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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꼭 꺼내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도 있는 법이다. 말하자면, 벌집을 괜히 들쑤실 필요는 없다는 거지.

하지만 제가 건드리는 게 벌집인지 아닌지 모두가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걸 구별할 수 있는 사람도 항상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건 아니었으니. 아무리 명석하다고 여겨지는 이데아라 하여도 작은 실수 정도는 얼마든지 저지를 수 있는 법이었다.

 

“르니안, 혹시 레르네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했는지?”

 

한가한 주말 오전. 자신의 방에 빌려준 CD를 받으러 온 르니안에게 물건을 건네주던 이데아는 일어나자마자 SNS에서 본 글을 떠올리고 물었다.

 

“딱히 마음에 짚이는 건 없습니다만.”

“정말로?”

“예.”

 

르니안의 반응은 지극히 무덤덤했다. 원래도 거짓말할 때 표정 변화가 적은 르니안이긴 했지만, 이데아는 알 수 있었다.

이건 전혀 짐작 가는 일이 없을 때 보이는 반응이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어도, 적어도 르니안 본인은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남들은 ‘무슨 차이인지,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다’라고 하겠지. 하지만 18년 정도 붙어있다 보면 좋든 싫든 작은 차이도 눈에 띄게 되는 법이었다. 그리고 먼 친척인 덕분인지, 어느 정도 직감이 맞기도 했고.

그런 만큼, 르니안 쪽도 이데아에 대해서 잘 알기는 마찬가지였다.

 

“혹시 그 녀석이 뭐라고 했습니까?”

 

이데아가 아무 이유도 없이 이런 질문을 던질 리 없다. 르니안은 무언가 계기가 될 만한 게 있다고 판단 후, 곧바로 SNS를 켰다. 제 여동생이라면 어지간히 심각한 일이 아닌 이상 먼저 전화를 걸거나 메시지를 넣을 리 없으니, 가장 간접적이고 빠르게 상태를 알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르니안은 원인이 된 게시글을 금방 발견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쯧.”

 

그 혀 차는 소리가 얼마나 묵직하게 다가오는지. 이데아는 그제야 자신이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 괜한 소릴 했나.’

 

남의 가정사에는 함부로 끼어드는 게 아닌 법인데. 아니, 르니안과 레르네가 ‘남’인가? 하이드 가는 단순한 방계 친척이라고 하기엔, 꾸준히 슈라우드의 혈통이 섞이지 않았나. 당장 레르네만 하여도 오르토의 약혼녀고. ‘그 사건’이 없었다면, 미래엔 분명 슈라우드 가의 성씨를 받았을 텐데.

아니다. 생각해 보니 가족이라 하더라도 형제 사이의 일엔 끼어들어선 안 되는 거였을까. 자신도 남동생이 있으니, 이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데.

이데아가 제 행동이 정당한 참견이었는지 괜한 짓이었는지 고민하는 사이. 어느새 레르네에게 전화를 건 르니안은 자리도 피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불편한 통화를 이어갔다.

 

“전에 어머니한테 불가능한 요청은 말라고 전달하지 않았나? 불가능한 동작이 버튼을 연타한다고 되는 것도 아닌데. ……어이가 없군. 혈육이라는 집합 그래프 안에 있는 사이에서 하는 말이지, 너보다 연장자인 형제라고 다그치는 게 아니다만. 네가 네 동생이었다고 할 말은 했을 거다.”

 

오, 제발. 제삼자도 머쓱해질 이런 대화는 나가서 해 주면 안 될까.

얼떨결에 남매싸움을 중계로 보게 된 이데아는 차마 뭐라고 하지도 못한 채 숨을 죽이고 눈치를 보았다. 평소라면 ‘통화는 나가서’라고 간결히 쫓아냈겠지만, 지금 이 사건의 원인은 자신이지 않나. 아무리 사회성이 다 증발해 대기에 얼마 남지도 않은 자신이라도, 잘잘못을 따지는 법은 알고 있었다.

양심의 가책을 약간이나마 느끼는 그는 통화가 끝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됐다. 연결은 종료하도록 하지. 애초에 길게 논의할 거리도 아니니.”

 

다행스럽게도 통화가 길어지지는 않았다. 그리 큰 분쟁 거리가 아닌 탓에 딱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은 르니안은 소리 없는 한숨으로 감정을 정리했다.

휴우. 겨우 진정된 분위기에 안도한 이데아는 어색하게 사과했다.

 

“미. 미안하구려. 졸자가 괜한 소릴.”

