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전하고 싶었던 소리"]
"~~~♬♪"
"~~~♬♪"
반복적으로 귓가에 들려오는 음악 소리.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는 찬찬히 눈앞의 매장을 둘러보았다.
가지각색의 오르골 연주 소리로 가득 차 있는 공간.
이는 도쿄의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장관이기도 하였다.
* * *
첫 임무, 첫 출장. 모든 것이 처음이라는 키워드에 가득 찬 마지막 하루. 그는 묘한 고양감과 사색에 잠겨있었다.
능력 개발연구소를 나와 10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이름도 과거도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그분의 사상을 따라 명왕성에 입단하여 처음으로 진행한 플래너로써의 업무.
처음 담당하게 된 플랜치고는 살짝 난관이 있는 수준이었지만 결과는 퍼펙트. 그 분께서도 만족하실만한 성과를 거두었다며 마음의 짐을 벗어 던지고 출장 마지막 날을 기념차 관광지 거리 주변을 걸었다.
곧 겨울이라는 계절이 다가올 것을 알리는 뼛속까지 한기가 가득 찬 차가운 바람이 솔솔. 아직 두꺼운 외투가 필요한 정도는 아니지만 홋카이도, 오타루의 밤공기는 차갑디차가웠다.
그는 고가의 얇은 가죽 장갑으로 손을 여민 채 가로수길을 걸었다.
주말을 맞이하여 가족과 커플 단위의 사람들이 가득 찬 시내에는 벌써 다음 달을 대비하여 크리스마스 일루미네이션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문득 낯익은 어린 소녀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좋아할 만하겠군'
어린아이라면 누구나 다, 특히나 여자아이라면 다양한 색으로 반짝거리며 점멸하는 크리스마스트리의 일루미네이션을 좋아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크리스마스라고 해봤자 어떠한 의미 부여도 그 무엇도 없던 청년에게 있어 소녀와 함께 지냈던 나날들은 생각 외로 나쁘지는 않았다.
청아한 유리가 깨지는 소리, 시각적인 점멸 효과, 차갑게 얼어붙은 물, 그리고 깊고 깊은 원한과 저주의 말.
어제까지의 플랜을 머릿속에 떠올리자, 또다시 귓가에서 유리의 잔재가 뭉개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불쾌하게 질질 끌어당기는 기계음, 창문이 소리를 내며 깨지는…. 아니다, 여기까지다.
플랜 달성 시점에서 모든 것은 기록으로 남겨두되 그 이상의 감정을 끌어안는 것은 좋지 못하다는 킹하데스의 조언을 그는 다시금 상기하였다.
안절부절못하던 의뢰인의 모습과 늘 그렇듯 인간관계의 갈등을 최고조로 넘은 남녀 간 치정 싸움이라는 동기 등등, 그는 업무에 대한 모든 것을 잊기로 하고는 눈앞에 보이는 커다란 오르골 공방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저녁 시간대, 관광객으로 붐비는 공간에 들어선 그는 각양각색의 오르골을 한눈에 둘러보다가 이내 이대로 돌아가 버리는 게 좋을지 고민에 빠져버렸다.
인파 속, 시끄럽기 짝이 없는 불협화음 사이에서 물건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구매해야 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나 귀찮게 느껴진 것이다.
선물 매장에 들어온 순간부터 대기 중이던 직원들이 하나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호객하자, 이쯤 되면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도 왜인지 모르게 찝찝하게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변덕에 가까운 성격이었는지, 이렇게나 계획 없이 눈앞의 길을 아무렇게나 선택하여 가는 성격이었는지 알 수 없어져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렇게 된 거 즐기기로 마음을 먹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다양한 형태의 오르골. 천사, 인형, 발레리나, 유럽의 성을 본뜬 것, 크리스털, 눈이 내리는 모형, 크리스마스 에디션 등 다양한 것으로 가득했다.
소녀는 무엇을 좋아했던가. 형태적으로 따지면 천사는 NG. 인형 등의 인간 형태의 무언가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성향. 그렇다면 동물류는 어떠한가. 아니, 동물도 아니다.
