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아이렌이 사랑에 빠졌다.

그 소문이 돌기 시작한 건 일주일도 되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그 발 없는 말은 모든 기숙사의 전 학년이 다 아는 최고의 가십이 되었다.

학원에 단 하나뿐인 여학생의 스캔들이라니. 이 얼마나 가슴 뛰는 이야깃거리인가.

 

‘대체 누구랑?’

 

출처 모를 소문을 들은 학생들의 대부분은 그 대상이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의 학생이 아닐까 생각했다. 특히 그와 함께 붙어있는 일이 잦은, 옥타비넬의 2학년 학생 세 명 중 하나일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

…하지만 세상은 요지경이라 하던가.

잔혹한 진실은, 소문을 믿는 모두를 경악에 빠트리고 말았다.

 

 

*

 

 

“응? 저건…. 아이렌?”

 

어느 맑은 날 방과 후. 도서관 앞을 지나가던 멜로드는 바깥의 벤치에 앉아있는 아이렌을 보고 멈춰 섰다.

대체 뭘 보고 있기에 저렇게 웃고 있는 걸까.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렌의 얼굴은, 그 어느 때 보다 화사하고 수줍어 보였다.

 

‘이러니 그런 소문이 도는 거구나.’

 

최근 도는 소문을 지나가다 들어 알고 있던 멜로드는 호기심에 못 이기고 아이렌에게 다가갔다.

원래 소문이라는 건 실제를 확인하기 전에는 믿는 게 아니다. 구설수엔 진절머리가 난 그는 제 눈으로 화면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쭉 내밀었다가,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어?”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낸 그는, 아이렌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화면 속 남자를 바라보았다.

스마트폰에 갇혀있는 남자는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의 학생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 그 남자를 알고 있었지.

 

“멜로드, 왜 소리도 없이 다가와서….”

“너, 언제부터 아이돌을 좋아했던 거야?”

 

대체 얼마나 당황했기에 그 멜로드 터빈이 말까지 자른 걸까. 두 눈을 동그랗게 뜬 그는 아이렌의 말엔 대답하지도 않고 물었다.

 

“뭐야, 내가 아이돌을 좋아하는 게 이상해?”

“아니, 그건 아니지만….”

 

연예인을 좋아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애초에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연예인이니, 당연히 이 세상엔 그들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게 이치에 맞았지.

하지만 그게 아이렌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거야 아이렌은 유행이나 대중문화 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고, 노래도 특정 장르만 듣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듣다 보니 무언가 하나만 열렬히 좋아하는 건 잘 상상이 가지 않는 걸 어쩌겠나.

 

‘게다가 이 아이돌은….’

 

물론 멜로드가 이렇게나 놀란 건 단순히 아이렌이 아이돌을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그가 좋아한 아이돌이 누구인지 알기 때문이었지.

만약 아이렌이 좋아한 연예인이 네쥬 르방셰였다면, 빌이 떠올라 탄식이 나왔을지언정 그리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화면 속의 저 아이돌은, 빌이나 네쥬처럼 스타성 있는 배우가 아니었다.

 

“이 그룹, 데뷔한 지 얼마 안 되는데 용케 아는구나 싶어서. 넌 연예계에 대해선 잘 모른다 생각했거든.”

“아. 그건 그래. 나도 빌 선배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주워듣지 않았으면, 아마 이 그룹이 데뷔한 것도 몰랐을 테니까.”

 

보던 영상을 중지시킨 아이렌은, 꽤 들뜬 모습으로 멜로드를 향해 일장 연설을 이어나갔다.

 

“그렇지만 난 보고 말았단 거지, S 군의 직캠을…. 나, 몰랐는데 춤 잘 추는 남자 좋아하더라? S 군은 춤도 잘 추고 체격도 좋은데 얼굴은 꼭 소년 같은 게 반전 매력이라….”

 

아. 이건 사랑에 빠진 게 맞네. 유창하게 떠드는 아이렌을 보던 멜로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고 마른세수를 했다.

자신이야 아이렌에게 흑심이 없으니 이런 행동도 귀엽다며 웃어넘길 수 있는 거지, 제 선배들이 이 꼴을 보면 뭐라고 할까.

 

‘특히 플로이드 선배는, 절대 반기지 않을 거 같은데….’

