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렇게 됐더라… 케이터는 기둥 뒤에 숨어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그의 시선에는 NRC에서 유일하게 다른 교복을 입고 있는 이와 너구리라 불렀던 몬스터를 향해 있었다. 그들이 발걸음을 옮기면 케이터도 따라 옮겼고, 그들이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면 케이터는 근처 기둥이나 풀더미 뒤로 숨기도 하였다. 누가 어떻게 봐도 명백히 그들을 따라다니는 케이터는, 분명 나중에 리들에게 걸리면 된통 혼날 거란 생각과 함께,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당연히 그들을 이유없이 따라다니는 건 아니었다.
‘선배, 항상 스마트폰만 보잖아요.’
이유가 있다고 해서 상대방 몰래 따라다녀도 되는 건 아니었지만. 처음 발견했을 때는 보이는 모습에 평소처럼 말을 걸 생각이었다. 안녕, 감독생쨩~ 어디 가는 길? 하고. 선뜻 다가가지 못한 건 얼마 전 감독생이 자신한테 한 말 때문이었다. 하네카와 유카, 입학식에서 작은 몬스터와 함께 난리 피우고 감독생인 된 학생. 자세한 내막은 알 길이 없었다. 궁금하지 않기도… 아니, 그보다 깊게 엮일 자신이 없었다. 4학년으로 올라가면 볼 일은 더 없을테고, 그때까지 가볍게 알고 지내면서 즐거운 시간만 보내면 그만인데 감독생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자 케이터에게 있어 의미 있는 짓이 아니었다. 자신이 가볍게 행동한다면 상대도 무게를 두지 않는다. 가끔 선을 넘는 경우도 모른 채 하며 학교를 다녔고, 케이터 다이아몬드는 이에 대해 만족스러운 답은 선뜻 하지 못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지 않으려나? 하는 답은 내놓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만족이야, 이 정도면. 스스로에게 내뱉으며 단조로운 생활을 보내던 와중에 변화라는 건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법이었다. 감독생이라고 해봤자 조금 난리를 피운 학생이잖아? 처음 들었던 생각이었고. 문제가 일어나는 곳에 항상 있었던 감독생을 보며 뒷처리 힘들겠네. 고생이 많은걸~ 그 다음으로 든 생각이었다.
여기서 끝.
하루가 시작되면 어제 전부 답을 못했던 댓글에 답을 해줘야 하고, 오늘 새로 올릴 글을 생각해야 하고, 올릴 게 없다면 새로운 사진이라도 찍어야 하니까. 케-군, 의외로 하교 수업 외에도 바쁘단 말야. 감독생을 굳이 내가 신경 쓸 필요없잖아? 에듀스가 있으니 학교 적응에 도와줄 일도 없고. 그러니 정말 끝이야.
그리고 케이터가 감독생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된 건 그가 제 뒤를 쫓아다녔을 때부터였다.
언제부터 따라다녔는지, 언제부터 제게 관심을 가졌는지 케이터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먼저 관심을 갖지 않았고, 유카의 주변에는 언제나 에듀스 콤비와 학교에서 유명인으로 보이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이 말은 곧, 유명인이라 보기 힘든 -다른 녀석들에 비해 스스로가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케이터가 끼어들 틈은 전혀 없다는 말이었다.
*
“여기서 뭐 해요? 케이터 선배.”
“어? 유, 유카쨩?!”
“이런 풀 속에 숨어서 뭐 하고 있었어요?”
“아, 아하하~ 그게… 마, 마지카메에 올릴 사진을 찍고 있었어!”
케이터는 황급히 스마트폰을 든 채 주변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분명 아까까지 저 앞에 있지 않았나? 뒤를 돌아보는 모습에 얼른 숨은 곳은 커다란 풀더미였다. 완벽하게 숨었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곳에 시선을 두지 않을 줄 알았는데. 저 멀리서 제 머리카락이라도 보인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곧장 케이터라는 이름이 나올리가 없지. 게다가 평소 부르고 다니던 케이 선배~ 라는 애칭도 아니었으니 혹시라도 착각할까 명확하게 저를 지목했다. 모른 척 넘어갈 수도 없는 이 상황에 케이터는 몇 번이고 촬영 버튼을 눌렀다. 평소라면 찍지 않았을 풍경이 제 스마트폰에 담기고 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몰래 따라다녔다는 걸 절대 들키지 말아야지…
“이런 풍경도 찍는 거네요.”
“학교 안도 나름 예쁘잖아?”
“이 몸이 보기에는 전부 나무 뿐이라구.”
