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디스티가 상식 밖의 일을 저지르는 것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해가 동쪽에서 뜨고, 달과 지구는 둥글며, 사과나무에선 사과가 열리는 것처럼 당연한 일.

즉, 열차 유일의 군의관이 또 뭔가 사고를 쳤다고 해도 본인이 휩쓸린 일만 아니라면 크게 상관할 게 없는 게 보통이었지만….

 

“지금 제정신입니까?”

 

아무래도 이번 사건은 그렇질 못했다.

디스티는 금방이라도 폭소할 것 같은 얼굴로 자신을 차갑게 내려다보는 셀렌에게 답했다.

 

“나는 언제나 제정신이라네, 중위.”

“제정신인 사람은 멀쩡한 사람에게 동의받지 않은 실험을 하지 않습니다.”

“동의가 없다니. 나는 분명 동의를 구했단 말이네!”

“기절한 사람에게 묻고,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걸 동의라고 할 생각은 아니겠지요.”

 

‘이히히.’ 디스티가 결국 웃음을 터뜨린다.

제 가까운 부하 중 한 명이 사고에 휘말린 걸 알고 찾아온 코일은, 그 웃음소리에 완전히 이성이 끊어져 총을 고쳐 쥐었다.

 

“역시 진작 죽여버렸어야 했어.”

“진정해, 코일 대위. 정말 죽일 거라면 총통에게 보고하고 와야 뒤탈이 없을 거야.”

“이 세상엔 처리부터 한 후에 보고가 필요할 때도 있지.”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코일이라면 정말 그를 쏘리라. 물론, 오른쪽 가슴을 쏠지 왼쪽 가슴을 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목숨이 위험한 지금 이 상황마저도 즐기는 걸까. 여유 가득한 표정으로 의자 등받이에 기대 몸을 흔들던 디스티는 수술대 위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렇지만 궁금하지 않나? 이 천재 디스티 님의 실험 결과물이!”

“전혀 궁금하지 않습니다.”

“네가 총을 맞고 어떤 표정을 지울지는 궁금하군.”

 

셀렌과 코일이 나란히 대답한다. 그 꼴이 퍽 사이가 좋아 보여, 디스티는 다시 한번 소리 내어 폭소했다.

 

“이히히히! 그러지 말고 들어 보라고! 왜, 사랑은 결국 호르몬과 인체 반응의 결과라고 하지 않나? 그래서 내가 직접 사랑을 창조했지!”

“네가 무슨 신이라도 되는 줄 알아? 애초에, 그런 실험이 성공할 리가 없지.”

 

코일의 반응은 차가웠다.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셀렌도 그 반응에 동의하는 눈치였다.

그렇지만 비운의 천재…, 그러니까 ‘자칭’ 비운의 천재이자 ‘타칭’ 매드 닥터인 디스티는 타인의 비난 따위에 굴하지 않았다.

 

“믿지 않는다면 보여 줄 수밖에 없겠군! 흐음, 어디 보자.”

 

원래 창작의 즐거움은 그 결과물을 대중에게 보여줄 때 완성되곤 한다. 물론 혼자 만들고 혼자 즐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디스티는 그런 타입의 인간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는 당당하게 환자를 깨워, 결과물을 자랑하려 들었지.

 

“이봐, 일어나보게!”

“으….”

 

난폭하게 환자를 흔들자, 죽은 듯 누워있던 병사가 눈을 뜬다.

비몽사몽 비틀비틀 일어난 병사는 머리가 어지러운지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젓다가,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군의관, 이게 무슨… 어? 코일 대위님? 여긴 왜…. 아!”

 

차근차근 사람들에게 말을 걸던 병사가 셀렌과 눈이 마주치더니, 얼굴이 새빨개져서 고개를 숙였다.

‘이건 또 무슨 일이지.’ 셀렌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눈을 가늘게 떴지만, 병사는 그가 이해할 시간도 주지 않고 행동에 나섰다.

 

“세, 셀렌 중위님. 오늘도 아름다우십니다.”

“예?”

“늘 군의관을 상대하랴, 전쟁에 나가 활약하시느라 피곤하시지요?”

 

뭐지. 이 분위기는.

셀렌은 갑작스럽게 관심을 표하는 병사가 어이가 없어서 입을 닫았고, 코일은 어이가 없단 표정으로 디스티를 노려봤다.

 

‘쏘기 전에 설명해라.’

 

코일의 눈이 그렇게 말하는 걸 눈치챈 디스티는, 제 연구의 과정을 조금만 공개해 주었다.

 

“재미있지 않나? 실험체 몸에 사랑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들을 투여한 후 중위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심장과 뇌에 물리적 충격도 주었지. 이걸 5번 정도 반복하니 이젠 완전히 사랑에 빠진 모양이더군!”

“이거 완전히 미친 자식 아냐?”

“칭찬이라고 받아들이겠네, 대위!”

“역시 죽여버리겠어!”

 

제 부하와 동료를 시시하고 어이없는 실험의 재료로 삼는 건 용서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 하찮은 사랑의 창조가, 다른 피해자를 만들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그렇기에 코일은 결심했다. 오늘이야말로 이 매드 닥터를 골로 보내 주겠다고 말이다.

 

“너무 화내지 말게, 대위. 대위는 너무 거칠어서 실험체로 적합하지 않아서, 내가 아무 짓도 못 할 테니까!”

“그게 문제야, 지금?! 나중엔 아주 셀렌도 수술대 위에 올리겠군!”

“나야 언제든 중위를 수술대 위에 올리고 싶지! 하지만 이번 실험의 실험체로는 쓰지 않을 거야. 중위라면 직접 깨우치게 만드는 편이 훨씬 재미있을 테니까! 늘 타의로만 움직이던 중위가 사랑까지 조종당한다면…, 쿨럭!”

 

디스티의 연설은 결국 허무하게 중단되고 말았다. 아까 전부터 장전되어 있던 코일의 총이, 결국 상대의 왼쪽 가슴을 향해 불을 뿜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제게 쩔쩔매는 병사에게서 디스티에게로 시선을 돌린 셀렌은 이마를 짚었다.

심장이 없는 왼쪽 가슴을 부여잡고 피를 토하고 있는 디스티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