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선배~”
“오, 유즈루.”
니시나 카즈키는 상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만날 약속은 했던 타이가가 급하게 일이 생겨 자리를 뜰 수 없다고 하자 고민없이 직접 가겠다는 말과 함께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에델로즈로 향하는 길이었다. 다른 장소도 아니고, 제게 있어 익숙하기도 한 에델로즈로 향하는 길은 익숙한 만큼 떠난 기간도 짧지 않아 약간의 어색함과 들뜬 마음을 갖고 있었다. 타이가와 만나는 일도 오랜만이지. 매번 먼저 연락을 하는 건 타이가 쪽이었다. 오버 더 레인보우는 전에도 바빴지만, 우여곡절을 겪은 이후로 각자의 삶에 더해 조금 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그 탓에 카즈키는 타이가의 연락에도 -답장은 잊지 않았지만- 적극적이지 못했다. 그게 나름 아쉽기도 하고, 셉텐트리온으로 활동하게 된 타이가도 이제 슬슬 바쁜 모양인지 전보다 연락이 줄어들기도 해 이참에 직접 보러 가도 되겠다 싶어 나선 길이었다. 그리고 에델로즈의 문 앞에서 마주한 건 한 소녀였다. 카즈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이름이 나오는 걸로 보아 한 두번 본 사이는 아닌 듯했다. 유즈루라고 불린 이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 마주한 카즈키를 기다리는지 먼저 발걸음을 떼지 않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선배!”
“응, 잘 지냈어?”
카즈키는 저를 기다리는 모습에 걸음을 빨리 해 그의 앞에 다가갔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바라보며 얼굴은, 카즈키가 처음 보았을 때와 달라진 게 없는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키가 큰 편은 아닌지라 저와 높낮이가 별 차이나지 않는 이는 카즈키가 묻는 안부에 밝게 대답하며 되묻기도 하였다. 카즈키는 평소처럼 고개를 끄덕거리고 요즘도 불태우고 있지, 같은 말을 하며 반응하였다. 두 사람은 짧은 대화 후에 자연스럽게 같이 걸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카즈키가 그를, 시도 유즈루를 만난 건 재작년에 있던 일이었다.
*
우연한 만남이라는 건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카즈키가 그날, 유즈루를 만난 건 수많은 운명이 만든 길이었겠지만, 어찌됐든 두 사람은 그날 에델로즈에서 우연히 만났다. 유즈루는 일상처럼 그가 사랑하는 타치바나 유키노조를 만나러 간 것이었다면, 카즈키는 에델로즈에 있는 게 당연한 일처럼 그곳에 머물고 있었을 뿐이었다. 타이가와 대화를 했을 수도 있으며, TV를 보거나 목욕을 하고 나온 후에 산책을 나왔는지도 몰랐다. 카즈키는 그날에 대해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건 없지만, 그날 유즈루를 만났다는 건 분명 기억하고 있었다. 유즈루는 밖에서 유키노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는 작은 상자를 들고 있었고, 아, 그래. 기억이 맞다면 그날은 겨울이었다. 추운 겨울에 밖에 서 있는 이를 보며 말을 건 게 그들이 처음 나눈 대화였다. 유즈루는 붉어진 얼굴로 수줍게 웃으며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고 답했었다. 그게 추위에 너무 오래 있던 탓인지 두근거림으로 인한 붉어진 뺨이었는지 카즈키는 평생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카즈키의 성격 상 연애나 사랑에 대한 감정이 둔한 탓이었다. 카즈키는 추운데 들어가 있지 그래? 하고 권유했지만, 유즈루는 고개를 내저었다. 작은 상자를 들어보이며 이것만 주고 갈 거라 괜찮아요, 답을 들은 게 전부였다. 카즈키는 고개를 끄덕이고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나와 유즈루에게 자신이 끼고 있던 장갑을 끼워주었다. 카즈키에게 있어 지극히 당연한 배려. 의미를 두지 않았고, 둘 생각도 못하는 그는 언제나 저도 모르게 상대에 맞춰 배려하는 이였다.
“어? 괜찮아요…!”
“하하, 나도 괜찮아. 추우니까, 제대로 끼고 있어.”
카즈키는 추운 겨울에도 밝게 웃으며 다시 에델로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가는 사이, 유키노조는 급하게 겉옷을 챙기며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여기서 끝이었다면, 카즈키도 유즈루를 기억하는 일이 없었을까.
그뒤로 다시 만난 건, 겨울이 지나 봄이 된 계절이었다. 카즈키가 빌려준 장갑은 유키노조를 통해 돌아왔고, 카즈키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털로 짠 장갑을 되돌려 받았다. 빌려준 물건을 다시 받는 건 당연한 일이고, 카즈키는 그 일에 대해서도 한참 뒤에 떠올렸지만, 카즈키가 감정을 담지 않고 배려하는 게 당연한 사람처럼 유즈루의 성격도 큰 차이가 없었다. 봄이 된 계절에 유즈루는 에델로즈 건물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이를 발견한 건, 카즈키였다. 애초에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발견했다는 말은 어색한 말이기도 하였다. 유즈루는 겨울에 보았던 똑같은 얼굴로, 수줍은 미소를 담아 카즈키에게 작은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봉투를 열면 하얀색 손수건에 금색 나비가 수놓아 카즈키의 눈에 들어왔다. 건네준 선물을 보고, 다시 그를 보고. 그제야 카즈키는 상대를 제대로 바라보았다. 별 차이 없는, 저보다 조금은 큰 키가 시선을 마주한다. 짙은 흑색의 머리카락은 어깨를 넘는 길이였고, 그가 바라보기에 오른쪽으로 살짝 넘겨진 앞머리 밑으로 붉은색 눈이 제 시선에도 들어왔다. 겨울이 지난 봄이라, 추운 날은 아닌데도 살짝 붉은 얼굴에서 카즈키는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선배?”