그래봤자 몇 년 전 키우던 관엽식물을 몇 번이고 죽여버린 게 끝이 아니던가. 소녀는 생명을 키우는 것을, 생명을 보존하는 것에 대해 묘하게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성분이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과거의 자신이 몇 차례고 싱크로 되어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과거의 자신과 그녀는 다른 존재에 가까웠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하나씩 묘하게 교차하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내면은 전혀 다른 평행선이나 다름없으면서도, 그럼에도 어째서….
처음에는 그렇게나 싫었던 어린 소녀에게 이제는 아주 조금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에 대해 그는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아이…. 굳이 과거의 기억 속에 봉인해 버린 것을 다시 한번 꺼내게 되는 건'
이 또한 그분, 킹하데스의 어떠한 의도가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이상은 단순한 우연에 불과한 운명에 가까운 것인가.
그는 생각에 잠긴 채 주변을 돌다가 문득 어느 한 가지의 모형이 눈에 들어와 반대 측 진열대를 향하였다.
둥근 관람차 모형의 오르골. 반짝반짝, 유리 세공으로 만들어진 오르골이 가게의 노란색 형광등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나름 정교하게 만들어진 형태. 한차례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 보니 다른 물품들에 비해서 훨씬 더 고가로 보였다.
"어서 오세요, 손님. 해당 물품은 올해 새롭게 나온 디자인인데 소리 한번 들어보세요."
뒤쪽 계산대에서 대기 중인 여성 직원이 웃으며 말은 건다.
"~~~♬♪"
고가인 만큼 들리는 소리도 깔끔하고 좋아 보인다. 곡은 흔한 클래식 음악의 한 구절. 바흐의 곡.
문득 떠오른 과거의 기억 속 파편이 머릿속에 흘러 들어온다.
* * *
- 피아노? 켄은 피아노 칠 줄 알아? -
- 어느 정도는요 -
- 그렇구나….-
딱 세 마디로 끝나버린 대화. 그리고 어색한 침묵. 이런 경우 그냥 무시하면 그만인 것일까, 아니면 '제가 한번 쳐볼까요?'라며 말을 걸어야 하는 게 좋을까.
소년은 어린 여자아이를 상대로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한두 번 보고 말 정도의 관계이거나 적당한 선을 유지해도 문제없을 관계라면 그는 평범한 소년의 가면을 장착하며 모두에게 공평하게 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어린 소녀를 상대하기에 유달리 커다란 귀찮음과 피로감을 느끼게 되는 건 어떤 연유인 것일까?
이 또한 '업무'에 해당하기 때문인 걸까? 킹하데스의 명령으로 인한 부담감? 아니, 그조차 아니다. 물론 부담감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니다.
분명 그건…. 그녀가 가진 특유의 '눈빛'이 마음에 거슬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딘가 남들과는 다른 이질적인 눈 색도, 자신을 바라보는 이질적인 눈빛도 말투도 태도도 전부 다, 묘하게 껄끄럽고 거슬렸다.
어린아이다운 모습이라고는 눈에 두드러지게 보인 적도 없으면서 눈빛만큼은 어린아이 특유의 호기심으로 반짝거린다.
그런 부분이 눈에 거슬린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어린아이니까, 어리니까 용서받을 수 있다며 타인에게 기생하는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된 장소에서 처음부터 그곳이 자신이 있을 장소인 것처럼 차지하고 있는 소녀의 그런 점이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이 주 정도 지난 주말이었을까?
어린 소녀는 본 적도 없는 악보를 꺼내 들고 와서는 벽난로 옆에 설치되어 있는 피아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 피아노, 치고 싶지 않아? -
-…. 그 소리는 저보고 피아노를 연주해 달라는 의미입니까? -
-…. 그런 건 아니야. -
- 그러면 당신이 직접 연주하겠다는 의미입니까?-
악보까지 준비해 온 시점에서 둘 중 하나, 또는 두 가지 전체의 의미에 해당하겠지. 소년은 정중한 말투로 대답하였지만, 실상은 거절에 가까운 대응이나 다름없었다.
