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렌은 적응력이 빠른 사람이었다. 마법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세계의 남학교에 버려지듯 던져진 상황에서 당황하는 것도 잠깐 뿐.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적응할 틈도 없이 많은 사건을 이겨낸 그는, 어느새 새로운 취미를 가질 정도로 새로운 세상에 녹아들고 말았다.
“오, 아이렌! 뭐야 그건? 맛있는 냄새가 나는 걸~!”
“트레이 선배랑 같이 만든 복숭아 타르트야. 선배가 도와줘서 그런지, 맛있게 됐어.”
“오오~!”
당장이라도 아이렌의 손에서 타르트를 빼앗아 삼킬 것 같은 눈으로 서성거리는 그림의 입에 침이 고였다. ‘정말로 솔직하구나.’ 온 몸으로 식욕을 분출하는 제 파트너를 보다가 헛웃음이 나오고 만 아이렌은 작게 중얼거리고 타르트가 든 상자를 탁상 위에 올려놓았다.
“안타깝지만 이건 너랑 먹으려고 만들어 온 게 아냐.”
“뭐?! 설마, 혼자 먹으려고…?!”
“나 혼자 이거 한판을 어떻게 다 먹어? 보관할 곳도 없는 이 낡은 기숙사에서?”
저 말은 즉, 냉장고만 있었다면 혼자서 다 먹었을 거라는 의미인 걸까. 그림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아이렌을 봤지만, 당사자는 그 시선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이건 제이드 선배랑 플로이드 선배에게 주려고 만든 거야. 네 건 언젠가 내가 마음이 내키게 되면 만들어 줄게.”
“뭐?”
“뭐, 라니. 반응이 왜 그래?”
“아니. 너, 참 겁도 없구나 싶어서?”
제이드 리치와 플로이드 리치. 인상이나 눈동자 색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 외의 것은 꼭 빼닮은 옥타비넬의 쌍둥이 형제. 자신들과는 달리 2학년이라 교실에서 마주치거나 할 일은 없지만, 학교 내를 돌아다니거나 교내 카페에 가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었지.
‘도대체 왜 그 형제들이랑 친하게 지내는 거지?’ 정중하지만 어쩐지 찝찝한 분위기인 제이드와 눈빛부터 위험해 보통은 다가가고 싶지 않아하는 플로이드를 나란히 머릿속에 떠올린 그림은 아이렌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나는 안 가!”
“따라오지 말라고 할 거였으니까 상관없어. 나야 고맙지.”
“흥, 날 두고 그런 녀석들에게나 타르트를 주고! 가다가 넘어져라!”
“네, 네.”
타르트의 포장을 마친 아이렌은 피식 웃고 밖으로 나섰다.
폐허나 다름없는 기숙사를 나와 카페 ‘모스트로 라운지’까지.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를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아이렌의 표정은 기대와 걱정이 뒤엉켜 엉망이 되어있었다.
‘복숭아를 싫어하는 건 아니겠지?’
두 사람의 취향도 잘 모르면서 용케 메뉴를 골랐구나. 스스로의 배짱에 다시 한 번 감탄한 그는 사람이 거의 없는 라운지 안을 조심스럽게 둘러보았다. 이 시간쯤 마친다고 전에 다른 학생들을 통해 건너 듣긴 했지만, 만약 손님이 있는데 이런 걸 전해주게 된다면 민망해서 그 자리에서 죽어버릴 지도 모른다. 그러니 잘 살펴보아야 한다. 아직 돌아가지 않은 손님이 있지는 않은지, 따로 일하고 있는 옥타비넬 학생은 없는지.
“응? 당신은….”
“아.”
최대한 조용히 살펴보고 있었는데, 아무도 없는 곳에 덩그러니 서있었던 탓에 눈에 띄어버린 모양이다. 아이렌은 자신을 알아보고 다가오는 커다란 그림자에 마른 침을 삼켰다.
“어서오세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오늘 영업은 종료입니다. 안타깝네요.”
입은 미소 짓고 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는 제이드는 아이렌의 바로 코앞에서 멈춰 섰다.
늘 느끼지만, 정말 압도적으로 크다. 자신도 여자치곤 큰 편이라지만, 두 형제와 비교하자면 우스운 키일 뿐이지. 시선의 높이 차이에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린 그는 소리 없는 심호흡을 한 후, 들고 있는 선물을 내밀었다.
“저, 이거 드리고 싶어서 온 거니까. 손님은 아니에요.”
“음?”
“예전에 홍차를 대접해 주셨으니까,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복숭아 타르트인데….”
