하며 몸을 일으켜 내 앞에 무언가를 내밀었다.

 

“여기, 꽃다발이요! 졸업, 축하드려요!”

 

박문대가 내게 내민 것은 작은 백장미 꽃다발이었다. 생김새가 어디서 본 것 같다 싶더니 교문 앞에 계시던 꽃다발을 팔고 계시던 아저씨에게서 산 것 같았다. 값이 꽤 나갔던 것 같은데…. 그 아저씨는 매년 오는 사람이었는데, 그때마다 가격이 올라가던 걸 본 기억이 있다. 어린애가 돈이 어딨다고. 특히 너는… 살짝 인상이 찌푸려졌다. 참고로 기분이 더럽다던가 나빠서 같은 이유는 아니다. 기껏 사 와준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는 그런 미친 짓은 할 생각 없으니까.

 

“샀어?”

“헙…! 아, 아뇨…! 그냥, 아시는 분이….”

 

거짓말. 얘는 나를 바보로 아나? 내가 본인보다 2년이나 학교를 더 먼저 다녔는데 모르게? 박문대는 거짓말을 할 때면 고개를 숙여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지금도 딱 그러했다. 얼굴이 새빨개진 것은 덤이었다. 박문대, 화내는 거 아니야. 고개 들어. 이럴 때마다 넌 참 이상한 애구나 싶었다. 왜 그렇게 눈치를 보는지.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우린 그냥 1년 정도 본 게 전부일 선후배인데. 심지어 올해 난 졸업해서 더는 여기에 있지도 않을 텐데. 애초에 우리 서로 번호도 모르지 않나? 그런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해주는 이유가 뭐야? 눈치를 보는 꼴―약간 시골집의 억울한 똥강아지가 생각나는 모양새였다.―이 안쓰러워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꽃다발을 받자마자 눈에 띄게 밝아진 표정이 참 알기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기왕 주는 거니까 고맙게 받을게. 근데 다음엔 뭐 사 오지 마라. 앞에서 파는 건 다 돈 떼먹으려고 비싸게 파는 거다, 알겠어? 그냥 축하나 해줘. 정 뭐 주고 싶으면 간식거리나 주던가.”

“그래도….”

“어린놈 돈 떼먹을 생각 없다. 이런 건 나이 더 많은 쪽이 사주는 거야.”

“하지만 누나랑 저 2살밖에 차이 안 나는데….”

“2살 차이도 차이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 박문대의 정강이를 약하게 차고는 밥이나 먹으러 가자며 점점 인파가 빠지고 있는 강당 입구를 바라보았다. 졸업이라… 이제 우리 담임쌤은 누가 귀찮게 하고 박문대는 누가 놀아준담. 연락처도 없어서 연락도 못 하는데. …잠깐, 연락처?

 

“…야, 박문대.”

“네?”

“너 번호 좀 알려줘.”

“…네?”

“전화번호. 휴대폰 있을 거 아니야. 아니야?”

“아, 그, 있긴 한데….”

 

우물쭈물하며 휴대폰을 꺼내는 박문대를 보다 내가 먼저 화병으로 죽을 것 같아 가로채듯 녀석의 휴대폰을 가져갔다. 잠금 있어? 아, 아뇨, 없어요. 좀 설정해라. 누가 막 보면 어쩌려고 그러냐, 어? 핸드폰에 번호를 찍고 통화 버튼을 누르니 주머니에 있는 내 핸드폰이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박문대 건 본인에게 다시 돌려주고 주머니에 들어있는 내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저장했다. ‘바보 후배.’ 꽤 정성을 담은 저장명이었다.

 

“거기 번호 보이지? 그거 내 번호니까 저장해놔. 배고프면 연락하고. 주말이면 밥 한 번 정도는 사줄 수 있으니까, 알겠어?”

“아…. 네, 감사해요. 선… 아, 아니, 누나.”

 

박문대는 급하게 손을 움직였다. 아마 번호를 저장하는 거겠지. 그렇게 급하게 할 거 없을 텐데, 바보. 소중한 것이 되는 것처럼 핸드폰을 꼭 쥐는 모습이 마치 자신의 장난감을 뺏기기 싫어하는 강아지 같아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박문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방금 선배라고 하려고 했지.”

“…실수예요.”

“선배는 너무 정 없잖냐. 그렇게 안 부른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고딩이면서. 누나라고 해, 계속. 졸업해도 연락하고. 알겠어?”

“네….”

 

잘 지내고, 누가 괴롭히면 말해. 와서 혼내줄게. 저 혼자서도 괜찮아요…. 그러니까 걱정마세요. 누나도 잘 지내세요. 그래.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는 박문대의 모습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애써 무시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며 녀석의 등을 토닥였다. 하지만 내가 이날 이후로 박문대에게 연락이 오거나, 그 녀석을 마주치게 되는 일은 없었다. 1월의 어느 졸업식 날이었다.

© 2025-2026. ALL RIGHTS RESERVED.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