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ter
카나메 케이&카나메 에이
*13권까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에이쨩.”
토요일 오후,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점심 식사 도중의 일이다.
밥을 먹다 말고 갑자기 케이가 나를 부른 것은 말이다.
“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가라아게를 집어 입에 넣으며 물었다.
케이가 실없는 소리를 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니까.
딱히 별 거 아니겠...
“에이쨩, 내일 시간 돼?”
“시간은 되는데... 왜?”
“혹시 괜찮으면 내일 둘이서 키치죠지 안 갈래?”
...아니, 취소.
순간, 먹던 가라아게를 뱉을 뻔했다.
나는 급하게 손으로 입을 막고 가라아게를 삼킨 뒤, 떨떠름한 얼굴로 케이를 쳐다봤다.
“하?”
“우리 키치죠지에 가서 놀자!”
“갑자기?”
너무 갑작스러운 말이라 정신이 제대로 따라가지를 못한다.
어디를 가? 키치죠지를? 단둘이?
왜?
“...다른 사람들은?”
“어제 부활동 끝나고 물어봤는데, 다들 바빠서 안된대.”
어떻게든 표정을 관리하려 애쓰며 물어보니 아쉬워하는 목소리와 함께 그런 말이 돌아왔다.
확실히 다들 바쁘긴 할 것이다.
곧 중간고사였으니까.
코테사시는 도립의 평범한 진학고.
성적에 따라 부활동에 참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야구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도 적당한 성적은 필수.
이 며칠간은 싫어도 공부에 집중할 수밖에 없겠지.
그건 그렇긴 한데,
“...하루카도 거절했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루카가 공부에 집중할 리가 없는데, 내가 당황한 얼굴로 묻자 이번에도 곧바로 답이 돌아왔다.
“하루쨩은 그 날 형 때문에 안된대.”
“...그건 어쩔 수 없겠네.”
하루마 씨 때문이라면 어떻게 해도 하루카를 설득하는 건 무리겠지, 나는 급하게 머리를 굴리다가 바로 포기했다.
하루카랑 둘이 가라 하고 싶은데 저런 이유면 무리였다.
그래도 그렇지 평소에는 안 그러면서 갑자기 왜, 결국 나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와중에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냥 둘이 가자고?”
“응.”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었다.
“케이, 공부는?”
“아직 안했는데...?”
당당하게도 말하네.
“그럼 얌전히 집에서 공부나 하는 게?”
“하지만 나, 시험 전에 꼭 키치죠지에 가고 싶어~!”
시험 후에 가는 게 더 좋을텐데...?
“그럼 혼자 가는 건?”
“그건 싫어!”
이 답 없는 쌍둥이를 대체 어떻게 해야 좋지,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난 주변 사람들이랑 같이 키치죠지에 가고 싶은 거라고!”
어떻게 거절하고 싶은데, 이쪽을 바라보는 눈빛이 정말 초롱초롱했다.
“...에이쨩, 싫어...?”
거절하면 수락할 때까지 물고 늘어질 것 같은 얼굴.
“그건...”
나는 작게 중얼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키치죠지,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잘 알고 있었다.
아기자기한 상점가가 많이 있어, 젊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장소.
기억을 잃은 이후로 케이가 항상 가고 싶다고 하는 곳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랑 간다고 재밌게 놀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그런 곳에서 놀아본 적이 딱히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케이는 하필 지금 나와 놀러 가려는 걸까.
“케이.”
나는 이름을 부르며 물끄러미 케이와 눈을 맞췄다.
몇 초간, 우리는 그저 말없이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알겠어, 가자.”
“아, 그래... 역시 안...”
...가자고?! 원하던 대로 수락했건만 정작 케이는 내가 수락할 줄 몰랐다는 듯 당황한 얼굴로 소리쳤다.
“정말?”
“응.”
나는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뜨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였다면 뭐라고 하든 거절했겠지만, 이번에는 거절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정말로? 진짜로? 거짓말 아니지?”
“내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대체 어디 있는데?”
가기로 결정한 이상, 핑계를 대거나 하면서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한 번쯤은 기분 전환 겸 키치죠지든 어디든 함께 가자고 할 생각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게 단둘이서 가고 싶다는 건 전혀 아니었지만 하여튼.
“아니면, 말은 가고 싶다고 해놓고 사실은 나랑 가기 싫었어?”
“그럴 리가 없잖아!”
혹시 몰라 슬쩍 떠보자 케이가 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손으로 엑스자를 만든다.
“그럼 됐네. 내일 키치죠지에 둘이서 놀러가는 걸로 하자.”
나는 젓가락으로 가라아게를 새로 집으며 약속을 땅땅 확정 지었다.
물론 아직 몇 가지 물어봐야 할 게 남아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시간은 몇 시가 좋아?”
“어...”
케이가 당황한 듯 살짝 허공을 보며 말을 흐린다.
이럴 줄 알았지, 역시 자세한 일정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스마트폰의 메모 어플을 키고 천천히 계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냥 노는 것일 뿐이지만, 그래도 계획 수립은 중요하니까.
“가서 점심 먹게 11시 30분에는 키치죠지에 도착하는 걸로 괜찮아?”
“괜찮아!”
그러면, 늦어도 10시에는 일어나서 준비해야겠다.
“점심 메뉴는 라멘으로 괜찮지? 저번에 라멘 먹고 싶다고 했잖아.”
“응, 라멘 먹자!”
그러면, 이따가 라멘 가게를 찾아보는 걸로 하고...
“...가서 하고 싶은 건?”
“어... 일단 복숭아 파르페 먹기?”
“그것만 하면 가는 의미가 없잖아. 다른 건?”
“게임 센터에 가서 게임하고 사진 찍기?”
나는 메모를 하다 말고 고개를 들어 케이를 쳐다봤다.
“그것뿐이야?”
“그것뿐이야!”
나는 살짝 곤란한 얼굴로 폰과 케이를 번갈아 봤다.
이러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을 것 같은데...
“아.”
...이러면 괜찮을지도,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하나 스쳐 지나가서 나는 급하게 폰을 두드렸다.
그리고, 고개를 기울이며 나를 기다리는 케이를 향해 곧바로 한 사이트를 보여줬다.
“그건?”
“키치죠지 근처에 있는 이노카시라 공원의 홈페이지.”
“이노카시라 공원?”
케이는 거기까지는 알아본 적이 없었는지 내가 띄워놓은 사이트를 보면서 눈을 깜빡인다.
나는 사이트의 시설 소개 페이지를 터치하며 간단하게 설명했다.
“동물원이랑 수생물원이 있는 엄청 큰 공원이야.”
그게 아니어도 연못도 있고, 잡목림도 있고, 이것저것 볼 게 많은 장소였다.
야구장이나 테니스장도 있으니 키치죠지에 갈 거라면, 거리가 가까우니 들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였다.
“뭐 나는 딱히 동물원 같은 곳에 가고 싶은 건 아니고... 산책 정도로 충분하지만.”
“엥? 동물원 못 가면 아쉽지 않아?”
내 말에 케이가 의아한 얼굴로 되묻는다.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딱히.”
보면 좋기야 하겠지만, ‘보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까지는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애초에 케이, 돈 그렇게 많이 없잖아?”
“내가 돈이 없는 건 어떻게?!”
“설마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 거 지나가다가 하는 말만 잘 들어도 알아, 뜨끔한 표정으로 눈을 대굴대굴 굴리는 케이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솔직히 용케 키치죠지에 놀러갈 돈을 남겼구나 싶었는데.”
“윽...”
케이는 할 말이 없다는 듯 빤히 보는 내 시선을 슬그머니 외면한다.
나는 그런 케이를 보며 폰 화면을 끄고 식탁 의자에 등을 기댔다.
“하여튼 동물원이나 이런 곳은 나중에 따로 가시고, 공원에서 바람이나 쐬자. 괜찮지?”
“괜찮긴 한데...”
내가 말하는 걸 듣고 동물원에 가고 싶어졌나, 말은 괜찮다 하는데 어째 얼굴이 떨떠름하다.
나는 새 가라아게를 젓가락으로 집으며 그런 케이를 향해 아무렇지 않게 말 한마디를 더 얹었다.
“이왕이면 글러브도 챙기고.”
“에, 글러브는 갑자기 왜?”
난데없는 글러브 발언에 케이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그때 가면 알려줄게.”
하지만, 나는 지금 알려줄 생각이 전혀 없어서 그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에에...”
“아니면, 직접 맞춰보던가. 답은 엄청 간단하니까.”
그 말에 케이가 허공을 응시하면서 고개를 기울이는가 싶더니 이내 불만섞인 표정으로 볼을 부풀렸다.
“정말 모르겠는데요.”
“그건 안됐네.”
나는 답지 않게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그리 답하다가 이내 진지한 얼굴로 아직 반은 남아있는 케이의 밥그릇을 가리켰다.
“어쨌든 식사나 마저 하자. 이러다 다 식겠어.”
“아, 응...!”
그렇게 해서, 토요일 오후의 점심 식사는 어찌저찌 평화롭게 흘러간다.
어떤 일이 벌어지려나, 나는 조용히 밥을 삼키며 내일 있을 일을 상상했다.
솔직히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모르겠지만...
“...즐거우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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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지장.”
일요일 아침, 평소였으면 ‘주말이다!’라면서 조금 더 자고 있었을지도 모를 시간.
나는 현관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다가 슬쩍 말없이 이쪽을 보고 있는 지장을 쳐다봤다.
“왜 그래, 마스터?”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잘 모를 내 다른 인격은 한번 말해보라는 듯 가볍게 고개를 까닥인다.
나는 괜히 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체크하다가 계단을 슬쩍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에이쨩, 언제 준비 끝날까?”
조금 걸릴 거라고 하더니 안 나오는데요?! 솔직히 이러다가 갑자기 오늘 못갈 것 같다고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조금 조마조마했다.
“금방 나오겠지...?”
“글쎄.”
지푸라기 부여잡는 심정으로 물어보니 아리송한 대답이 돌아온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답이긴 한데 너무한 기분이 드는 건 또 어쩔 수가 없어서 나는 괜히 지장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빨리 나오면 좋겠다...”
“기다리겠다고 한지 10분 밖에 안 지났는데?”
“그건 그렇지만...!”
실제로 지장 말마따나 시간이 그렇게 지난 것도 아니지만, 그건 그거고 기다리기 힘든 건 어쩔 수 없다고 할까...
에이쨩이랑 이렇게 같이 어디 놀러 가는 건 아무래도 기억을 잃고 처음이니까 말이다.
사실 저번에 하루쨩 집에 같이 가긴 했지만, 그건 결과적으로 놀러 갔다고 하긴 좀 어폐가 있으니까 제외하고.
어쨌든 학교에서 같이 점심 먹자는 제안마저도 한두번 빼면 쭈욱 거절당했는데, 같이 놀러 갈 일이 있었을 리가 있나.
“뭐, 같이 놀러 가준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긴 하지만 말이야...!”
솔직히 어제 제안했을 때, 못해도 5번은 거절당할 각오로 물어봤었다.
그래서, 단박에 수락해 줬을 때는 놀랐지만 동시에 정말 기뻤다.
“한 번쯤은 이렇게 같이 놀러 가고 싶었으니까...”
이래저래 한 번쯤은 함께 놀러 가고 싶었다.
반드시 해야 할 말도 있고 말이다.
그러니까, 이건 겨우 잡은 소중한 기회였다.
저도 모르게 안절부절못하게 되는 건 분명 그 탓일 테다.
앞으로 보낼 시간이 너무 기대돼서, 동시에 잘 놀 수 있을지 걱정돼서, 이래저래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기다리는 이 시간을 견디기 힘든 것이다.
“마스터,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런 나를 보며 팔짱을 끼고 있던 지장이 가볍게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잘 놀고 올 수 있을걸.”
“그런가...”
지장의 말을 들으며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저 말대로 걱정을 다 내려놓고 편하게 생각하고 싶다.
그때였다.
“기다렸어?”
목소리와 함께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 에이쨩! 별로 안기다...”
...렸는데, 나는 급하게 고개를 돌려 계단 쪽을 쳐다보다가 이내 에이쨩의 모습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래?”
에이쨩이 말을 흐리며 고개를 기울였지만,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혀서 곧바로 말을 나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케이?”
“아, 아니... 그러니까... 옷이 너무 잘어울려서...!”
...정말로 옷이 잘 어울렸던 것이다! 나는 옷의 먼지를 털어내며 떨떠름하게 묻는 에이쨩을 보며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에이쨩은 카키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진을 입고 있었는데, 나름 캐주얼하게 입고 있는 나와 다르게 어른스럽게 입고 있는 모습이 평소 분위기가 어우러져 잘 어울렸다.
“겨우 그런 이유로?”
“아니, 그냥! 에이쨩은 평소에 이렇게 입는구나... 싶었달까.”
사실 좀 더 화사하게 입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나는 볼을 긁적이며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좀 더 하늘하늘한 느낌이라고 할까, 밝은 색상의 옷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아서 조금 의외이긴 했던 것이다.
물론 어쨌든 간에 지금 옷도 정말 잘 어울렸지만!
“...왜 그렇게 생각했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난데없는 질문이 튀어나왔다.
“응?”
“화사하게 입을 거라고 생각한 이유가 조금 궁금해서.”
예상치 못한 질문에 눈을 깜빡이고 있자니 무언가 생각이 좀 많은 얼굴로 에이쨩이 말했다.
“나... 그렇게 화사한 걸 좋아하는 이미지였던가?”
“그건...”
아니지만... 나는 말을 흐리며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물어보니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뭐랄까, 설명이 어렵네. 그냥 감이라고 할까...”
아니 애초에, 그렇게 깊게 생각하고 말한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럴 것 같았다.
“그렇구나.”
에이쨩은 내 대답에 그저 그렇게만 대답하고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분 정도일까, 갑작스레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봤다.
나는 어색하게 눈만 굴리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던 에이쨩이 고개를 돌리더니 그대로 나를 지나쳐 걸어갔다.
“그럼 이만 나가자.”
“에?”
나는 얼빠진 소리를 내며 입을 헤벌렸다.