-…. 연주를, 사람 앞에서 하고 싶지 않아 -
-…. 그렇군요 -
또다시 둘 사이를 감싸는 무거운 침묵. 벌써 두 번째 일어난 일.
소년은 한숨을 내쉬고는 펼쳐진 악보를 정중한 태도로, 하지만 거칠게 뺏어 들고는 그녀를 향해 고했다.
-…. 아무래도 제 연주가 듣고 싶은 모양이군요 -
-….-
- 조금 더 말을 똑바로 해주면 고맙겠군요 -
-…. 같이….-
-….-
- 같이 연주를…. 하고 싶어서 -
소년은 놀란 듯이 소녀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앙다물어버린 소녀.
사람 앞에서 연주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으면서 그럼에도 이 나와 무언가를 같이 하고 싶다는 소리인가?
소년은 손에 든 악보를 확인하고는 그제야 소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렇군, 이 곡은….
- 연탄에 잘 어울리는 곡이군요 -
- 응 -
- 좋습니다. 같이 맞춰보죠 -
- 응!-
어색하게 굳어있던 표정의 소녀가 아주 살짝 미소 지은 기분이 들었다. 어렵다. 이래서 어린아이는 싫다.
결국 그날은 서로서로 피아노 연주를 맞춰봄과 동시에 각자 하나씩 좋아하는 곡을 떠올리며 피아노를 연주하였다.
그는 어떠한 메리트도 없는 상황에서 타인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대로 메리트만 있다면 언제든지 상대가 원하는 만큼, 그 이상을 연주할 수 있다는 소리겠지. 다만 이 어린 소녀 앞에서는 그렇게까지 친절을 베풀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소녀는 가끔 소년의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때가 존재하였다.
이 또한 소녀의 자잘한 변덕에 불과할 거로 생각한 그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반대편에 놓인 소파에 앉아 조용히 연주에 귀를 기울여줬다.
어린 소녀의 나이대를 생각하면 결코 잊을 수 없는 프로급의 실력. 소년은 아주 잠시 놀랐지만 이 또한'[그분]의 혈족이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라고 생각하고는 마음을 닫아버렸다.
* * *
'…. 오래전 과거의 일까지 떠오르게 만들다니. 소리란 건 사람을 센티멘탈한 감정에 빠지게 하는군'
청각. 소리. 유리 세공
홋카이도로 오고 나서부터 계속해서 마음속에 걸리는 키워드. 어찌 보면 최면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면 또한 반복적인 키워드와 청각, 시각, 후각을 이용하는 장치.
이번 첫 플랜의 시발점 또한 킹하데스께 배운 최면술에서 기인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곡보다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곡이 그녀에게 어울릴 거로 생각했다.
과거는 과거. 현재는 현재. 미래는 미래. 정확하게 구분 짓는 것이 그 소녀에게 훨씬 더 좋을 것이다.
그는 옆에 놓여있는 동일한 모델의 태엽을 돌려 또 하나의 곡을 들어보았다.
귀에 들려오는 곡은 익숙하면서도 유명한 스테디한 곡.
"…. 다음 달에 있을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면 이 또한 나쁘지 않겠군."
첫 플랜을 포함하여 이후, 더는 소녀와 함께하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일은 없을 것이다.
미리 건네는 어린 소녀를 향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라 해둘까.
그는 모델에 적힌 곡명을 확인하고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으며 점원을 향해 말을 걸었다.
"선물용 포장인 거지요? 포장지와 리본은 별도로 골라주시겠어요?"
"…. 그렇다면 리본은"
소녀의 눈동자 색을 닮은 연한 녹색. 포장지는…. 별이 가득 차 있는 보라색 밤하늘이 좋으려나.
