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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카와 카에데는 어떤 사람인가?

 이 간단한 질문에는 여러 가지 답변이 붙을 수 있을 것이다. 팀 동료인 사쿠라기 하나미치에게 묻는다면 짜증 나는 여우 놈이라는 대답이 즉각 튀어나올 것이고, 아카기 하루코에게 묻는다면 대단한 농구선수라며 눈을 반짝거리며 답을 할 것이다. 미츠이 히사시나 미야기 료타의 경우에는 엄청나게 건방지고, 주는 것 없이 밉고, 무뚝뚝하고 사교성도 없고, 말도 없어서 재수 없는 천재 놈이라는 대답이 튀어나올 것이다.

 하지만 루카와 카에데의 경우, 답은 언제나 하나였다. 루카와 카에데는 루카와 카에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세상은 언제나 간단했다. 세상 모든 것이 쉽다는 의미보다는, 그가 다른 것에 관심이 적다는 것에 조금 더 가까운 의미였지만. 취미는 잠자기요, 특기는 농구. 좋아하는 것 역시 잠자기. 가장 싫어하는 것이 제 잠을 깨우는 사람이었으니 말 다 했다. 농구 외의 것에는 관심도 없고, 관심을 가질 생각도 없었다. 애시당초 관심이 가지도 않는다.

 하지만 최근의 그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이런 곳에 올 거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루카와 카에데는 고개를 들어 <도서실> 이라고 쓰인 패찰을 올려다보았다. 작게 한숨을 쉬고 문을 가만히 열면, 안에서 부드러운 녹차 향이 밀려나왔다.

 여느 때처럼 도서실 안은 한적했다. 아니, 한적하다고 표현하기에는 이 적막함이 묵직하다. 이 녹차 향과, 안에 그녀가 있음을 알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으리라. 그 정도로 도서실 안에 가득하게 깔린 침묵은 무거웠다. 그래야 할 것 같아, 발소리를 최대한 내지 않도록 노력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여느 때처럼 그곳에 있었다. 햇빛이 반쯤 들어오는, 서가와 서가 사이에 숨겨지듯 놓인 책상과 의자. 그는 이 시간에 이곳에 올 때마다 이 자리에서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살짝 열린 창문과, 그 창문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산들바람에 살랑이며 흔들리는 백색 커튼, 햇빛을 완전히 차단하는 재질이 아니기에 부드럽게 퍼지며 들어오는 햇살. 그 햇살과 바람 앞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어떤 동화였던가. 눈 위에 떨어진 핏방울을 보며, 피부는 눈처럼 하얗고, 입술을 피처럼 새빨가며, 머리는 창틀의 흑단처럼 새까만 아이를 원했던 여왕이 있었다. 그 공주가 이 곳에 태어났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루카와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흘려보냈다. 잠시 그 곳에 서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면,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책장을 넘기고 있던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멈춘다. 그 손가락은 붉은 가름끈을 책장 사이에 끼우고 책을 덮어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그제야 그 진녹색 눈동자와 그의 눈이 마주친다. 눈꼬리가 부드러운 달의 등을 그리듯이 휘어진다.

 

 “또 왔구나.”

 

 질책도, 타박도 아닌 말이 부드럽게 건네어진다. 루카와 카에데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근처의 의자에 앉았다.

 

 “이곳이 조용해서.”

 “자기 좋다는 말을 하려는 거지?”

 

 재미있다는 듯 웃음소리가 쏟아진다. 쏟아지는 웃음소리는 분명히 귀로 들리는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빛무리가 쏟아지며 그녀를 환하게 밝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정말로 눈처럼 새하얀 피부 위에 봄꽃이 피어오르듯 붉은 기운이 부드럽게 어린다. 루카와는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을 들키고 싶지 않아, 책상에 엎드린 채 팔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부드러운 손길이 그의 어깨에 가볍게 톡, 톡 하며 닿는다. 고개를 살짝 들어올리면, 코 끝을 녹차 향이 간질인다.

 

 “자. 방금 우린 거란다.”

 

 말을 마치고 그녀는 다시 자신의 자리에 돌아가 앉는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 제 걸음으로는 한 번만 걸어도 금방 닿을 수 있는, 그런 가까운 거리다. 책상 위에 놓인 찻잔을 가만히 쥐면, 딱 좋은 정도의 온기가 손에 감겨온다. 비쳐오는 햇살 안으로 먼지가 보석처럼 반짝이며 부유한다. 조용하고, 침묵에 휩싸인 채, 오늘도 오후의 시간이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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