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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잔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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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작은 새에게 키스하세요

 

 

-

 

 

엘리너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망토에서 눈치채지 못했던 노란 깃털 하나를 더 떼어냈다. 크리스마스 휴일이 시작되면서 학생들이 자꾸 이상한 과자를 먹고 거대한 카나리아로 변하는 바람에 올해 크리스마스 장식이 녹색과 붉은색이 아니라 샛노란 빛깔이라고 착각할 지경이었다. 아마 위즐리 쌍둥이의 업적 중 하나인 모양이었는데, 마법이 별다른 부작용 없이 금방 풀리는 건 다행이었지만 그때마다 털갈이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깃털은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깃털 알레르기가 없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더 고역이었을 터이다. 방금도 도서관에서 친구를 깃털 뭉치로 바꿔놓고는 낄낄거리던 그리핀도르 5학년생에게 도서관에 소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예의 카나리아 크림 한 꾸러미를 압수해서 사무실로 돌아온 참이었다. 압수품을 필치에게 넘길 겨를도 없이 대충 책상 구석에 올려두고 찬장에서 찻주전자와 찻잔 한 쌍을 꺼내자마자 곧 때맞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지 뻔히 알면서도 평소처럼 “열려있습니다.” 따위의 의례적 답을 보내자 달칵 문이 열리고 기다리던 상대가 성큼 걸어 들어왔다.

 

“이제 잠글 거다.”

“그러세요.”

 

의례적 문구에 대꾸하듯이 말한 세베루스가 딱히 엘리너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고리를 잠갔다. 언제인가부터 함께 티타임을 가질 때면 불청객이 불쑥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잠그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이 연인이 되고나서는 더욱 꼼꼼히 지키게 된 규칙이었다.

 

“어디서 이렇게 깃털을 붙이고 왔지?”

“다 떼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있습니까?”

 

구석의 개수대에서 손을 씻고 주전자에 물을 채워온 세베루스가 문득 엘리너의 어깨 안쪽에서 작은 솜털을 털어냈다. 엘리너는 후리후리한 손가락이 귀 옆으로 뻗어 나왔다가 몸을 스치고 돌아가는 동작에 잠시 숨을 삼켰다. 괜히 그 반응이 멋쩍어져 조금 서둘러 찬장으로 걸어가 부산스럽게 찻잎 통을 뒤지는 동안 등 뒤에서 세베루스가 뚱하니 대꾸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놈의 카나리아는 대체 뭣 때문에 유행하는 거냐?”

“아시잖아요, 위즐리 쌍둥이가……세베루스!”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며 몸을 돌린 엘리너는 깡통을 손에 든 채로 굳어버렸다. 세베루스가 티푸드용 접시에 카나리아 크림을 가지런히 올려놓고는 어떻게 봐도 이미 하나를 집어먹은 모양새로 손끝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을 본 세베루스가 눈썹을 찡그렸다. 와삭 바삭, 과자를 씹는 소리 후에 꿀꺽 목구멍 너머로 입 안을 비우는 진동이 확연히 이어졌다.

 

“무슨 문제―”

 

그의 나머지 말은 사람의 목소리로 나오지 못했다. 엘리너는 충격과 매혹이 뒤섞인 상태로 나동그라진 의자 옆에 나타난 거대한 카나리아를 쳐다보았다. 자신의 상태를 깨달았는지 세베루스-카나리아가 분개한 듯 부리를 떡 벌렸다. 유려한 지저귐이 명백한 욕설의 분위기를 띠고 졸졸 흘러나왔다. 본래 순진하고 또릿또릿할 새의 새까만 눈동자마저 지극한 모멸감과 짜증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엘리너는 이제 날개를 퍼드덕대다가 멈춘(이마를 짚으려다 포기한 것 같았다) 세베루스에게 아직 혼이 반쯤 빠진 얼굴을 하고 가까이 다가섰다.

 

“괜찮으십……니까?”

 

세베루스가 곧장 콧방귀처럼 삑 소리를 냈기 때문에 그녀는 급히 말을 이었다.

 

“물론 괜찮진 않으시겠죠. 그런데 이게 카나리아 크림인 줄 아직도 모르셨나요? 어떻게……그야 당신 앞에서는 학생들이 더 조심하겠지만. 그래도.”