하지만, 에이쨩은 이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신발을 신으며 물었다.
“빼먹은 건 없지?”
“없는데... 아니, 잠깐만...!”
나는 급하게 에이쨩을 불러세웠다.
“왜?”
“아까 그 질문은 왜 한 거야?”
문 쪽만을 쳐다보고 있는 에이쨩을 향해 묻는다.
분명 별것 아닌 질문이었지만, 살짝 마음에 걸렸다.
에이쨩은 평소에 그런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말 그대로 조금 궁금해서.”
하지만, 에이쨩은 제대로 대답해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만 말하고 다시 입을 다물었으니까.
“그럼 이제 갈까?”
“...응.”
여전히 앞만 보고 있는 에이쨩을 향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이 상태로는 절대로 에이쨩은 내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을 테니까.
“일단 가자!”
나는 신발을 신고 가방을 챙긴 뒤, 일부러 밝게 소리치며 문을 열어젖혔다.
궁금증은 이따가 풀어보는 걸로 하고, 일단은 키치죠지를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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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번에 슌삐랑 가위바위보 했는데 연속으로 무려 3번이나 져버렸다?”
“많이 졌네.”
“대체 어떻게 그렇게 가위바위보를 잘하는 거지? 비결이 있는 걸까?”
“그건 어떨까...”
...아마 알기 쉬워서가 아닐까, 나는 뒷말을 삼키며 걸음을 옮겼다.
“아, 맞아! 그러고 보니까, 예전에 아오이찌 집에서 밥을 얻어먹었는데 무려 아오이찌가 요리를 했다?!”
그러고 있으면, 순식간에 다른 대화 주제가 튀어나온다.
나는 앞을 보고 걸으면서도 착실하게 그 이야기에 답했다.
“토도가 요리를 했어?”
“응! 그것도 햄버그 정식! 심지어는 엄청 맛있었다?”
신기하지 않냐며 웃는 모습이 천진난만하다.
나는 그런 케이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그리고, 또...”
그러면, 이제 또 케이가 아까처럼 다른 이야기를 생각한다.
케이가 말을 걸고, 나는 답한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내내, 우리는 그것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대부분 별 의미 없는 대화였지만, 말하는 케이가 즐거워 보였고, 나도 오늘따라 이런 대화가 나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대화하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텐데 말이지.
그래도, 역시 이 상황이 싫지는 않다.
“...이쨩?”
“응?”
부르는 듯한 목소리에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케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물어 봤는데 멍하니 있고... 괜찮아?”
“그랬어? 미안.”
잠깐 생각에 뭐 좀 생각하느라, 케이가 살짝 걱정하는 기색이라 나는 바로 괜찮다는 의미로 손을 저었다.
“무슨 이야기 했어?”
“도착하면 바로 라멘 가게 가냐고 물었어.”
“아무래도 그렇지.”
나는 괜찮지만 케이는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나는 살짝 어이가 없어져 떨떠름한 얼굴로 케이를 쳐다봤다.
나는 6시 30분에 일어나서 아침을 대충 먹었지만, 케이는 쉬는 날이어서인지 10시까지 그냥 푹 잤으니까.
“애초에 라멘 가게부터 안 가면 어딜 가려고?”
“어... 그러게...? 거기까진 생각 안 했는데...”
반쯤 아무 말에 가까운 대답에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주 만약의 이야기지만, 혹시라도 파르페를 식사 대신으로 삼을 생각이라면 건강에 안 좋으니까 포기해.”
“아무리 나라도 그렇게까진 안하는데?!”
대체 나를 어떻게 보는 거야! 케이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소리친다.
나는 슬그머니 케이의 시선을 외면하며 말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러고 보면, 라멘 먹은 다음에 어떻게 할지는 확실하게 안정했네.”
“저기요, 에이쨩?”
“게임 센터부터 갈래? 아니면, 파르페를 그 다음에 먹는 게 좋나?”
“어이, 에이쨩...”
지그시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나는 그제야 힐끔, 케이를 쳐다봤다.
“...대체 이 오빠의 위엄은 어디 간 거야?”
너무 당연한 걸 묻는 거 아닌가, 떠오른 생각을 억지로 입안으로 집어넣으며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파르페를 식사 대신으로 삼을 생각이 아니었다면 됐어.”
“그럼 다행...”
...이 아니잖아! 아무래도 케이가 원한 대답이랑 달랐던 모양이다.
“조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런가?”
“그런데요!”
나는 또다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 케이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건 그거고...”
“에이쨩~!”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라멘 먹고 무엇을 할 건지를 정하는 거야.”
이왕 놀러간 건데 시간이 낭비되면 아깝잖아, 나는 괜히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참고는 이내 고개를 돌려 손가락으로 케이의 이마를 툭 쳤다.
“이것저것 하려면 미리 계획을 세워두는 편이 좋지 않겠어?”
“그건 그렇긴 한데...”
케이는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말을 흐리더니 이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난 어느 쪽이든 좋은걸!”
한 마디로 못 정하겠으니 알아서 하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한다고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아무거나 끌리는 거 골라봐.”
“에에...”
애초에 케이 때문에 가게 된 키치죠지인데 케이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케이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단 게임 센터?”
몇 초가 지났을까,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든 건 케이 쪽이었다.
“소화도 시킬 겸?”
“거기까지 생각한 건 아니지만 그런 걸로!”
케이는 이제 그만해달라는 듯 크게 소리치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차였다.
“아, 역이다!”
지친 듯 걷는 속도가 좀 느려진다 싶더니 이내 눈을 반짝이며 케이가 앞을 가리킨다.
케이에게서 시선을 떼고 앞을 보면 실제로 역이 눈에 들어왔다.
대회에 참가하는 내내 경기장에 간다고 계속 드나들었던 역인데, 이렇게 보니 또 느낌이 다른 것 같기도 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역을 응시하고 있는데, 옆에서 케이가 내 어깨를 두드리는 게 느껴졌다.
“에이쨩, 빨리 가자!”
“알겠어.”
뭐가 그렇게 신난 건지, 그대로 종종걸음으로 역을 향해 뛰어가는 케이를 따라 나도 뛰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시간은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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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덜컹, 조금씩 흔들리는 열차 안은 주말이라 그런지 놀러 가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운이 좋게도 자리에 앉는데 성공한 우리는 느긋하게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키치죠지로 향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라 조금 서서 갔어도 다리가 아프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나는 가방을 끌어안은 채 콧노래를 부르다가 이내 옆자리에 앉아서 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에이쨩을 쳐다봤다.
“에이쨩, 뭐해?”
“어느 라멘집으로 가는 게 좋을지 미리 찾아보고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보여준 스마트폰 화면에는 여러 가게 리스트가 촤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나는 눈을 크게 뜬 채 에이쨩과 스마트폰을 번갈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철저하네...”
어제 내가 키치죠지 이야기를 꺼냈을 때도 그렇고, 아까도 그렇고, 미리미리 무언가를 정해두고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물론 야구부에서도 에이쨩은 연습 메뉴를 미리미리 꼼꼼하게 체크하는 편이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 노는 때마저 그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할까...
“시간 낭비는 최대한 줄이고 싶으니까.”
그때, 내 생각을 읽은 듯 에이쨩이 스마트폰을 계속 만지작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계획을 세세하게 짜지는 못했으니까 도착하기 전에 짜둬야지.”
대수롭지 않다는 목소리가 가만히 귓가에 꽂힌다.
나는 물끄러미 에이쨩을 쳐다보다가 툭 한 마디를 내뱉었다.
“힘들지 않아?”
“딱히.”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었다.
“계획을 짜는 건 익숙하니까.”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감독이 생기면서 알게 된 건데, 에이쨩은 우리한테 말을 안했을 뿐 혼자 연습 메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왕창 계획해서 적어뒀더라고!
그리고, 그것도 그거지만 그걸 위해서 기록해 둔 데이터 노트를 봤을 때가 진짜였지.
솔직히 너무 세세해서 무서웠어...
“물론, 계획 없이 행동하는 게 싫은 건 아니야.”
그때를 생각하며 새삼 기겁하고 있는데, 평온한 목소리로 에이쨩이 말을 덧붙였다.
나는 혹시 몰라 표정을 가다듬으며 급하게 에이쨩의 말에 집중했다.
“그러면?”
“애초에 계획을 짜둔다고 모든 게 그대로 흘러간다는 보장이 없잖아.”
조금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인 에이쨩이 이내 나를 향해 살짝 웃어 보였다.
“무조건 세운 계획에 다 맞추자는 게 아니야. 일단 계획이 세워져 있는 편이 그래도 좀 더 낫지 않겠냐는 거지.”
어제도 그렇고 에이쨩이 좀 자주 웃는 것 같네,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조금 놀라면서도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에이쨩은 조금 안심한 듯 시선을 다시 스마트폰으로 돌리더니 이내 화면을 가리켰다.
“케이, 어떤 라멘이든 상관없어?”
“그건 왜?”
“키치죠지에 츠케멘으로 유명한 라멘집 본점이 있는데, 거기 베지포타 츠케멘 밖에 안팔 거든.”
뭔가 처음 들어보는 말이 들려온 것 같은데... 나는 순간 무슨 소린가 싶어서 눈을 깜빡였다.
츠케멘이 뭔지는 당연히 알고 있는데 그 전에 뭐라고 한 거지?
“베지... 뭐?”
“베지포타. 여러 야채를 포타주 형태로 하고 돈카츠 스프를 이용해서 라멘을 만들면 베지포타 라멘이라고 하거든.”
“아하..”
쉽고 간단한 설명 감사합니다.
“그래서, 베지포타 츠케멘으로 괜찮아?”
“음...”
나는 조금 고민이 돼서 바로 대답하지는 못했다.
사실 평범하게 돈코츠나 쇼유 라멘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츠케멘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답지 않게 에이쨩이 먼저 제안 해줬으니 웬만하면 따르고 싶은 마음이었고 말이다.
“...괜찮아! 거기로 가자.”
돈코츠나 쇼유는 다음에 아오이찌랑 슌삐랑 야마쨩이랑 하루쨩이랑 다 데리고 가서 먹지 뭐!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에이쨩의 제안을 수락했다.
에이쨩은 내 말을 듣자마자 바로 스마트폰을 두드리며 메모 어플에 이것저것 적어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면, 몇가지 더 물어보고 싶은데...”
그 뒤로도 에이쨩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어느 게임 센터로 갈지, 어느 카페를 갈지, 그 이외에 뭐 정말로 더 하고 싶은 건 없는지, 진짜 온갖 질문이란 질문은 다 튀어나왔다.
“그러면, 여기까지.”
“힘들었다...”
정하는데 시간을 엄청 들인 건 아니지만 기가 빨려...
나는 가방을 끌어 안은 채 반쯤 앞으로 엎어졌다.
“근데, 에이쨩.”
“응.”
계획을 얼추 다 세워서 만족스러운지 스마트폰을 집어넣은 에이쨩은 무슨 말이든 다 대답해 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괜히 피로한 기분에 눈을 감았다 뜨며 그런 에이쨩을 쳐다봤다.
“오늘 날씨도 좋은데, 창밖 좀 보는 건?”
오늘 열차에 탄 이후로 에이쨩은 계획을 짜는데 몰두한 탓인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늘은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엄청 화창한데,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기는 좀 아깝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까딱이고 있으며 에이쨩이 어이없다는 듯이 답했다.
“어차피 사람들 사이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뒤돌아서 보면 되잖아.”
“민폐야...”
에이쨩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슬쩍 고개만 돌려 뒤쪽에 있는 창으로 바깥을 응시했다.
“애초에 경기장 갈 때 지겹게 본 풍경이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무언가를 생각하듯 살짝 가라앉아 있었다.
표정도 그래, 아까랑 다르게 조금 울적해 보여.
그때 문득, 고개를 돌리면 팔짱을 낀 채 말없이 우리를 지켜보는 지장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 보면...”
나는 둘을 번갈아 보다가 이내 무언가 떠올라서 에이쨩에게 말을 걸려고 했다.
[잠시후, 키치죠지 역입니다.]
정말 타이밍 좋게도 안내방송이 우리가 키치죠지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알려왔지만 말이다.
“도착했네.”
“그렇네.”
에이쨩이 툭 내뱉은 말에 나는 가볍게 긍정했다.
에이쨩은 잠깐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갈까?”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에이쨩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고 싶은 말은 일단 속으로 밀어 넣기로 했다.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그만큼 아직 시간도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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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다행히 사람이 없네.”
오후 12시 10분경, 가게에 도착하고 보니 다행히도 웨이팅이 있지는 않았다.
일단 티켓부터... 나는 사전에 확인했던 정보를 떠올리며 일단 가게에 들어가기 전에 있는 자판기 앞으로 걸어갔다.
“음...”
자판기는 여러 버튼으로 가득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줄의 버튼은 라멘의 종류... 라고 할까 츠케멘에 고명을 추가할지 안 할지, 맵게 할지 안 맵게 할지를 정할 수 있었고, 세 번째 줄의 버튼은 세 가지 면 중에서 어떤 면으로 먹을지 고를 수 있다.
또한, 필요하다면 추가로 네 번째 줄의 버튼을 통해 면의 양을 추가할 수 있었다.
“에이쨩은 어떻게 먹을 생각이야?”
“이렇게.”
케이의 물음에 나는 동전을 자판기에 집어넣고 곧장 자판기의 버튼을 눌렀다.
일단 기본 베지포타 츠케멘에 계란 추가, 면은 점장 추천의 소바 면으로 하고, 양은 굳이 추가할 필요 없으니까 패스.
“빨라...”
“미리 정해뒀으니까.”
2개 다 제대로 나왔네, 나는 눈을 깜빡이는 케이를 잠깐 보다가 바로 인쇄된 티켓을 꺼냈다.
“자, 케이도 빨리 골라.”
자판기를 가리키며 옆으로 비키자 케이가 쭈뼛쭈뼛 자판기 앞에 선다.
메뉴를 아직 못 골랐나, 곤란한 듯 눈을 대굴대굴 굴리고 있는 게 아주 잘 보였다.
“음...”
