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구지 쟈쿠라이와 드림주는 과거 연인(구 애인)관계라는 설정입니다.
최근에 따듯했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는 바람에 안 그래도 굳은 몸인데 고개를 드니 목이 더 뻐근하고 찬바람에 닿자 급하게 어깨가 들썩이며 움츠러든다. 인기가 많은 쟈쿠라이가 빤히 쳐다보는 대상이 되어버린 탓에 주변의 시선들도 사로잡힐게 뻔했다. 이미 그랬을지도 모른다. 자리를 피해야 한다. 주변을 둘러보지 않아도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허리 숙여 인사한 뒤 빠르게 걸어가려는데 뒤에서 급하게 따라오는 것 같았다. 다른 방향으로 갈까 싶어 방향을 돌리려다 몸이 따라주질 않아 몸이 휘청이며 넘어졌다.
“괜찮습니까?”
“괜찮을 리가… 있네요. 그만 가보세요. 어디로 가는 길 아니었나요?”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럼 조심해서 가세요.”
머리가 아파져 손바닥으로 얼굴을 한번 쓸어내린 다음 걸었다. 발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이를 악물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몇 발짝 걸었다. 팔을 붙들려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자 그는 숨을 내쉬었다. 그대로 끌리다시피 가다 발목이 아파 몸을 휘청이자 그대로 몸이 들린다. 고개를 푹 숙인 체 불어오는 바람 소리에만 들려온다.
긴 다리 덕분인지 금방 근처 공원에 도착한다. 바로 벤치에 몸을 내려주고 나서야 주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추운 날씨라 그런지 사람은 없었다. 붙어있다 떨어지니 몸이 빠르게 떨려온다. 허전한 목 위로 부드러움이 얹어진다.
“잠깐만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곧 오겠습니다.”
그러고선 바로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향한다. 분명 지금이 기회이긴 한데 그러다 만약… 우연히라도 다음에 만나게 된다면? 분명 좋은 상황은 아닐 거라 판단해 얌전히 기다리기로 한다. 목도리만 했을 뿐인데 몸이 따듯하게 느껴진다. 들어갈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 안 그래도 오늘은 오전 회의 때문에 일찍 출근했는데. 내일도 주말이겠다 친한 동생네에서 자고 들어갈까 했지만 그라면 오라고 하겠지만 갑자기 가는 건 실례니까. 눈앞이 점점 흐려지자 그대로 눈꺼풀을 내렸다.
연인의 초대로 함께하는 동료들과 만나게 되어 친해지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초반의 경계와 어색함도 모든 사라져 서로 편하게 호칭으로 주고받으며 웃으면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분위기가 좋으니 서로에게 소개를 하기 위해 부른 쟈쿠라이 본인도 안심을 하고 있었다. 사실 동료와 동료의 연인일 뿐이라 만약 분위기가 이상해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생각을 했지만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다.
대화가 오가며 표정이 밝으니 그는 제 연인의 손을 잡았다. 작은 손이 제 손안으로 들어오자 잠깐 놀란 그의 얼굴엔 바로 미소가 가득 찬다. 애정이 듬뿍 담긴 시선을 서로에게 보내고 있는 두 사람을 보는 라무다는 히죽 웃었다. 또 뭔가를 생각하고 있구나. 맞은편에 앉아있던 이치로와 사마토키는 같은 생각을 하며 라무다에서 한 커플 쪽으로 옮겨진다. 바로 하지 않는 걸 보아 어떤 타이밍을 노리고 하려고 기다리는 것 같은데.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행동을 멈추고 쟈쿠라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주변에서 아무 말도 안 하는걸 두사람은 잠깐 못 알아차린 것 같았다.
“좋아합니다.”
그 말을 들은, 쟈쿠라이를 제외한 모두의 반응이 순간 달라졌다. 두 명은 다른 의미로 웃고 두 명은 조용히 숨죽이고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설마 싶기도 했고 불안하기도 했으며 궁금하기도 했기에.
“쟈쿠라이는 내가 좋다 그랬잖아! 이젠 싫어진 거야?”
“그건 아닙니다, 라무다군.”
“아!”
