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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예상했겠지만 내가 한 게 맞아. 그치만 궁금하잖아, 안 그래?”

“프라우님…”

“아하하, 프라우는 재밌다니까~”

“헤이드… …”

 

 

 

루인은 제 앞에서 엄지를 척, 올리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언제부터인지 마음이 맞아 같이 돌아다녔을 때부터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어느 정도 예상했어야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루인이 이를 놓친 것에 큰 이유가 있던 건 아니었다. 상대는 다름 아닌 헤이드였다. 누구냐고 묻는다면 루인에게 있어 믿고자 하는 이. 로드를 충성과 궁금증이 섞인 눈으로 보고 있다면, 헤이드는 믿음과 애정으로 보는 자였다. 애정, 이라고 하면 우정도 있지만 그보다 더한 깊이를 가진 마음으로 루인은 그에 대한 애정을 결코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다만, 이를 쉽게 드러낼 생각도 없었다. 제 자리가 가벼운 직책이 아니며, 그 상대도 목숨을 걸고 나가는 기사인 이상 애정이라는 감정으로 서로가 발목 잡히지 않길 바란 마음이었다. 냉정해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아발론을 위한 일이라면 루인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자신이 우선적으로 여기는 건 아발론의 안전이었다. 바로 그가, 다정하고 책임감 있게 일을 처리하는 그가, 생각보다 더 현실적이고 이득을 취하는 법을 알고 있는 그가, 보는 눈이 있을 때면 존칭을 붙이며 부르던 호칭은 어느샌가 사라져 제 애정의 상대를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겨우 그 정도로 루인이 어딘가 달라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

 

 

 

*

 

 

 

“나는 루인 좋아하는데!”

“그걸 누가 모르냐~”

 

 

 

프라우는 헤이드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모르고 싶어도, 눈만 뜨면 루인을 찾거나 파견을 다녀오면 루인의 선물을 가장 먼저 챙기는 등 루인에 대한 애정을 헤이드는 끊임없이 보이는 편이었다. 그러니 그와 같이 지내는 기사들은 헤이드가 루인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모른 척 해주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까지 티를 내는 걸 보면 상대도 부담스럽지 않나? 프라우가 헤이드를 보고 처음으로 든 생각이었다. 자신도 좋아하는 상대에게 망설임 없이 티를 낸다지만 그 마음에 진심이 없는 쪽에 가까웠다. 가벼운 마음이니 좋아한다는 말도 가벼웠지만, 헤이드는 그런 게 아니었다. 매순간 진심으로 루인을 좋아한다 말하며 그에게 적극적인 모습을 보면 저절로 의문이 드는 것이었다. 저렇게 좋아한다고 표현하는데, 그럼 상대는? 부담스러워서 피하거나 거절의사를 보이거나 정색하는 모습 쯤은 상상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문제는, 바로 대상이 아발론의 행정관 루인 마이어라는 점이었다. 헤이드의 적극적인 표현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겉모습으로만 봐서는 도저히 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루인이 헤이드와 달리 표현이 없다는 걸 프라우는 알고 있었다.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아침부터 루인을 찾아가 인사와 함께 그에게 오늘도 엄청 좋아한다 말하는 헤이드를 본 적 있었다. -프라우는 그걸 원해서 본 건 아니었다.- 좋아한다는 말에 대한 반응이 궁금해 자리를 뜨지 않고 지켜보았는데, 루인은 어떠한 말도 하지 않은 채 웃는 게 전부였다. 웃는 걸 보면 돌려서 거절하는 표현인가? 그렇다고 하기에 금고를 탕진해버린 로드를 향해 무서운 웃음을 짓는 표정과는 전혀 달랐다. 좀 더 부드러운 웃음에 가까우니 프라우가 알 수 있었던 건 그가 철저하게 숨기는 감정이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마저도 확신은 아니었다. 루인은 프라우에게 있어 쉽게 알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로드나 프람처럼 단순한 사람이었다면 프라우도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일이었다. 아, 물론 로드나 프람에게는 단순해서 흥미가 있긴 하지만. 오히려 전혀 모르겠으니 피하고 싶은 사람이 루인이었다.