 

멜로드의 그 우려가 단순한 기우에서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치 언젠가는 찾아올 재앙이라는 듯, 아이렌에 대한 소문의 진실은 곧 그의 선배에게도 닿고 말았다.

 

 

*

 

 

“저기, 아기새우가 요즘 이상한데 왜 그런 거야?”

 

이런. 알아버렸구나.

모스트로 라운지에서 오늘의 장사 준비를 하던 멜로드는, 선배들의 대화를 귓등으로 듣고 어깨를 떨었다.

 

“무슨 소립니까? 플로이드.”

“들어봐, 아줄. 글쎄 아기새우가 말이지? 어제 뭔가 열심히 보고 있길래 뒤에서 덥석 안아줬는데, 갑자기 ‘놀랐잖아요!’라고 소리치는 거 있지?”

“…그건, 당신이 잘못한 것 아닙니까?”

 

아줄은 뭐가 문제냐는 듯 대꾸하지만, 멜로드는 왜 플로이드가 저리 억울해하는지 알고 있었다.

 

“아기새우는 나한테 화 안 내.”

“그건 아이렌 씨가 그냥 봐준 거지, 세상에 화를 내지 않는 사람 같은 건 없습니다.”

“아니, 아기새우는 나한테 화내지 않는다니까? 게다가 고작 누가 춤추는 영상 보던 걸 방해했단 이유로 화를 내다니, 절대 이상하단 말이지.”

“…하아?”

 

애초에 그건 화낸 게 아니다. 그냥 놀라서 반사적으로 말한 쪽에 가깝지 않나.

멜로드도 아줄도 그리 생각했지만, 제 생각을 당사자에게 말하진 못했다. 지금의 플로이드는 너무나도 억울해하는 중이라, 직언 같은 건 들리지 않을 게 분명했으니까.

 

“아기새우, 설마 나 말고 다른 남자가 더 좋아진 건가?”

“아니. 어째서 거기까지 생각이 전개되는지 놀라운 수준입니다만.”

“아기새우의 1등은 나여야 하는데.”

“제 말 듣고는 있는 겁니까?!”

 

‘아. 불쌍한 사감.’ 멜로드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 눈가를 닦았다. 자신이야 플로이드가 3년 보고 말 선배니까 웃으며 넘어갈 수 있지, 만약 오래전부터 봤고 앞으로도 볼 친우였다면 웃지는 못했으리라.

보다 못한 멜로드는 닦고 있던 접시를 내려다 놓고 플로이드에게 다가갔다.

 

“선배. 제게 좋은 생각이 있어요.”

“뭐야, 소라게 군?”

“정 그렇게 걱정되면, 직접 물어보는 게 어때요? 아이렌이라면 선배에게 거짓말을 안 할 테니, 그게 빠르지 않겠어요?”

 

확실히 그의 말은 사실이었지만, 저 방법은 너무 직설적이지 않나. 아줄은 후배의 조언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찌푸렸지만, 플로이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만약 아기새우가 거짓말하면?”

“그렇다면 그건 그대로 하나의 대답이 되지 않을까요?”

“아하?”

 

플로이드의 채도 다른 오드아이가 위험하게 빛난다. 아줄은 그게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멜로드는 그 위험함을 얕보고 있었다.

 

“나, 아기새우에게 다녀올게?”

“잠깐! 플로이드! 당신, 오늘 근무 당번이면서 어딜…!”

“제이드에게 대신 부탁해~!”

 

누가 말릴 틈도 없이 플로이드는 후다닥 사라져 버린다. 눈 깜빡했을 뿐인데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는 그를 보며 모스트로 라운지 안의 기숙사생은, 단 한 가지 생각만 했다.

 

‘아이렌…, 괜찮을까?’

 

아무리 의연하고 어른스러운 아이렌이라 해도, 플로이드가 작정하고 떼를 쓰면 곤란할 텐데. 게다가 그의 떼는 단순히 칭얼거리는 레벨이 아니었다. 플로이드 리치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다면 상대를 물리적으로 조르는 타입이었으니까.

 

‘뭐, 무슨 일이 터진다면 누구든 말려주겠지.’

 

이 학원에 아이렌의 편은 많았으니까, 만약의 상황에선 누구든 도와주리라.

걱정스러운 마음을 애써 외면하는 기숙사생 중, 유일하게 웃고 있는 것은 멜로드 뿐이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