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필요한
키타 신스케 X 네임리스 드림주
(-)이 결석했다. 키타는 빈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빈자리가 하나 생긴 것뿐인데 마치 세계의 균형이 깨진 것 같았다. 타인의 부재가 이토록 낯설 수도 있다는 사실을 키타는 새삼 깨달았다.
키타는 하굣길에 상점가에 들러 장을 봤다. 키타의 얼굴을 알아본 채소 가게 사장이 덤으로 귤을 몇 개 넣어주었다. 감사합니다. 키타는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손을 씻은 뒤 키타는 본격적으로 죽을 끓일 준비를 했다. 시합이나 시험을 앞둔 날이면 할머니는 항상 든든한 식사를 차려주셨다. 큰일을 하려면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이 당신의 지론이었다.
양파와 버섯, 그리고 당근을 잘게 썬다. 담백한 달걀은 차갑게 긴장한 위를 따듯하게 녹여줄 것이다. 평소보다 입맛이 없을 테니 간은 일부러 조금 진하게 한다. 키타는 죽이 냄비 바닥에 눌어붙지 않게끔 주걱으로 부지런히 죽을 저었다.
마무리로 깨소금을 뿌리자 그럴듯한 달걀죽이 완성됐다. 키타는 시계를 바라봤다. 저녁 일곱시. 바깥에는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키타는 준비를 서둘렀다. 얼른 그 아이에게 따듯한 것을 먹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건 너무 오지랖 아닌가? 버스 안에서 키타는 고민에 빠졌다. 위로해 주고 싶다는 건 적법한 감정인데도 무의식적으로 그 아이를 마냥 약하고 여리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슬픔에 빠진 상대에게 노력의 산물을 받아달라고 들이미는 것 또한 일종의 강요 아닌가? 하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게 아닌지. 키타는 치열하게 고민했지만 결론은 좀처럼 나지 않았다.
버스가 크게 흔들렸다. 키타는 반사적으로 죽이 든 보온통을 꽉 껴안았다. 품 안에서 느껴지는 뜨거움이 마치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키타는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로비에는 상복을 입은 다른 가족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여기 어딘가 부반장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몸에 힘이 들어갔다.
“키타군…?”
키타의 얼굴을 알아보고 (-)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냐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 때문에 온 거야?”
“응”
“밖에 눈도 내려서 오기 힘들었을 텐데….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 키타군.”
인사하고 가. (-)는 키타를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는 괜찮아 보였다.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는 의미였다. 키타 신스케군이에요. 우리 반에서 공부도 제일 잘 하고요. 배구부 주장이에요. 키타는 어른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할머님께 인사하고 싶어”
“정말? 안 그래도 돼.”
키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땅한 도리를 다하고 싶었다. 키타의 말에 (-)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있는 힘껏 웃었다. 그래. 내가 어떻게 하는지 알려줄게. 어른들이 어떻게 하는지 하루 종일 봐서 잘 알려줄 수 있어. 키타는 시선을 내려 저를 이끄는 (-)의 손을 바라봤다. 창백한 손끝이 보기 안쓰러웠다.
(-)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받아. 키타는 (-)가 건네주는 국화를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이제 우리 가족하고 너하고 인사를 주고받을 거야. 키타는 (-)의 가족, 친척들에게 다시 한번 인사했다. 이제 할머니가 계신 곳에 꽃을 올려두면 돼. 키타는 단상에 국화를 올렸다. 국화 사이에 놓인 영정사진 속 고인은 무척 평화로워 보였다. 묵념을 마친 키타는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 뒤로 물러났다.
“고마워”
(-)의 눈가는 붉게 부어있었다. 오늘 하루 (-)는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 저기 놓인 국화 꽃잎을 모조리 그러모아도 (-)가 흘린 눈물보다는 적을 것 같았다.
“밥 먹고 가”
“괜찮다”
“안돼. 손님을 빈속으로 보냈다고 할머니한테 혼나”
저기 가서 앉아. (-)가 손끝으로 가리킨 자리에는 이미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키타군이 갖고 온 짐 내가 다른 쪽에 보관해 뒀었는데 지금 가져올게. (-)는 키타의 대답도 듣지 않고 가버렸다. 죽만 주고 갈 예정이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키타는 얌전히 (-)가 안내해 준 자리에 앉았다.
“짐 여기 있어”
“그거 네 거야”
“내 거? 이게 뭔데?”
“죽”
“죽?”
“너 먹으라고 갖고 왔어.”
굳이 자기가 만들었다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그건 이 대화에서 그렇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 (-)는 기뻐하며 보온통 뚜껑을 열었다. 향이 엄청 고소하다. (-)가 살짝 웃었다.
“이상하네. 키타군이 오기 전에도 이것저것 많이 먹었는데 이걸 보니까 또 배가 고파졌어.”