1분 정도 살짝 허공을 보며 고개를 기울이던 케이는 이내 내 쪽을 돌아보더니 살짝 떨리는 손으로 돈을 넣고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기본 베지포타 츠케멘에 고기 추가, 면은 나랑 똑같이 소바 면, 그리고 면 2배 추가...
...면 2배 추가?
“...케이, 다 먹을 수 있겠어?”
나는 티켓 3개를 꺼내는 케이를 보며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물론 야구를 하다 보니 먹는 양이 많은 건 알지만 아침을 먹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물론!”
“그럼 다행이지만...”
내가 의심스럽게 쳐다보든 말든 케이는 빨리 들어가자며 내 손을 잡아 끌기 시작했다.
나는 그대로 따라 들어가긴 했지만, 자리에 앉고 직원한테 티켓을 넘기는 동안에도 계속 자판기를 힐끔거릴 수밖에 없었다.
먹는 건 케이고, 책임도 케이가 지겠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던 탓이다.
먹다가 얹히면 어쩌려고 저러는 건지,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옆에 앉아 있는 케이를 쳐다봤다.
“왜 그래?”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보는데 이걸 뭐라 말해야 할지, 나는 아주 잠깐 고민한 끝에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헤에...”
케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냐며 빤히 쳐다봤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한 걱정이라는 걸 아는데 굳이 말해서 뭐 한단 말인가.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결국 우리는 그 뒤로 음식이 나올 때까지 그냥 서로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뭔가 더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서로 굳이 말을 내뱉지 않는다.
새삼스럽게도 옛날 생각이 났다.
시니어 때는 지금보다 훨씬 대화가 적어서, 서로 눈만 마주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때의 우리는 굳이 대화하려고 하지도 않았지.
그도 그럴 게, 말하지 않고 서로 마주보기만 해도 알게 되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
우리는 대충 서로를 보고, 서로의 생각을 지레짐작하고,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넘어갔었다.
쌍둥이여서일까, 예전부터 그렇게 짐작했던 생각은 대체로 맞아들었다 보니 더 그렇게 된 측면이 있었다.
좀 더 대화했으면 좋았을까, 나는 건네주는 음식을 받아서 내려놓으며 눈을 감았다 떴다.
“케이.”
“응?”
그렇게 생각하니 솔직하게 말할 마음이 조금 들었다.
나는 츠케멘을 보고 눈을 빛내다 말고 이쪽을 쳐다보는 케이를 보며 되도록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먹다가 얹히지 않게 조심해.”
“에이쨩...”
케이는 그 말에 말을 흐리더니 이내 살짝 충격 먹은 목소리와 함께 눈을 끔뻑거렸다.
“나에 대한 믿음이 너무 없는 거 아냐?”
“첫끼부터 너무 많이 먹으려 하니까 말이지.”
“엄마냐고...”
아니 물론 할망구는 이러지 않을 것 같지만, 조금 불만스럽다는 듯 이야기하며 케이가 말을 덧붙인다.
들을 때마다 호칭이 영 그렇긴 한데 일단 넘어가고, 어쨌든 우리 엄마가 이런 걸 신경 쓸 타입이 아니긴 하지.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그 모습을 보다가 이내 한번 어깨를 으쓱였다.
“첫끼인데 좀 자중하기 그랬어.”
나는 답지 않게 장난스럽게 웃으며 김이 올라오고 있는 국물을 가리켰다.
“자, 그러면 빨리 먹자. 이러다가 불겠다.”
“에이쨩, 지금 말 돌리고 말이야...”
케이가 이대로 넘어갈 생각 말라는 건지 입을 삐죽거리며 지그시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 모습을 쳐다보며 그저 웃었다.
솔직히 이 이상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방금은 가끔 솔직해져 볼까 싶어서 말했을 뿐이니까.
애초에 이건 딱히 엄청 중요한 말도 아니잖아.
그냥 내가 괜히 케이를 걱정했다, 딱 그 정도 뿐인 이야기였다.
뭐, 얼굴을 보아하니 케이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걱정할 필요 없는데!’라고 속으로 불평불만을 터트리고 있는 것 같지만 말이다.
음, 뭐랄까... 이렇게 생각하니 이대로 넘겨버리기도 좀 그렇긴 하네.
좀 더 대화하기로 결심 해놓고서 대화를 어물쩡 넘겨버리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잖아.
나는 살짝 고민하다가 결국 한 마디를 덧붙이기로 했다.
“정 그러면 정말로 괜찮다고 증명하면 되잖아. 그러니까, 일단 먹고 이야기 하자.”
“흠...”
그말에 케이는 나와 츠케멘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우리는 드디어 식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에이쨩, 이거 맛있다!”
“그렇네.”
식사 하면서도 자잘한 대화는 계속 이어졌지만 말이다.
“죽순도 그렇고, 차슈도 그렇고 맛있어...”
“그리고, 생각보다 그렇게 짜지도 않네.”
“맞아 맞아. 좀 더 짭짤할 줄 알았는데...!”
우리는 맛에 대해 말을 주고받으며 면을 국물에 담궈 계속 먹었다.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케이의 말마따나 그렇게 짜지도 않고 맛있었다.
베지포타라서 그런지 오히려 짠맛보다는 야채의 단맛이나 돈코츠 육수의 감칠맛이 더 좀 더 강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부담스러운 맛은 아니었다.
츠케멘이라서 국물이 기본적으로 진한 편이었는데도 말이다.
당연하지만, 국물이 잘 벤 죽순이나 계란도 맛있었다.
특히 계란이 부드러웠어.
“에이쨩, 원래 이렇게 잘 먹었던가...?”
“나도 잘 먹을 때는 잘 먹어.”
내가 면과 계란을 다 먹은 뒤 스프와리까지 해서 국물을 싹 비워버리자, 모습을 본 케이가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평소에는 같이 식사하는 시간도 별로 없었다 보니 이해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신기하게 쳐다볼 일은 아니지 않나.
오늘은 그걸 감안해도 평소보다 많이 먹은 건 사실이긴 한데, 어쨌든 국물 맛이 마음에 들었는 걸 어쩌란 말인가.
하여튼 나는 아직 다 먹지도 않았으면서 계속 내 쪽을 쳐다보는 케이를 보다 못해 손바닥으로 밀어서 얼굴 위치를 돌렸다.
“빨리 먹기나 해.”
“...네.”
----
“잘 먹었다...”
너무 잘 먹어서 배 터질 것 같아, 나는 나오려는 트림을 참으며 느긋한 걸음걸이로 가게를 빠져나왔다.
“에이쨩은 맛있었어?”
“아까도 말했잖아. 맛있었어.”
고개를 돌려 뒤따라 나온 에이쨩에게 물어보니 무심한 표정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표정은 저래도 스프와리까지 해서 다 먹은 것도 그렇고, 맛있게 먹은 건 사실이겠지.
평소에는 잘 먹었다는 형식적인 말만 내뱉고 그 이상은 안 하니까, ‘맛있게 먹었다’라고 말해주면 오빠로서 조금 기뻤다.
에이쨩이 말한 대로 여기 오길 잘한 것 같아,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앞장서려고 했다.
“아, 근데 우리가 가려는 게임 센터 어디였지?”
위치를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해 버려서 바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옆에서 계획을 짜는 걸 보긴 했지만 지도까지 본 건 아니니까.
그리고, 게임 센터 이름도 가물해서 내가 검색할 수도 없었다.
에이쨩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잠시 손으로 이마를 짚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지도를 켜서 위치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여긴 남쪽 출구 방면인데 게임 센터는 북쪽 출구 방면에 있어. 3~4분 거리.”
지도를 확인한 에이쨩은 길찾기로 나오는 루트를 확인하고는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내가 앞장설게.”
“기다려!”
나는 지도를 보며 먼저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는 에이쨩을 붙잡았다.
어째서냐는 듯 에이쨩이 말없이 나를 돌아본다.
그 모습에 나는 에이쨩의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일부러 방긋 웃었다.
“지도 보여주면 내가 앞장설게.”
나도 길만 알면 찾아가는 건 쉽단 말이지, 계획도 에이쨩이 짜줬는데 이정도는 내가 하고 싶었다.
에이쨩은 눈을 깜빡이며 나와 스마트폰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리고, 그대로 내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민다.
나는 조심스럽게 에이쨩의 스마트폰을 받아 들고 천천히 앞장섰다.
확인해 보니 다행히도 조금 돌아서 가야 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복잡한 루트는 아니었다.
“여긴가? 건물 크네...”
우리는 에이쨩의 말대로 3분 정도 걸은 끝에 바로 게임 센터 건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전부 게임센터래.”
“우와...”
이렇게 거대한 게임 센터는 처음이라서 나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눈을 빛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게임도 많겠지?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은데...
“마스터.”
그때, 지금까지 말없이 지켜만 보고 있던 지장이 내게 말을 걸었다.
뭔데 갑자기, 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지장을 쳐다보며 입을 삐죽였다.
그러자, 살짝 입꼬리를 올려 웃은 지장이 이내 진지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노는 것도 좋지만 중요한 걸 잊지는 말고.”
그정도는 기억하고 있는데... 나는 에이쨩이 들을까 싶어 생각으로 답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만 잊은 게 아니었다.
그 중요한 것만큼이나 오늘 잘 노는 것도 중요하고 그러다 보니 조금 들떴을 뿐이다.
“아, 물론 돈도 적당히 쓰고.”
그것도 알거든?! 나도 오빠로서의 위엄이라는 게 있...
“마스터한테 오빠로서의 위엄이라는 게 있었던가?”
“아, 진짜 지장~!”
웃으면서 사람을 긁는 지장을 보며 나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근데 생각해 보니까 에이쨩이 다 보고 있잖아, 뒤늦게 따라온 생각에 나는 급하게 에이쨩을 돌아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케이.”
에이쨩은 무심한 눈으로 그런 나를 그저 가만히 쳐다보더니...
“들어가자.”
...그냥 그대로 고개를 돌려서 먼저 게임 센터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그걸 본 지장이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어깨를 으쓱였다.
“다행이네, 마스터. 에이가 넘어가 줘서.”
“너 때문이잖아...!”
나는 작은 목소리로 지장을 향해 짜증을 내며 급하게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에이쨩!”
“빨리 와.”
안에 들어가면, 사람이 북적거리는 와중에 에이쨩이 층 안내도 앞에 서서 손짓하고 있었다.
에이쨩...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건가...? 슌삐랑 아오이찌는 기겁하던데...?
지장 말마따나 다행이긴 한데, 겉으로 보기에 그러니까 오히려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물론 생각해 보면, 에이쨩은 평소에 항상 무슨 생각 하는지 잘 모르겠긴 했다.
뭔가 알 것 같은데 애매하기만 하고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었으니까.
아니 근데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나는 고개를 휙휙 저어서 생각을 살짝 털어내고 곧장 에이쨩에게로 달려갔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
“딱히.”
다가가자마자 바로 머리부터 숙였다.
에이쨩은 상관없다는 듯 그리 말하고는 이내 층 안내도를 손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케이, 뭐 하고 싶어?”
난데없다면 난데없는 물음이었다.
“뽑기류? 레이싱 게임? 아니면 리듬 게임이라던가...”
사진은 당연히 찍을 거고, 에이쨩은 내가 하자는 대로 따르겠다는 듯 믈끄러미 나를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음...”
솔직히 말하면 하고 싶은 건 많다.
애초에 오자고 한 게 누군데 당연히 엄청 많았다.
많긴 한데...
“에이쨩은 하고 싶은 거 없어?”
“나?”
내가 묻자 에이쨩은 당황한 듯 살짝 눈을 크게 뜬다.
에이쨩은 느리게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딱히 없어.”
“정말~?”
나는 일부러 장난스럽게 에이쨩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되물었다.
“정말 없어. 딱히 관심 없으니까.”
“에이쨩이 원하면 인형 뽑아다 줄 자신 있는데.”
“내가 어린애야...?”
에이쨩이 어이없다는 듯 슬쩍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금방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그런 에이쨩을 보며 씨익 웃었다.
“왜? 고등학생도 인형 가지고 놀 수도 있지?”
에이쨩이 노려보거나 말거나 일부러 과장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뭐야 뭐야, 에이쨩은 고등학생은 인형 가지고 놀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었어?!”
“그게 아니라...!”
에이쨩은 목소리를 높여 소리치려다가 주변을 힐끗거리더니 입을 다물었다.
“...케이, 놀리지 마.”
“놀린 거 아닌데.”
그로부터 1분쯤 지난 뒤에 들려온 말을 듣고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아주 조금은 아까의 복수가 맞긴 한데...
하여튼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니까! 나는 한심한 얼굴로 쳐다보는 지장의 시선을 외면하며 에이쨩을 향해 말했다.
“그래서, 에이쨩은 하고 싶은 거 없어?”
“없어.”
에이쨩이 살짝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함께 칼같이 고개를 젓는다.
“난 됐으니까...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에이쨩은 말이야...”
계속 나한테 맞추려는 에이쨩을 보고 있자니 한숨밖에 안 나온다.
“우리 같이 놀러 온 건데 나만 즐거우면 안 되는 거잖아.”
혼자만 재밌게 놀면 같이 온 의미가 없었다.
평소에 이런 곳에서 노는 것에 관심이 없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에이쨩도 즐겁게 놀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에이쨩의 의견이 듣고 싶었다.
혹시라도 흥미를 가진 게 있다면 그걸 함께 하고 싶었다.
“...나는 정말로 괜찮으니까.”
하지만, 에이쨩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런 에이쨩을 빤히 쳐다봤다.
에이쨩이 시선을 피하려고 했지만, 고개를 움직여가며 빤히 쳐다봤다.
그렇게 몇분을 쳐다봤을까.
“알겠어.”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럼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다해보자!”
나는 안심한 기색인 에이쨩의 팔을 잡아끌며 그대로 뽑기류 근처로 달려갔다.
“일단 처음에 말한 대로 뽑기류부터!”
“에?”
눈을 크게 뜬 에이쨩이 당황한 듯 눈을 굴리며 나를 쳐다봤지만, 나는 일단 눈앞의 인형 뽑기에 동전을 집어넣었다.
“저기...”
에이쨩이 내 옷깃을 잡아끌며 말을 건다.