제일 먼저 추천해 준 새빨간 포장지는 벌써 크리스마스 느낌으로 가득 차 살짝 부담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이래서야 미리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기뻐하기보다는 아쉬워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물론 내가 아니라 [그녀]가. 이쯤 되면 그녀에 대해서 소녀 본인보다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듯해서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상대가 상대인만큼 알아둬도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해맑은 직원의 인사를 뒤로한 채 청년은 한쪽 손에 들린 묘하게 묵직하게 포장된 선물 상자와 쇼핑백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 역시 들르지 말아야 했던 걸지도.'
첫 플랜, 첫 임무, 첫 출장. 모든 것이 사람 마음을 변덕스럽게 만든다.
간단한 특산품이라면 몰라도 이런 고가의 물품을, 어린 소녀를 향한 간단한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친 감이 있다는 것을 가게 밖이 나와 찬 바람을 쐬다 보니 깨달아버린 것이다.
연인에게 하는 선물도 아니다. 애당초 연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만들고 정리하고, 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조차도 그는 굳이 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 없는 일을 일부러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인 거다.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것 또한 내가 가진 무의식의 반영일 것"
업무적인 부분을 제하고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다고 생각한 상대는 소년의 인생에 있어 그녀가 처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후 대체 무슨 커다란 변화가 존재하겠는가.
그는 그 이상 떠오르는 잡념을 머릿속에서 지우고는 차가운 바람을 피하여 숙소를 향하였다.
* * *
일주일 후, 소녀에게 건네준 그 순간 그녀는 몇 차례고 자신의 것이 맞냐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몇 차례고 "너를 위한 선물"이라고 대꾸하였다.
선물을 받은 소녀는 이 세상에 두 번은 없을 듯한 행복한 표정을 짓고는 "영원히 간직할게."라고 말했다.
몇 번이고 눈앞에서 태엽을 돌리고 돌아 오르골 소리를 들으며 기쁜 듯이 미소 지었다.
- 영원히 간직할게. -
-….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
- 쭉 간직할 거야 -
- 당신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
-…. 있잖아, 곡이 너무 좋아. 곧 크리스마스지? -
-…. 미리 크리스마스가 된 감이 있지만요 -
- 크리스마스 때마다 이 곡을 듣는 거야. 이브부터 당일까지 -
-…. 나쁘지 않군요 -
소녀는 웃었다. 기쁜 듯이 웃으며 빙글빙글, 마치 춤이라도 추듯이 빙글빙글 돌아, 그리고는…. 아아, 마치 새하얀 함박눈이 내리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유리 파편.
유리 파편 속 새하얀 눈의 결정이 드러난 듯 한순간의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
- 와장창 -
- 쨍그랑 -
- 쨍그랑 -
"xxx xxxxxx!!"
귓가에 맴도는 알 수 없는 비명, 고함, 외침 소리, 그리고 마지막에 들려오는 건 오열. 비명. 엉망진창의 핏자국.
'…. 아아, 망가져 버렸다.'
망가진다. 깨졌다.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조각조각이 된 그것은 소녀의 몸에 튀어, 손에 튀어. 피가…. 새빨간 피가…. 눈앞 가득 펼쳐지는 붉은 색 정경.
그것은 마치….
'…. 새빨간…. 선혈의 크리스마스….'
소녀의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어 눈물이 맺힌다. 망가진 수도꼭지처럼 그치지 않는다. 망가진 레코드판처럼 무언가를 외친다.
아아, 들리지 않아.
- 네가 하는 말을 이해 못 하겠어. -
어차피 망가질 거면 끝까지 망가져 버려.
어차피 끝이 보이는 관계였다면 너도, 나도 같이 무너져버려.
청년은 소녀를 향해 앞으로 고할 잔인하고 잔인한, 피비린내 나는 그 말을 떠올리고는 내심 비웃었다.
그러고는 꿀꺽하고 침을 삼키고 소녀의 가슴에 비수를 박는다.
"너도 결국 위선자에 불과해."
[깨져버린 유리 세공. 무너져버린 마음은 두 번 다시 복구되지 않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