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이데아 씨, 무슨 고민 있습니까?”

 

덜그럭.

아줄의 질문을 들은 이데아는 들고 있던 보드게임 기물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누가 보아도 긍정하는 듯한 태도여서일까. 이데아는 맞다 틀리다 답하지 않고, 사색이 되어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졸자, 수상한 계약 같은 건 안 합니다만.”

“이런, 실례군요. 저는 그저 고민이 있냐 물었을 뿐인데. 제 의도를 오해하시다니.”

 

거짓말하고 있네. 차라리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지. 최근에는 마구잡이로 계약을 하진 않지만, 얼마 전까진 수많은 계약으로 말미잘 노예를 부린 걸 제가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

물론 자신은 바보가 아니니 손해 보는 계약 따윈 안 할 거다. 그래도 미리 선은 그어둬야지. 이데아는 필요 이상으로 여러 번 고개를 젓다가, 문득 아차 하는 마음에 물었다.

 

“그, 저, 티 납니까? 고민 있는 게.”

“예. 전혀 게임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시니까요.”

“으음…….”

 

역시 그랬나. 어차피 자신은 표정 관리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니까. 당연한 대답이겠지.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뱉은 이데아는 완전히 보드게임 판에서 손을 떼더니, 머리카락 끝을 만지작거렸다.

 

“아줄 씨는 감독생이랑 어떻게 화해한 겁니까?”

 

‘계약은 안 할 거지만 상담 정도는 괜찮겠지.’ 그건 논리적인 선택이라기보단 합리화에 가까웠다. 당사자 또한 그걸 잘 알지만, 어쩌겠나. 지금 이 고민은 혼자 껴안고 있기엔 너무나 크고 무거운데.

하지만 품고 있는 고민이 묵직한 건 그뿐만이 아닌 법. 갑작스러운 물음에 헛숨 삼킨 아줄은 괜히 애꿎은 안경만 만지작거렸다.

 

“거기서 갑자기 왜 제 이야기가 나옵니까?”

“무슨 고민이 있냐고 물은 건 아줄 씨입니다만.”

“…….”

 

그건 그렇지.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건 이데아의 고민뿐, 제 이야기를 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이 대화의 흐름을 보아하니, 침묵으로는 이데아의 입을 열 수 없을 거 같다. 결국 아줄은 고민 끝에 얼버무리는 말이라도 꺼냈다.

 

“그런 게 있습니다. 애초에 저랑 아이렌 씨의 관계는 굉장히 특수한 경우니, 이데아 씨의 고민에 도움이 될지 아닐지 모르죠.”

 

누구든 이해하는 여자에게 이해받지 못하던 고통. 그 여자에게 적의와 악의를 쏟아부었음에도 결국은 이해받은 허탈함. 그리고 그 끝에 느낀 해방감까지.

이 모든 걸 어찌 다른 이들의 관계에 끼워 넣을 수 있겠나. 비록 결과적으론 회피하는 대답이긴 하지만 아줄로서는 그저 진실을 말했을 뿐인데, 이데아의 귀엔 그렇게 들리지 않은 모양이다.

 

“역시 됐습니다. 물어본 졸자가 바보지.”

“……대체 무슨 일인 겁니까? 사람을 놀리는 것도 아니고.”

“아줄 씨의 말을 빌리자면, 졸자가 처한 일도 굉장히 특수해서 말입니다. 말해봐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 다물었을 뿐입니다만.”

 

다시 보드게임의 기물을 주워 든 이데아는 아랫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거의 10년 전 죽은 줄 알았던 약혼녀가 사실은 살아있었고, 왜 그동안 연락해오지 않았는지는 말해주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안부 인사를 남겼다. 묻고 싶은 건 많지만 정말로 물었다가는 다시 연락이 끊길까 무섭다. 이 관계가 회복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고, 어디까지 틀어진 것인지도 모르겠으며,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해서 서로 만족할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것들을 어찌 쉽게 말하겠나. 상대도 특수성을 이유로 입을 다문다면 자신도 입을 닫을 뿐이다.

 

‘아……. 최악.’

 

자신과 포플러의 관계를 아는 건 이 학교에선 친척인 르니안 뿐인데. 역시 그쪽에 말해봐야 하나. 이런 고민은 차라리 집안과 먼 타인에게 털어놓고 싶었는데.

아직도 노이즈 낀 화면에 비치던 포플러의 얼굴이 선명한 이데아는, 차마 기물을 움직이지 못하고 손의 힘을 풀어버렸다.

© 2025-2026. ALL RIGHTS RESERVED.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