 

세베루스가 성질을 부리듯 눈을 가늘게 뜨며 부리를 딱딱거린 시점에서 엘리너는 참지 못하고 어깨를 떨기 시작했다. 그녀를 의심스럽게 쳐다보던 사람만한 카나리아가 다시 역력하게 나무라는 투로 무어라 삐리리릭 쏘아붙이자 결국 입을 틀어막은 보람도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죄송, 흡, 그런데 너무……당신이 당신이라―”

“…….”

 

 

이 소동에 너무 흥겨워하지 않으려고 분투하던 즈음 마침내 마법이 풀리며 세베루스의 형체가 돌아왔다. 카나리아일 적의 표정과 얇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옷에 남은 깃털을 신경질적으로 털어내는 눈앞의 얼굴이 역시 놀라울 정도로 닮아서 엘리너는 기어코 참으려는 시늉도 없이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머리칼 사이에서 깃털을 집어내던 세베루스가 결국 붉어진 낯으로 눈을 부라렸다. 눈이 마주친 순간 잦아드는가 싶던 폭소가 영문을 모르게 다시 터져버려 엘리너는 도로 한참을 책상에 몸을 기대고 간지럼이라도 탄 것처럼 반쯤 흐느껴야만 했다.

 

“나도 모르게 네 입에 이 과자를 밀어 넣기 전에 그만 웃어라.”

“저, 저도 그만 웃으려고. 아, 힘들어…….”

“거기서 입꼬리가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정말로 먹여버릴 테다.”

“안 돼요, 지금도 제 사무실에는 깃털이 충분히 많아요.”

 

헐떡거리면서도 여전히 입매에 미소를 매단 엘리너가 흐트러진 머리타래를 귀 뒤로 빗어 넘겼다. 세베루스는 티세트에까지 날아간 깃털을 쓸어내면서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눈앞에서 이걸 소지한 녀석을 발견한다면 당장 감점에 징계다.”

“징계는 조금 너무한 걸요.”

“네가 학생이었다면 당장 너부터 징계야.”

 

당신이 이럴 걸 알아서 다들 당신 앞에서는 몸을 사리는 게 이 사달의 원흉이 아닐까요, 같이 솔직하게 말하면 세베루스를 지나치게 놀리는 기분이라 엘리너는 가볍게 말을 돌렸다. 짐짓 을러대며 대꾸한 세베루스가 지팡이를 흔들어 바닥의 깃털 융단을 한데로 끌어 모았다. 아직도 곳곳에 샛노란 깃털을 붙이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자꾸 입꼬리가 뜀을 뛰었다.

 

“제가 이제 당신의 학생이 아니라서 다행이군요.”

“학생이면 큰일이지.”

“물론 그렇죠.”

 

엘리너는 몸을 기울여 검은 옷깃에 붙은 노란 솜털을 떼어주면서 세베루스의 턱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어쩔 수 없다는 양 고개를 살짝 숙여 그녀를 내려다본 새까만 눈동자가 언뜻 온화하게 잔잔해졌다.

 

도무지 이겨낼 수 없는 다정이었다. 엘리너는 저절로 이끌리듯 발뒤꿈치를 들어 마른 뺨에 재차 입술을 스쳤다. 턱선을 따라 연한 살갗을 연달아 누를 즈음에 커다란 손이 얼굴을 감싸고 세베루스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 위에 쪼듯이 키스했다. 느슨해진 눈매에서 세베루스가 이제 기분이 좋아진 걸 확인한 엘리너는 반쯤은 놀리는 마음으로, 반쯤은 들떠서 진지하지 않은 말을 건넸다.

 

“아깝네요. 당신을 나의 사랑스러운 카나리아라고 불러볼 기회였는데.”

 

불시에 옆구리를 찔린 것마냥 눈앞의 얼굴이 팍 찌그러졌다. 정말 화를 낸다기보다 어처구니없어하는 모양새였다. 엘리너를 흘겨본 세베루스가 어디서 또 마법처럼 발견된 깃털을 진절머리를 내며 손끝으로 집어 올리더니 그녀의 귀 위에 쑥 꽂아버리면서 빈정거렸다.

 

“너야말로 나의 조그만 카나리아라고 불리고 싶으냐?”

