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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첫사랑 이야기 해주세요!”

 

아아. 그 한 마디에 연금술 수업이 진행되던 교실 안이 순식간에 싸늘해진다.

실험이 끝난 후 잠깐의 휴식 시간. 약품을 정리하고 학생들이 제출한 결과물을 분류하던 크루웰은 사바나클로의 한 학생이 외친 말에 슬쩍 몸을 돌렸다.

 

“뭐라고?”

“첫사랑 이야기요! 수업 끝났잖아요?”

“…….”

 

‘진심인 건가!’ 다른 학생들은 모두 용감하다고 해야할지 겁이 없다고 해야할지 모를 만큼 대담한 동급생의 발언에 두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다른 선생님도 아닌, 그 디뷔스 크루웰에게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는 녀석이 나올 줄이야!

하지만 경악하는 학생들과 달리, 생각에 잠겨있던 크루웰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팔짱을 낄 뿐이었다.

 

“내 첫사랑 이야기를 알려고 하다니, 배짱이 좋군. 배드 보이.”

 

어라, 이건 이야기해 줄 분위기인가.

예상했던 것은 날카로운 일갈이었는데, 상대의 분위기가 너무 평온하다. 학생들은 의외라는 듯 서로의 눈치를 살폈고, 이내 크루웰이 아득한 눈으로 옛날이야기를 꺼내왔다.

 

“그렇군…. 내 첫사랑은 미들 스쿨 때였다.”

“허억.”

 

교실의 모두는 마치 방청객처럼 일제히 숨을 삼켰다. 물론 일관된 반응과는 다르게, 그들이 입을 닫은 이유는 상당히 다양했다. 누군가는 첫사랑이 미들 스쿨 때였다는 것 자체에 놀라기도 했고, 누군가는 순순히 선생이 제 사랑 이야기를 꺼내준 것에 대해 놀라기도 했지.

어쨌든, 놀람의 도가니탕이 된 학생들을 두고도 소란의 중심이 되는 크루웰은 태연하게 이야기를 이어갈 뿐이었다.

 

“우리는 같은 학교에 다니며 서로의 얼굴을 익혀나갔지. 1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었거든. 내 첫사랑은 밝은 성격에 명석함까지 갖추어서 굉장히 눈에 띄는 소녀였어. 나는 처음에는 그 소녀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나에게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탓에 점점 나도 신경이 쓰이게 되더군.”

“왜 처음엔 관심이 없었어요? 그렇게 미인은 아니었다던가?”

“말도 안 되는 소릴! 오히려 그 반대였지. 지나치게 미인이었어, 내 첫사랑은.”

 

크루웰은 거의 정색하며 학생의 말에 반발했다. ‘정말 어지간히도 좋아하셨던 모양이구나.’ 선생의 반응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하게 된 학생들은 은근히 음흉하게 웃으며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지를 기대했다.

 

“그렇게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2학년이 될 무렵에는 붙어 있는 게 당연하게 되었지. 우린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연인이라 생각했어. 그리고 3학년이 지나고 졸업할 때가 되자 내가 정식으로 고백하고 고등학교에서도 인연을 이어가기로 했지.”

“오오오.”

“선생님, 멋지네요!”

 

아이들의 후한 호응에, 추억에 잠겨있던 크루웰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 아 물론 그 웃음은,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럼, 그 첫사랑이랑은 아직 연락하세요?”

“응?”

“졸업한 이후로도 계속 연락하시는지 궁금해서요!”

 

그 말 한마디에, 크루웰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심각한 분위기만이 감돌기 시작했다.

‘어라, 혹시 물어보면 안 되는 거였나.’ 질문한 학생은 그제야 제가 아픈 기억을 찌른 것이 아닌지 겁이나 마른침을 삼켰지만, 다행스럽게도 크루웰은 일갈 대신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연락 하지. 아직 계속 잘 지내고 있다.”

“엥, 진짜요?!”

“대박. 첫사랑이랑 아직 계속 사귀는 거예요?! 드라마 같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네요! 크루웰 선생님이 이렇게 오래 좋아하시는 거 보면, 분명 엄청 대단한 사람이라던가?!”

 

학생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크루웰은 이 이상은 말해줄 수 없다는 듯 입을 다물 뿐이었다.

절대 가르쳐 줄 수 없지. 제 첫사랑이자 연인인 여자가, 코벤 유니버시티의 교수이자 마법 생물학의 권위자인 아니카 럴러바이임을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차라리 유명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사진이라도 보여줬겠는데, 신문에 사진이 실리기도 한 제 연인을 공공연하게 자랑하기엔 역시 위험이 컸지.

그렇게 크루웰이 침묵을 유지하고 기다리자, 겨우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리며 그를 질문 지옥에서 구해주었다.

 

“스톱! 수업은 여기까지다. 그럼, 과제 마감 기간을 잘 기억하도록! 이상!”

 

학생들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 그는 재빨리 교실을 나가 교무실로 향했다.

‘역시 괜히 말한 건가. 오늘 아침 웬일인지 먼저 연락이 와서, 들떠버린 건가.’ 오늘 오전 아니카에게 왔던 메시지를 떠올리며 픽 웃은 그는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며 숨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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