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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란 생각보다 유치한 생물이다.

아이렌은 오늘 그걸 다시 한번 실감하고 조용히 헛웃음 지었다.

 

“아이렌, 너 앞으로 농구부 구경 오지 마.”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에이스?”

“당연히 진심이지!”

 

경기가 한창인 코트를 노려보던 에이스는 제 바로 옆에 앉아있는 아이렌에게 시선을 돌렸다.

억울함까지 느껴지는 에이스의 표정. 저런 귀여운 걸 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웃음이 나오고 만다.

 

“내가 안 오면 심심하지 않겠어?”

“전혀.”

“표정 보니 아닌 것 같은데.”

“아, 진짜!”

 

심심하지는 않을 거다. 이 농구부는 손님이 없어도 늘 시끌벅적했으니까.

하지만 분명 쓸쓸하긴 할 테지. 이 학원 유일의 홍일점인 아이렌의 존재감은 절대적이었으니까.

본인은 조용히 구경만 하고 간다고 주장하긴 하지만, 이 세상에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아이렌은 그런 사람 중 하나였지. 본인은 그다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에서 아이렌은 늘 주목받는 학생일 수밖에 없었다.

 

“날 놀릴 시간 있으면, 저 상황부터 말려 보라고!”

 

에이스가 가리킨 건 코트 여기저기를 휘젓다 순식간에 득점해버리는 플로이드였다.

거의 날아다니는 게 아닌가 싶은 플로이드의 기동력에 소리 없이 감탄한 아이렌은, 다소 태평한 감상을 내놓았다.

 

“멋진 덩크슛이네.”

“하아…….”

 

그의 의견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쩌다가 플로이드가 이렇게 열심히 덩크슛을 꽂아 넣게 된 건가를 생각하면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잖아!’라는 말부터 나오게 된다.

문제가 된 건 아이렌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였다.

 

‘운동 잘하는 남자는 멋있지요.’

 

그 말을 들은 농구부 부원들의 표정은 어땠던가. 에이스는 투지로 불타오르는 동료들의 눈빛을 보고 느꼈다.

겨우 저 한마디에 동요하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확실히 운동신경이 뛰어난 남자는 매력적이었다. 같은 남자가 봐도 그러한데, 대놓고 운동 잘하는 남자가 멋있다고 말하는 여자의 눈에는 어떻게 보이겠나?

이번 연습경기에서 활약하면 학교의 홍일점 눈에 들 수 있다. 그 사실에 넘어가지 않을 이가 몇이나 될까. 아무리 어른스럽고 철이 들었다 해도 그들은 겨우 10대 후반의 소년들이다.

그에게 조금 관심이 있던 부류부터, 단순히 여자의 관심을 끌고 싶은 혈기 넘치는 바보. 그리고 눈치가 보여 다가가지 못했지만 아이렌과 친밀해지고 싶어 견딜 수 없었던 녀석까지.

그 모두가 이번 경기에서 활약하기 위해서 열을 올리고 있으니, 코트가 열기로 뜨거워질 만도 하지 않은가.

 

“아기새우야, 봤어?”

 

하지만 스포츠의 세계는 활약하고 싶다고 다 활약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압도적인 실력과 신체조건을 가진 자들만이,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었지.

그리고 플로이드 리치는 그런 선수 중 하나였다. 비록 기분파인 게 단점이긴 하지만, 한번 마음을 먹으면 다른 선수들은 막을 수 없는 기세로 경기를 휘젓곤 했지.

아이렌은 자신을 부르는 상대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며 작게 중얼거렸다.

 

“다른 선수들이 겁먹은 것 같은데.”

“나라도 무서울 것 같긴 해.”

“…….”

 

에이스의 대꾸엔 뼈가 있었다. 단순히 말을 맞춰주려고 꺼낸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플로이드가 무서운 모양이었다.

하긴, 누구든 플로이드를 무서워했지. 아이렌은 그 공포를 이해했다. 실제로 코트 위에서 뛰는 선수 중에서도 플로이드에게 밀리지 않고 대등하게 경기하는 건 쟈밀 뿐이었으니까.

 

“거기까지! 슬슬 정리하도록 해!”

 

보다 못한 선생님이 시합을 멈추자, 여기저기서 쓰러지는 인영들이 보였다.

있는 힘을 다해 경기를 뛴 부작용일까. 대부분의 선수는 그 자리에서 꼼작도 하지 못했지만, 딱 두 명만은 달랐다.

아이렌 앞으로 후다닥 달려온 건 땀에 젖은 플로이드와 쟈밀이었다.

 

“아기새우야, 내가 더 많이 넣었지?”

“단순 득점으로 치면 내가 이겼을걸. 나는 3점 슛 위주로 넣었으니까.”

“그런 게 어디 있어? 내가 이긴 거지.”

“너 농구 규칙은 아는 거 맞지?”

 

두 사람의 싸움은 사뭇 진지했다. 함부로 결론을 내거나 말리지도 못할 만큼 말이다.

선배들의 유치한 경쟁을 바라보던 에이스는 아이렌에게 속삭였다.

 

“귀찮게 됐잖아. 어떻게 할 거야.”

“귀여우니까 괜찮다고 생각해.”

“넌 안 귀여운 게 있긴 해?”

“일단 에이스 군도 귀엽긴 하지.”

 

또 저런 말로 넘어가려고 한다. 아이렌의 말재간을 잘 아는 에이스는 입을 삐죽였다.

하지만 문제는 회피하는 아이렌이 아니었다.

 

‘어라?’

 

에이스는 자신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

아. 망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릴 뻔했다.

자신을 노려보는 선배들의 따가운 시선은, 살기라도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꽃게 군, 분위기 좋아 보이네.”

“너……. 우리는 열심히 뛰는데 혼자 아이렌 옆에 앉아서…….”

“예? 아니, 네?”

 

확실히 열기로 가득한 코트가 싫어서 벤치로 나온 건 맞지만, 아이렌을 독차지하기 위해서 그런 건 아니었는데.

하지만 이런 변명이, 과연 먹힐까?

한창 전투력이 오른 플로이드 리치와 쟈밀 바이퍼에게, 진실과 거짓을 가릴 여유가 있을까?

 

“아차, 깜빡했다.”

 

그때였다. 에이스가 궁지에 몰려 굳어버린 탓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있는 걸 눈치챈 것인지, 아이렌이 뜬금없이 살벌한 대화에 끼어들었다.

 

“에이스, 아까 크루웰 선생님이 듀스랑 같이 약학실로 오라고 했잖아. 슬슬 가야겠다.”

“어?”

 

그런 적이 있던가? 아니, 있을 리 없지. 이건 다 거짓말이다. 아이렌이 자신을 구해주기 위해 꾸며낸 허술한 거짓말 말이다.

 

“그, 그랬지?! 가자, 가자! 선배님들 수고하셨습니다~!”

 

지금은 일단 살아야 한다. 에이스는 체육복을 갈아입을 여유도 없이 아이렌의 데리고 냅다 체육관 밖으로 뛰어나갔다.

 

“하아, 살려줘서 고마워.”

“뭘 이정도야.”

 

과열된 경기는 수습할 수 없어도, 동급생 정도는 가뿐히 구할 수 있지.

아이렌은 다소 짓궂게 웃으면서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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