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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는 제 품 안에 들어온 유라시엘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니까, 제 말을 들었어야 한다고 소리치는 일 또한 지금 상태에서는 할 수 없었다. 것보다 유라시엘이 제 쪽으로 더 가까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우선이었다.

 

 

 

*

 

 

 

“도둑질은 관두지 않았어? 카이사르.”

 

 

갑작스럽게 들린 말에 카이사르는 제 손에 있던 작은 브로치를 떨어트렸다. 노란빛의 보석이 박힌 채 주변에는 흰 보석으로 둘러싸인 브로치는 멀리서 봐도 비싼 값으로 보이는 물건이었다. 보석들에도 분명 제대로 된 이름이 있을 걸 알고 있지만, 아쉽게도 카이사르는 이를 알 정도로 귀한 물건과 보석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브로치를 보고도 노랗고 흰 보석이 박혔다는 말 외에 표현할 수 있는 게 없던 것이었다. 그보다 카이사르는 자신이 들은 말을 향해 어이없다는 듯 상대를 바라보았다. 놀란 탓에 정말 훔친 물건을 들킨 상황처럼 보여도 할 말이 없겠으나 자신이 방금 떨어트린 브로치는 절대 훔쳐서 손에 쥔 물건이 아니었다. 어이없다는 표정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바뀌어 정확히 제 이름을 부른 상대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떨어트린 브로치를 주우며 자신과 눈을 마주치는, 익숙한 상대가 있었다.

 

 

 

“유, 유라시엘…?!”

 

 

 

그는 자신과 같은 피스메이커 소속, 유라시엘이었다. 제 이름이 들리자 유라시엘은 고개를 까닥였다. 여전히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 탓인지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의미에 가까웠다. 그제야 카이사르는 상대를 확인하느라 깜박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가 아무리 전에 도둑질을 한 전적이 있다지만…! 그때는 먹고 살기 바빴고! 하여튼!

 

 

 

“내가 훔친 거 아니거든…!”

“그럼 왜 그렇게 놀란 거야?”

“씨이, 누구든 갑자기 부르면 놀라는 게 당연하잖냐…”

 

 

 

그리고 상대가 그인 걸 고려하자면, 카이사르는 갑작스런 등장에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가 아니라 아주라가 자신을 불렀어도 놀랐을 상황이지만. 제 앞에 있는 이는 그보다 더 특별했다. 무엇 때문인지 묻는다면… 절대 말 못 해! 카이사르는 그를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절대 말 못하지! 유라시엘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든 신경 쓰지 않은 채 주웠던 브로치를 그를 향해 내밀었다.

 

 

“그럼, 원래 네 브로치야?”

“그건, 아니고… 아까 주웠던 거야. 주인을 찾아주려고 했는데 안 보이더라.”

“그래? 떨어트린 줄 모르나보네.”

 

 

카이사르는 자연스레 내민 브로치를 집어들었다. 나름 주인도 찾아주려고 했던 건데. 피스메이커 들어가기 전, 카이사르는 먹고 살기 바쁜 탓에 빵을 훔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 살기 힘든 시기였고, 지금은 굶어죽지 않으니 도둑질은 결코 한 적이 없었다. 그저 비싼 물건이 떨어져 있길래 살짝 보고, 주인을 불러도 나오지 않아서 갖고 있었을 뿐인데. 이러한 사정도 모른 채 훔쳤다는 오해를 받았으니 억울했던 기분은 정작 유라시엘을 바라보느라 이미 잊혀진 부분이었다. 이대로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찾으러 가자.”

“뭐, 뭐?”

“브로치 주인, 찾아줘야지.”

 

 

 

*

 

 

 

카이사르는 목소리를 낮춰 제게 딱 달라붙은 이를 향해 소근거렸다.

 

 

‘야… 좀, 떨어져 봐…!’

‘무리야. 분명 들킬 거야.’

 

 