제 뒤로 들리는 짧은 목소리와 이어지는 맞은편에서 웃음소리. 상황 파악을 못 하던 쟈쿠라이는 저를 보며 웃는 사마토키와 이치로, 그리고 저를 불렀던 라무다까지. 유일하게 들려오지 않는 목소리가 신경이 쓰여 뒤를 돌아보니 양손으로 제 얼굴을 붙잡는 그가 보인다. 쟈쿠라이가 급히 허리를 숙여 그와 시선을 맞춘다. 얼굴이 괜찮은지 확인하기 위해. 주변의 웃음소리가 커지니 그의 얼굴이 아니, 귀까지 빨개져 더 들 수 없었다.
사람이 피곤하면 가만히 있을 때 졸 수도 있다. 본인도 조금 전까지 그랬으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이런 꿈을 꾼 걸까. 본인의 잘못도 아니고 그냥 예전 일을 꿈에서 보여줬을 뿐인데 그는 머리가 복잡했다. 헤어지고 난 후 초반엔 이런 꿈을 몇 번 꿨던 기억은 있지만 그 후론 없었는데. 그때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듣고 싶지 않아도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이 많아서 그런 것 때문인 걸까 싶어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눈앞에 서로를 쳐다보는 것도 그 꿈 때문이라 여기면서.
잠깐 잠든 사이에 치료가 끝난 건지 신발을 직접 신겨주려던 쟈쿠라이와 눈을 마주쳤다. 발이 잡힌 탓에 빼려 했지만 자신이 하던 행동을 끝까지 하고 나서야 쟈쿠라이는 몸을 일으킨다.
“고마워요. 치료도 받았고 이젠 정말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혼자서 괜찮겠습니까?”
몸을 일으키려는데 내미는 손을 이번엔 거절하지 않았다. 잡고 일어나며 머리가 지끈거렸다. 갑자기 머리가 아픈 탓에 눈을 찡그리니 걱정하는 얼굴이 다가와 괜찮다며 손바닥을 내밀어 손등으로 얼굴을 가리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 그 탓에 택시 승강장까지 걸어가는 중 대화가 없이 걸었고 그러다 불던 바람 때문에 주춤하자 쟈쿠라이가 등을 받쳐준다.
등 뒤로 느껴지는 단단함에 쟈쿠라이를 올려다본다. 그때와 달라진 건 본인 뿐인 걸까. 한결같은 쟈쿠라이의 행동에 대해 생각하다 그의 팔이 떨려오는걸 알아차려 목도리를 돌려주려 양손으로 목도리를 풀고있는 동안 바람의 방향이 바뀐다. 등뒤에서 불던 바람이 갑자기 옆에서 불었고 그로 인해 쟈쿠라이의 긴 머리카락이 얼굴로 날아왔다. 쟈쿠라이가 괜찮냐며 물었고 놀랍기도 하고 아프기도 해 풀던 목도리를 놓치려던 걸 꽉 잡았다.
아파서 말도 못 하는 그는 조금 전 꿨던 꿈을 떠올리고 설마 진짜 꿈 때문은 아니겠지라고 생각을 하며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려다 목도리의 감촉을 느낀다. 왜 생각을 못 했을까 분명 만났을 때 쟈쿠라이는 목도리를 하고 있어 머리카락은 목도리로 고정이 되어있었다는걸. 쟈쿠라이 본인도 바람 때문에 머리카락이 엉망이면서도 저를 걱정하고 있자 그가 까치발을 들고 손을 뻗어 목도리를 둘러준다. 머리카락 맞은 것에 대한 분풀이 겸으로 얼굴까지 둘둘 말아 놓은 뒤 택시 승강장으로 걸어간다.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그가 손을 흔들고 택시에 탄다. 따스함에 등을 좌석에 등을 대고 창밖을 바라본다. 당분간은 보지 말자. 정말로. 그를 떠올리며 아팠던 머리는 점점 나아져 기분까지 좋아진다.
한편 쟈쿠라이는 조금 전 저를 향해 손을 흔들던 그의 얼굴이 예전에 보았던 조금 전과 비슷한 상황이었을 때, 2년 전쯤에 보았던 미소를 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헤어지고 난 후부턴 볼 수 없었던 그 미소를. 제게 목도리를 엉망으로 둘러줬음에도 고쳐 매지않고 그대로 둔 체 걸음을 옮긴다. 쳐다보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