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부터 이따금 이상한 것을 보곤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것들은 아마도, 요괴라 불리는 부류-
“괜찮대도! 어서 가보자, 엄마하고 아빠가 없을 때가 기회야!”
“그러다 혼난다니까 그러네! 누나, 우리 어서 돌아가자.”
어디선가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커다란 나무들의 잎사귀가 햇빛이 내려앉는 것을 방해한 탓일지, 언뜻 보이는 숲의 안쪽은 어둡고 어딘가 축축한 느낌이 드는 것만 같았다. 그것에 빨려 들어가 버려서,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적어도, 야스타카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잔뜩 겁을 먹은 듯한 동생-아니, 사실 동갑인 쌍둥이지만-의 손을 잡으며 나츠하는 눈을 반짝였다.
“내가 있잖아! 지켜줄게. 그러니까 이번 한 번만 가보자. 뭐가 있을지 궁금하지 않아?”
야스타카는 맞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조금 진정이 된 건지 숨을 작게 내뱉고서 방금 전과는 조금 다른 차분한 표정으로 다시금 숲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얼굴에는 긴장이 서려있었지만, 그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괜찮다, 고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몇 분도 아닌, 고작 몇 초 차이로 일찍 태어난 나츠하를 누나, 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으니까. 요괴들은 네가 착해서 그런 거라며 웃으며 넘어가곤 했지만, 사실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야스타카는 자신을 잡아끄는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 크지 않은, 또래아이들과 다를 바 하나 없는 평범한 그 손을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안심이 되었다. 안으로 들어가며 기이한 숲이 짙어질수록 이상하리만치 어둠 또한 선명해진다. 고요했던 푸른 녹음은 금세라도 시끄럽게 요동칠 것만 같았고,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식어갔다. 주변을 둘러싸는 공기는 후덥지근했고, 왜인지 모르게 눅눅했다.
발밑을 내려다보자 산길에 투영投影된 빽빽한 그림자가 뒤따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신기하여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문득 고개를 들면 얼핏 보이는 구름 한 점 없는 높은 하늘의 일부분과 눈이 마주쳤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들에 엷은 소름이 돋았다. 그럼에도 괜찮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앞서 걸어가고 있는 나츠하의 옅은 금발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랑이며 신기하게도 햇살을 받은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으니까. 조금 들뜬 듯한 여름빛의 목소리가 뚜렷한 계절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야스타카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누나, 그거 엄마가 알려줬어?”
“응! 어떻게 알았어?”
“엄마 노래 못 부르잖아. 음이 다 틀렸어.”
그의 말에 나츠하 또한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 숲에 들어갈 때의 고동치던 심장박동 소리는 조용해진지 오래였다. 기묘한 느낌의 숲은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나츠하는 지금의 순간이 마냥 즐거운 듯 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봐온-물론, 지금도 어리기야 하지만-요괴들은 친숙하게만 느껴졌다. 그 이형의 존재들을 친구로서 받아들이게 된 것에는 양친의 영향이 컸으랴.
엄마와 아빠의 친구들이야.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나츠하는 그렇게 말하며 끝을 잇지 않는 아빠의 표정을 보며, 어딘지 모르게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아직 어린 자신이 이해하기 힘든 것으로, 그리움일지 기쁨일지 모를 여러 가지 것들이 한곳에 뭉쳐서는 추억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자신의 양친이 해주는 수많은 이별과 만남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왔다. 그것들은 언제나 반짝거리며 따듯하게 다가오곤 했다. 물론, 좋은 존재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껏 봐왔던 요괴들의 상냥함은 그 두려움을 상쇄시키고도 남는 것이었다. 나츠하는 이상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신을 뒤따라오는 야스타카를 힐긋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조금 편안해진 것 같았기에, 그녀는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딛고 있던 거대한 나무뿌리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젖은 흙냄새가 바람에 실려 들어온다.
“냥냥선생이나 료를 데리고 오는 게 좋았을까?”
“뭐··· 그랬으면 아마도 덜 혼나겠지. 그리고 냥냥센세가 아니라 냥코센세야.”
“아무렇게나 불러도 돼. 그나저나 우리 혼나는 거 확정이야?”