“아닙니다. 이런 일이라면 나중에라도 알게 되었을 테고, 조금 빨리 컨택했을 뿐 결괏값은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사과의 말은 불필요합니다.”

 

그 말도 사실이다. 어차피 하이드 남매는 서로 SNS를 팔로우하고 있으니, 제가 말하지 않았더라도 문제의 게시글을 보게 되었을 거다.

게다가 어차피 저 둘은 자주 싸우다가도 금방 화해하는데. 자신은 왜 긴장한 걸까.

타당한 주장과 반복 학습으로 기억하고 있던 사실에 완전히 죄책감이 사라진 이데아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옛날 생각나서.”

 

비탄의 섬에서 다 같이 지낼 때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르니안과 레르네가 남매 사이에 있을 법한 사소한 싸움을 하고 나면, 자신과 오르토는 양쪽에서 의견을 듣고 둘이서 뭐가 옳은지 이야기하곤 했지.

옛 기억을 떠올리자니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이데아는 자진해서 대화를 이어갔다.

 

“옛날에는 레르네가 혼나면 오르토가 달래주고는 했지.”

“지금도 달래주지 않습니까.”

“엑. 진짜?”

“예. 뭔가 불합리한 이벤트가 일어났다고 판단되면 곧장 작은 도련님께 연락하는 것 같더군요. 저도 직접 들은 건 아니고, 정황으로 판단했지만.”

 

그건 몰랐는데. 그것보다, 오르토는 왜 그걸 말해주지 않은 걸까.

물론 모든 일을 반드시 제게 보고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반대로 말하지 않을 이유도 없는데.

 

“다 작은 도련님이 편을 들어주니 그런 거겠지요.”

 

아, 그런 거였나.

이데아의 고민은 르니안의 저 말로 완전히 해소되었다.

두 사람은 그저 동생끼리의 일을 그들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을 뿐인 거다. 자신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걸 동생들에게 굳이 말하지 않듯이.

이치를 깨닫고 나자 이 상황도 조금 우습게 느껴진다. 이데아는 입꼬리를 씩 올려 히죽 웃어버렸다.

 

“따지고 보면 르니안도 별로 다르지 않다고 보는데.”

“예?”

“이렇게 나한테 하소연하고 있고? 레르네랑 똑같은 거 같은데.”

 

이건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르니안에겐 모순을 지적하는 것처럼 들린 모양이다.

감정은 배제하고 이성만으로 옳은 답을 떠올려 보려던 르니안은 곧바로 깔끔하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 왜 사과하는 건지? 별로 상관없지 않나? 우리는 편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

 

편한 사이. 그 문장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답이 나올 거다.

가까운 혈족.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소꿉친구이자 친척. 그런 점만 고려하면 자신들은 편한 사이가 맞다.

하지만 하이드 가문을 슈라우드의 수족이었다. 당주를 도와 명계를 지키고, 그들을 보호하고 돕는 상하관계가 명백한 사이였는데, 마냥 편한 사이라 단정 지어도 좋은 걸까.

르니안이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자, 이데아는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나도 오르토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곤 했으니, 인제 와서 새삼스럽게 사과하고 고마워하고 하는 건 사양하겠어. 안 그래?”

“……알겠습니다.”

 

순순히 대꾸하는 표정이 개운하지는 않다. 지금 당장 대답이 필요한 문제는 아니라 답을 미루었을 뿐, 분명 속으로는 답답해하고 있는 거겠지.

여러모로 기계 같은 친척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오류가 명백하게 보이는 점이 재미있다. 알기 쉽고, 성향도 비슷하고, 심지어 태어난 이후 쭉 붙어있었기에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는 존재라니. 얼마나 안심이 되는가.

이데아는 문득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에서도 르니안과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럴 땐 동갑이란 게 좋긴 하구려.”

“굳이 따지자면 제가 두 달 더 빨리 태어났지만 말입니다.”

“헤에, 그렇게 나오는 겁니까~? 그런 것치곤 별로 형 같은 느낌은 없다고 봅니다만?”

“정신적 성숙도와 신체의 성숙도는 비례하지 않으니까 이상할 건 없습니다.”

“후히힛. 뭐, 졸자도 딱히 어른스럽지도 않고 형 같지도 않으니 말이지. 딱히 디스하거나 한 게 아니라오.”

 

알고 있다. 디스할 목적이었다면 좀 더 신랄하게 말했을 이데아니까.

친척이자 친우이자 상사인 상대의 마음은 제가 제일 잘 안다. 르니안은 얄밉게 웃고 있는 이데아를 보다가, 자세하게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은은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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