다행스럽게도 넘어간 모양인지 유카는 케이터가 찍는 풍경에 시선을 돌렸다. 같이 있던 그림의 말처럼 보이는 건 커다란 나무 뿐인데도, 케이터는 아무렇지 않게 예쁘다는 감탄사를 늘어놓고 있었다. 케이터에게는 아예 부정할 만한 풍경도 아니었으나 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케이터는 어색하게 찍고 있던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유카를 바라보았다. 얼굴을 살짝 덮는 옆머리 너머 서로 다른 눈색을 가진 사람은 흔히 볼 수 있는 생김새가 아니었다. 리치 형제였던가? 그들도 서로 다른 눈색을 가지고 있긴 했지. 그렇지만 저렇게 붉은색과 노란색을 가진 이는…
“그보다 저 따라다니고 있었죠? 케이 선배.”
“이 몸이 분명 봤다구!”
…다행인 게 아니었네. 언제부터 알았지? 아까는 알면서 떠본 말이었나?
온갖 의문이 들어도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 무엇도 하지 못한 채 케이터는 입을 다물었다. 그가 혼자 생각하는 동안 내 말이 맞다거나 사실대로 말해라, 하는 그림의 말은 케이터의 귓가에 들려오지도 않았다.
*
끼어들 틈이 없다라는 말은 사실, 끼어들 자신이 없다는 말과 같았다. 애써 소란스런 장소를 피하고, 들리는 이름을 무시하고, 모든 상황이 정리된 후에 한마디 얹는 게 끝. 유카는 지금도 케이터를 보며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케이 선배가 그럴리가 없잖아~ 라는 말과 함께 저를 쫓아다니며 보여 주었던 얼굴이었다. 애써 소란스런 장소를 피해도 케이 선배라고 부르며 저를 끌고 오고, 못 들은 척 넘어가려고 하면 눈 앞에 나타나 지금처럼 웃어보이고, 모든 상황이 정리된 후에 나타나려 해도 제 주위를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 하네카와 유카가 끼어들 틈을 손에 직접 쥐어도 그 틈에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 오로지 케이터의 몫이었고, 판단이었으며, 혼자 내린 결론이었다. 평소가 아니라 원래 케이터 다이아몬드라면 어땠을까. 원래, 라는 표현은 어색하네. 남들에게 보이는 온화한 케이터 다이아몬드라면 어땠을까. 그런 적 없다고 웃으며 대꾸하거나 장난스럽게 길이 겹쳤는데 아는 척 하기 민망했다고 답했을까. 그게 정답이었을까. 그게 하네카와 유카를 향한 저의 끝이었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끝끝내 부정하고 또다시 여기서 끝, 하며 일단락 지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말을 하는 케이터 다이아몬드는 모두가 생각하는 원래의 케이터 다이아몬드가 아닌 것이다.
“유카쨩이 먼저…”
“내가 먼저?”
“…먼저 따라다녔잖아.”
케이터 다이아몬드라면 이런 말 따위 하지 않는다. 따질 생각은 아니었다. 너도 날 따라다니는데, 나라고 못 따라다닐 이유가 없지 않냐고. 그런 건 지금의 자신이라도 말할 얘기가 아니었다. 다만, 저는 분명 너에게서 멀어지려고 했다. 애써 모른 채 지나온 길이 민망스럽게도 제 뒤를 쫓아오는 너를 보며 그 말을 들은 이후로도 가벼운 마음만 가지려고 노력했었다. 자신이 노력하면 될 뿐이라고. 보면 그만인 사이라고. 그리고 지금은 내가 네 뒤를 쫓고 있다. 끝인 줄 알았던 일은 너로 인해 다시 시작되고, 무언가 시작되려고 한다. 케이터는 유카한테서 한 차례 도망치고 다시 마주한 지금 순간, 또다시 도망갈 수 없었다. 그를 쫓아다닌 이유는 명확히 존재하고 있었다.
*
“…내가 그렇게 스마트폰만 봤던가?”
“중독으로 보이긴 하지.”
“나… 아무래도 고백 받았는지도 몰라, 트레이.”
“뭐?”
트레이는 갑작스럽게 들어온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장난이냐고 되묻기에는 웃음기 없는 진지한 얼굴이, 저도 따라 심각한 표정을 짓게 만들었다. 무슨 생각을 하면 스마트폰 중독에서 고백 얘기로 넘어왔는지 잘 모르겠지만. 고백에 대한 부분이라면, 곧장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본인이 말하고도 어색한지 케이터는 곤란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뀌어 제 얼굴을 긁적이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더 해야 하는지 모르는 눈치이기도 하였다. 트레이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진지하게 케이터를 바라보았다.
