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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래는 술을 그렇게까지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술자리에 나가는 일이 생기면 날이 샐 때까지 술을 마시다 초췌해진 얼굴로 집에 가거나 길거리에서 토를 하는 것과 달리, 가능한 과음을 하지 않으려고 조절하는 편에 가까웠다.

 

“아, 왔다. 박문대! 여기야, 여기!”

 

달래야, 일어나. 박문대 왔어. 으응…. 5분만 더어…. 하지만 그런 정달래도 가끔 과음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술에 꼴아 책상에 머리를 박은 채 웅얼거리고 있는 정달래를 데리러 오는 것은 항상 오랜 친구이자 대학 동기인 박문대의 일 중 하나였다.

 

“정달래, 일어나. 집에 가게.”

“으음…. 아, 뭉대다. 뭉대야―, 박뭉대―.”

 

익숙한 목소리에, 정달래는 책상에 박고 있던 고개를 들어 헤실헤실 웃으며 박문대를 바라보았다. 술에 제대로 취한 것인지 이름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꼬이는 혀는 덤이었다. 그런 정달래의 모습을 본 박문대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뭉대 화났어? 내가 미아내~. 화내지마, 응? 박문대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달래는 그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고개를 들었다. 밀어내지 않는 걸 보면 화난 건 아닌데…. 박문대의 표정 따위는 제대로 보지도 않았으면서 자신에게 한없이 상냥한 그의 태도에 정달래는 제멋대로 그런 생각을 했다.

 

“화 안 났어. 그러니까 이제 일어나, 집에 데려다줄게. 봐줘서 고맙다. 얘는 이제 내가 데려갈 테니까 너네도 가봐라.”

“그래, 수고해…~.”

 

손을 대충 흔들며 박문대에게 연락한 친구들은 둘을 힐끔거리다 술집을 벗어났다. ‘박문대 쟤 화난 것 같은데….’같은 생각을 한 것은 덤이었다. 차가운 공기가 머리카락을 휘날리게 하여 두 사람은 눈을 찌푸렸다. 손을 비비며 손에 체온을 올리려는 듯하다가, 친구 중 한 명이 궁금증이 생겼다는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근데 왜 넌 달래 술 취하면 박문대 부르냐?”

“엉? 쟤네 사귀잖아.”

“엥? 무슨 소리야. 둘이 사귀긴 뭘 사귀는데? 나도 그래서 저번에 달래한테 물어봤는데 둘이 안 사귄다고 했는데.”

“…뭐?”

 

…그럼 박문대 걔는 왜 매번 오는 건데?

 

 

“뭉대야, 박뭉대.”

 

뭉대, 화났지. 내가 또 술 마시고 취해서. 대답 좀 해주라, 응? 박문대의 등에 업힌 채, 정달래는 쉬지도 않고 입을 조잘거렸다. 돌아오는 답이 없어도 조잘거렸다. 그러다 제 눈앞에 보이는 노란 뒤통수를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곧장 돌아오지 않는 답에, 정달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술을 살짝 삐죽였다가 이내 박문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때였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데.”

“응…?”

“너 짜증 나는 일이 있으면 술 취할 정도로 마시잖냐.”

“허어…. 뭉대 똑똑하다…. 어떻게 알았어?”

“내가 너랑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닌데 그것도 모를 리가. 그래서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데.”

 

으음…. 듣고 화 안 낼 거야? 내가 너한테 화를 왜 내. 하지만, 뭉대 지금 화났잖아. ……. 안 났으니까 얘기 해봐. …공백이 길었는데. 아니다. 시시콜콜한 잡담 같은 작은 다툼 후, 정달래는 박문대의 어깨에 얼굴을 더 깊게 묻었다. 박문대의 어깨가 가볍게 경련했다.

 

“왜 그ㄹ….”

“너, 왜 요즘 나 피해?”