잎사귀들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그리 낮지 않은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야스타카는 나츠하가 아주 손쉽게 내려온 곳을 조심스럽고 느리게 내려왔다. 두 아이는 실없는 대화를 나누며 계속해서 숲 안으로 들어갔다. 그저 평범할 뿐인 이곳에 어째서 이다지도 들어와 보고 싶었던 건지.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으니 더 하고 싶어진 걸까. 나츠하는 발아래 있는 작은 돌을 가벼이 찼다. 그것은 한참을 굴러가더니 소리 없이 고여있던 연못에 떨어졌다. 숲이 술렁인다. 야스타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알 수 없는 미묘한 변화에 공기가 무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꽤나 귀찮은 것을 깨웠구나.”
사방에서 울리는 키득거리는 웃음소리 속에서 뚜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아이는 조심스레 뒤를 돌아보았다. 땅에 끌릴 만큼 긴 머리카락과 화려한 빛깔의 하오리를 어깨에 걸친 그 존재에 대해 깊이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요괴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으니까. 야스타카는 그 거대함에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키가 크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소름이 돋았다. 그런 그를 보며 요괴는 작게 웃음을 흘리고서는 허리를 숙이고는 손을 뻗었다.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굳어있던 그는 자신의 뺨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에 어느새 꾹 감았던 눈을 조심스레 떴다. 요괴는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의 뺨을 누르며 웃고 있었다.
“따듯하구나, 말랑거리고. 이름이 뭐니?”
“저기, 근데 아까 깨웠다고 말씀하셨던 건 뭐에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요괴는 자신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나츠하를 빤히 바라보다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작은 연못이 있던 곳에 잠시 시선을 던졌다가 두 아이를 안아들었다. 사락거리는 옷의 소리와 함께 옅은 꽃향기가 풍겼다. 그 느낌이 썩 싫지는 않았기에 둘은 요괴의 품에 가만히 안겨있었다. 그는 아이들을 커다란 바위 뒤에 내려주고서는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착한 아이들이로구나.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여기 조용히 있어야 한다. 알았지?”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물에 젖은 찰박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요괴는 무릎을 짚고 일어나며 혀를 작고 차고서는 자리에서 벗어났다. 나츠하는 궁금한 것을 참을 수가 없었는지 바위 뒤에서 머리를 빼꼼히 내밀고 요괴를 지켜보았다. 무언가 흐릿하고 투명한 것이 일렁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것의 눈만은 선명하게 빛나고 있어서 조금 이질적이었다. 저것도 요괴일까? 나츠하는 꼼지락거리며 가방에서 작은 수첩과 연필을 꺼내었다. 그녀가 그림을 그리며 설명을 적는 사이, 야스타카는 요괴가 나누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잔뜩 쉰 목소리의 주인은 밖에 나온 것이 힘겨운 건지 중간중간 계속해서 숨을 들이켜며 느리게 말을 이었다. 그의 머리카락에서는 굵은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인간의, 냄새가 나. 역겨운, 냄새가···.”
“이곳은 요괴의 숲이야. 평범한 인간은 못 들어와. 네 착각이겠지.”
엄마아빠, 죄송해요. 나츠하는 머쓱하게 웃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안된다고 말하던 자신의 양친을 떠올렸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자신이 보아오는 이형의 존재들에 대해서 알아가고 싶었다. 그녀는 수첩을 넘겨보았다. 이제껏 자신이 만나왔던 요괴들에 대하여 빼곡히 적혀있는 그것은 반쯤은 장난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언젠가, 너희도 나를 잊겠지. 그렇게 말하던 요괴는 아주, 아주 쓸쓸하고 아픈 표정을 하고 있어서, 잊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렇게나 외로운 얼굴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으니까. 멍하니 있는 와중, 수첩 위로 희미한 그림자와 함께 옅은 하늘색의 머리카락이 늘어졌다.
“아까 그, 물에 젖은 요괴는···”
“다시 돌아갔어. 원래는 꽤나 끈질긴데, 오늘은 날씨가 더워서 다행이야.”
