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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아이스주.png

* 19-20 뮤지컬 팬레터 범해진(김재범)을 기반합니다.

* 그녀를 만나면 넘버에서 세훈이가 사실을 실토한 이후의 if 설정을 바탕으로 합니다.

 

 

 

 

 손님이 없는 다방 안에서는 기침 소리마저 천둥처럼 울렸다. 지금 같이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시간에 원래 이곳의 풍경을 생각해보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이렇게까지 조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니…. 익숙한 공간, 낯선 분위기 사이에서 해진은 제가 마른 침을 삼켜내는 소리도 크게 날세라 입술을 앙다물고 움직이는 인영만을 눈으로 뒤쫓았다. 아 참. 갑자기 적막을 가르는 목소리에 해진이 고개를 들었다.

 

 “혹시 케이크 한 조각 드시어 보시겠어요?”

 “예? 어, 그으……”

 

 망설임을 끝내는 것보다 제 앞으로 접시를 놓는 손이 더 빨랐다. 광이 나는 접시 위에는 옅은 노란색을 띠는 빵 사이로 크림과 딸기가 콕콕 박혀있었고, 바깥도 크림으로 둘러싸인 게 한눈에 보아도 먹음직스러웠다. 해진은 어느새 고인 침을 느리게 삼켰다. 아까 제게 권유하던 상냥스러운 말씨엔 분명히 물음표가 따랐으나 그는 애초부터 해진의 의중은 크게 상관없었다는 듯 기다리지 않고 달그락 소리를 내며 찻잔 또한 마저 내려놓았다. 자신 앞에 하나. 또 반대편에 하나를.

 오밀조밀하니 앙증맞은 꽃송이가 그려진 찻잔에 담긴 붉은빛 물로부터 은은하게 퍼지는 홍차 내음이 향기로웠다. 그 따뜻하고 향긋한 냄새는 묵은 편집실의 원고지와 책 따위에 묻혀있던 해진의 후각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더하여, 괜한 긴장으로 뻗대고 있었던 등줄기도 스르륵 풀리었다. 흔히들 차를 마시면 마음이 풀린다고 하는 것이 아마 이런 것일 터였다. 그간 술만 마실 줄 알았지, 무어…. 혼자 중얼중얼한 해진은 손잡이에 검지와 중지를 걸고 반대 손으로는 잔의 옆면을 조심히 감싸 잡았다. 순간에도 제 건너에 앉는 그에게 꽂은 시선은 그대로였다. 시선이 마주쳤음에도 별말 없이 해진 앞의 케이크를 포크로 콕, 한 입 거리로 찍어 든 그가 입을 열었다.

 

 “저어, 선생님 정말 홍차도 괜찮으신 게 맞으시지요? 분명 커피가 남아있는 줄로 알았는데….”

 

 퍽 멋쩍게 웃어 보이는 얼굴에 해진은 느긋한 어조로 설레설레 도리질을 쳤다.

 

 “아이구… 무얼 미안해하십니까. 당연하지요. 내 뭐든 가리지 않습니다마는, 그것보다두 얻어먹는 입장에서 이것저것 따지면 아니 되는 것이지요. 잘 마시겠소.”

 “그리 말씀해주시니 다행이에요. 다음에는 꼭, 선생님 몫을 남겨둘 터이니 늦게라두 들러주셔요.”

 

 그는 가벼이 웃었고, 해진이 느끼기에 그 웃음에서는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 어째서 나에게 그렇게까지 해줄 필요가 있습니까. 혹시, 나를 좋아하십니까? 하는 의문이 머리를 툭 스치고 지나갔지만,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자신의 섣부른 생각에 한 아이가 제 모습을 수그릴 뻔한 것이 엊그제의 일이었다.

 

 “이게 얼마 전부터 나오기 시작한 메뉴인데. 한 입 드셔보시겠어요?”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지금처럼 그가 손에 든 포크로 직접 케이크를 잘라서 제 입에 가져다주어도 해진은 마음을 비우고서, 이게 자신에게 호감을 내비치는 것이란 생각 없이 받아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혀끝에서 녹아내리는 생크림이 달았다. 하지만 해진은 그것이 달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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