아아, 손이 떨리고 있다. 하지만 긴장되는 걸 어찌하나. 아이렌은 제 꼴이 우습게 보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용케 물러서지는 않았다. ‘흐음.’ 예상 밖의 일에 고개를 기울이며 고민하는 제이드는 우선 선물은 받자고 생각 한 건지 손을 뻗었다.
“그럼, 감사히….”
정갈하게 뻗은 두 손이 상자를 받으려는 그때.
묵직한 무게감이 아이렌을 뒤에서부터 덮쳐버렸다.
“와아~, 아기새우다!”
“흐, 흐악!?”
기운차게 외치며 어깨를 감싸 안는 플로이드 때문에 식겁한 아이렌은 그대로 상자의 손잡이를 놓쳐버렸다. ‘헉.’ 제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종이 손잡이의 덧없는 감촉에 탄식하는 것도 잠시, 그는 다급히 떨어지는 타르트를 받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순발력은 제이드 쪽이 우위였다.
“이런, 조심해야지요? 두 사람 다.”
잽싸게 떨어지는 상자를 받은 제이드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아아. 살았다.’ 타르트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아이렌은, 그제야 안심하고 자신을 껴안은 상대에게 항의 아닌 항의를 할 수 있었다.
“플로이드 선배, 놀랐잖아요. 자칫하면 선물이 망가질 뻔 했다고요.”
“선물? 아기새우가? 나한테?”
“서, 선배에게 주는 건 맞지만…. 제이드 선배랑 같이?”
“에~, 나만 받는 게 아니라?”
이미 표정에서 다 드러나고 있긴 하지만, 정말이지 어지간히도 실망한 모양이다. 울상으로 자신을 빤히 노려보는 플로이드 때문에 피식 웃어버린 아이렌은 몸을 돌려 상대의 등을 토닥였다.
“조각이 아니라 한 판 다 가져왔으니 셋이서 먹어도 남을 걸요. 그러니 실망하지 마세요.”
“으음…. 먹을 거야? 뭔데, 뭔데?”
“복숭아 타르트요. 직접 만든 거라 맛있을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기새우가 만든 타르트!”
방금 전까지는 울 것 같은 얼굴이었으면서, 지금은 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하고 있다. 그야말로 변화무쌍. 5살짜리 아이보다 더 변덕스러운 저 모습을, 믿기지 않겠지만, 아이렌은 감히 ‘귀엽다’라고 생각하며 좋아하고 있었다.
“흠, 어차피 카페도 비었으니 여기서 티타임을 가질까요. 정리만 잘 해놓는다면 아줄도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아, 아줄 선배도 와도 되는데.”
“그건 곤란하죠. 이건 저희 겁니다. 그렇지요? 플로이드.”
“으응♡”
서로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두 형제가 사이좋게 한 쪽씩, 아이렌의 손을 잡는다. 왼쪽엔 플로이드, 오른쪽엔 제이드. 멍하니 있던 틈에 양 손을 전부 잡힌 그는 멀뚱멀뚱 두 남자를 번갈아 보다가….
‘어라, 이거.’
처음으로 ‘이 형제들은 역시 조금 위험하지 않나’라고, 그렇게 생각해 버리고 말았다.
분명 타르트를 두고 한 말일 텐데 왜 이렇게 등골이 오싹할까. 기분 탓이겠지. 그래, 기분 탓이 아니라면, 마주 잡힌 두 손이 생각했던 것 보다 차가워서 반사적으로 놀란 게 틀림없다. 열심히 자기합리화를 한 아이렌은 바보같이 웃으며 누구든 먼저 이 어색한 침묵을 깨주기 만을 바랐다.
“그럼, 저는 차를 끓여 오겠습니다. 타르트도 접시에 담아야 하고.”
꼭 그러쥔 손을 놓은 제이드는 타르트와 함께 카페 안쪽으로 사라졌다. 자, 이걸로 일단 반은 해결이지만…. 나머지 한 명은 어찌 하면 좋을까.
“…플로이드 선배.”
“응!”
“그,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생각인지 물어봐도 되나요?”
“그거야~, 물론…. 티타임이 시작되기 전 까지, 일까~?”
아니. 이 사람이라면 차를 마시는 도중에도 자신을 안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점이 귀엽다고 생각하는 거지만, 슬슬 숨이 막혀오니까 힘이라도 좀 빼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간절했다.
“저기, 아기새우야.”
“네, 네?”
“제이드는 홍차를 엄청 잘 끓이니까, 자주 이렇게 티타임 가지러 와 줘야 해. 알겠지~?”
뺨을 부비며 말하는 모습이 꼭 어리광 부리는 대형견 같다. 사랑스러운 몸짓에 긴장이 풀려버린 그는 잠깐 아무 말도 않고 있다가, 작게 속삭이듯 답했다.
“오늘의 홍차가, 제 마음에 든다면 그렇게 할 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