좁은 곳에 겨우 자리한 탓에 두 사람은 같이 지내며 한 순간도 겪어보지 못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상대에게 들릴 정도로 엄청 가까이 붙어있는 상태였다. 분명 들어올 때의 기억을 더듬자면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작은 옷장이었다. 이렇게 좁은 줄 알았다면 주변을 좀 더 살피며 숨을 곳을 찾았을 일이었다. 그만큼 워낙 급하기도 했지만, 하필 낡은 건물에 들어와 제대로 된 장소가 없기도 하였다. 숨을 곳이 별로 없으니 들키기도 쉬울텐데. 그나마 다행인 건 마물이 가진 지능이 그들을 찾아낼 정도로 뛰어나지 않은 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 안전한 옷장에 계속 머무는 건 그들에게 있어 마냥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일단은, 마물이 돌아다닌다 해서 그들이 계속 옷장 안에 있을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어찌됐든 밖을 나가야 하는데, 마물이 나갈 때까지 기다리면 시간이 얼마나 흐를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또다른 문제는 옷장 안에서 바깥 상황이 들리지 않아 그들이 없는 타이밍에 나갈 수 있는지, 나가긴 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마지막 문제는… 바로 카이사르에게 있었다. 계속 닿는 신체에 카이사르는 당장이라도 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속으로 온갖 신을 불러보지만, 움직여봤자 살면서 닿아본 적 없는 신체부위에 손이 갈 뿐이었고, 바깥 상황을 신경쓰느라 저는 안중에도 없는 모습에 아무리 부르고 거리를 두려고 해도 다른 해결방안을 찾을 수 없었다. 마물을 보며 도망가기 급급했던 그가 차라리 마물을 마주하는 게 더 나은 일이라 생각할 정도였다.

 

 

 

일이 왜 이렇게 된 건지…

 

 

 

분명 브로치의 주인을 찾아주려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들은 거리를 돌아다녔다. 악세사리를 판매하는 가게에 물어보기도 하고, 주웠던 거리에서 지나가던 행인을 붙잡고 물어보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주인이 계속 나타나지 않으면 유라시엘에게 줄 생각이었다. 엄청난 부자라서 이런 브로치는 잊은 게 분명하다고 그러니 가져도 상관없지 않겠어? 하며 말하는 제 모습을 금방 상상할 수 있었다. 상대가 좋아할지, 아니면 거절할지 예상은 못했으나 적어도 브로치를 받고 웃어준다면 카이사르도 기쁘게 느껴질 것이라 생각했었다. 뭐, 내 돈으로 산 물건은 아니지만. 그렇게 노을이 질 때까지 돌아다닌 결과, 만난 사람 중에 브로치의 주인은 없었다. 계속 찾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인데. 카이사르는 곧 다짐했다는 듯 브로치를 쥐고 유라시엘에게 내밀었다.

 

 

 

“이거! 주인 없는 것 같으니까… 그냥 네가, 가…”

“…위험해, 카이사르.”

 

 

 

그리고 이어진 건 저를 품에 안고 바닥을 구른 유라시엘이었다. 그 상황에 놀라기도 전에 한 차례 더 큰소리가 그들을 덮쳤다. 바로 마물이 휘두른 주먹에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피스메이커 활동을 하며 보았던 마물과 달리 처음 보는 형태의 마물이 괴음을 내며 다시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유라시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이사르를 붙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마물은 그들을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쫓아갔다.

 

 

 

“야! 저런 거, 본 적 있어?”

“없어. 알았으면 지금처럼 도망가지 않았을 거야.”

 

 

 

내가 마물이랑 한 두번 싸워본 것도 아닌데. 게다가 유라시엘은 전투에 특화된 능력이며,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싸움에 능숙하지 못한 카이사르와 달리 마물과 대치한다면 쉽게 싸우고 이길 수 있었다. 문제는 그들이 마주한 게 처음 보는 마물이란 점이었다. 능력을 모르는 마물과 싸우지 말라는 리온 대장님의 말에 유라시엘은 일단 도망가는 쪽을 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계속 도망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은 마을이랑 떨어진 곳으로 도망가지만 그들이 해결하지 못하면 마물이 마을로 향하는 건 뻔한 일이었다. 결국 유라시엘은 몸을 돌린 채 뛰던 발걸음을 멈췄다. 여전히 빠르게 다가오는 마물을 향해 유라시엘은 높게 뛰며 다리를 휘둘렀다. 마물에게 발차기를 하는 순간, 유라시엘의 눈은 붉게 빛나는 눈으로 변하였다. 카이사르는 그보다 뒤늦게 걸음을 멈추었다.

 

 

“보내지 않겠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발을 휘두른 것과 달리 마물은 큰 타격을 입지 않았는지 힘으로 유라시엘을 밀어내었다. 젠장, 작게 불만을 내뱉으며 바닥을 구르자 또다시 괴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피하지 않으면 위험할 거란 생각에 눈을 뜨자 위에 있는 건 마물이 아니라 바로 카이사르였다. 이 상황에서 먼저 소리를 지른 건 카이사르 쪽이었다.

 

 

“…카이사르?”

“으아악!!!”

“바보야, 소리를 지르면…”

 

 

유라시엘이 바닥에 구른 사이, 마물을 향해 불로 공격한 뒤 급하게 그를 붙잡다가 그대로 위로 올라간 모양이었다. 제대로 상황파악을 하기도 전에 예상대로 카이사르의 비명에 마물은 다시 그들을 찾기 시작했다. 다시 도망가야한다며 몸을 일으키자 제 시선 안에 보이는 건물을 향해 유라시엘이 손짓했다.