나는 방긋 웃으며 그런 에이쨩을 돌아봤다.
“혹시 관심 가는 거 있으면 말해!”
“그... 케이...?”
“다 보고 이따가 뭐가 좋았는지 말해주기!”
반쯤 막무가내로 굴어서인지 에이쨩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본다.
하지만, 역시 에이쨩도 즐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걸.
당장 흥미 있는 게 없다면 같이 찾아주고 싶었다.
오빠로서 동생이 항상 재밌는 게 없는 것처럼 구는 게 걱정됐으니까 말이다.
“하아...”
그런 내 마음이 닿은 걸까, 에이쨩은 눈을 대굴대굴 굴리며 작게 한숨을 쉬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리고, 어디 해보라는 듯이 레버를 잡은 내 손을 힐끗 쳐다본다.
뭔가 갑자기 막중한 책임감이 생긴 기분이,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레버를 움직였다.
결과는 어떻게 됐냐고?
“으악...”
인형을 잡기는 잡았는데 좀 움직인다 싶더니 그대로 다시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아깝다...”
“전혀 아깝지 않았는데.”
“에이쨩~!”
이럴 때는 상냥하게 말해줘~, 나는 가차 없이 현실을 들이미는 에이쨩을 향해 울상을 지었지만, 에이쨩은 고개를 휙 돌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인형 뽑기는 그 뒤로도 3~4판은 더했다.
뭐... 다 망했지만 말이다...
“우리 다른 거 하러 갈까...?”
“좋을 대로.”
결국 나는 무심한 얼굴의 에이쨩을 데리고 3층으로 올라갔다.
솔직히 인형을 하나라도 뽑을 때까지 뽑기 기계 앞에 서 있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돈이 탈탈 털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지장이 옆에서 잔소리를 할 것 같은 느낌도 들고... 하여튼 나는 3층을 둘러보며 어떤 게임을 할지 고민했다.
3층에는 레이싱 게임이랑 리듬 게임이 줄지어 있었는데, 사람도 많고 게임 종류도 많아서 눈이 어질어질해질 것 같았다.
어쨌든 일단 제일 조금 더 흥미가 가는 건 평소에 해본 적 없는 리듬 게임 쪽이었다.
나는 옆에 가만히 서있는 에이쨩을 향해 줄지어 있는 리듬 게임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에이쨩은 리듬 게임 해본 적 있어?”
“해본 적은 없어. 하는 걸 본 적은 있지만.”
“본 적은 있어?”
“중학교 때, 반에서 얘들이 스마트폰으로 하는 거 조금.”
“그럼 같이 한번 해볼래?”
나는 마침 사람이 없는 리듬 게임 하나를 가리켰다.
뭔가 세탁기 2개를 붙여놓은 것처럼 생긴 기계가 인상적이었는데, 보니까 둘이서 동시에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구조인 것 같았다.
“어때?”
“어차피 싫다고 하면 좋다고 할 때까지 물어볼 거잖아.”
에이쨩이 좋을대로 하라며 퉁명스럽게 답한다.
그래도, 마냥 싫은 건 아닌 것 같아서 나는 그대로 성큼성큼 게임기 앞으로 걸어가 가방을 바닥에 내려뒀다.
“카드가 있으면 인식하라는데 없으니까 패스하고...”
에이쨩이 옆에 선 걸 보고 기타 이것저것 기기에 나오는 대로 따라서 하니까 간단하게 튜토리얼이 지나간 다음에 선곡 창이 떴다.
“에이쨩.”
“미리 말하는데 그냥 원하는 곡으로 골라.”
물어보기도 전에 막아버리네, 나는 입을 다물고 버튼을 누르며 곡을 고민했다.
아는 곡 자체는 엄청 많은데, 그래서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
“음...”
하지만, 기기에 표시된 시간은 그 사이에도 착실하게 흘러가서 나는 고민하다가 급하게 좋아하는 애니송을 골라서 눌러버렸다.
난이도는 당연하지만 제일 낮은 난이도...가 아니라 한 단계 높였다.
튜토리얼을 해보니까 솔직히 BASIC은 너무 쉬워 보였어, 옆을 보면 에이쨩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나랑 똑같이 한 단계 높여놓은 상태였다.
어쨌든 잠깐 기다리면 영상과 함께 노트가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라인에 맞춰서 탭, 홀드, 슬라이드... 그리고, 터치!
기계가 커서 온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버튼을 누르고 화면을 터치하게 되는데, 생각보다 은근히 타이밍을 맞추기 어렵다.
“리듬 게임이란 거 생각보다 어렵구나...”
“음악에 맞춰서 무언가를 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1~2분 뒤, 곡이 끝나고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조금 지친 얼굴로 말을 주고 받았다.
물론 두 번째로 낮은라서 그런지 못할 정도는 아니긴 한데, 튜토리얼만 보고 쉽겠구나 한게 무색하게 살짝 어질어질했다.
노트 여러개가 한번에 나오니까 은근 구별하기가 힘들다고 할까.
나는 결과 창을 넘기며 가볍게 기지개를 킨 뒤, 다시 나온 선곡 창에 고개를 돌려 에이쨩을 쳐다봤다.
“자, 이번엔 에이쨩이 한 곡...!”
당연하지만, 에이쨩은 손으로 엑스자를 만들며 거절하려고 했다.
“나는 괜...”
“동생이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지 너무 궁금한데, 오빠로서 한 곡 골라주면 여한이 없을 것 같...”
“...하면 되잖아!”
내가 고개를 들이밀며 일부러 과장된 목소리로 달라 붙으려 하자 바로 소리치며 수락했지만 말이다!
에이쨩 구워삶기, 생각보다 쉬울지도...!
내가 싱글벙글 웃으며 팔짱을 끼고 에이쨩이 곡을 고르길 기다렸다.
에이쨩은 손으로 이마를 짚더니, 버튼을 눌러 곡을 찾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대충 고르는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에이쨩은 신중하게 곡을 골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에이쨩이 선곡한 곡을 확인하고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돌렸다.
“어? 이 노래 알아?”
에이쨩이 선곡한 노래가 인터넷상에서 엄청 유명한 음성 합성 엔진으로 만든 노래였으니까.
에이쨩도 듣는구나, 내가 신기하게 쳐다보자 에이쨩은 고개를 휙 돌리며 한마디를 툭 던졌다.
“나도 이것저것 들어.”
그 이후로는 평범하게 노트가 나왔고, 우리도 평범하게 노트를 쳤다.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를 생각할 뿐]
강렬하게 귓가에 꽂히는 가사에 집중하며 침착하게 버튼을 눌러 본다.
예전에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아름답지만 동시에 슬픈 노래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좋다고 말할 수 있었다면]
“그럼에도 좋다고 말할 수 있었다면...”
...그럼에도 사랑을 바랄 수 있었다면, 노래에 맞춰 계속 노트를 치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에이쨩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면, 에이쨩이 노래를 부르는 것도 들어본 적이 없었네.
잔잔하게 흥얼거리는 목소리와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뒤섞여 이내 사라져간다.
몇 소절도 채 지나지 않아 에이쨩의 목소리는 사라졌지만, 나는 곡이 끝날 때까지 흥얼거리던 가사를 속으로 생각했다.
“에이쨩, 이 노래 좋아해?”
곡이 다 끝나고, 나는 조용히 그렇게 물었다.
에이쨩은 잠시 말이 없더니, 이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해. 좋은 노래잖아.”
그렇게 말한 에이쨩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잘리지 않은 부분도, 잘린 부분도 전부 좋아해.”
“그렇구나.”
나도 좋아해, 나는 따라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도 2곡 정도가 남았는데, 에이쨩이 알아서 하래서 결국 내가 남은 곡을 다 골랐다.
그 와중에 마지막 곡은 자신감에 차서 아예 난이도를 더 올려봤는데, 생각보다 노트가 더 정신없게 튀어나와서 망해버리고 말았다.
“아니, 근데 에이쨩은 어떻게 클리어 한 거야...”
“동체시력에는 자신이 있으니까...?”
저도 나름 자신 있었는데요, 나는 나랑 다르게 난이도를 올리고도 클리어한 에이쨩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사실 에이쨩, 본인만 몰랐을 뿐 리듬 게임에 재능이 있는 게 아닐까?
“에이쨩, 앞으로 리듬 게임 자주 해볼 생각은?”
“야구부 매니저 일로 바쁜데 할 리가 없잖아.”
바로 거절당했어... 나는 진지하게 물어본 거였지만 에이쨩은 반쯤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에이쨩이라면 연습하면 이것보다 잘할 것 같은데.”
“뭐든 원래 연습하면 어느 정도는 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에이쨩이 가볍게 목 스트레칭을 하며 눈을 감았다 떴다.
“어쨌든 일단 다른 거 하러 가자.”
“응!”
이후로도 우리는 게임 센터를 종황무진 돌아다녔다.
일단 3층에 다른 리듬 게임도 많아서 그것들도 하나둘 건드려보고(레이싱 게임은 사람들이 하고 있어서 못했다), 4층에서 온갖 협동류 게임에 도전해보기도 하는 등, 거의 2시간은 보낸 것 같다.
“아, 힘들어...”
“건물 안에서 온갖 게임을 다했으니까 말이지...”
아무리 혈기 넘치는 고등학생인 우리들이라도 이만큼 놀면 좀 지쳐서,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헥헥거렸다.
“수고많았어, 에이쨩...”
“...아직 하나 남았잖아.”
내 말에 에이쨩이 한숨을 쉬며 헥헥 거린다.
“그렇네...”
나는 앞에 있는 거대한 스티커 사진 기계를 가리키며 방긋 웃었다.
“...에이쨩, 같이 사진 찍자!”
역시 이왕 놀러 왔는데 사진 한 번 정도는 찍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설마 나 혼자 찍고 오라는 가혹한 말을 하지는 않을 거지?”
“안 해.”
장난스럽게 물으니 에이쨩이 한숨을 쉬며 답한다.
신난다, 그대로 에이쨩의 손을 잡고 안으로 슝 들어간다.
나는 가격을 확인하고 돈을 집어넣으며 에이쨩에게 물었다.
“에이쨩은 이런 거 찍어본 적 없지?”
“아무래도.”
“그럼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에이쨩은 사진 찍을 때 포즈랑 표정만 신경쓰기야!”
“케이도 찍어본 적 없지 않아?”
“하지만, 방법은 미리미리 찾아봐서 알지요!”
언젠가 꼭 찍고 싶어서 알아뒀으니까 말이지, 나는 조금 걱정스럽다는 듯 묻는 에이쨩을 향해 개구지게 웃으며 터치 패널을 조작했다.
에이쨩은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나와 터치 패널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렸다.
“뭔가...”
“뭔가?”
화면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슬쩍 고개를 돌린 내가 궁금증에 되묻자 에이쨩이 말을 고르는 듯 잠시 입을 다물었다.
“...조금 옛날 생각이 나네.”
같이 사진 찍는 건 오랜만이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대답에 나는 잠시 손을 멈췄다.
사실 나는 에이쨩이랑 같이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없다.
집에 찾아보면 있기야 하겠지만, 하여튼 당장은 내 손 안에 같이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었다.
이번에 사진 찍고 싶었던 건 그 이유도 있었다.
과거에 찍었던 사진 속에서 우리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한 마디를 툭 던졌다.
“기회가 되면 앞으로 자주 찍는 것도?”
“그건 됐어.”
거절이 칼 같다.
나는 불만스레 볼을 부풀리며 에이쨩을 쳐다봤지만, 에이쨩은 그냥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에이쨩이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생각이 있지, 나는 패널을 마저 조작해서 바로 촬영 단계로 넘어갔다.
“어쨌든...!”
그 상태로 줄어들기 시작한 타이머를 보며 나는 에이쨩에게 팔을 뻗어 그대로 어깨동무를 했다.
“잠깐, 케이...!”
“에이쨩.”
나는 당황한 듯 나를 부르는 에이쨩을 보며 활짝 미소 지었다.
“일단 지금은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웃자!”
“하?”
“이왕 오랜만에 찍는 거 웃으면 좋잖아!”
내 말에 에이쨩의 입이 다물린다.
나는 정면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이내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만들었다.
“하나, 둘!”
치즈!
----
“하아...”
“에이쨩, 아직 삐졌어?”
“안 삐졌어.”
애초에 삐진 적도 없고, 나는 게임 센터를 빠져나오며 퉁명스럽게 케이에게 답했다.
하지만, 케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는지 옆에 따라붙어서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하지만, 사진 다 찍고 계속 표정이 뚱한 게 삐진 것 같은데.”
“안 삐졌다니까 그러네.”
빈말이 아니라 실제로 삐진 게 아니었다.
갑자기 냅다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어서 좀 놀란 거지.
그게 아니어도, 게임 센터에서 생각보다 오래 있었던 탓에 좀 지쳤고 말이다.
“정말 삐졌으면 한 컷 찍고 나머지 찍는 동안 내가 가만히 있었겠어?”
나는 케이 손에 들린 스티커 사진을 가리키며 쏘아붙였다.
모든 컷에서 나는 좀 어색하긴 해도 나름대로 웃고 있었다.
삐졌으면 한 컷 찍자마자 표정을 구기던가 했겠지, 나는 계속 사람 말을 믿지 못하는 케이를 보며 팔짱을 꼈다.
“정 못 믿겠으면 다음에 한 번 더 사진 찍으러 가던가.”
“진짜?”
말하자마자 바로 기운 차리는 것 봐, 나는 바로 눈을 빛내는 케이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래, 나중에 한 번 더 갈 테니까, 일단 빨리 카페나 가자.”
미래에 또 사진을 찍는 건 찍는 거고, 솔직히 게임 센터에서 기력이 쭉 빨려서 어디 앉아서 좀 쉬고 싶었다.
나는 느릿느릿 케이를 돌아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카페 안내해 줄 수 있지?”
“물론이지!”
내 말에 곧장 고개를 끄덕인 케이가 신난 듯 곧바로 앞장서서 걷기 시작한다.
“있잖아, 에이쨩은 무슨 파르페 먹고 싶어?”