 

 

 

그렇다고 정말 피하다면, 이 프라우님이 아니지. 프라우는 헤이드를 보며 히죽,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였다. 네가 루인을 엄청 좋아하는 건 알고 있지만~ 궁금하지 않아? 루인도 너를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상대가 자신과 같은 마음인지 궁금한 건 연애의 기본이었다. 게다가 둘은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다. 매일 같이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사람과 그 고백을 듣고도 의미심장한 웃음만 짓는 사람! 이런 재미라면, 역시 사랑의 묘약 같은 걸 준비하는 수밖에 없잖아?

 

 

 

“그런 의미에서, 헤이드. 너도 궁금하지?”

“루인도 날 좋아하는데?”

“그걸 어떻게 확신해?”

“그냥~ 그런 감이야.”

“그럼 둘이 왜 안 사귀는데?”

“음, 그러게?”

“거 봐, 모르는 일이라니까. 그러니 내가 특별히 알게 해주지.”

“뭔지 전혀 모르겠지만~ 재밌어보이니까, 좋아!”

“…너도 만만찮게 팔자좋구만.”

 

 

좋아하는 사람한테 내가 뭘 할 줄 알고 힘차게 대답하다니… 계획을 준비한 건 제 쪽이면서도 프라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프라우는 작은 약병을 들고 다시 헤이드를 찾아갔다. 이 약을 넣은 차를 마시면 차를 마신 상대가 좋아하는 사람한테서 솔직해진다는 설명과 함께 그의 손에 약병을 쥐어주었다. 헤이드는 병을 한참 바라보더니 밝게 웃으며 찻잔을 들고 루인을 만나러 갔다.

 

 

 

*

 

 

 

“그렇게 해서 지금처럼 되었다는 말씀!”

“대체 그런 건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에이, 일급비밀이야~”

 

 

 

자신이 같이 가면 분명 수상한 눈길을 받을 게 분명하기에 헤이드가 권하는 차를 루인이 마실 때까지 프라우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루인이 찻잔에 입을 댄 순간, 기다렸다는 듯 방문을 열고 들어가 루인을 살펴보았다. 갑작스런 방문에 의아해하던 루인은 차를 마신 후에도 평소와 다름 없는 얼굴이었다. 마신다고 해서 갑자기 사람이 변하는 약은 아니었지만, 평온한 얼굴에 프라우는 아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진짜 좋아하는 건 아닌가? 이름은 우연이고? 아니면 혹시…

 

 

 

“헤이드, 루인한테 궁금한 건 없어?”

“응? 글쎄… 루인, 오늘 간식은 먹었어?”

“그게 아니라… 나랑 얘기했었잖아.”

“아, 맞다~”

 

 

 

약병을 쥐어주었을 때 했던 얘기는 이미 잊은 모양인지 헤이드는 프라우의 말에 겨우 무언가 생각났다는 표정을 지었다. 약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전해들었으니 그들이 할 법한 이야기는 루인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에 대해 일부러 숨긴 건 맞지만, 루인에게 있어서는 지금처럼 약까지 들고와 궁금증을 해결하는 모습에 끝끝내 입을 다물 생각도 없었다. 오히려 그에게는 지금 상황을 빨리 끝내는 게 가장 시급한 일이었다. 프라우의 기대를 위해 루인이 입을 열자 그와 마찬가지로 헤이드도 입을 열었다.

 

 

 

“혹시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면…”

“있잖아, 루인.”

 

 

 

“역시 루인은 날 좋아하지?”

“그렇게 직접적으로?”