“유카에 대한 이야기야?”
“어? 어떻게 알았어?”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않냐…”
케이터가 유카를 모르는 척하며 피해다녔을 때, 유카가 이를 알고 케이터를 더 끈질기게 따라다녔을 때, 트레이는 분명 보고 있었다. 언제나 케이터를 쫓던 눈을, 케이터를 찾던 목소리를. 저만 알고 있던 게 아니겠지. 1학년들도 알 법한 케이터에 대한 유카의 적극적인 행동은 정작 본인만 모르고 있었던 일이었다. 아니면 모르는 척 하고 있었겠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그게 말이지… 마지카메에 올릴 사진을 같이 찍자고 말했을 뿐인데 말야.”
싫다고 하더라고. 거절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라 아쉬운 척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케이터는 구구절절 유카와 있었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던 와중에도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게 보였으나 분명 이 또한 본인만 모를 게 눈에 훤한 일이었다.
*
“감독생쨩, 또 수습 중이야? 언제나 고생이 많네~”
“알면 일찍 좀 나타나주세요. 매번 일이 끝나면 오네요.”
“아하하, 미안~ 케-군 조금 바빠서~”
물론, 거짓말이지만. 케이터는 커다랗게 나와있는 솥을 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언제봐도 대단하다니까. 그 앞에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유카는 무릎을 꿇은 채 선생님에게 혼나고 있는 에이스와 듀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 관두라 말했는데도. 작게 불만을 내세우는 걸 보면 아무래도 이번 일은 오로지 두 사람만의 말썽인 듯 싶었다. 자세한 일은 나중에 듣기로 하고. 오랜만에 나타난 솥을 앞에 두고 가기 아쉽지. 케이터는 스마트폰을 들고 유카 쪽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같이 찍는 건 어때~?”
“흐음, 싫어요.”
“역시, 라고 할까. 매정하다니까~ 말레우스 군도 매번 사진에 찍히지 않으려 하고…”
“그런가요. 말레… 무서운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친한가 봐요.”
“친한 건 아니지만~ 뭐, 대하기 어렵지도 않은 것 같은데?”
“그렇구나… 케이 선배.”
“응?”
“저, 사진 찍히는 건 싫어하지 않아요.”
“어? 그치만 매번 거절했잖아? 무슨 이유라도…”
“그야 케이 선배하고 찍는 사진은 별로 즐겁지 않으니까.”
“…어?”
“그거, 누굴 위해 찍는 건가요?”
케이터는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받아칠 말이 떠오르지 않은 탓이었다. 단 음식을 싫어한다는 걸 트레이에게 들킨 이후로 이렇게 벙찐 적이 있었던가? 당황스럼다는 말이 어울리는지 들켰다는 말이 어울리는지 정확한 표현도 찾을 수가 없었다. 무슨 대답을 해야, 아니,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거지? 스마트폰을 들고 있던 손이 저절로 내려간다. 그 순간에도 저를 마주하는 하네카와 유카는 평소처럼 장난스런 웃음이 아니라 무언가 갈망하는 눈빛이었다. 당연히 케이터 다이아몬드는 그 눈빛에 보답해줄 수 없다. 한참동안 답이 없던 상대를 두고 선생님에게 잔소리는 다 들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에이스와 듀스를 보며 유카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케이터는 이미 이때 알아차려야 했는지도 모른다. 먼저 발걸음을 떼는 그를 쫓아다니게 되는 건 제 쪽이라고. 유카는 발걸음을 옮기며 케이터를 향해 지나가듯 말을 내뱉었다. 선배는 항상 스마트폰만 보네요, 라는 말 뒤에 이어진 말은…
“좀 더 저를 제대로 봐주면 좋을텐데. 저, 선배 좋아하니까요.”
여기서 끝.
*
그 일이 얼마 전에 있던 일이었고, 다시 얼굴을 본 건 바로 지금, 제가 상대를 몰래 뒤쫓은 순간이니 얼마나 어색한 순간인지 말로 전부 표현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럴듯한 변명을 내놓지 못해 네 탓이라 미루는 상황! 케이터는 살면서 지금 순간이 가장 초라한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멋도 없고, 예의도 없고. 그렇지만 할 말이 많은 건 제 쪽이었다. 저는 이럴 기회를 만들지 않기 위해 피했고! 쫓아다닌 건 그쪽이고! 이후로 만나지 않은 쪽도 케이터가 아니라 유카였다. 그동안 무슨 일이든 있었겠지, 싶어도 고백 같았던 순간에 얼굴을 내밀지 않는 건 오히려 이쪽이 안달나게 만드는 작전 아닌가. 케이터는 제 얼굴이 점차 붉어지는 걸 느끼며 말을 이어갔다. 유카쨩이 갑자기 안 보였잖아, 무슨 일이 있었나 했어, 근데 막상 마주하려니 조금 자신이 없어져서…
“그러니 이제와서 쫓아다니는 게 싫다고 하지 말아 줘!”
