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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검사님이다~”

“뭐 합니까, 여기서.”

“음, 순찰? 그런 거?”

 

 

황시목은 제 앞에서 손을 흔드는 유서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제 질문으로 나온 대답에 주변을 가볍게 둘러보았다. 순찰? 여기는 법원 앞인데요. 황시목은 그가 가진 특유의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꾸하였다. 법원이라고 꼭 사고 하나 없이 지내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경사가 날을 잡고 순찰을 돌 일은 없는 편이었다. 게다가 굳이 그가 아니더라도 법원을 순찰할 경찰은 이미 배치된 상태였으니 그들이 아니라면 경사의 직급을 달고 있는 이가 이유없이 순찰을 돌 장소가 아니었다. 그가 말한 걸 떠올리면 그런 거, 라는 의문 담긴 말은 결코 그가 순찰을 하고 있는 게 아니란 걸 증명하고 있었다. 황시목은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 진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뀐 건 아니었다. 황시목이란 사람에게서 감정을 표현하거나 이해할 방법이 없다는 건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의 표정 변화는, 그나마 그를 오래 알고 지내야 알아차릴 수 있을 만하게 작은 변화로 어딘가 못마땅한 표정이 상대를 향하고 있었다. 그 표정에도 유서린은 오히려 아하하, 크게 웃는 소리를 내었다. 황시목 검사에게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 건 알고 있었고, 제 말에 저런 표정을 지을 것도 알고 있었다. 이는 유서린이란 사람이 황시목을 하루이틀 본 게 아니라는 걸 의미하고 있었다. 유서린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황시목을 보았다. 일 때문에 만났을 수도 있고, 유서린이 시덥잖은 이유로 그를 보러 가기도 했었다. 그때마다 황시목의 태도는 변함없었지만, 유서린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유서린은 냉정하다고 볼 수 있는 그의 태도에 제 주머니에 손을 넣고 그를 바라보았다.

 

 

“역시 거짓말은 안 통하나?”

“거짓말을 할 생각이긴 했습니까?”

 

 

그만큼 티가 나는데. 사람들이 그 정도의 거짓말만 했다면 벌써 찾아낼 시체가 몇 십개라고 황시목은 생각했다. 유서린은 고개를 까닥거리며 입을 열었다. 알아차리길 바라는 거짓말인 거죠, 하고 뻔뻔하게 대답하다보면 황시목은 어느 새 그를 두고 먼 발치 걸어가고 있었다. 아까까지 대화하던 이를 놔두고 먼저 가버리는 것이었다. 아, 검사님! 유서린은 그 모습을 보며 얼른 뒤쫓아 가기 시작했다.

 

 

*

 

 

“검사님은 매정하다니까요~”

“… …”

 

 

황시목은 걸음을 옮기며 그를 흘긋 보았다. 저를 열심히 뒤쫓아 오던 걸음은 금방 제 곁에서 나란히 걷고 있었다. 두 사람이 걷는 동안 오가는 대화는, 들리는 말은 오로지 유서린의 입에서만 나오는 말이었다. 아, 오늘 달이 엄청 예쁘죠~ 라거나 여기서 저번에 고양이를 본 적 있는데~ 라거나 황시목에게 있어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고 있어서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만약 회사 상사라면 예, 하는 짧은 대답이라도 했을 일이었다. 다만, 그에 대해 신경쓰기보다 오늘은 드물게 퇴근하는 길이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 볼 서류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유서린의 입에서 검사님이 매정하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였다. 황시목은 이 또한 무슨 답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자, 여기요. 그럴 줄 알고 가져왔지.”

“…뭡니까?”

“검사님이 입을 열게 할 마법의 음료수랍니다~”

“…자백제라도 들어있다는 말입니까?”

“전혀 아니거든요!?”

 

 

유서린은 황시목의 손에 비타라고 써있는 병을 쥐어주었다. 편의점이나 약국, TV 광고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비타민이 들어간 음료수의 하나였다. 기운이 없어보이니 준 건데, 자백제가 왜 나와요? 무뚝뚝한 반응에는 투덜거리지 않았던 유서린이 그의 말에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여튼, 장난 하나 안 통하다니까. 입을 비죽이고 바라보고 있으면, 황시목도 드물게 그 표정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만날 때마다 웃고 있었던 걸 떠올리자면 그에게 있어 처음보는 표정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오래 이어진 시선에 고개를 기울이는 그를 보고 제 손에 쥐어진 병으로 시선이 옮겨갔다. 옆에서 걸으며 떠들던 모습은 잊었는지 황시목은 그제서야 의문 하나가 들어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 따라 올 겁니까?”

“응? 마시지도 않았는데, 효과가 좋네.”

“예?”

 

 

정작 그가 건넨 의문에 돌아온 건 장난스런 답이었다. 왜 물어보지 않는지 고민했잖아요. 유서린은 습관처럼 겉옷 주머니에 손을 넣고 황시목이 멈춘 사이 몇 발자국 나아갔다. 그가 말한대로 달은 밝고 높게 떠있었으나 이는 시선에 들어오지 않았고, 달을 대신하는 것처럼 그가 멈춘 발걸음 위에 가로등 하나가 어설프게 빛나고 있었다. 어둡지도, 밝지도 못한 거리에서 유서린은 가로등 밑 아래에, 황시목은 어두운 곳에 서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히 둘 사이의 침묵을 깬 것도 유서린의 목소리였다.