 

 

 

루인이 답을 하기도 전에 놀란 건 프라우였다. 뭐, 좋아하는 사람 있어? 라거나 나는 어떻게 생각해? 도 아니라 확신에 찬 얼굴로 역시, 라는 단어까지 쓰며 말을 하는 헤이드를 보고 프라우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어이, 어이… 무슨 자신감이냐고. 우리는 지금 그걸 알아보려고 온 거잖아? 프라우는 속으로 생각하며 이미 엎질러진 물에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이미 말한 건 주워 담을 수 없으니 차라리 구경하는 엘프가 되자는 마음이었다. 제 생각보다 루인이 재밌는 반응을 한다면 그건 또 볼 만할 테고. 이를 기대하며 루인에게서 시선을 돌리자 프라우는 눈을 크게 떴다가 제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이런 걸 보려고 약을 구한 건 아닌데 말이지. 프라우가 마주한 루인은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로드가 금고를 탕진해서 짓는 무서운 웃음이나 기사들에게 보이는 예의를 차리며 짓는 웃음, 평소 자주 짓는 웃음이 아니라 좀 더 부드럽고 다정한 미소였다. 그리고 그 미소는, 루인이 헤이드를 볼 때마다 짓는 미소였다. 다시 말하자면 약이랑 상관없이 루인은 언제나 솔직한 감정으로 웃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 미소를 마주한 건 프라우만이 아니었다. 헤이드도 분명 루인을 보고 있었다. 그가 고민하지도 않고 질문을 던진 건 그의 반응이 무얼 나타내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치? 루인은 날 좋아한다니까~”

“생각보다 재미없네…”

 

 

 

루인이 답을 하자 헤이드는 자신있는 얼굴로 프라우를 바라보았다. 잘 알면서 차는 왜 준 거야? 생각보다 악질 아냐? 프라우는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우고 제가 졌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장난 좀 치려던 건데, 내가 당한 기분이네. 하여튼 호락호락한 놈들이 없다니까.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루인은 그들의 말이 끝나자 상냥한 웃음으로 문을 향해 손짓했다.

 

 

 

“만족하셨으면 저는 이제 남은 일을 마저 해도 되겠습니까?”

“예이, 예이. 방해해서 미안했수다~”

“헤이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라, 나는 남으면 안 돼?”

“예, 안 됩니다.”

“어쩐지 루인이 솔직해졌는데…”

“두 분이 그렇게 만드셨잖습니까.”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는 헤이드를 보며 루인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평소처럼 제게 붙어서 떼를 쓰는 모습에도 파견을 다녀오는 게 도와주는 일이라는 말을 할 뿐, 루인은 어느 때보다 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솔직한 마음을 담아 제 의견을 내보이고 있었다. 이런 부분에서도 솔직한 반응일 줄은 몰랐는데…! 헤이드는 작게 투덜거리면서도 순순히 방문을 나섰다. 그러나 진실을 알게 된 프라우에게 있어서는 두 사람의 애정행각으로만 보일 지경이었다. 만족스러운 건 아니지만, 더 이상 루인에게 볼 일이 없는 프라우는 헤이드가 나가는 모습을 보며 저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약은 한 시간 후면 효력이 사라질 거야~”

 

 

 

문을 나서기 전, 프라우는 뒤를 돌아 루인을 바라보았다. 서로 좋아하는 건 이제 알겠는데… 생각해보면 둘이 연인은 아니잖아. 프라우는 문득 제 궁금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해결되지 않은 걸 알 수 있었다. 걸음을 옮기다 저를 바라보는 모습에 루인 또한 그를 바라보았다.

 

 

 

“근데 말야, 좋아하는 게 맞으면 왜 안 사귀어?”

“흠… 아직은 서로 일이 바빠서 그렇습니다.”

“저 녀석이 맨날 좋아한다 말하는데 신경 안 쓰여?”

“듣기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너도 참… 은근 얄미운 구석이 있네.”

 

 

 

그 말에도 부정하지 않겠다며 그저 웃어보이는 루인을 보며 프라우는 또다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나, 여기 와서 어이없는 표정을 제일 많이 지은 거 알지? 루인이야 원래 좀 수상한 면이 있었다지만, 헤이드마저 그럴 줄이야. 끼리끼리 만났다는 말은 어쩌면 저 두 사람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작은 소란이 아발론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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