“어라, 지금 그런 문제가… 아니지 않나…”
“그건, 그렇지…”
케이터의 말을 한참 듣던 유카는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의문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야, 유카는 케이터가 심심해서 쫓아다녔다거나 우연히 길이 겹쳤는데 민망하다는 말을 했어도 납득했을 일이었다. 다름 아닌 그가, 도저히 저를 바라보지 않았던 케이터 다이아몬드가 무슨 이유를 담고 저를 쫓아다녔을리는 없으니까. 애초에 그림이 케이터가 저를 쫓아다닌다는 말조차 믿지 않았었다. 또 귀찮게 하는구나, 생각하며 물어본 말에 이런 답이 돌아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저, 딱히 싫지 않고 왜 따라다녔는지 잘 모르겠어서… 쫓아다니던 강아지가 없어져서 신경 쓰인 건가요? 뜻하지 않게 일이 많이 생겨서 그랬는데 역시 저 없으니 심심했던 거죠?”
“그렇게 해석이 되는 거야?”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케-군 나름 진심을 담은 말이었는데. 네가 없어져서 신경 쓰였다고. 그러니 이제 네가 보이지 않으면 찾게 되는 건 제 쪽이 되었다고. 정신 없이 내뱉은 말에 돌아온 반응이 미적지근하자 케이터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뭐, 곧이곧대로 말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하지 않아? 여전히 팔짱을 낀 채 고민하는 유카 앞에서 이번에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만큼 왔으면 부정할 수 없다. 아직까지 온전한 제 진심을 전할 자신이 없지만, 다른 오해가 생기기 전에 확실하게 전해야 한다. 드러낼 줄 몰랐던 진심을 오로지 너에게.
“…잠깐, 이거 혹시 고백이었나요?”
“유카쨩…”
“둘이 지금 뭐 하는 거냐구…”
케이터의 진심이 무색하게도 유카는 이제야 알았다는 표정으로 케이터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을 이해 못 한 얼굴로 바라보던 그림이 고개를 내젓는 동안 또다시 갑작스럽게 들려온 말에 케이터는 어설픈 웃음을 지었다. 정말이지, 예측할 수가 없네. 짧은 순간에도 제 대답을 기다리는 유카를 향해 여전히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뒤늦게 한참 고민하던 유카는 곧이어 크게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 전혀 몰랐어요. 지금 케이 선배 엄청 불안한 표정이니까요.”
“내가?”
“응, 나를 영영 못 보는 사람처럼 말했잖아요. 저 떠나지 않을 텐데.”
“그… …”
케이터는 한참 입을 벙긋거리더니 그대로 제 얼굴을 감싸며 주저앉았다. 내가 너를 그렇게 봤다고… 내가 너를 밀어내고 있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네가 나를 두고 떠날 사람처럼… 이건 정말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안달난 건…
“…못 본 척 해줄 수 있을까?”
“영영 안 잊혀질 쪽인데요.”
“케-군은 아직 거기까지 드러낼 자신이 없단 말야…!”
“뭐가 두려워요? 내가 분명 케이 선배를 이렇게 좋아하는데.”
그 말에 케이터는 고개를 살짝 들어 유카를 바라보았다. 얼굴 절반이 겨우 보이는 손가락 사이로 유카를 바라보자 쑥스럽게 웃어보이는 표정이 그를 향해 있었다. 언제 같이 앉았는지 똑같은 높이로 마주하는 시선이었다. 유카는 그가 저를 겨우 바라보는 건 신경 쓰지 않는지 변함없이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선배, 저 좋아해요? 하고 말하는 눈빛에 케이터는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분명 아까보다 더 붉어진 얼굴이겠지. 이렇게 진심으로 짓는 표정을 타인에게 쉽게 보일 자신이 없었다. 제가 아무리 좋아하는 상대라도…! 하지만 외면할 생각도 아니었다. 지금이 아니라면 진심을 전하지 못할 것이다. 케이터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유카는 다시 소리내어 웃었다.
“아하하, 저도 정말 좋아해요.”
“유카쨩, 은근 나쁘다니까…”
어설픈 고백에 이어 솔직한 고백이 학교 안에 오가는 동안, 그 고백을 바로 옆에서 목격한 그림은 그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게 뭐하는 거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