목소리는 밝았지만 (-)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낯선 장소에서 낯선 일을 치르고 있으니 알게 모르게 체력이 많이 알게 모르게 체력이 많이 소모될 터였다. 어쨌든 식욕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빠르게 그릇을 비워나가는 (-)를 보고 키타는 안심했다. 입천장 데지 않게 천천히 먹어. 키타의 말에 (-)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죽을 크게 떠서 입안에 넣었다.
오가는 말은 없었고 이따금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조용한 식사 속에서 키타는 (-)에게 일어난 변화를 빨리 눈치챘다. 씹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고 눈동자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키타는 티슈곽을 집어다 (-)의 근처에 놔주었다. 떨리는 어깨를 차마 볼 수가 없어서 키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넘어가지 않는 밥을 억지로 푹푹 떠먹었다.
어른들의 허락을 받고 (-)와 키타는 장례식장을 살짝 빠져나왔다. 산책이라고 해봤자 멀리 갈 수 없어 근처를 몇 바퀴 도는 게 전부지만 키타는 이렇게라도 (-)가 숨을 돌릴 시간을 가졌으면 했다. 자박자박 눈을 밟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키타와 (-)는 나란히 벤치에 앉았다. 눈발을 보니 남은 밤 내내 눈이 내릴 듯했다. 이게 올겨울의 마지막 눈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눈이 필요했다. 슬픔을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펑펑 내려야 했다.
“다들 호상이라고 그랬어.”
떨리는 목소리로 (-)는 떠듬떠듬 설움을 토하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두 발로 걷다가 잠자듯 가고 싶다고 할머니께서 입버릇처럼 말씀하셨거든. 어른들은 당신께서 바라던 모습대로 갔으니 잘된 일이라고 하시더라”
호상. 키타는 속으로 발음해 본다. 고통받지 않고 편하게 죽으면 좋은 죽음이라고 말해도 되는가. 애초에 좋은 죽음이라는 표현이 맞기는 한가? 세상에서 사라져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는데?
키타는 할머니와 영원한 작별을 하는 상상을 해봤다. 사진을 정리하고 상주가 된 자신을 그려보다가……… 그만두었다. 죽음을 수용하는 건 상상 속에서도 불가능했다.
“나도 각오는 하고 있었어”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다구… (-)의 뺨에 닿은 눈이 사르르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를 새 없었던 여자애의 부르튼 눈가가 다시 빨개진다.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숨이 떨릴 때마다 공기 중에 하얀 입김이 파르르 퍼졌다가 사라졌다. 그러니까, 슬퍼하면 안 되는 거잖아. 고통받지 않고 돌아가셨으니까 다행인 거잖아.
“어른들은 이제 그만 할머니를 보내드리재. 근데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내가 보내지 않으면 할머니는 계속 내 곁에 있는 거야? 그건 아니잖아. 할머니는 이제 돌아가셨는걸. 여기에 안 계셔. 그런데 대체 뭘 보내자는 거야?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해?”
키타는 자기가 하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 (-)에게 둘러주었다. 이것은 위로가 아니다. 키타는 자신을 비웃었다. 이건 먹을 것을 챙겨주고 앓지 않도록 옷가지를 챙겨주는 돌봄에 지나지 않는다.
“할머니가 보고 싶어....”
(-)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잔뜩 뭉개져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울음이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하자 키타는 자판기에서 뽑은 따듯한 음료를 손수건으로 감싸서 (-)에게 건넸다. 항상 받기만 하네. 미안해서 어쩌지. (-)의 말에 키타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수많은 일 중에서 제일 간단한 일을 한 것일 뿐이니 감사를 받을만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키타는 (-)가 이걸 언젠가 갚아야 할 빚으로 여기지 않기를 바랐다.
(-)는 따듯한 음료로 꽁꽁 언 손과 뺨을 녹이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키타군 오늘 정말 고마워”
“됐다. 한 것도 없는데.”
“그렇지 않아.”
키타군은 나한테 정말 많은 걸 해줬는걸. (-)가 키타를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지금 이 눈빛과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키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입술을 깨물었다. 우는 사람이 두 명이나 될 필요는 없으므로.
키타와 (-)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같은 곳을 바라봤다. 눈에 뒤덮인 세상은 희고 희어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모든 장례 절차를 끝내고 (-)는 학교에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조금 기운이 없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기운을 차리려고 노력하는 (-)를 키타는 조용히 응원했다.
키타의 책상 위에는 종이백이 놓여있었다. 키타는 (-)가 있는 곳을 잠깐 바라보다가 자리에 앉아 종이백을 열었다. 처음 맡아보는 부드러운 향이 코를 간질였다. 종이백 안에는 목도리와 편지가 들어있었다. 키타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꺼냈다.
키타군에게.
(-)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키타가 천천히 편지를 읽는 사이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왔다. 봄이 느껴지는 따듯한 햇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