 

 

 

“저기로 가자!”

“그쪽은 아닌 것 같은데…!?”

 

 

 

*

 

 

 

좁은 옷장 안에서 어떻게든 거리를 둘 마음에 카이사르는 몸을 작게 비틀었다.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유라시엘의 말에도 진짜 못 참겠다며 대꾸하는 게 그의 최선이었다. 역시, 제 감을 믿었어야 했는데. 모든 신경이 이 낡은 건물은 아니라 외치면서도 결국 유라시엘을 따라간 자신이 카이사르는 조금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이 주웠던 브로치가 바닥에 툭, 소리를 내며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한 가운데 멈춘 브로치는 어둠이 잔잔하게 내린 낡은 건물 안에서 달빛을 받은 채 빛나고 있었다. 소리에 반응했는지 마물은 곧장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옷장 문 사이로 보이는 마물의 모습에 그들이 이제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마물은 그들을 습격하는 게 아니라 브로치를 향해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옷장 안에 있는 이들은 이제 관심도 없는지 아주 귀한 물건을 만지듯 주운 브로치를 이리저리 살펴보는 모습에 유라시엘은 옷장 문을 열고 마물을 바라보았다. 그 와중에도 마물은 브로치를 소중히 껴안을 뿐 유라시엘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어이! 함부로 나가지…”

“그 브로치를 찾아다닌 거야?”

 

 

 

카이사르가 옷장을 나서는 유라시엘을 막으려 하자 유라시엘은 그의 팔을 잡으며 마물을 향해 물었다. 마물은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루종일 주인을 찾아다녀도 나오지 않은 이유도, 마물이 갑작스럽게 그들을 공격한 이유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유라시엘은 카이사르를 한 번 보고, 다시 마물을 바라보았다.

 

 

 

“훔치려던 건 아니었어. 우리가 가져가지 않을테니 가도 괜찮아.”

“유라시엘…”

“괜찮지? 카이사르.”

“…뭐, 처음부터 내 물건도 아니었고.”

“다행이네.”

 

 

 

유라시엘은 옷장 안에 어정쩡한 자세로 앉은 카이사르를 보며 살짝 웃어보였다. 언제나 무뚝뚝하거나 짜증만 내던 모습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마물은 한참동안 눈치를 보더니 천천히 그들에게서 멀어져 낡은 건물을 빠져나갔다.

 

 

 

“십년감수했다고…!”

“돌아가줘서 다행이야.”

“뭐, 그렇긴 한데…”

“우리도 돌아가자.”

 

 

 

*

 

 

 

“야, 유라시엘.”

“왜?”

“나, 나중에 너도 구해줄까… 저런 거.”

“저런 거?”

“…브로치 말야, 브로치!”

“아, 난 괜찮은데…”

“예쁘다고 했었잖아?!”

“들었어?”

 

 

낡은 건물에서 빠져나와 돌아가던 길, 카이사르는 한참 침묵을 유지하다 입을 열었다. 카이사르가 들은 유라시엘의 말은 브로치를 떨어트렸을 때, 그리고 이를 주웠을 때 유라시엘이 작게 속삭였던 말이었다. 들었지, 들렸어. 카이사르는 붉어진 얼굴을 돌린 채 작게 중얼거렸다. 지금이 밤이라 다행이란 생각도 하면서.

 

 

“네, 네가… 크게 말했잖아…”

“그랬던가?”

“…그랬어.”

“그랬구나.”

 

 

유라시엘은 한참동안 답이 없더니 카이사르를 보며 살짝 웃어보였다. 브로치를 보며 예쁘다고 말한 건 사실이었으나 제게 있어 꼭 가지지 않아도 되는 물건이었다. 싸울 때 번거롭기도 하고, 치장 같은 건 바란 적도 없으니까. 하지만 붉어진 얼굴로 작게 말한 제 말을 놓치지 않고 선물까지 해주겠다는 말에 거절의 답은 누구든 내놓을 수 없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이 준다는데, 무슨 이유를 대며 거절 할 수 있을까? 유라시엘의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알았어, 그럼 기대할게.”

“어?”

“훔친 물건은 안 되는 거, 알지?”

“그러니까, 그런 적 없대도!”

“아하하~”

 

 

 

장난스런 말에 발끈한 카이사르가 불만스런 표정을 짓자 유라시엘은 한 발자국 먼저 앞서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말과 표정은 여전히 짓궂은 얼굴이라 카이사르도 그를 뒤따라갔다. 그렇게 그들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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