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천히 수저를 내려놓는 아이를 보며 둘은 긴장감으로 입안에 도는 침을 나란히 삼켰다. ‘저 안 먹을래요.’ 곧 뒤따른 말에 차마 소리는 내지 못하지만, 작게 탄식했다. 언젠가 한 번은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알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편식과의 전쟁은 언제 오든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마나미와 먀리는 주변 사람들한테서 익히 들어왔기에 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근데, 그게 하필이면.
“엄마도 콩 안 먹는데… 저는 왜 먹어야 해요?”
“음…….”
많고 많은 음식 중 하나가 먹지 않는 음식일 것은 무어란 말인가. 여태껏 차근차근 재료들에 적응을 시켜오며 ― 다르다고 따지고 들면 다르지만 ― 콩으로 만든 두부도 두유도 싫은 기색 없이 잘 먹어준 아이여서 콩을 싫어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또, 저런 이유를 들먹일 줄도. 올해 생일이 지나 딱 여섯 살이 된 코하쿠는 앙증맞은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고선 엄마와 아빠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으면 앞으로도 절대로 먹지 않겠다는 듯이 퍽 강경한 눈빛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코하쿠 이것 봐봐. 아빠는 먹는데요? 냠냠. 맛있다.”
마나미는 노오란 병아리색 식판에 덩그러니 남아있던 강낭콩을 하나 집어 입에 넣으며 웃었다.
“그러면…”
“응, 그러면?”
“아빠가 제 것까지 다 먹어주세요.”
역시 만만치가 않다. 애초에 이 정도의 회유로 먹일 수 있었다면은 그건 편식이 아니었다. 어쩌지. 어떡하죠. 먀리와 마나미 사이로 무언의 대화가 오갔다. 그 사이 코하쿠는 자신 앞의 식판을 마나미의 몸쪽으로 쭉 밀어내었다. 이내 의자에서 폴짝 뛰어 내려오려고 하는 작은 몸을 빠른 손길로 다시 바르게 앉힌 먀리가 시선을 맞춰 무릎을 굽히고 앉아서 나긋하게 물었다.
“정말 엄마가 안 먹어서 먹지 않는 거야? 그냥 콩이 싫은 건 아니고?”
“그건요….”
코하쿠가 저렇게 뜸을 들이는 데에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어찌나 아빠인 마나미의 성격을 빼닮았는지. 솔직한 제 생각이었다면 이미 수저를 놓은 순간부터 줄줄 말하고도 남았을 터였다. 머뭇거리며 동그란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코하쿠의 작은 손을 가볍게 부여잡은 먀리가 말을 이어갔다.
“안 먹어도 괜찮은데, 궁금해서 그래. 코하쿠도 엄마가 일 나가면 거기서 뭘 하는지 궁금하지? 무슨 간식을 먹나 그것도 궁금하구.”
“네에….”
“그런 것처럼 엄마는 우리 코하쿠가 왜 콩을 미워할까, 그게 너무너무 궁금하네. 맛이 없어서 그래? 그런 거면 엄마랑 아빠가 맛있는 콩을 가져올 수 있는데. 그렇죠, 아빠?”
“그럼요. 세상에는 맛있는 콩도 얼마나 많은데요.”
‘아무래도 땅콩 같은 거로 먼저 익숙하게 해주는 게 좋을까요?’ ‘그렇지만. 강낭콩이랑 땅콩은 맛에서 너무 차이가 나지 않아? 솔직히 나도 전자는 싫은데….’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 코하쿠를 뒤로 하고 먀리의 귓가에 소곤소곤 의견을 전해보던 마나미가 그 대답이 귀여워 조용히 반웃음을 지었다. 그에 먀리는 왜 웃느냐는 듯 보며 마나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콕콕 찌르다, 제 손을 잡아끄는 작은 손짓에 다시금 시선을 돌렸다.
“응. 이제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뻐끔 이는 코하쿠에게로 먀리와 마나미의 귀가 기울여졌다.
“맛이 없는 건 아닌데 씹는 느낌이 싫어요. 텁텁해서 그 기분이 별로예요….”
“그, 그래?”
저도 모르게 말을 절은 먀리가 조그만 입에서 나온 또박또박한 문장이 사랑스러워 새어 흐르려는 미약한 한숨과 웃음을 꾹꾹 한데 집어삼켰다. 옆에서 듣고 있던 마나미 또한 어깨가 잘게 들썩이는 게 상황은 마찬가지인 듯했다. ‘어쩜 이렇게까지 닮았나 모르겠네, 진짜 내 새끼 맞구나.’ ‘그러니까요. 선배가 싫어하는 이유랑 너무 똑같잖아요.’ 그렇게 또다시 소곤소곤 거리다가도, 두어 번 헛기침만으로 낯을 태연하게 가꾼 먀리가 입매를 끌어올리며 코하쿠를 보았다.
“그렇구나. 코하쿠 생각은 엄마가 잘 알았어. 그럼 다음에 이거 말고. 맛있는 콩으로 가져와 보면 그건 한 번 먹어볼래? 땅콩이라고 하는 건데, 코하쿠가 싫다고 말해준 느낌은 하나도 없는 콩이다? 어때?”
“진짜요?”
“응. 엄청 맛있다? 궁금하면, 지금 아빠랑 사러 갈까요?”
‘네에! 좋아요!’ 아까 전, 입을 부루퉁하게 내밀던 모습은 어디가고 지금은 저렇게 말간 볼만 한없이 솟아오르게 웃을 수가 있는지. 제 아이의 티 없이 맑은 사랑스러움에 먀리와 마나미는 결국 푸핫,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