 

네가 요즘 나 피해서 그랬어. 그럼 네가 나 데리러 와주니까, 얘기도 할 수 있고…. 어깨에 깊게 묻은 정달래의 입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났다. 무슨 표정을 짓고 하는 말인지 알 수가 없어서, 박문대는 옆으로 같이 걸을 걸 그랬다고 생각하며 살짝 후회했다. 왜 피했냐고? 그걸 어떻게 말하는데. 박문대는 입술을 잘근 씹었다. 최대한 티 안 나게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나는, 너랑 꽤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오래 봤구…. 혹시 내가 뭐 잘못했어?”

 

박문대의 인상이 살짝 구겨졌다. 네가 잘못한 게 뭐 있겠냐. 순전히 내 문제지. 그렇게 생각하니 또 이렇게 업고 간 것이 차라리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떨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달싹이며 박문대는 할 말을 골랐다. 무어라 말해야 네가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이해하긴 할까. 오랜 시간 정달래를 봐온 박문대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무슨 설탕이 섞인 말을 하든, 정달래는 속지 않을 것이란 걸. 달콤한 설탕 속에 꼭꼭 숨겨둔 쓴 진실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절대 뒤로 물러서지 않을 것까지도.

 

그렇다고 사실을 말하자니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X발, 내가 널 좋아하는 것 같아서 피했다고 어떻게 말하는데. 관계 더 나빠질 일 있냐? X발, 대가리 좀 굴려라.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대가리 아니냐. 박문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좋아해서 피해 다녔다.’ 이게 얼마나 구차한 변명인지 알면서도 이게 사실이라 말할 수 없었다. 정달래는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박문대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정달래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분명 자신과의 관계를 지키고 싶어 거절하고도 평소와 같은 스탠스를 취하려고 하리라는 것이었다. 그건 정말로 최악이었다. 거절당해 어색한 것보다 이도 저도 못 한 관계가 되는 것이 박문대는 더 싫었다. 그래서 이 감정이 죽을 때까지만 최대한 만나는 걸 줄이자고 생각한 것이었는데….

 

“…그런 거 아니니까 이상한 생각 하지 말고.”

 

그게 좀처럼 마음같이 안됐다. 만남을 줄이니 오히려 더 보고 싶었다. 학식이 괜찮다고 했으니 지금이면 학식을 먹고 있겠구나, 저번에 사고 싶다고 했던 열쇠고리는 샀을까, 지금은 뭐 하고 있을까, 등등…. 한 번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들을 점점 부피를 키워나가, 박문대는 자주 애꿎은 베개를 때리곤 했다. 정말 다짐대로 되는 게 없었다. 오늘도 그랬다. 술에 취한 정달래 좀 데리러 와 줄 수 있냐는 연락을 받았을 때, 또 뭐가 네 기분을 안 좋게 했을까 싶어 화가 나면서도 동시에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기도 했다. 입안이 바싹 마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박문대는 술에 취한 겸 제대로 된 답을 안 주는 자신을 정달래가 그저 넘겨주길 바랄 뿐이었다.

 

“그럼, 그럼 뭔데?”

 

나한테 말 못 해줄 얘기야? 묻고 있던 고개를 든 것인지 오른쪽 어깨가 살짝 가벼워졌다. 좋아하는 나긋한 목소리가 닿는 귓가가 간지러웠다. 애새끼도 아니고 이런 거에 설레발 치지 마라…. 그런 생각을 하며 박문대는 이번에도 정달래의 술기운에 의지하며 입을 열었다.

 

“난 너 많이 보구 싶단 말이야. 좋아하니까….”

 

…열려고 했다. 그러나 정달래의 입에서 나온 말이 더 빨랐다. …뭐? 박문대의 발걸음이 멈췄다. 이런 전개는 그가 예상하던 그 어떤 시나리오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었으니까. …너 귀 빨개졌어. 알아? 좋다는 듯 쿡쿡 웃는 소리가 귓가에 콕콕 박혔다. 박문대는 역시, 옆에서 같이 걷는 편이 더 나았을 것으로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이 예상치 못했던 시나리오에 대한 답을 전해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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