“어? 그, 고마워! 잘 쓸게!”
얼마나 멍하니 있었던 걸까. 스스로도 깨닫기 전, 카즈키를 부르던 목소리에 뒤늦게 감사인사를 내뱉었다. 상대가 여자라서 그런가? 카즈키는 드물게 긴장한 듯 뻣뻣한 자세로 있다가 도망가듯 발걸음을 움직였다. 어디 아픈가? 오늘 날씨가 그렇게 더운 것도 아닌데. 걸음을 옮기면서도 고개를 기울였지만, 카즈키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
두 사람은 같은 건물로 들어간 뒤에 원래 목적대로 각자 만날 사람에게 향했다. 카즈키는 유즈루의 앞에 서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 그대로 그의 앞에는 타치바나 유키노조가 서있었다. 유즈루는 웃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를 보며 수줍게 웃는 얼굴, 그보다 더 사랑스런 이를 보는 얼굴, 그보다 더… 제게 집중했을 때보다 더 뚜렷한 눈빛이었다. 오로지 그를 담고 있는 시선, 세상에 그 밖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방금 동행한 사람에 대해 벌써 잊은 듯 유즈루는 유키노조에게 집중했다. 카즈키는 타이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저렇게 웃기도 하네. 그런 생각이 든 건 어째서였을까. 그들은 뻔히 바라보는 시선에도 신경 쓰이지 않는지 그들만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카즈키는 카즈키 선배? 하는 타이가의 말에 뒤늦게 고개를 움직였다. 어, 불렀어? 그에게 반응하면서도 카즈키의 신경은 저도 모르게 그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같이 갈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워요~”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다음에 꼭 시간을 낼게.”
유즈루는 아쉬운 얼굴로 유키노조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게 연인끼리 하는 행동이라는 건 누구든 알 수 있는 행위였다. 그게 카즈키에 시선에 닿았을지는 알 수 없었다. 타이가와 대화를 끝맺고, 카즈키가 밖으로 향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즈루도 밖으로 나와 유키노조에게 다음에 보자며 배웅을 받고 있었다. 유즈루가 에델로즈에서 벗어나고 조금 더 걷자 카즈키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갈래?”
카즈키는 장난스런 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
“그래서 말야, 오랜만에 만났는데…”
히로는 카즈키의 말에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가 오늘처럼 말을 많이 하는 일도 드물지만, 한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하는 일도 처음이었다. 카즈키가 이야기 하는 사람은, 타이가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도 유즈루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고 있었다. 히로는 그 이름을 듣고 누군지 한참이나 생각한 뒤에 떠올릴 수 있었다. 에델로즈에 있었을 때, 잠시 보았던 이였던 걸 기억한다. 제 기억이 맞다면 그와 지내던 사람은 후배 중 한 사람이었다. 둘이 언제부터 아는 사이였지? 히로가 생각하는 와중에도 카즈키의 말은 끝나지 않아 히로는 그 사이를 비집고 입을 열었다.
“카즈키. 너 말야, 사실 좋아하는 거 아닐까?”
“뭐, 뭐, 뭐…?!”
히로의 말에 카즈키는 새빨개진 얼굴로 펄쩍 뛰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히로…! 내가 뭐, 뭘 좋아해?! 히로는 그 반응에 눈을 가늘게 떴다. 좋아한다는 말 밖에 안 했는데, 저 정도로 반응한다는 건 당연히 좋아한다는 걸 대놓고 알려주는 일 아닌가? 히로는 그를 보며 모르는 척을 해야할 지, 알려줘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카즈키라면, 고백 받았을 때 분명 쓰러지기도 했었지. 이 이상 말하면 스스로의 감정을 알기는커녕 모른 체 지낼 게 뻔한 일이었다. 히로는 일부러 아니면 말고, 하는 말로 대꾸했다. 카즈키는 여전히 어색하게 웃으며 그와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뻣뻣한 자세로 걷기 시작했다. 히로는 이를 말리지 않았고, 카즈키는 겨우 방에서 나선 뒤 벽에 기대 주저 앉았다. 아직도 심장이 빠르게 뛰는 기분이다. 누군가를 이성적으로 좋아한다는 건 살면서 생각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상대가 여자라고 생각이 들면 뇌가 먼저 굳기도 했고, 어색함을 감출 수 없었으나 그를 대할 때는 되려 편하기도 해 의식한 적이 없었다. 조, 조, 좋아… …카즈키는 무의식적으로 살짝 상기된 얼굴을 떠올렸다. 추운 겨울, 저를 바라보던 미소와 다시 만난 봄에 손수건을 건네주던 행동. 일부러 떠올린 적은 없지만, 잊은 적도 없었다. 카즈키는 붉어진 얼굴로 제 머리를 긁적였다. 저는 아직까지도 왜 그의 얼굴이 떠오르고 제 얼굴이 붉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말을 들어도 말야…
“조, 좋아… 하는 게 뭔데…?”
아무래도 그가 제 감정을 알아채기까지 긴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