요괴는 바닥에 주저앉고서는 다시금 손을 뻗어 나츠하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인간의 온기가 신기한지 그는 한참이나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어라 말을 해주고 싶은데, 이상하게도 졸음이 몰려왔다. 야스타카는 이미 잠에 빠져든 듯 했다. 마치 연못의 밑바닥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짙은 숲이 일렁였다. 요괴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지며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나츠하는 느리게 눈을 깜빡이다 종국에는 새근거리는 작은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미안. 주의를 줬는데, 궁금했나봐.”
“아니, 괜찮아. 오히려 너희를 볼 수 있어 기쁜 걸. 나츠메, 하즈키. ···아, 이제 하즈키가 아닌가?”
작은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무지근한 졸음에 여전히 눈을 뜨지는 못한 상태였지만, 자신을 안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다. 아주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그들은 한참이나 얘기를 나누었다. 문득문득 들려오는 요괴의 목소리에 그리움과 슬픔이 가득 담겨있었기에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저렇게나 아련하게 아파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츠하가 끝까지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면 알 수도 있었겠지만, 아직 어린 아이가 잠을 이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간의 시간은 이렇게나 빠르구나.”
“응, 그래서 역시 조금 쓸쓸해.”
“후후, 그래도 아직 따듯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너희들도, 이 아이들도. 행복해보여서 다행이다, 라고.”
그는 입을 가리고 작게 웃었다. 흘러들어오는 것은 요괴의 기억. 몽글거리며 피어나는 그 순간순간은 무척이나 반짝거려서 망연한 여름밤의 환상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츠하와 야스타카가 눈을 뜬 것은 늦은 저녁이었다. 잠에서 깬 뒤에도 침대 위에서 한참이나 뒤척이던 그들은 주저하며 거실로 나갔다. 갑작스레 쏟아지는 빛이 낯설기만 했다. 일어났어? 그 부드러운 목소리에 배시시 웃고서 그들은 소파로 향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자신들을 안아주는 그 품이 좋았다. 전해지는 온기와 함께 옅은 여름의 향기가 났다.
“엄마하고 아빠가 위험하다고 가지 말라고 했는데.”
“···죄송해요. 궁금해서 그랬어요.”
“다음에는, 같이 가는 게 좋겠다.”
정말요? 나츠하는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돌아오는 것은 대답이 아닌 가벼운 입맞춤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마냥 기쁘기만 했다. 조금 부러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야스타카 또한 뽀뽀를 받고 나서야 환한 웃음을 내보였다. 요괴 이야기- 해주시면 안돼요? 작은 질문에 잊을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한 추억이 풀어져 나온다. 아직 어리기만 한 아이들이 언젠가는 경험할, 결코 지워지지 않을 그 만남과 이별들이.
Epilogue
“무모하게 행동하는 건, 우리 타카시 군을 쏙 빼닮았네요.”
“내가 아니라 우리 린을 닮은 거죠.”
타카시와 린은 서로를 바라보다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들의 품에서 세상 편하게 잠들어있는 아이들을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나 꿈꿔오던 가족의 존재는 너무도 소중하기만 하고 이렇게나 행복해도 되는 걸까 싶어서 가끔은 불안해질 때도 있지만, 함께 있으니까 괜찮을 것만 같았다. 나중에 또 올 거지? 요괴의 질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든다. 아이들이 요괴와 친해지는 것이 좋은 걸까. 어른이 되어도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여서,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타카시는 조금 멍하니 걷는 린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오랜 시간 퇴치사로서 지내왔으니 요괴들이 마냥 다정한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을 가까이에서 느껴온 사람이었다. 그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린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겨주었다. 조금 놀란 듯 그녀의 시선이 움직였다.
“괜찮아요, 여보.”
그저 단순한 한 마디였지만, 이상하리만치 그의 상냥한 목소리에 안심이 되었다. 응. 린은 짧은 대답을 내뱉으며 배시시 웃었다. 타카시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 조금 가까이 다가가 허리를 숙여 입을 맞춰주었다. 여전히 서로의 눈동자에 온전히 담겨있는 것이 변하지 않을 여름이라는 점이 좋았다. 둘은 한참이나 시선을 맞대고 서있다가 안겨있던 아이들이 뒤척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집으로 돌아가요. 둘은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심장박동 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지키고 싶은 작은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