“그리 작지는 않을 텐데요.”

“그게 문제라면 카나리아가 되는 것 자체는 상관없다는 얘기로군.”

 

비죽 웃으며 대꾸하는 소리에 세베루스가 아직 접시 위에 놓여있는 카나리아 크림을 위협적으로 눈짓했다. 이러다 진짜 어느 날 아침 식사의 토스트 사이에 카나리아 크림이 끼어있는 건 아닐까 의심하면서도 엘리너는 귓가에 자리했던 깃털을 빼들어 약 올리듯 세베루스의 얇은 아랫입술을 간지럽히다 그의 귓바퀴로 손을 내밀었다.

 

“안 된다니까요.”

“억울한 처사인걸.”

 

불만스럽게 이의를 제기한 세베루스가 깃털이 검은 머릿결에 안착하기 전에 먼저 덥석 손목을 붙들어 움직임을 봉해버렸다. 깜짝 놀라 펼쳐진 손가락에서 카나리아 깃이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순간 침묵이 지나고, 동그래진 암녹색 눈동자가 그를 빤히 올려다보는 것을 덩달아 흠칫 마주본 세베루스가 사과처럼 손등을 감싸고 가느다란 손 사이사이로 더듬더듬 깍지를 끼었다. 긴장한 어깨에 저절로 힘이 빠졌다. 엘리너는 손을 빼내는 대신 그대로 손목을 틀어 세베루스의 뺨을 손끝으로 가볍게 찌르고 부러 엄한 목소리로 추궁했다. 어떻게 해도 눈가에 조금씩 고이는 웃음을 지울 수 없어서 그리 효과는 없으리란 것을 알고 하는 일이었다.

 

“당신 애인을 그렇게 카나리아로 만들고 싶으신가요?”

“너는 이미 그 즐거움을 누렸으니 나도 경험해보아야 공평하지.”

 

세베루스가 평소처럼 심술궂게 투덜거렸다. 시선은 줄곧 엘리너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정말 그렇게 보고 싶으세요?”

“너는 그렇게 웃어 제쳐놓고 물어보는 거냐?”

“전 딱히 보고 싶던 건 아니었습니다만.”

“여기서 보고 싶다고 말하면 나만 유치한 사람이 되게 생겼군.”

“글쎄요.”

 

빙글빙글 웃은 엘리너가 재차 세베루스의 옆얼굴을 손바닥에 담았다. 부리 모양을 흉내 내는 양 양 볼을 꾹 누르는 만행에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만 놀리라고 역정을 내자니 평소 잘 챙겨주지도 못하는 연인이 드물도록 잔뜩 신난 것이 보여 이 정도는 참아볼만하다고 그도 모르게 마음이 풀려버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역시 질릴 때까지 마음껏 가지고 놀라고 할 만큼 너그러운 위인은 못 되는지라, 세베루스는 엘리너의 손을 자유롭게 풀어주고서 뚱하니 눈으로만 그녀를 쫓다가 엘리너가 웃으며 손을 뗀 시점에 복수처럼 덥석 그녀의 코끝을 꼬집었다. 불시에 코를 붙들린 엘리너가 코맹맹이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며 항의했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새 소리인가.”

“어 아이는 어, 아!”

 

세베루스가 해소한 짜증이 옮겨 붙었는지 엘리너가 팩 성을 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죽거리던 세베루스는 다음 순간 쭉 머리통을 잡아당긴 엘리너에게 코를 깨물려 화들짝 고개를 젖혀야 했다. 어떻게 봐도 유치한 실랑이가 한동안 더 이어지다가 결국에 팔과 팔이 상대의 허리를 끌어당기고 초점이 겨우 맞을 만큼 서로가 가까워져서야 두 사람은 가슴을 들먹이면서 나이에 맞는 이성을 되찾았다. 어느새 얼굴이 달아올라 맞닿는 숨이 뜨거웠다. 그만두자, 하고 툴툴거린 목소리가 입술 아주 가까운 곳에서 울렸다가 곧 접촉에 먹혀 사라졌다. 접시 위의 과자가 눈 먼 손에 떠밀려 책상이며 바닥으로 흩어졌으나 누구도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쨌건 카나리아의 부리로는 키스를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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