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CCG 생활은 처음부터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하나밖에 없는 자식한테 돈 쓰기 아깝다고 아카데미에 어릴 때부터 상의도 없이 처넣었으니 유쾌할 리가 있을까.
"애초에 누가 어린애를 본인한테 상의 한마디 없이 CCG 아카데미에 처넣겠냐고."
그래서인지 동급생도 그렇게 많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인가 얼마 없는 동급생들끼리 친구라며 무리를 형성해서 다니기 시작했고 사이코는 그 무리에서 튕겨져 나와 혼자 겉도는 아이였다.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왜 혼자 겉도는지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항상 수업에도 지각하고 훈련에도 지각해서 아카데미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쉬는 시간이 있으면 혼자 앉아서 게임만 했으니 친구가 생길 리가.
근데 아카데미 선생님 눈에는 그나마 내가 제일 괜찮아 보였는지 짝을 지어서 훈련을 할 때면 항상 혼자가 되는 사이코와 나를 붙여놓기도 했다.
솔직히 좀 귀찮았다.
다른 애들도 많고, 정 안되면 선생님이 같이 짝을 지어서 하면 될 텐데 왜 굳이 나였는지 이해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건 선생님의 선견지명이 기막힌 타이밍에 발휘된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짝을 지어 훈련한 다음 날 무슨 적정 테스트? 그런 걸 본다고 했었다.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무언가 시술 관련한 테스트였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아아, 안내방송 드립니다. CCG 제 7 아카데미 주니어생, 후쿠에 미네키치군은 잠시 체력단련실로 와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다시 한번 안내방송 드리겠습니다...'
한참 점심을 먹고 다음 수업 시간 준비를 하던 중 안내방송이랍시고 짧은 공지가 울려 퍼졌다.
왜 나를?
처음에는 그냥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사이코랑 같이 불렀다면 아카데미 생활에 관련해서 무언가 물어보려고 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나만 불렀다는 건 그 외의 무언가에 대해서 물어보거나 말하려고 하는 거라는 건데 도저히 예상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더 이상 생각하는 걸 그만두고서 혼자서 체력단련실로 갔다.
체력단련실로 들어온 나는 추가적으로 몇 번의 테스트를 더 거친 후에야 불린 목적을 들을 수 있었다.
"저랑 요네바야시가 제일 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왔다고요?"
'응, 적정자 7명 중에서 요네바야시 사이코 양이랑 후쿠에 미네키치군이 시술을 받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와서 그거에 대해서 말해주고 시술을 받을 건지 동의를 받으려고 부른 거야.'
"그럼 요네바야시는요? 걔도 제일 적합하면 같이 불러야 되는 거 아니에요?"
'요네바야시 양은 이미 부모님 측에서 동의하셔서 따로 부르지는 않았어.'
"아 네.."
그렇게 두 시간을 내리 시술과 관련해서 주의사항과 동의서에 대해 설명을 들었고 본인이 직접 사인한다면 부모님의 허락은 따로 필요 없다는 말에 나는 곧바로 동의서에 사인을 했고 지금의 쿠인쿠스가 되었다.
사실 그렇게 불려간 날 이후로는 이상하게 사이코와 마주치지 못했다.
평소에는 지겹게 마주치던 사람을 자주 보지 못하게 되자 정이라도 든 건지 조금 보고 싶어지기도 했었다.
그렇게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자연스레 쿠인쿠스 반에 들어가게 됐고 거기서 사이코를 오랜만에 보게 됐다.
".. 사이코?"
내가 이름을 부르자 사이코는 마치 전기에 감전되기라도 한 건지 소스라치게 놀라며 위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오랜만에 본 동급생을 대하는 태도로는 다소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사이코의 사정을 다 들은 지금에서야 그때는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아직도 사이코를 챙겨야 된다고 생각했는지 임무를 나가거나 회의를 나갈 때만 어떻게든 사이코를 깨워서 옷을 입힌 다음 데리고 나갔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이코와 가깝게 지내면서 점점 사이코에 대한 감정이 처음과는 180도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는 내가 성인이 돼서도 얘를 책임져야 되나, 엄청나게 귀찮고 싫었는데 지금은 나 아니면 누가 얘를 책임 지나....라는 느낌?