느긋하게 걷고 싶어서 살짝 뒤에서 따라 걷고 있으면, 케이가 정면을 보며 걷는 와중에 그런 질문을 던져왔다.
“파르페를 자주 먹는 편이 아니라서 모르겠네.”
솔직히 할 말이 없었던 나는 그냥 솔직하게 답했다.
그러자, 케이가 또 질문을 던져왔다.
“자주 안 먹어?”
“아무래도.”
“왜?”
“비싸잖아.”
“하지만, 파르페 맛있는데...”
“난 너랑 다르게 단 걸 별로 안 좋아하니까.”
“안 좋아해?!”
질문에 계속 답하고 있으면, 케이는 충격을 받은 듯 큰 소리를 냈다.
나는 눈을 대굴대굴 굴리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디저트는 너무 달기만 해서.”
말은 이렇게 했지만, 처음부터 디저트를 안 좋아했던 건 아니다.
사실 처음에는 케이가 과자를 안 먹는 걸 보고 나도 디저트를 줄인 거였으니까.
그런데 자주 안 먹어서 그런가, 시간이 지나니까 대부분의 디저트가 너무 달게 느껴지는 게 아닌가.
“그래서, 평소에는 그냥 디저트 자체를 안 먹어.”
나는 최초의 원인이 케이였다는 이야기는 쏙 빼놓고 딱 이렇게 이야기를 정리했다.
“이럴 수가...”
그러자, 마치 ‘디저트의 맛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같은 얼굴로 케이가 나를 돌아본다.
디저트 좀 안 먹는다고 그렇게 볼 일인가? 나는 어이가 없어서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에이쨩, 앞으로 내가 디저트 많이 가져올 테니까 같이 먹자.”
“됐어.”
어차피 몸에 좋지도 않은걸, 굳이 나서서 가져오지 않아도 괜찮았다.
“에이쨩~.”
“진짜 됐다니까 그러네.”
“하지만, 난 에이쨩이랑 디저트 먹고 싶은데.”
“어차피 오늘 먹을 거잖아.”
정말 바라는 것도 참 많은 오빠였다, 나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는 케이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여기 쓰랴 저기 쓰랴, 돈도 없으면서 그러지 마.”
“윽... 반박하고 싶은데 사실이라서 할 말이 없어...”
말문이 막힌 케이가 고개를 푹 숙인다.
너무 딱 잘라 거절했나? 나는 눈을 대굴대굴 굴렸다.
“정 그러면... 아껴서 카페 갈 돈을 마련해 보던가.”
“진짜로?”
방법을 제시해 주자마자 케이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본다.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케이를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아껴서 10000엔 가량 남기면 같이 카페로 갈테니까.”
“엥, 그만큼이나 남겨야 해?”
“언제였지... 몇 달 전에 지갑에 100엔만 남겨서 곤란해졌던 사람이 누구더라?”
“그... 그건...”
나는 말을 흐리는 케이를 보며 일부러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괜히 용케 오늘 놀 돈을 남겼구나라고 생각한 게 아니다.
그렇다고 케이가 나한테 돈을 빌린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어쨌든 동생으로서 오빠의 씀씀이가 걱정되니 적당히 썼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나랑 디저트 먹고 싶다는 게 빈말이 아니라면, 어떻게 잘 아낄 수 있겠지?”
“...알겠어.”
적당히 쓰면 되잖아! 결국 케이가 팔짱을 끼며 고개를 휙휙 끄덕였다.
“근데, 에이쨩.”
“응.”
“그래서, 결국 무슨 파르페를 먹을 것 같아? 아무리 평소에 디저트를 안 먹어도 ‘무슨 맛이 좋다’ 같은 건 있었을 거 아냐.”
돌고 돌아 다시 이 질문이네,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호불호... 호불호... 과일류는 생크림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 일단 제외하고...
그럼 남는 건 역시...
“...초콜릿?”
2~3분 간의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은 결국 이거였다.
“초콜릿은 달지 않나?”
“다크 초콜릿은 상대적으로 덜 달잖아.”
물론 파르페에 들어가는 초콜릿이 다크 초콜릿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덜 달게 해달라고 말하면 어쨌거나 좀 낫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면, 커피도 괜찮을지도.”
“에이쨩, 쓴 거 잘 먹는구나?”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맞는 것 같기도...”
다크 초콜릿도 커피도 다 기본적으로 쓰지만 나로서는 그편이 익숙하다고 할까, 더 나은 것 같다.
커피는 이래저래 수업 시간에 깨어있으려고 자주 마시는 편이니까.
“어른 같아...”
“그런가?”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는 케이를 쳐다보며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내가 아니어도 쓴 걸 잘 먹는 학생은 지천에 널렸을텐데 겨우 이런 걸로 어른 취급은 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눈만 깜빡이고 있는데 문득 꽤 오래 걸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3시인데, 나는 시간을 확인하며 케이에게 물었다.
“슬슬 오래 걸은 것 같은데 얼마나 더 가야해?”
“아, 이제 다 왔어!”
그 말과 함께 케이가 바로 앞에 있는 상가 건물의 2층을 가리킨다.
“기다려라, 내 복숭아 파르페~!”
그러더니, 케이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속도를 올려 먼저 건물 쪽으로 다다다다 달려갔다.
그런데...
“어?”
“가게가 닫혀있지 않아...?”
2층으로 올라가려다 말고 멈칫하는 케이를 보며 나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불도 켜져 있지 않고, 계단 쪽을 보면 2층으로 올라갈 수 없게 막아놓은 상태였다.
“어떻게 된거지?”
적어놓은 게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망연자실한 나머지 얼어붙은 케이를 지나쳐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 찾았다.”
잘 보니까 계단을 가로막듯 세워져 있는 메뉴판에 종이가 붙어 있다.
나는 더듬더듬 종이의 내용을 읽어내렸다.
“개인사정으로... 하루 휴업합니다...”
이렇게 운이 나쁠 수가 있나? 나는 스마트폰으로 카페 SNS를 확인해 같은 내용의 공지가 올라와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이마를 짚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미리 검색해 볼 걸 그랬다.
“미안해, 케이.”
“왜, 에이쨩이 미안해하는 거야.”
“계획을 짰을 때 미리 제대로 검색해 봤으면 이럴 일은 없었을테니까...”
내 말에 당황한 듯 눈을 깜빡이는 케이를 쳐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엄청 기대했잖아, 복숭아 파르페.”
틈만 나면 복숭아 파르페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대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케이가 얼마나 복숭아 파르페를 먹고 싶어 했는지는 가족인 내가 제일 잘 알았다.
이대로는 여러모로 곤란한데,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주억거렸다.
“에이쨩.”
그때였다.
갑자기 케이가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툭 쳐서, 나는 그 부분을 손으로 문지르며 눈을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사과할 필요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데.”
케이는 못 말린다는 듯이 웃으며 팔짱을 끼고 나를 쳐다본다.
“뭐... 솔직히 나도 아쉽긴 하지만... 복숭아 파르페는 다음에 먹으면 되니까!”
“그건... 그렇지만...”
“나는 괜찮으니까 이 이야기 끝!”
괜히 자기 탓 하지마, 말을 흐리는 나를 향해 케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강하게 말한다.
“대신 나 케이크가 맛있는 카페 아는데 거기로 갈래?”
“...케이가 좋다면 그렇게 해.”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 상태로 5분도 채 안 걸리는 위치에 있는 다른 카페로 가게 됐다.
솔직히 가는 내내 살짝 정신을 놓고 있었던 것 같다.
걷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미리 말하지만 원래 가려던 카페에 가지 못하게 됐다는 사실에는 그렇게까지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그게 신경 쓰여서 생각이 많은 게 아니었다.
내가 곤란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에이쨩, 골랐어?”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나는 맞은편에 앉아서 메뉴판을 보며 고개를 기울이고 있는 케이를 쳐다봤다.
케이는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는 내 모습이 이상해 보였는지 의아한 얼굴이었다.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입꼬리를 올리며 빠르게 메뉴판을 확인한 뒤, 바로 답했다.
“...나는 자허토르테에 카페라떼.”
살구잼이 들어가 있지만 괜찮겠지, 그 와중에 케이는 지그시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점원을 불렀다.
“여기 주문 할게요!”
딸기 케이크에 밀크 쉐이크랑 자허토르테에 카페라떼 주세요, 다가온 점원에게 속사포로 메뉴를 말하는 케이를 보며 나는 오른손에 턱을 괴고 눈을 깜빡였다.
그 사이, 케이의 말을 들은 점원이 종이 빠른 속도로 메뉴를 적어 내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대로 돌아갔다.
똑딱똑딱, 어디선가 시곗소리가 들렸다.
시간은 언뜻 평화롭게 흘러가는 것 같다.
우리가 앉은 자리가 창가여서일까, 바깥이 잘 보여서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평화로움 속에 섞이지 못하고 튕겨 나와 있었다.
지금까지 어떻게 잘 놀았는데 말이다.
이 시간쯤 되니 슬슬 밀어둔 생각이 하나둘 튀어나온다.
과거에 대한 것, 현재에 대한 것, 미래에 대한 것.
나름대로 즐거웠던 게 거짓말처럼 피로가 몰려왔다.
“에이쨩, 많이 피곤해?”
“...괜찮아.”
느릿느릿 계속 눈을 깜빡이고 있으면 케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하지만, 케이는 미간을 좁히며 이리 말했다.
“아까부터 계속 딴생각만 하는 것 같은데.”
사실이다.
여기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설마 아직도 아까 일 신경쓰고 있는 건 아니지?”
“아니거든.”
케이의 말에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생각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정말로 아까 일은 상관없었다.
아까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게 있다면, ‘케이가 복숭아 파르페를 먹는 걸 못보는 게 좀 아쉽다’ 정도였다.
아, 아닌가?
어쩌면 오히려 잘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속으로 멍하니 뇌까리고 있는데, 계속 빤히 쳐다보는 케이의 시선이 느껴졌다.
“정말 아니라니까?”
나는 급하게 생각을 털어내고 살짝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까지 신경질적으로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뒤늦게 그런 생각이 따라왔다.
“알겠어.”
케이는 작게 한숨을 쉬나 싶더니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슬쩍 얼굴을 살펴보니 다행히도 속이 상했다거나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다행이다, 나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케이는 나한테 쉴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지 허공을 보며 입을 우물거릴 뿐, 말을 걸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로 카페 안이 시끌시끌한 가운데, 그렇게 우리 사이에는 침묵이 찾아왔다.
익숙한 침묵이었다.
시니어 때는 길게 대화를 이어 나가는 것보다 이렇게 각자 침묵을 지키는 일이 더 많았으니까.
그러고 보면, 처음에는 대화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이 싫었던 것 같다.
대화하는 걸 막 좋아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고, 그냥 굳은 표정으로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 케이를 보는 게 싫었다.
웃는 모습이 훨씬 잘 어울리는데, 줄곧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먼저 말을 걸고 대화를 이어가려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 분명 그런 시절이 있었다.
차라리 침묵이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됐던 건, 대체 언제였을까.
말없이 다시 눈을 뜨면, 케이도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 진지한 얼굴로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말을 걸지는 않았다.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그렇게 가만히 시간을 죽이고 있으면, 점원이 다가왔다.
“여기 주문하신 메뉴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점원에게 가볍게 한번 고개를 숙인 뒤, 각자 포크를 손에 쥐었다.
“맛있겠다...”
케이는 아까까지 가라앉은 얼굴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는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눈을 빛내며 제 딸기 케이크를 쳐다보더니, 곧장 한조각 잘라서 입에 집어넣었다.
“마이어...”
“그렇게 맛있어?”
일단 먹고 말하는 게, 나는 튀어나오려는 지적을 목구멍 안으로 집어넣으며 물었다.
케이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한 조각 더 잘라서 입안으로 가져갔다.
나도 포크로 자허토르테를 한 조각 잘라서 입에 집어넣었다.
코팅한 초콜릿이 씹히는 감각과 함께 진한 초콜릿의 맛이 밀려드는 가운데, 새콤달콤한 살구잼의 맛이 균형을 맞춘다.
살구 과육도 씹히는 게, 잼에 신경을 많이 쓴 태가 났다.
“에이쨩은?”
“맛있네. 적당히 달아.”
케이의 물음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초콜릿도, 살구잼도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달지 않았다.
이 정도면 허용 범위였다.
“다행이다!”
케이는 정말 다행이라는 듯 밝은 얼굴로 소리쳤다.
아무래도 디저트가 입에 맞을지 걱정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됐는데, 나는 다시 자기 케이크에 집중하기 시작한 케이를 보며 속으로 쓰게 웃었다.
동시에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키고 있었다.
“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시간을 확인했다.
3시 34분, 아직 해가 지기에는 이른 시각.
여전히 해는 떠오른 그대로, 하늘은 맑고, 안이든 밖이든 사람이 많다.
그리고, 그 속에서 케이크를 먹는 케이가 세상 행복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새삼 옛날 생각이 났다.
옛날에 감자칩을 까먹던 케이가 딱 저런 얼굴을 했던 것 같아서.
그 시절이 돌아올 리가 없는데, 그 시절이 돌아온 것 같아서.
그러니까,
“케이.”
나는 잠시간 케이를 지켜보다가 이내 이름을 불렀다.
뭐든 말해보라는 듯 케이가 케이크를 먹다 말고 고개를 까닥인다.
나는 탁 소리가 나게 포크를 내려놓으며 케이와 눈을 맞췄다.
“이제 진짜 이유를 알려줘.”
지금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겠지.
----
“에?”
순간 포크를 손에서 놓칠 뻔했다.
나는 떨릴락 말락 하는 손에 힘을 주며 어거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다른 얘들이 바빠서라던가... 그런 건 다 핑계인 거 알아.”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에이쨩이 조곤조곤 말한다.
“처음부터 나랑 단둘이 있는 상황을 원한 거잖아.”
집이었어도 괜찮았을 텐데 굳이 키치죠지를 고른 거고, 고저 없는 평온한 목소리가 가만히 내게 대답을 종용하고 있었다.
목이 타는 것 같아서, 밀크 쉐이크를 홀짝이며 슬쩍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지장을 봤다.
