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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하고는 결혼할 수 없어

 

 

뺨을 쓰다듬는 거친 손길에 눈을 뜨면 술에 얼큰하게 취한 네가 보인다. 일부러 모르는 척 몸을 옆으로 돌리자 다시 몸이 뒤집힌다. 못 들은 척 이불을 정수리 끝까지 끌어올리면 너는 있는 힘껏 나를 흔들어 깨운다. 이놈의 돼지너구리. 술에 취하면 곱게 들어와서 씻고 잘 것이지 이게 무슨 행패람.

 

“초밥 사 왔어. 먹어”

 

초밥을 사 오는 것이 네 술버릇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네 술버릇에 대해 말하면 다들 귀엽다며 웃지만 당사자인 나는 도저히 웃을래야 웃을 수가 없다.

 

그래. 초밥은 충분히 사 올 수 있다. 문제는 양이다. 6p, 8p가 들어있는 작은 세트를 사 오는거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이 사람이 사오는 초밥은 언제나 명절 때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특등급 초밥 세트다.

 

그리고 나는 꼼짝없이 그걸 먹어야 한다. 한 번은 정말 먹기 싫어서 끝까지 먹지 않고 버텼던 적이 있었다. 웬일로 조용하다 싶었지만 아니나다를까, 요란하게 비닐을 부스럭거리며 포장을 뜯고는 그 자리에서 내 입에 초밥을 욱여넣으려고 하는 네 행패에 나는 두손 두발을 들었다.

 

가장 참을 수 없는 점은,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너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심한 숙취에 침대에서 꿈틀거리는 너에게 전날 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말해주면 너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들고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며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어이가 없어서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 거냐고 추궁했지만 너는 정말로 모르겠다며 눈썹을 아래로 축 늘어뜨리고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사람인 것처럼 굴었다.

 

“얼른 먹어. 식어”

“초밥도 식어?”

“따듯할 때 먹어야지”

“초밥인데?”

 

하는 말마다 족족 딴지를 거는데도 너는 푸슬푸슬 웃음을 흘리며 젓가락을 나에게 내민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초밥과 얼굴이 벌건 너를 번갈아 바라본다. 내가 젓가락을 들 때까지 너는 꼼짝도 하질 않는다. 야심한 밤에 이걸 어떻게 다 먹냐고 아무리 하소연해도 네 귀에는 닿질 않으니 소용이 없다.

 

너는 뿌듯한 표정으로 내가 초밥을 먹는 걸 구경한다. 마치 칭찬을 바라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돌이켜보면 너와 나의 중요한 순간에는 늘 초밥이 있었다. 사귀고 나서 아버님께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처음으로 같이 명절을 맞았던 때, 시즌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것 말고도 인생의 중요한 순간 혹은 축하할만한 일이 생겼을 때 늘 메뉴는 초밥이었고 거기에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너에게 초밥은 가족의 유대를 나타내는 음식이다. 그런 걸 생각하면 네 술버릇도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네가 왜 초밥을 사 왔는지 안다. 오늘은 시리즈 결승전이 있는 날이었다. 연장의 연장, 작전의 작전을 거듭하고 투수와의 교감을 통해 산출한 리드가 통하지 않았다. 상대 타자가 힘 있게 친 공이 호쾌한 궤적을 그리며 담장을 넘어갔다.

 

투수는 끝내 고개를 들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우승을 코앞에서 놓치고 모두가 망연자실한 순간, 너는 마운드로 가서 이제 겨우 어른이 된 어린 투수를 달랬다. 보는 눈이 있으니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했지만 너도 속이 엄청 쓰렸을 것이다.

 

“안 속상해?”

“응? 뭐라고?”

 

이럴 때마다 나는 네가 정말 취해서 내 말이 안 들리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못 알아듣는 척을 하는 건지 늘 궁금하다. 술의 힘을 빌려 이런저런 투정을 늘어놓을 법도 한데 끝까지 속을 드러내지 않는 게 참 너다우면서도 징그럽게 얄미웠다.

 

젓가락을 내려놓자 너는 기다렸다는 듯 내 왼손 약지를 만지며 꼬부라진 혀로 뜬금없는 고백을 펼친다.

 

“있잖아, 우리, 결,혼할까?”

“왜?”

“많이 생각해 봤는데 역시 네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없으면 안 되는 건 서로 마찬가지잖아. 그러니까 우리 결혼하자. 나하고 결혼해 줘”

 

너의 고백엔 끝과 시작의 경계가 모호하지만 결국은 사랑이다. 결혼하자. 결혼해 줘. 사랑해. 너는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다가 끝끝내 취기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식탁에 엎어져 잠들어버렸다.

 

“바보”

 

초밥을 사 오는 건 괜찮다.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것도 괜찮다. 다른 건 기억 못 해도 좋다.

 

하지만.

 

“나는 너하고 결혼 못 해”

하지만 너와 내가 이미 결혼한 사이라는 건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결혼하고 벌써 5년이 넘었는데 너는 언제까지 이럴는지.

 

“여보. 들어가서 자.”

 

귓가에 속삭이자 너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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