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전 10시, 오후 4시, 오후 8시.
윌리엄 디디에 볼드윈은 반드시 하루 3번, 차 마시는 시간을 가진다. 그것은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것으로, 조금 전까지 다른 이와 대화를 하고 있어도, 오늘까지 처리해야만 하는 서류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고 해도, 반드시 차 마시는 시간을 가지곤 한다.
그것은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차를 가지고 온 부하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방 안의 공기에 긴장하며 손을 조금 떤다고 해도, 그리고 그 터질 것 같은 공기를 조성하고 있는 두 남자가 서로를 매섭게 쏘아보고 있다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윌리엄은 손짓 한 번으로 차를 가져온 자신의 부하를 물리고선, 손수 찻잔에 차를 따라내었다.
고운 세피아 색의 찻물이 찻잔 안에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제 앞에서 서로를 매섭게 쏘아보고 있는 사내들을 깡그리 무시한 채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오늘은 차 맛이 좋군.”
누가 들으라는 말이 아닌, 허공에 던져진 말에 소파에 앉은 사내 중 하나가 하, 하는 소리를 내며 제 몸을 소파에 깊이 파묻었다. 길게 늘어트려진 검고 굽슬거리는 머리가 눈길을 끌 법도 한데, 그것보다는 섬뜩하리만큼 짙게 빛나는 녹색 눈동자가 더 눈에 띄었다. 색으로만 보자면 아주 아름다운 진녹색, 에메랄드 보석의 색이었는데, 그 눈동자 안에서 섬뜩하게 빛나는 빛이 그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게 잡아먹고 있었다. 그가 바로 한때 런던을 발칵 뒤집어놓은 살인마 소문의 주인공, 에드워드 하이드였다.
“태연하기 짝이 없군. 윌리엄 디디에 볼드윈.”
“내가 긴장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보통의 사람이라면, 아무리 건장한 사내라도 에드워드 하이드의 앞에서 겁을 먹곤 한다. 단지 그가 살인마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나운 눈빛 안에서 자신을 방해한다 여겨지는 것은 아무런 제약 없이 ‘치워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윌리엄 디디에 볼드윈은 달랐다. 그녀는 태연하게 에드워드 하이드의 눈빛을 되받았다. 차가운 달빛과도 같은 금빛 눈동자였다. 짐승의 것과도, 그렇다고 태양과도 다른 금빛 눈동자. 그 눈동자 안에도 불길이 일렁이고 있었다. 하지만 에드워드 하이드의 것처럼, 제 앞을 막는 것을 불살라 버리겠다는 것처럼 사납게 타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그곳에 불씨가 있다고 알리는 것처럼 타고 있었다.
“애시당초, 이 샌님과 내가 왜 같이 있어야 하냐는 의미다.”
“이쪽에서 할 말이군, 에드워드 하이드.”
에드워드 하이드의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사내-헨리 지킬-이 사납게 응수했다. 그 역시 이 상황이 마뜩찮다는 듯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였다. 아름다운 페리도트 색의 눈동자가 선명한 빛을 내며 빛나고 있었다.
에드워드 하이드와 헨리 지킬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하이드가 눈에서 힘을 풀고 늘 형형하게 곤두서있는 그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늘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는 지킬의 머리카락을 흩트러트리면, 거의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으리라.
“이유라, 이유가 필요한가? 내가 너희들을 이 곳에 초대했다. 그것으로는 이유가 충분치 못한 모양이군.”
“그런 의미가 아니잖나. 거 사람 삐딱하기는.”
“차가 식는군.”
하이드가 가볍게 투덜거리면, 디디에는 가볍게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그들 앞에 놓인 찻잔을 가르킨다. 친구라기에도, 동료라기에도 묘한 관계다. 연인으로 칭하기에는 뒤틀렸고, 원수라 하기에는 평온한 분위기가 방 안에 흐른다.
“매번 티 타임마다 이렇게 으르렁대니 차를 가져오려는 자원자가 줄고 있지 않나.”
“그럼 차라리 저희를 따로 부르시죠. 그 편이 이 자도 저도 더 좋을 텐데.”
“미스터 지킬.”
디디에의 시선이 지킬을 꿰뚫을 듯이 향한다. 지킬은 어깨를 작게 흠칫이지만, 이내 담담하게 그녀의 시선을 받아내었다.
“유감스러운 말이지만, 나는 그대들을 서로 다른 몸으로 옮긴 것으로 사건을 종결지으려 한 것이 아니야. 말했지. 나는 빚을 지면 끝까지 갚으며,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벌써부터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로 으르렁대면 내가 피곤하다. 친한 친구가 되라고는 말하지 않겠어. 얼굴만 마주하면 으르렁대는 일을 고치라는 말이야.”
그녀의 시선이 하이드와 지킬을 훑는다. 그들 둘은 잠시 불만스러운 듯한 표정을 짓다가, 겨우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디디에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를 띄우곤, 제 찻잔을 내밀었다. 하이드와, 지킬은 그 잔에 각기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 유리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가볍게 방 안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