지장은 말없이 에이쨩을 쳐다보다가 나를 곁눈질하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알아서 하라는 뜻이었다.
나는 결국 들고 있던 포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에이쨩을 봤다.
“언제부터 눈치챘어?”
“처음부터.”
즉답이었다.
“이정도는 보면 알아. 쌍둥이니까.”
그게 아니어도 침착하게 시간을 들여 생각하면 눈치챌 수 있는 문제고,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예상한 듯 이어지는 말로 내 말문을 막아버린 에이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평소에 나한테 다가오려고 애쓰는 편이긴 하지만, 막무가내로 선을 넘으려 들지는 않았잖아.”
확실히 그랬다.
나는 부단히 에이쨩과 친해지려고 노력했지만, 나름대로 선을 넘지는 않으려고 했다.
조금만 선을 넘어도 에이쨩이 싸늘하게 밀어내려고 하기도 했고, 솔직히 그런 모습을 보는 게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으니까.
솔직히 걱정되기도 했다.
화내고 있는 건 에이쨩인데, 정작 그것에 상처받고 있는 것도 나보다 에이쨩인 것 같아서.
나는 잠시동안 물끄러미 말을 기다리는 에이쨩을 응시하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이제는 정말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기억을 잃고 제대로 대화한 적이 한 번도 없잖아.”
“그렇지.”
가만히 긍정하는 에이쨩을 보며 생각한다.
종종 일상적인 대화를 나눠보긴 했지만 그것도 길게는 아니었고, 이렇게 진솔한 대화를 나눌 기회는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항상 에이쨩이랑 대화하고 싶었지만, 에이쨩은 나랑 대화하기 싫은지 밀어내기만 했으니까.
동급생 중 한 명이 남보다 못한 사이 같다고 말하는 걸 들은 기억도 있었다.
집에서 마주 보고 있을 때도 어색하게 있었으니까 딱히 틀린 말도 아니지.
‘그러면, 왜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하는 건데! 항상 그래...! 하지 않아도 되는 짓을 하면서, 사람 귀찮게 만들고...!’
“세이메이 전이 끝나고 마키타랑 왔다간 다음에 그런 일도 있었고.”
에이쨩이 걱정돼서 밀어내는데도 말을 걸었다가 멱살을 잡혔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때도 제대로 대화하는 걸 택하지 않고 어물쩡 넘겨버렸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고 하루를 보냈다.
‘당장 눈앞에 있는 대회가 더 중요하니까’라고 자신에게 거짓말했다.
하지만, 결국 각자 쌓여있는 문제를 마주 보지 않고 외면했을 뿐.
“원래는 테이토쿠 전이 끝나면 대화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는 지장을 쳐다보며 쓰게 웃었다.
테이토쿠 전이 끝나면 이기든 지든 대화를 하자, 그렇게 마음을 먹은 게 무색하게 지장의 존재라던가 이래저래 일이 많았다.
도저히 타이밍을 잡지 못해서, 결국 겨우 잡은 기회가 오늘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물을게, 에이쨩.”
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눈을 감았다 떴다.
“에이쨩이라면 여기까지 예상했을 것 같은데... 왜 그때 알겠다고 한 거야?”
에이쨩은 눈치가 빠르니까, 분명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 시점에서 다른 것도 알아챘겠지.
평소였다면, 눈치챈 시점에서 대화하기 싫다고 거절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심지어는 우리는 오늘,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즐겁게 놀았다.
에이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래서, 솔직히 에이쨩의 생각을 잘 모르겠다.
“거절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무거운 마음으로 대답을 기다리는데,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들려왔다.
에이쨩은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실... 원래는 테이토쿠 전이 끝나고 내가 먼저 키치죠지에 가자고 말할 생각이었어.”
나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에이쨩이 먼저 키치죠지에 가자고 말할 셈이었다고?
진짜로?!
“나도 애초부터 대화할 생각으로 여기 왔다는 거야.”
쐐기를 박듯 지금껏 거의 본 적 없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에이쨩이 말한다.
“에이쨩...”
설마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뭐랄까, 엄청 기뻤다.
기분이 좋아서, 표정 관리가 잘되지 않는다.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며 말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아무것도 잊지 않았어.”
포크로 자허토르테를 한 조각 더 잘라낸 에이쨩이 작게 중얼거렸다.
“...뭐가?”
“말 그대로의 의미야. 아무것도 잊지 않았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에이쨩의 말은 어딘지 아리송했다.
여전히 부드럽게 미소가 걸려 있는 얼굴로 자허토르테를 입안에 집어넣는 에이쨩의 모습을 나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쳐다봤다.
에이쨩은 잠깐 말이 없다가 이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평온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궁금하다면 지금이라도 전부 말해줄 수 있다는 뜻이야.”
주어가 빠져 있었지만, 이렇게 되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모를 수가 없다.
“...기억을 잃기 전의 이야기를 지금 하겠다고?”
“대화하려면 역시 예전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에이쨩이 아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답한다.
“음...”
나는 쉽사리 말을 고를 수 없었다.
지장을 쳐다봐도 알아서 하라는 듯 시선을 돌리고 있다.
“그렇게 고민한 일인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이도 저도 못하고 있는 나를 향해 에이쨩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렇게 된 이상, 네게는 알 권리가 있어.”
“그건... 에이쨩에 대해서? 아니면, 나?”
“어느 쪽이든.”
에이쨩은 이미 마음을 정했다는 듯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왜 주변에서 말하는 모습과 다른지, 너와 내가 시니어 때 어땠는지, 항상 궁금해했잖아.”
그래, 항상 궁금했었다.
기억을 잃고서, 처음 너를 만났을 때부터 줄곧 나는 그게 궁금했어.
딱히 기억을 찾고 싶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그건 계속 궁금했어.
테이토쿠 전에서 이것저것 떠올리게 됐지만, 궁금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많은 것을 이해했지만, 동시에 많은 의문점이 추가됐다.
솔직하게 물어볼까, 그런 생각도 분명 했었다.
하지만,
“괜찮아.”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에이쨩이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과거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게 아냐.”
내 선택을 예상하지 못한 듯, 고개를 들어 당황한 얼굴로 에이쨩이 나를 쳐다본다.
“내가 하고 싶은 건 현재와 미래의 이야기야. 지금 어떤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를 이야기하고 싶어.”
“그러기 위해서 이 이전의 이야기를 먼저 할 필요성이 있지 않아?”
“물론 안다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더 많아지기는 하겠지.”
에이쨩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많은 궁금증을 해결하고,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예를 들면 지장에 대해서라던가, 분명 이것저것 좀 더 알게 될 것이다.
어쩌면, 나는 모르는 기억상실에 대한 이유가 더 있을지도 모르고.
...뭐, 솔직히 아는 게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건 내가 가진 두려움 이전의 문제였다.
“에이쨩... 계속 괴로워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잖아.”
웃는 거 살짝 어색해, 나는 쓰게 웃으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도, 조금이나마 떠올린 과거 속의 에이쨩도, 전부 괴로워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다.
“사실 말하기 싫은 거지?”
기억 속의 에이쨩은 웃고 있었지만,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기억 속의 나는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았으면서도 외면했다.
네가 정말 아무렇지 않다고 믿고 싶었다.
나를 위해 무리해서 나와 하루쨩의 손을 붙잡아 줬으니까.
미안했지만 동시에 정말 기뻐서, 힘이 돼서, 그 손을 계속 잡고 있고 싶었으니까.
떠올리고서야 깨달았다.
손을 놓고 싶어질 때까지 몰아붙인 건 분명 나일 거라고.
그렇기에 지금껏 에이쨩이 나를 밀어냈던 거라고.
“그러니까, 괜찮아. 에이쨩이 말하기 싫다면 말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예전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많으니까.”
나는 더 이상 에이쨩을 괴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에이쨩이 말하기 싫다면, 당장 몰라도 상관없었다.
이건 마주 보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
나는 너를 괴롭게 하지 않고 나 자신의 손으로 천천히 답을 찾아내고 싶었다.
포크를 쥔 손을 꽉 쥔 에이쨩이 고개를 푹 숙였다.
“예를 들면?”
과거 없이 어떤 이야기를 하겠다는 건데,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그리 물어왔다.
“어...”
막상 그렇게 질문을 받으니까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멋지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는데, 여기에도 생각해둔 답이 있었는데, 막상 물어보니까 말을 못하겠다.
“...학교 생활 어때?”
그래서, 저도 모르게 막 내뱉어버렸다.
큰일났다, 내뱉고서 후회했다.
그랬는데,
“하.”
하하하하, 갑자기 에이쨩이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에이쨩...?”
“아, 미안해...”
당황해서 이름을 부르니까 에이쨩이 급하게 손을 저었다.
에이쨩은 그 뒤로 몇 분간 거의 히끅거리다시피 웃다가, 이내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케이답다 싶어서.”
대체 어디가 나다운 건데? 진지하게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에이쨩이 어딘가 편안해진 얼굴을 하고 있어서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누구한테나 까칠하고 항상 표정을 찡그려져 있어서 주변에서는 굳이 다가가려고 하지 않고, 선생님 입장에서도 골칫거리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좋은 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말하기는 무리가 있지.”
그러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말이 들려왔다.
아까 내가 대충 막 뱉어버린 질문의 대답에 나는 느릿느릿 눈을 깜빡이며 에이쨩을 쳐다봤다.
이렇게 들으니 내 동생, 정말 문제아같다.
나는 어느새 떨떠름한 얼굴로 한숨을 쉬고 있었다.
아니 근데 그렇잖아, 저건 좀 심각하잖아.
알고는 있었지만, 전혀 러브 앤 피스하지 않다고.
“뭐 솔직히 말하면 나로서는 이렇게 거리감이 있는 편이 편해서 상관없었지만.”
“어째서?”
상관이 없으면 안되는 거잖아,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하는 에이쨩에게 태클을 걸었다.
에이쨩은 직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목소리로 고개를 기울였다.
“필요 이상으로 친한 것보다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상관하지 않는 편이 좋아.”
“그래도 다른 방법이...”
나는 그렇다 쳐도 다른 사람한테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던 거 아닌가, 내가 빤히 쳐다보자 에이쨩이 시선을 돌려버렸다.
“물론, 나도 내 평소 행실에 문제가 있다는 자각은 있어.”
지금껏 손대지 않고 있던 카페라떼를 한모금 마시며 에이쨩이 말한다.
“고치는 편이 좋겠지. 요즘은 나도 이래저래 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할까...”
“다행이다...”
그 말에 나는 바로 안심했다.
변할 생각이라면,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좋아?”
“에이쨩에 대해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거 싫었으니까.”
“정말 너무 신경쓴다니까.”
자기 일도 아니면서 자기 일처럼, 못말린다는 듯한 어조로 중얼거린 에이쨩이 다시 나와 눈을 맞췄다.
“있잖아, 케이.”
“응.”
나는 가만히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저번에 멱살잡고 화냈던 건.. 정말 미안해.”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뜬 에이쨩이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것뿐만이 아냐. 지금까지... 계속 상처 줘서 미안해.”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사과받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애초에 내가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지, 사과받을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다.
“네가 줄곧 나를 생각하고 있었던 거 알아.”
그런데, 이렇게까지 말해주니까... 뭐라고 하지... 좀...
“아...”
나는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에 신음했다.
지금까지 몰랐는데, 내심 이런 말이 듣고 싶었나 봐.
...나도 계속 상처받고 있었던 거구나.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까지 미움받을 일인가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고...”
줄곧 이유가 있을 거라고 되뇌었지만, 나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괜찮지 않았구나.
“물론... 싫다는데 매니저 해주면 안되냐고 매달린 건 사실이고... 귀찮게 한 것도 맞고...”
“...케이의 잘못이 아냐. 결국 매니저를 하겠다고 선택한 건 나고...”
이래저래 괜한 화풀이나 다름이 없었어, 내 말을 들은 에이쨩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구나.”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내 잘못이 없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떠올린 이상, 내 잘못이 아예 없다는 말은 절대 못 해.
“그럼... 대충 쌍방과실이라는 걸로!”
나도 많이 미안해, 나는 아까 에이쨩처럼 고개 숙여 사과했다.
에이쨩은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나도 사과하고 싶었으니까.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면 에이쨩이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느리게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살짝 미소 짓다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눈을 깜빡였다.
“저기... 줄곧 물어보기 무서웠었는데...”
원래는 물어볼지 안 물어볼지 계속 고민한 질문인데, 이런 상황이면 말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쨩은 내가 싫어?”
“싫지 않아.”
고민 없이 바로 대답이 나왔다.
“싫어할 리 없잖아.”
정말 싫었다면 애초에 같은 학교를 택하지도 않았을 거야, 정말 예전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었을 대답이다.
아니 물론, 이제는 상황이 바꼈으니까 당연히 ‘싫지 않다’는 대답이 나올 것 같긴 했는데...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
“그리고, 그 질문은 내가 해야 할 질문인걸.”
어찌 됐든 듣고 싶었던 대답이라 내가 속으로 기뻐하고 있는데, 에이쨩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케이, 내가 싫어?”
이번에는 에이쨩이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너무 답이 정해진 질문이라서, 나도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었다.
“당연히 나도 에이쨩이 좋아!”
싫다고 생각한 적,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기억을 잃고 처음 봤을 때부터... 소중한 가족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나랑 정말 똑닮았다는 신기함, 주워들은 이야기가 자아낸 호기심, 그 사이로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낸 건 다름 아닌 안심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쁜 말을 잔뜩 들었는데 말이지? ‘에이쨩이 정말 나를 싫어할까? 설마,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어.”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이래저래 좋은 말보다 나쁜 말이 훨씬 많았는데도 그랬다.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동시에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기억을 잃고도 에이쨩에 대해 계속 믿고 있던 거 아닐까?
“어쨌든 지장도 나랑 똑같이 생각할걸? 소중한 가족이라고 말이지!”
그도 그럴 게, 지장이랑 에이쨩에 대해 이야기할 때 느낀 건데, 에이쨩을 계속 생각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거든!
나는 슬쩍 나를 보는 지장을 마주 본 뒤, 고개를 돌려 활짝 웃었다.
