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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te/Grand Order 종장의 중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두운 공간에서 컴퓨터 화면의 빛만이 한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로마니 아키만. 칼데아 의료 스텝의 톱임과 동시에 현재는 칼데아의 관제탑 역할을 맡고 있는 그는 자신을 비추는 컴퓨터 화면을 보며 키보드 자판을 빠르게 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방에 노크 소리가 울렸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잔디색의 머리에 앞머리의 오른쪽에는 찬란한 금색 브릿지를 가진 에스가 들어왔다. 에스는 안으로 들어오며 팔꿈치로 스위치를 눌러 방 안을 밝혔다. 환한 빛이 들어오자 로마니는 고개를 돌려 에스를 보았다. 저를 보는 로마니의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자리잡고 있었다. 지나가다 보면 주황색 털을 가진 판다라고 해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였다. 에스는 한숨을 내쉬고, 왼손에 있던 머그컵을 로마니에게 건넸다. 로마니는 고맙다며 인사했고, 에스는 별말씀을 한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고소한 향이 로마니의 코 끝을 자극했고, 로마니의 시선이 컵 안 쪽으로 향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새하얀 액체는 우유임을 알 수 있었다. 에스는 책상에 걸터 앉으며 말했다.

 

 "스테프 한 명이 커피 타려는 거 내가 대신했어. 그렇게 커피만 마시면 죽을 것 같으니까."

 "그렇지만 커피 안 마시면 일 못하는 걸. 아야."

 

 로마니가 살짝 눈을 감은체 우유를 마시던 중, 에스가 엄지와 중지를 둥글게 말아 로마니의 이마에 가져가더니 그대로 딱―소리를 내며 딱밤을 때렸다. 로마니의 머리가 살짝 뒤로 넘어가더니 테이블 위에 컵을 내려놓고 제 이마를 쓸었다. 에스의 한 쪽 눈썹은 매섭게 치켜 올라가 있었고, 그가 불만스러울 때 자주 나오는 입모양―가로로 입을 잡아당기고 살짝 내려간 모양을 하고 로마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꾸 그러면 나이팅게일 호출할거야. 스테프들도 지금 상황에 많이 익숙해졌어. 로마니만 힘쓰지 않아도 된다고."

 

 에스는 그렇게 말하며 머그컵을 입에 갖다대고 향긋한 꽃잎 차를 마셨다. 봄날의 벚꽃 같은 분홍색이 머그컵 안에서 찰랑였다. 로마니는 에스의 모습을 보다가 어색히 웃으며 제 뺨을 긁적였다. 에스의 눈동자가 로마니를 보다가 시선을 천천히 옮겼다. 에스의 시선이 멈춘 곳은 하얀 장갑을 낀 로마니의 손이었다. 에스는 책상에 머그컵을 내려놓고 로마니의 양손을 부서질까, 조심히 잡았다.

 

 "왜그래?"

 "로마니 손,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 같아서. 보고싶은데 말이지."

 

 에스는 흰색의 장갑 위로 로마니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로마니의 손이 대충 어떤지는 감촉으로도 알 수 있었지만, 자세한 모습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에스의 손가락 하나가 로마니의 장갑 안 쪽으로 들어가자 로마니는 황급히 제 손을 뺐다. 제 손에서 사라진 로마니의 손을 향해 시선을 옮긴 에스는 로마니의 얼굴로 다시 옮겼다. 로마니는 시선을 아래로 피하며 곤란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에스는 가만히 로마니를 보다가 눈을 감고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머그컵을 들었다.

 

 "어중간하면 들킨다니까? 언젠가 알려줄거라 믿고 있지만 너무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네."

 

 에스의 말에 로마니는 작게 웃었다. 이어 무어라 중얼거렸지만 바로 옆에 있어도 들릴 듯, 말 듯한 소리에 에스는 전혀 듣지 못했다. 그저 우연히 에스가 로마니를 봤지만, 그의 얼굴은 짙게 그림자가 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에스는 실 같이 가늘게 눈을 뜨다가 곧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로마니가 무언가 생각 난 듯, 방 밖으로 급하게 나갔다. 에스는 잠시 멍하니 로마니가 나간 문을 보다가 컵 안의 차를 마셨다. 그리고 잠시 후. 에스의 머그컵 안에 있던 꽃잎 차는 머그컵의 바닥에서 밑도는 그 때에 로마니가 제 손바닥만한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로마니는 살짝 웃으며 상자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열었다. 마치 봄을 연상케 하는 연분홍 빛의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꽃밭처럼 예쁜 색을 띠는 마카롱들이 있었다. 에스의 에스의 붉은 두 눈이 별처럼 반짝이며 커졌다. 이내 그 눈을 로마니에게 돌렸고, 로마니는 웃으며 말했다.