하지만 사이코는 그렇게 온갖 사사로운 것들을 다 챙겨주는 나를 따라다니기보다, 사사키 하이세라는 그 멘토를 더 따랐다.
뭐, 마망?
아무튼 그런 호칭으로 옛날부터 본 나보다 본지 얼마 안 된 멘토를 더 따르는 게 괜히 짜증이 났다.
"저런 멘토가 뭐가 좋다고 따라다녀.."
그 말을 혼잣말처럼 내뱉은 순간 내 머릿속에 한 질문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내가 저 멘토를 질투하나?
왜?
사이코가 저 멘토를 잘 따르고 친근한 호칭으로 불러서?
....나 사이코를 좋아하나?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들은 다 처음 보는 질문들이었다.
지금껏 사이코를 보면서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질문들이 질투라는 그 감정을 매개체로 생산되어 무더기로 내 머릿속에 들어오는듯했다.
"... 내가 그 사이코를 좋아한다고? 에이 설마."
'방금 뭐라고 했어?'
..어?
얘가.. 왜 여기에 있지?
지금 그 멘토랑 빵집 간다고 나가있을 시간 아닌가?
설마 방금 그 말 들은 건가?
...그냥 지금 뱉어볼까.
어차피 거절당한다고 해도 평소처럼 지내면 그만이고.
정 뭣하면 그냥 쿠인쿠스반 나오면... 그건 좀 아닌가.
".. 너 좋아한다고 했는데, 왜?"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백 멘트를 내뱉었다.
아니, 사실 고백 멘트라고 하기에는 너무 저급하고 싸구려고 그냥 어쩌다가 좋아하는 감정을 들킨 사람의 어정쩡한 말이라고 치자.
솔직히 이 어정쩡한 말에 사이코가 대답을 해줄 거라곤 상상도 하지 않았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임무에서 느릿느릿 의욕 없이 행동하는 사이코에게 폭언을 퍼붓고 온갖 짜증이랑 짜증은 다 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내가 사이코라도 이런 애한테 고백을 받고 애인이 되는 건 만약의 선택지들 중 가장 최악의 선택지일 것이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배드 엔딩들의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있던 와중 저 먼발치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한 목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좋아!! 사실 나 후쿠에군 엄청 좋아하거든.'
".. 뭐?"
'.. 그래도 어제의 폭언은 조금 마음 아팠지만 말이야.'
아, 내가 괜한 상상을 했던 거 같다.
사이코는 내 상상안에 있는, 한마디로 내가 내 마음대로 생각해서 지어낸 가상의 인물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니까.
사이코의 대답을 듣자 지금까지 머릿속으로 열심히 시뮬레이션 하던 배드 엔딩들이 모두 쓸모 없어짐과 동시에 샹투스가 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 근데 너 오늘 사사키랑 빵집 간다며?"
'음... 그러긴 한데, 마망보다는 후쿠에군이랑 가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어!!'
"나를? 왜?"
'왜냐하면 후쿠에군 그 빵집의 빵들 한 번도 안 먹어봤잖아? 시라즈랑 무츠키랑 우리에는 다 한 번씩은 먹어봤는데!!'
"그런다고 무작정 기다리냐, 나 일 있었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말로는 툴툴거리지만 몸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지갑까지 챙긴 채로 현관 앞에 서있었다.
"빨리 와, 오늘은 사사키 대신 내가 사줄게."
'진짜? 후쿠에군 최고!!!'
그래, 배드 엔딩 같은 것들은 생각하지 말고 이런 좋은 것들만 보고 생각하자고 후쿠에.
미운 정도 정이라잖아, 그러니 나쁜 과거도 나한테는 좋은 거름이고 원동력이 됬겠지.
과거의 나는 아카데미에 들어온 것부터가 버려진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별로였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카데미에 들어왔기에 너를 만나고 지금 이렇게 행복한 거 아닐까?
행복이 별거겠어, 사랑하면서 사는 게 행복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