“...그래?”
에이쨩은 내 눈을 피하며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되묻더니 이내 알아서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케이는 케이니까.”
“하루쨩이랑 똑같은 소리하고 말이야~.”
어쨌든 셋이서 같이 오랫동안 지냈다는 걸까, 에이쨩이 하루쨩한테 맨날 뭐라 하는 것치고는 둘이서 나에 대한 의견이 일치할 때가 많은 기분이다.
“오늘 키치죠지에 안 왔으면 분명 이런 이야기, 계속 못 했겠지?”
나는 후련해진 마음으로 딸기 케이크를 퍼먹으며 말했다.
“나는 에이쨩이랑 역시 친하게 지내고 싶어.”
“나, 전보다는 낫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까칠할지도 몰라.”
“상관없어!”
괜찮냐는 듯 말하는 에이쨩을 보며 나는 크게 답했다.
까칠하다고 해도 어쨌든 전과는 다를 것 같은 예감이 드니까.
분명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아, 하지만 같이 등하교는 하고 싶을지도...”
“그건 조금 생각해 볼게.”
그 와중에 내 꿈 중 하나였던 동생과 등하교하기가 이루어질 것 같은 발언에 눈을 크게 뜨며 몸을 좌우로 흔들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된 거 더 말해야지!
“또, 에이쨩이 다른 얘들이랑도 친하게 지내주면 좋겠어! 다들 나쁜 얘들도 아니고!”
“음...”
“아, 물론 하루쨩도 포함해서 하는 소리야. 하루쨩도 내심 서운해하고 있던 거 알아?”
하루쨩이 평소에 티를 안 내서 그렇지 대화하다 보면 서운해하는 게 엄청 티가 났다.
분명 둘도 소꿉친구일텐데, 듣기로는 원해 친했다던데, 어떤 의미에서는 나를 대할 때보다 에이쨩이 더 싸늘했단 말이지...
무슨 이유로 그러는 건지 나로서는 예상이 잘 안 가지만, 가능하다면 에이쨩이랑 하루쨩이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도 꼭 보고 싶었다.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쳐다보는 에이쨩을 빤히 쳐다봤다.
“...노력해 볼게.”
하루카를 싫어하는 건 아냐, 결국 에이쨩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인다.
나는 신이 나서 한 마디를 더 얹으려고 했다.
“그러면 같이 점심도...!”
“정말 바라는 게 많은 거 아냐?”
에이쨩이 이제 그만 말하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말이다.
나는 싱글벙글 웃는 그대로 에이쨩에게 물었다.
“싫어?”
“아니.”
에이쨩은 한숨을 작게 쉬더니 바로 답했다.
“지금부터라도 천천히, 눈을 돌리고 있던 것들을 마주해야지 싶어.”
그러면서, 시선을 돌려 창밖을 가만히 응시한 에이쨩이 이내 작게 중얼거렸다.
“내게 그 자격은 아마 없겠지만.”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오늘 놀면서 어렴풋이 확신한 건데, 에이쨩은 생각보다 자기 탓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자기 탓을 돌릴 필요 없는데 말이다.
나는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에이쨩의 손을 꼬옥 잡으며 눈을 맞췄다.
“천천히 하나하나 마주 해보자, 우리.”
절대로 가능할 거야, 나는 그리 덧붙이며 웃었다.
지금 이렇게 마주 앉아서 대화했으니까, 분명 시간이 걸리더라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근심 걱정 없이 마주 보고 웃는 거지!”
“그러면... 좋겠다.”
눈을 대굴대굴 굴리며 잠깐 생각하는 듯 싶던 에이쨩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디저트도 맛있고, 오늘 정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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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이쁘다~!”
머리 뒤로 깍지로 끼고 걷던 케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크게 외쳤다.
따라서 고개를 들면, 5시가 지나서 노을이 지기 시작한 하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불과 몇십 분 전의 푸른 하늘과 대비되는 붉은 빛 속에서 구름은 천천히 흐르고, 시간도 따라서 흘러간다.
“공원도 이쁘고...”
예정대로 찾은 이노카시라 공원의 풍경도 케이의 말마따나 아름답다.
사람이 탄 보트가 연못을 돌아다니는 가운데, 수면에 반사된 하늘이 반사돼서 반짝반짝했다.
나는 케이와 함께 연못을 몇 분 정도 바라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케이는 연못을 좀 더 구경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내가 처음부터 정한 목적지는 연못과는 아예 반대 방향이었다.
우리는 걷고 또 걷고, 테니스 코트도 지나고, 엄청 유명한 미술관도 지나쳐서 계속 걸었다.
“에이쨩, 우리 언제까지 걸어?”
카페에서 꽤 쉬었다고 해도 오랫동안 바깥을 돌아다닌 상태에서 공원을 쉬지 않고 걸으니 케이 입에서 불만이 튀어나온다.
“곧 도착해.”
나는 그렇게만 대답하고 계속 걸었다.
주차장이 보이는 걸 보니, 목적지가 곧이었으니까.
“케이, 보여?”
얼마 지나지 않아 주차장 바로 옆에 도착한 나는 주차장 너머를 가리키며 물었다.
“뭐가 있는... 어?”
야구장이다, 살짝 투덜거리며 고개를 든 케이가 작게 중얼거렸다.
야구장의 존재를 예상하지 못한 듯 케이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케이를 쳐다봤다.
“자, 일단 마저 걷자.”
“야구장에 들어가려고?”
“아니.”
케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빨리 안 오면 두고 갈 거야.”
나는 가만히 서 있는 케이에게 그리 말하고, 그대로 뛰기 시작했다.
“잠깐...!”
뛰면서 살짝 고개만 돌리면 멀뚱멀뚱 서 있던 케이가 급하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속도를 올려 뛰었다.
“대체 뭔데!”
물론 달리기 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라 금방 따라잡혔지만.
나는 그 뒤로도 몇십 초 정도 더 달리다가 걸음을 멈췄다.
“여기가... 좋겠다...”
도착한 곳은 야구장 옆에 자리 잡은 놀이터였다.
역시 바깥에 오래 있었더니 좀 지치네... 가방도 있고... 나는 숨을 몰아쉬며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놀이터를 쳐다보며 고개를 기울이고 있는 케이를 쳐다봤다.
“케이, 글러브 챙겨왔지?”
“챙겨오긴 했는데...”
가방을 열어 글러브를 꺼낸 케이가 나와 글러브를 번갈아 보며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나만 글러브를 챙겨서 뭐...”
“왜 너만 글러브를 챙겼을 거라 생각해?”
나는 케이의 말을 잘라버리며 가방에서 뒤적여 글러브를 꺼냈다.
“에이쨩, 글러브 가지고 있어?!”
“애초에 그렇지 않으면 굳이 글러브를 챙기라고 했겠어?”
답은 간단하다고 했잖아, 경악하는 케이를 보며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답했다.
“하루카가 말하지 않은 모양인데, 나도 리틀 시절에는 선수였어.”
게다가 시니어에 접어들어서도 가끔 같이 캐치볼 정도는 했었다.
뭐, 어쨌든 사실을 몰랐다면 생각이 미치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나는 가방에 넣어둔 공을 꺼낸 뒤, 조심스럽게 글러브를 손에 끼며 느리게 숨을 내쉬었다.
관리는 계속 했지만, 글러브를 낀 건 정말 간만이라 어쩐지 낯설게 느껴진다.
손에 쥔 공도, 연습 뒤에 정리를 돕는다고 손에 쥐었을 때랑은 감각이 달라.
손이 살짝 떨려서 공을 쥔 손에 일부러 힘을 줄 수밖에 없었다.
글러브를 손에 끼지도 않고 여전히 당황한 얼굴로 나를 보는 케이를 쳐다봤다.
“네 말대로 솔직히 과거 이야기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아.”
이야기하고 싶을 리가 없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미쳐버릴 것 같은 과거 따위 차라리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할 수 있다면 그냥 네가 영원히 모르는 채로 있어 줬으면 좋겠어.”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그렇게 충격적이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결국 그런 결론이 나오더라.
말은 안 했지만, 차라리 괴로운 기억도 날아가 버린 지금이 더 나아 보였어.
그래서, 과거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괴로운 과거만 있는 건 아니니까.”
괴롭지 않은 과거도 분명 있었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웃고 떠들었던 나날이 우리에게 있었다.
“시니어 이전... 리틀 즈음 이야기라면 말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그동안은 괴롭지 않았던 기억들이 괴로웠던 기억을 떠올리게 할까 싶어서 입을 다물었지만, 이렇게 되니까 이제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졌다.
“그러니까... 간만에 이렇게 캐치볼이라도 하면서 말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혹시 싫으려나? 나는 일부러 헤프게 웃으며 물었다.
“그럴 리가!”
눈을 동그랗게 뜬 케이가 격하게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혹시라도 내 생각이 바뀔까 두려웠는지 급하게 글러브를 끼는 모습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근데, 막상 이렇게 되니까 뭐부터 물어야 할지 모르겠어!”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자세를 잡은 케이가 곤란하다는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편하게 생각해.”
나는 웃는 그대로 말하며 케이를 향해 공을 던졌다.
오랜만에 던지는 공이었지만, 다행히 케이가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위치로 날아간다.
가볍게 공을 잡아낸 케이는 눈을 깜빡이더니 조심스럽게 내게 공을 던졌다.
“에이쨩은 리틀 시절에 왜 선수였어?”
운동 신경이 그렇게 좋지 않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내가 공을 잡아냄과 동시에 케이의 질문을 날아 들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공을 던지며 답했다.
“매니저를 하려면, 일단 선수를 해보면서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둘이 고생하는데 나만 편하게 있기 싫다는 이유도 없지는 않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저 이유였다.
“물론 스케줄 관리라던가, 그런 것만 해도 매니저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고 싶었거든.”
선수로서 직접적인 경험이 쌓이면, 그저 보기만 할 때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늘어 난다.
단순히 데이터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서 그 데이터를 이해하고 의견을 낼 수도 있고, 폼이나 연습 메뉴에 대해서도 의논할 수 있다.
그게 아니어도, 매니저의 가장 큰 역할인 선수 케어에도 이런 경험은 도움이 된다.
직접 경험해본 게 있다 보니 무리한다 싶으면 더 빨리 눈치챌 수 있었다고 할까.
“헤에...”
“케이 혼자 이것저것 생각하면 너무 부담될 것 같았고, 하루도 이래저래 걱정되고...”
케이는 책임감이 강해서 무리하는 경향이 있고, 하루는 원래 마음이 여린 편이었다 보니까, 어린 나는 최대한 둘을 많이 도와주고 싶었다.
짐을 덜어주면 둘 다 마음 편하게 야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약속도 했고.
“그렇...”
...구나? 내 말을 들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던 케이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갑자기 입을 헤벌렸다.
“에이쨩, 하루쨩을 원래 하루라고 불렀어?!”
아, 난 그제야 내가 무의식 중에 하루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뭐, 당연히 하루는 하루라고 할까... 여리지만 착하고... 또...
하루카랑은 다르게... 아니, 지금 뭐라고 생각하는 거람.
“시니어... 시절에 그랬지.”
리틀 시절에는 나도 하루쨩이라고 불렀고, 나는 의식적으로 생각을 정리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는 그 말에 살짝 넋이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루쨩이 원래 에이쨩이랑 친했다고 했던 게 진짜라니...”
“하루카...를 싫어하는 건 아니라니까.”
애초에 하루카가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할 사람도 아니고, 어쨌든 나도 키요미네 하루카의 소꿉친구인데 말이다.
“하지만, 하루쨩 볼 때마다 엄청 싸늘했잖아~.”
지그시 나를 쳐다보며 케이가 말한다.
“그건...”
솔직히 말하자.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케이도 케이지만, 하루카한테는 그것보다 더 심하게 굴었으니까.
“...잘못했어.”
할 수 있는 말이 결국 이 말밖에 없었다.
솔직히 둘에게 상처를 줬다는 자각은 확실히 있었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둘을 마주 보는 게 힘들어서 필요 이상으로 험하게 굴었다.
“하지만, 정말... 싫어하는 건 아냐.”
싫었다기 보단... 차라리 미움받고 싶었다는 게 정답일 것이다.
케이에게도, 하루카에게도, 차라리 미움받는 게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았어.
나는 캐치볼 도중인 걸 알면서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럼 나중에 하루쨩한테 직접 말해줘. 분명 기뻐할 걸?”
케이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한다.
마지막에 장난스럽게 덧붙이긴 했지만, 어쨌든 사과할 거면 당사자한테 하라는 소리였다.
“노력...해 볼게.”
하루카한테 제대로 사과하는 게 맞지, 나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수긍했다.
케이와 대화를 했으니, 하루카와도 대화를 하긴 해야 할 거고.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뒤, 얼굴을 들자마자 곧장 날아오는 공을 잡아채며 생각했다.
일단 하루카와 대화하는 건 나중에 생각하고, 이야기를 마저 하자.
“하여튼 이 포지션 저 포지션 다 해봤어. 결과적으로 보결의 보결의 보결 같은 느낌이었지만.”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 아니니 연습만 주구장창 할 뿐, 실제 경기에 나선 적은 거의 없었다.
“주로 맡은 포지션은 어디?”
“어렵네. 난 평소에는 비는 포지션에 들어가는 편이었어서...”
글러브도 올라운드 글러브로 샀고 그만큼 하고 싶다고 생각한 포지션이 딱히 없었다고 할까, 애초에 계속 선수를 하는 게 내 목적이 아니었다 보니 정말 온갖 포지션에 다 들어가 봤다.
“그나마 수비에서 제일 낫다는 평가를 받았던 건 투수를 했을 때였던 것 같긴 한데...”
“진짜로?”
“하루가 어떻게 던지는지 쭉 보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나는 하루가 아니니까 당연히 하루처럼 던지는 건 무리지만, 본 게 있다보니 어떻게 던지는 게 좋은지는 얼추 알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근데 내가 하루처럼 던졌다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면 안 돼. 그나마 평가가 좋았다는 거지, 평소에는 그냥 벤치에서 구경만 하는 신세였으니까.”