 

 "여러모로 고생 많았으니까. 아처에게 부탁해서 같이 만들었어."

 "로마니가 만들었다고…? 그보다 내가 마카롱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고…."

 "멀린이 말해준 것도 있고, 뭐…여차저차해서."

 

 로마니는 마카롱이 담긴 상자를 에스 쪽으로 살짝 밀었다. 에스는 잠시 입을 다물지 못한체 마카롱이 담긴 상자를 보다가 연두색 마카롱 하나를 집어들었다. 집어든 마카롱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자 입안에서 달달한 향과 약간의 아몬드 향이 퍼졌고, 에스의 얼굴에는 약간 풀어진 미소가 지어졌다. 로마니는 만족해하며 웃었다. 레이시프트를 시작한 이후, 에스의 저런 표정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에스가 믿고 따르는―에스가 일방적으로 '선생님'이라며 따르는 안데르센에 의하면 풀어진 미소를 자주 지었다고 했다. 로마니는 자신이 보지 못한 에스의 얼굴을 눈에 새기고 싶었다. 그래서 일로도 바쁜 상황에서 틈틈이 시간을 내며 마카롱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맛있어?"

 "먹어볼래?"

 

 에스는 마카롱 하나를 꺼내어 로마니에게 건넸다. 로마니가 손으로 집으려 했지만 에스는 마카롱을 들고 있는 손을 뒤로 뺐다. 로마니가 제 두 눈을 깜빡이며 에스를 보았다. 에스는 짓궂게 웃으며 로마니에게 다시금 마카롱을 건넸다. 에스의 행동의 의미를 알아차린 로마니는 눈은 웃지만 눈썹은 내려간, 그런 웃음을 짓더니 머뭇거렸다. 하지만 이내 눈을 감고 입을 벌렸다. 에스는 그제서야 만족한 듯이 웃으며 로마니의 입에 마카롱을 넣어줬다. 로마니는 몇 번 우물거리더니 맛있다며 웃었다.

 

 "그러고보니 이렇게 느긋한 거 오랜만이네. 그것도 로마니랑 같이 느긋한건."

 "그런가?"

 "레이시프트 시작한 이후로는 리츠카, 로마니, 나, 칼데아의 스테프들, 서번트들, 다 빈치도 바빴잖아."

 

 에스는 웃으며 손을 뒤로 하여 책상을 짚고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이내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로마니를 등진체 섰다. 에스는 방 전체를 환하게 비추는 전등을 보았다. 눈부신 기색 없이 동그랗게 눈을 뜨며 보던 중, 천장에서 분홍색 꽃잎이 떨어졌다. 에스가 마시던 꽃잎 차의 색과 같은 색이었다. 꽃잎은 에스의 콧잔등에 앉았고, 에스는 엄지와 검지로 떼어냈다. 에스는 제 눈앞에서 꽃잎을 흔들더니 입을 열었다.

 

 "아키만."

 "응?"

 "이거 꿈이지?"

 "응."

 

 로마니의 대답을 듣자마자 에스의 눈에서는 참고 있던 눈물이 흘렀다. 에스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바닥에 떨어지자 눈물을 중심으로 천장에서 떨어지던 꽃잎들로 흩어졌다. 에스는 불을 키기 전의 그 어두컴컴한 방과 같은 공간에 있었다. 그 때와 다른 점이라면 그 어떠한 빛도 이곳에 있지 않았다. 어디가 위인지, 아래인지 구별할 수 도 없는 공간이었다.

 

 

 

 

 

 "역시 인간의 감정은 아직 내게는 너무나도 어려워."

 

 신음소리를 흘리며 눈물을 흘리는 에스의 옆에는 멀린이 있었다. 멀린은 침대의 머리맡에 앉아서 낮게 중얼거렸다. 멀린의 얼굴에는 평소 자주 보이던 웃음이 보이지 않았다. 멀린은 손을 뻗었다. 에스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제 엄지로 쓸어 닦아준 멀린은 벽에 옆으로 기대며 말했다.

 

 "마스터, 네 기분을 좋게 해주려다가 울려버리고 말았어. 용서 안 해줘도 괜찮으니까 얼른 일어나주지 않을래? 너와 함께하는 티타임을 또 갖고싶어. 그 때 마시는 차는, 네가 만들어주는 그 차는 느낄 수 없는 그런 맛이 있거든. 몽마를 외로움이라는 유폐탑에 가둔 마스터, 빨리 이 몽마를 구하러 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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