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세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아직 이름을 정하지 못해서이므로 아가, 아이 등으로 대신합니다.
복잡하다. 그러나 단순하다. 모순되는 말이 연거푸 이어진다. 행복을 맛 본 순간이 몇 되지 않는 사람의 심정은 이렇게 소용돌이친다. 결국에는 좋다고 매듭지어지는 나날이 소중해 몇번이고 눈시울이 젖는다. 겨울이 몇번이나 지나는 시간 동안 암주와 단이 엮은 많은 매듭 중에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암주의 곱슬거리는 머리카락과 단의 다정한 눈매를 그대로 이어받은 아이는, 누구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겠지. 달아올라 산이라도 태울 듯한 그 사랑에도 불구하고, 암주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게 싸늘한 태도를 일관적으로 유지했다. 내 사랑이 아닌데 웃어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나으리도 아닌데.
감정이 실리지 않은 무뚝뚝한 목소리와 막 쏟아지기 시작한 빗소리가 어우러져 서릿발같이 날카로워졌다. 누구의 목을 잘라오라던가, 누구를 협박하라던가... 햇빛 아래 당당하게 행할 수 있는 부류의 명령은 하나도 없었다. 암주는 부하들에게 갑연의 지시를 전달하고 난 뒤 '일이 길어질테니 식사라도 챙기고 나가라'는 말을 덧붙이려 했다.
"괜히 일 그르치지 말고. 아직 해가 다 지지 않았으니 맘마 먹고......"
암주는 황급히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뱉어진 말이었다. 부하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암주를 바라보았다.
"에이씨, 뭘 봐. 빨리 안 꺼져?"
이게 다 아이 때문이다. ... 아니,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맘마라던가 아야라던가 하는 수준의 어휘를 사용하는 단의 탓이다. ... 아니, 둘을 주의 깊게 살피고 모든 말을 깊이 새기는 제 탓이다. 누굴 탓하겠어. 단의 말 하나라도 중요하지 않은게 있던가. 얼굴이 타는 듯 새빨개져 부하들을 방에서 내쫓고 나서 떠오른 단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입가가 부드럽게 풀렸다. 모두 내 잘못이며 네 덕이다. 녹아내린 감정이 암주의 발걸음을 정인에게로 이끌었다.
암주의 뜨거워졌다 차가워졌다 하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단과 아이는 방 안에서 새근새근 잘도 자고 있었다. 빗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깊게 잠든 둘의 모습에 가슴 한켠이 간질거린다. 아이를 낳고 나서 부쩍 잠이 많아진 단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또 제 머리를 닮아 보라색 곱슬거리는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얼피 보면 암주를 닮았으나 그 속에는 단의 여린 분위기가 숨어있어서, 볼 때마다 사랑한다 속삭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암주가 단의 뺨을 가볍게 쓸었다.
"음... 왔어요? 미안해. 칭얼거려서 재운다는게 나도 같이 자버렸네."
"왜 아무것도 안 덮었어. 고뿔 든다."
"아가만 재우고 일어날 생각이었지."
암주는 눈을 부비며 힘겹게 일어나 앉는 단을 꼭 안아주었다. 아이 같은건 필요없다 생각한 적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단과 같은 웃음을 한 얼굴이 자신을 향해 웃어준다면. 한 순간의 의문도 없이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존재가 또 생겨난다면 그건... 아이는 행복에 대한 갈망의 증거였다. 잠든 아이가 암주의 손가락을 꽉 쥐었다. 놓지 않겠다는 의지는 나도 너와 같다.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조심스레 아이의 배를 토닥였다.
또 어느 날. 세 사람은 단란히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
병아리마냥 잘도 받아먹는 아이의 입 안으로 열심히 미음을 떠 나르던 단의 손이 멈칫했다. 먹은 그릇을 차분하게 정리하던 암주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이 났네?"
아이가 놀라지 않을 선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암주가 아이의 부드러운 입술을 조심스레 잡아 벌렸다. 쌀알같은 아랫니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첫니가 아버님께 문안 인사 올립니다, 하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어찌나 귀엽던지 암주는 순간 감정이 북받쳐 미간을 꾹 짚었다.
"울어요?"
"울 리가... "
"있잖아. 나, 암주 우는거 여러번 봤는데."
암주를 놀리며 입 속을 다시 확인하고, 단이 앓는 소리를 냈다.
이렇게 너는 자라고 우리는 더욱 너를 사랑하겠지. 아바바, 옹알거리는 소리가 벌써부터 어머니, 아버지를 부르는 느낌이 든다. 찌릿해진 가슴을 도닥이고 통통한 아이의 뺨을 쓰다듬었다. 너를 사랑해.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것만큼 쉬운 일이 또 있을까. 성장의 모든 시간이 기적 같다. 아이가 엄마, 아빠 소리를 어눌하게 옹알거릴 때에도. 처음으로 걸음을 떼었을 때에도 눈물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세상이 눈물이어도 좋으리라. 아이가 장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에 암주의 눈에는 먹구름이 가득해, 단이 말없이 그를 꼭 껴안았다.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연약하고도 굳건한 의지에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으랴. 아이는 가장 단단한 울타리 안에서 사랑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