나는 과거를 되짚으며 살짝 정신이 없는 와중에 대단하다는 듯 쳐다보는 케이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오해하면 곤란했다, 나는 둘이랑 다르게 선수로서 재능이 있는 편이 아니었으니까.
“난 그나마 동체시력은 좋은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타격에서 엄청 큰 도움이 된 것도 아니고, 전체적으로 낙제생에 가까웠다고 할까...”
선구안이 좋으니까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가긴 했지만, 그 이상의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놈의 운동 신경 탓에 알고도 쳐야 한다는 걸 알아도 제대로 못 쳤으니까!
그래도 동체시력이 좋은 건 지금까지도 내게 큰 도움이 되고는 있지만, 하여튼...
“...부족한 게 맞으니까, 환상 같은 거 갖지 마.”
“너무... 자기 평가가 낮은 거 아니야?”
“네가 기억이 없어서 그래.”
“지금은 무난하게 하고 있으면서.”
케이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공을 잡아내더니 공과 나를 번갈아 보며 눈을 깜빡였다.
“네가 잘 던져줘서 그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날아오는 공을 힘겹게 잡아냈다.
무난하게 잘하고 있는 케이랑 다르게, 나는 던지는 것도 잡아내는 것도 조금만 집중하지 않으면 어긋날 것 같다.
케이는 나를 지그시 쳐다보며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하지만, 애초에 캐치볼 오랜만인 거 아냐?”
“그건... 그렇지.”
아무래도 오랜만이다.
케이랑 하루카를 제외하면 캐치볼을 같이할 사람도 없는데, 그 둘을 한사코 밀어내고 있었으니 할 기회가 있었을 턱이 없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이 정도면 잘하는 것 같은데.”
“근데 뭔가... 이 정도로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건 거북해.”
칭창받는 게 싫은 건 아니지만, 이럴 때는 좀 칭찬받을 게 아닌데 칭찬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셋이서 캐치볼 할 때도 내가 제일 못했단 말이야.”
“그건 어쩔 수 없는 거 아닐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흐린 케이는 못 말린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생각이 났어! 다음에 셋이서 캐치볼 하자!”
“왜 결론이 그렇게...”
캐치볼도 이래저래 미숙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왜 이야기가 그쪽으로 튀는 건데.
“어릴 때도 셋이 캐치볼 했는데, 지금도 할 수도 있잖아?”
하다 보면 좀 늘지 않을까? 케이가 눈을 반짝이며 씨익 웃었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그걸 핑계로 나랑 놀고 싶은 거잖아.
“사양할게...”
옆에서 보는 게 더 좋아, 나는 제발 그러지 말아 달라는 얼굴로 고개를 작게 저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어. 직접 몸을 움직이면서 노는 것보다는 옆에서 지켜보는 게 좋아.”
사이에 껴서 함께 이리저리 뛰어다니기에는 운동 신경이 엉망이니까.
생각해보면 이것도 전부 운동 신경 탓이네.
“용케 리틀 시절에 선수를 했네.”
“아까도 말했지만, 이래저래 도와주고 싶었으니까.”
운동하면 몸에 좋은 것도 사실이고, 나는 작게 덧붙이며 말했다.
사실 케이한테는 입도 뻥끗 안 했지만, 아침 트레이닝 정도는 지금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운동 신경이 없다지만, 체력도 없으면 그건 곤란하니까.
말하면 같이 돌자고 달라붙을 것 같아서 말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그런 내 생각은 꿈에도 모를 케이는 셋이서 하는 캐치볼에 대한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나를 보다가 포기한 듯 대화 주제를 돌렸다.
“그럼 어릴 때는 주로 뭐 하고 지낸 거야?”
“공부하거나 야구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책을 읽었어.”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라 바로 답했다.
“어울려 노는 데에는 그다지 적성이 없어서 말이야. 대체로 너랑 얘들이 밖에서 노는 걸 구경하면서 책을 봤지.”
지금도 책 읽는 건 좋아한다.
애초에 야구하기 전에 유일하게 내가 열심히 한 게 독서였으니까.
그건 지금도 딱히 다를 바가 없어서, 할 일이 없거나 조금 쉬고 싶으면 무조건 책을 손에 쥐었다.
“책 읽는 모습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평소에는 도서실 가서 읽으니까.”
“설마 매일 찾아가면 반에 없었던 게 도서실 가서였어?!”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놀라는 케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교실은 시끄럽잖아.”
교실은 책을 읽기에는 시끄러워서 최악이었다.
그게 아니어도 시끄러운 곳보다는 조용한 곳을 더 좋아해서 나는 사람이 많은 곳을 막 선호하지도 않았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느긋하게 책을 즐기는 게 좋았다.
케이는 내 생각을 이해한 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이었다.
“주로 어떤 책을 읽어?”
“사전 같은 것도 좋아하긴 하지만, 역시 소설이 제일 좋은 것 같아.”
모든 소설이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소설 속 세계는 상냥하니까.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마지막에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으니까 좋았다.
“제일 좋아하는 소설은?”
“별의 왕자님.”
“아, 알아.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 나오는 작품이잖아.”
“맞아. 원제는 Le Petit Prince, 어린 왕자. 그 제목대로 어린 왕자님이 주인공인데...”
나는 잠깐 말을 흐리다가 이내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나, 그 책을 아주 어릴 적부터 좋아했어.”
처음 읽었을 때부터 책에 푹 빠져서는 밥도 안 먹고 읽으려고 해서, 엄마가 호호 웃는 와중에 케이가 언제까지 그것만 읽을 거냐고 방에서 끌고 나온 적도 있었다.
“읽을 때마다 책에 대한 감상이 바뀌더라. 그 와중에 왕자에게 공감하기도 하고, 여우에게 공감하기도 하고, 언젠가는 둘 다 싫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200페이지도 채 안되는 그 책에는 정말 많은 게 담겨있어서, 읽는 걸 반복할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는 그 책이 싫어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싫어졌던 시절에도 나는 여전히 그 책을 읽고 있었고, 울고 웃으며 결국 그 책을 좋아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생각했지. 모든 어른들은 한때 어린이였을 텐데,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왜 별로 없을까.”
내가 싫어진 건 사실 책이 아니라, 세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으니까.
자신들이 한 때 어린이였다는 사실을 잊고 무심하게 상처 주는 어른들이, 그런 어른들로 가득 찬 세상이 싫었던 거다.
나는 케이를 쳐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말했다.
“있잖아, 케이.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아.”
“에이쨩...”
눈을 크게 뜬 케이가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부른다.
나는 그런 케이를 보며 말을 덧붙였다.
“모든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을 소중히 여길 수 있었다면,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를 줄 일도 없었을까.”
항상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서, 우리는 쉽게 그것의 중요성을 간과한다.
그래서 손쉽게 그것을 짓밟고, 상처를 준다.
잘못됐다고 알면서도, 괜찮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게 된다.
중요한 게 눈에 보였더라면, 세계는 좀 더 상냥할 수 있었을까.
“케이.”
나는 케이를 불렀다.
“질문을 하나만 더 하자.”
카페에서, 사실 케이의 말을 듣고 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은 질문이 하나 있었다.
케이의 손에 들린 공을 가만히 응시하면서,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물었다.
“야구가 좋아?”
과거의 네게 야구란 건 분명 즐겁기보단 괴로운 것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기억을 잃고서 처음에 야구 같은 건 하고 싶지도 않아 했으니 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네가, 지금은 야구를 좋아하고 있을까.
“좋아.”
그렇게 생각하는 내게 너는 지금 야구를 좋다고 말한다.
“모두랑 하는 야구는 즐겁고... 지금은 모두랑 함께 고시엔을 노리고 싶다고 생각해.”
야구가 즐겁다고, 계속 하고 싶다고, 처음 기억을 잃었을 때를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을 입에 담는다.
그걸 보고 나는...
“다행이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야구가 네게 괴로운 것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나는 그 사실이 기쁘다.
“에이쨩은...?”
“야구따위... 정말 싫어.”
조심스러운 케이의 물음에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괴로운 일이 너무 많아서, 너무 많이 상처받아서, 처음의 약속이나 각오가 흐려져 버려서, 외면하게 되어버려서, 싫다.
이런 스포츠 차라리 안 하면 좋을 텐데.
다들 왜 괴로워하면서, 상처받으면서 계속하는 걸까.
그런데...
분명 그렇게 생각하는데...
“하지만, 정말 좋아.”
...동시에 어쩔 수 없이 좋았다.
배트로 공을 칠 때 들리는 소리라던가, 공을 글러브로 잡을 때 들려오는 소리, 날아오는 공의 궤적, 필사적으로 달려서 루를 밟을 때의 짜릿함, 모두과 힘을 합쳐 만들어내는 승리, 그 모든 게 좋았다.
무엇보다 그때, 처음 야구하겠다고 했던 때, 그때의 풍경이 너무 눈부셨으니까.
“어쩌면 나는 네가 말하지 않았더라도 결국 다시 매니저를 하겠다고 했을지도 몰라.”
난 분명 그 눈부심에 눈이 멀어버린 거겠지.
그걸 행복이라고 말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말해야 할지,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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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
공원에서 캐치볼을 끝내고 역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하품을 하며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좋은 일이 많았다 보니 기분은 좋았지만, 워낙 오랫동안 밖을 돌아다닌 탓에 이미 녹초였다.
“목적 달성 축하해, 마스터.”
집 돌아가면 바로 잘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서 지장이 말을 걸어왔다.
나는 볼을 부풀리며 지장을 쳐다봤다.
“게임 센터 이후로 아무 말도 안 하더니 드디어 말한다.”
“내가 말해봤자 방해만 됐을 테니까.”
지장도 에이쨩이랑 대화하면 좋았을 텐데, 방해됐을 리가 없잖아.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지장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갑자기 교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뭐, 그렇긴 한데.”
에이쨩이 못 듣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답했다.
그래도 지장이 뭐라도 말했으면 내가 에이쨩에게 전달해줬을 것이다.
지장도 ‘카나메 케이’니까 분명 대화했으면 좋았을 텐데, 계속 아쉬움이 남았다.
“나랑 대화해봤자 딱히 의미는 없었을걸.”
어차피 난 사라질 건데, 지장이 그리 덧붙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 진짜! 계속 사라질 거라고만 말해.
그래서 지장은 어땠어? 나는 생각으로 의사를 전달하며 지장을 지그시 쳐다봤다.
“뭐가?”
에이쨩이 이것저것 솔직하게 말해줬잖아. 다행이라 생각하지 않았어?
지장도 에이쨩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팔짱을 끼며 빨리 말하라며 고개를 까닥였다.
“어떨까?”
“그러지 말고.”
이 정도는 말해줄 수 있잖아, 마음 같으면 지장의 팔을 붙잡고 물고 늘어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해.”
다행히도 작게 한숨을 쉰 지장이 마지못해 내게 답을 줬다.
“에이는 숨길 수 있으면 전부 숨기려고 하니까.”
“그 정도야?”
“작정하면 쌍둥이인 우리라도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채기 어렵지.”
마스터도 느꼈을 거 아냐? 지장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실제로 나름대로 눈치껏 에이쨩의 생각을 파악해 보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대체로 확신한 적은 잘 없었다.
뭔가 많이 숨기고 있다고 진작에 생각은 했는데, 그 이상은 알 수 없었고 말이야.
그래서, 오늘 대화를 많이 했다는 게 더 중요한 거기도 했다.
카페에서도 그랬지만, 공원에서도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더 많이 말해주면 좋겠다...”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기는 하지만, 이번에 대화한 것처럼 계속 말해준다면 분명 더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때였다.
“케이.”
“에이쨩, 왜?”
히히덕거리고 있는 나를 불러세우는 에이쨩의 목소리에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같이 가. 너무 앞서가고 있잖아.”
지장이랑 이야기하는 게 신경쓰였던 걸까 싶었는데, 예상과는 다른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나는 그제야 내가 에이쨩보다 1m는 앞서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장이랑 이야기 하는데 정신 팔려서 전혀 몰랐어, 나는 급하게 에이쨩 옆으로 뛰어갔다.
“미안해. 혹시 따라오는데 힘들었어?”
“그건 아니고.”
급하게 묻자 에이쨩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에이쨩은 잘 보면 아픈 티도 잘 안 내는 편이라서 나로서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다리 아프면 꼭 말해주기!”
“괜찮은데...”
“혹시 모르잖아.”
나는 고개를 젓는 에이쨩을 향해 신신당부했다.
에이쨩은 한숨을 작게 쉬더니 알겠다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해가 져서 어두운 탓에 표정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안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에이쨩은 오늘 많이 즐거웠어?”
“...즐거웠어.”
보라, 지금 말하는 목소리도 조용하지만 딱히 까칠하다는 느낌은 없지 않은가.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다음번에는 다른 얘들도 데리고 다 함께 키치죠지에 오자!”
“...나는 빠지고 싶은데.”
“왜?!”
지금은 좋다고 해야 할 타이밍이잖아, 나는 시선을 피하는 에이쨩을 빤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에이쨩은 시선을 돌린 채로 스마트폰을 본다 싶더니, 중얼거리듯 답했다.
“내가 있으면 다들 신경 쓰느라 재밌게 못 놀걸?”
“그걸 왜 에이쨩이 판단하냐고~.”
안 되겠다, 나는 계속 시선을 돌리고 있는 에이쨩을 보며 선언했다.
“거부권 없어. 다음번에도 같이 가기야!”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에이쨩이 곤란한 듯 말을 흐렸지만, 이건 양보할 수 없었다.
나는 에이쨩이 다른 얘들이랑도 친하게 지내면 좋겠단 말이야!
오늘의 반의 반만 해도 다들 에이쨩과 편하게 있을 텐데!
“...어쩔 수 없네.”
알겠어, 에이쨩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헤헤.”
나는 그런 에이쨩을 보며 따라 웃었다.
“고마워, 에이쨩.”
“나야말로.”
그렇게 천천히 키치죠지에서의 하루가 막을 내린다.
집에 돌아갈 때까지, 우리는 쭉 웃고 있었다.
부디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 날도, 이렇게 서로 마주 보며 웃을 수 있기를.
앞으로는 더 행복한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나는 믿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