 

 

“이러다 집까지 쫓아갈 뻔했잖아요.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못 했는데.”

“미리 말했으면 들었을 겁니다.”

“오면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해요?”

“…달이 예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다른 일에 집중하느라고.”

 

 

거봐요~! 들려오는 솔직한 답에 유서린은 또다시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가 웃는 얼굴을 보는 게 마치 오래된 일처럼 느껴졌다. 이미 수없이 봐온 얼굴인데도. 그가 하는 말에 집중하지 않은 건 사실인지라 황시목은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서린도 그가 부정하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여전히 가로등의 불빛은 아슬하게 깜박거리고 있었다. 깜박, 깜박. 마치 타이밍을 기다리듯이 가로등의 불빛이 좀 더 약해졌을 때, 유서린은 그를 응시했다.

 

 

“검사님, 나랑 연애할래요?”

 

 

 

*

 

 

“검사님. 검사님?”

 

 

최영은 멍한 표정을 지은 그의 앞에서 몇 번이고 손을 흔들었다. 오늘 몇 번이나 멍하니 계시네. 차마 그에게 직접 내뱉지 못할 생각을 하고 있자 황시목은 뒤늦게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아, 불렀습니까?

 

 

 

 

“오늘 검사님이요, 이상하지 않아요?”

“으잉? 왜? 평소랑 다른 게 없어 보이던데. 우리 검사님은 늘 한결 같으신 게 장점이잖아.”

“그런가…”

 

 

김호섭이 대수럽지 않게 답하자 최영도 고개를 기울이기만 할 뿐 뭐라 더 말을 얹지 않았다. 뭐가 이상하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긴 한 탓이었다. 멍하니 있는 일이 갑자기 생겼지만, 이를 제외하자면 무뚝뚝한 말투와 표정은 그대로였고, 일에 실수도 없으시고, 그저 감이라는 게 무슨 일 있으셨나, 하는 마음만 들 뿐이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둘이서 수근거리는 사이 황시목은 문을 열고 나와 그들을 바라보았다.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아, 네. 근데 검사님…”

“예?”

“…겉옷, 안 챙기세요?”

“아…”

 

 

밖을 나가는 모습치고 단촐한 차림에 최영은 조심스레 말을 얹었다. 그러자 황시목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외투를 챙기고 방을 나가였다. 그런 모습까지 보이니 이번에는 김호섭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기울였다. 오늘 검사님이 이상하긴 하네…

 

 

 

‘나랑 연애할래요?’

 

 

유서린 경사에게서 고백을 받은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정확히는 어제 퇴근하는 길에 듣고 평소처럼 출근하였으니 정말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말이었다. 그 짧은 시간을 황시목이란 사람이 잊을리가 없었다. 그날 밤, 황시목이 그에 대해 내놓은 답은 바쁩니다, 였다. 하기 싫은 것도 아니고, 상대가 싫은 것도 아니라는 답이 나가자 먼저 놀란 건 상대가 아니라 제 쪽이었다.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고백에 대한 답이 그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보통, 이렇지 않을텐데. 스스로가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된 건 둘째치고, 흔히 연애의 시작이 이렇던가. 알고 있는 짧은 지식으로 생각하자면, 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황시목은 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에 대한 답에 어떤 답이 맞는 답이고, 스스로가 상대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아도 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바쁩니다, 라는 답에 맞춰 깜박이던 가로등은 밝게 불이 들어오는 순간이었고, 황시목이 마주한 얼굴은 환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그가 평소 알고 있는, 장난스럽거나 가벼운 웃음이 아니라 환한 웃음. 아, 그날 달이 밝다고 했던가. 그 웃음을 보았다면 누구도 그런 말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설픈 불빛 아래, 환한 웃음을 한 이는 눈을 느리게 꿈벅거리다 오던 길을 되돌아 발을 뻗었다. 그 걸음 속에 황시목을 지나간 건 당연한 일이었고, 그 순산 유서린은 또다시 입을 열었다.

 

 

‘검사님이 바쁘지 않게 될 날을 기다려야겠네요.’

 

 

그 목소리는 명확하게 황시목을 향했고, 귓가에 닿았으며, 어딘가 들뜬 목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제 대답이 아무래도 거절처럼 느껴진 건 아닌 모양이었다. 황시목은 그가 사라진 이후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순간 모든 게 정지된 기분이었다. 묻어둘 수밖에 없던 걸 꺼내게 된 기분. 이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그가 좋은가? 잘 모르겠다. 그가 싫은가? …잘 모르겠다. 그렇게 집에 돌아가고 아침이 되기까지 황시목은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지만 이를 알아차리는 사람은 드물었다. 자신이 알아가야 하는 이 감정은 오로지 스스로의 것이기에, 이제부터 자신이 한 말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 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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