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그리핀도르에 갈 거야!"
에머슨 다코타 밀링턴 스네이프가 포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주 수요일은 에머슨의 열한 번째 생일날이었고, 오늘은 때맞춰 호그와트 입학 통지서를 문 부엉이가 날아온 참이었다. 입학 통지서를 본 에머슨은 당장이라도 제자리에서 뛰어오를 것처럼 좋아했고,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노려보았으며, 엘레노어 밀링턴 스네이프는 말없이 에머슨의 녹빛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아직 이렇게 작은데, 벌써 입학을 해?"
"친구들 중에서 제일 크거든?"
"아닌데……, 아직 작은데……."
에머슨의 짙은 보라색 눈동자가 치기 어린 빛으로 두 사람을 빤히 바라본다. 엘레노어 밀링턴은 그만 에머슨의 머리를 더 헝클고 말았다. 으악! 에머슨이 내지르는 고통스럽지 않은 외마디 비명을 듣는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표정이 미묘하게 꿈틀거렸다. 호그와트는 방학 중이라 세베루스와 엘레노어 두 사람 모두 집에 있던 중이었고, 에머슨은 그 사실 자체가 마냥 즐거웠다. 세상에, 엄마 아빠 두 사람이 모두 호그와트 교수인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에머슨은 십 년 동안 온 가족과 함께 오롯이 일 년을 함께 보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호그와트에 들어가면 두 사람을 질리도록 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왜 그리핀도르지?"
"난 빨간색이 좋아."
"그 이유만인가?"
"음……, 사자도 좋아!"
에머슨 다코타 밀링턴 스네이프는 '엘레노어 밀링턴'을 많이 닮아 있었다. 아마 호그와트에 입학하게 되면 에머슨이 엘레노어의 딸이라는 것을 모두가 한눈에 알 것이라고 세베루스는 생각했다. 물론 성씨가 같으니 자신의 딸인 줄도 알게 되겠지만, 에머슨은 엘레노어를 빼다 박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녹음을 담은 머리칼과 자수정 같은 눈동자는 두 번 보아도 엘레노어의 그것이다. 세베루스는 무의식적으로 그리핀도르 망토를 입은 '엘레노어 밀링턴'을 상상했다.
"역시 녹색이 더 잘 어울릴 텐데."
"응?"
"엘레노어, 그리핀도르 망토를 두른 너를 상상할 수 있나?"
"어?"
엘레노어의 고개가 슬쩍 기울어졌다. 요 근래에는 잘 보지 못한, '엘레노어 밀링턴'의 눈빛이다. 언제나 자신의 흥미와 관심만을 좇아 움직이는 그것이다. 엘레노어는 에머슨의 어깨를 살짝 끌어당겨 바짝 붙은 채 세베루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그 말은 지금 나랑 에머슨이랑 닮았다고요?"
"……. 밀링턴, 넌 변한 게 없군."
"에이, 호그와트처럼 왜 그래요, 세베루스 교수님."
"…… 그래, 많이 닮았지. 아주 똑 닮았어."
"아니야, 난 머리가 긴데 엄마는 안 길고……, 엄만 슬리데린이고 난 그리핀도르야!"
에머슨이 한술 더 뜬다. 아무래도 그리핀도르로 마음을 굳힌 모양이었다. 저렇게 원한다면 모자도 그리핀도르를 외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라는 걸 두 사람 모두 알고 있다. 붉은 망토를 두르고 수업 시간에 앉아 있을 에머슨을 상상한 세베루스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고, 엘레노어는 그리핀도르에 갔어도 재밌었겠다며 갑자기 과거 시절을 회상하고 있었다. '엘레노어 밀링턴'의 학창 시절에는 에머슨보다 머리카락이 훨씬 더 길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에머슨, 그리핀도르로 가면 기숙사에서는 우리를 볼 수 없을 텐데."
"괜찮아, 그리핀도르는 용감한 사자니까!"
어쩌다가 에머슨이 그리핀도르, 그리핀도르 노래를 부르게 되었을까? 친구들끼리 놀다가 기숙사 이야기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그리핀도르가 멋지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정말로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동경일 것이다. 엘레노어는 에머슨과 세베루스의 얼굴을 잠시 동안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고 세베루스가 '뭐 하는 거지?' 하는 얼굴로 눈썹 사이를 작게 좁히려고 할 즈음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역시 에머슨은 그리핀도르가 좋겠다."
"역시 그렇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그렇지만, 기숙사에서도 세베루스 교수님을 만나야 하는 건 좀 너무하잖아요?"
히죽거리는 듯한 목소리는 '엘레노어 밀링턴'과 '엘레노어 스네이프'가 꾸준히 공유하는 공통점 중 하나였다. 또한 '에머슨 스네이프'에게 물려 준 것이기도 하다. 즐겁게 히죽거리는 모녀를 보던 세베루스가 결국 한 마디를 더 꺼냈다.
"엘레노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말 그대로인데, 세베루스 교수님은 전부터 말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더라."
"난 그리핀도르에 갈 거야!"
"에머슨이 그리핀도르에 간대요. 그리핀도르에 갈 용기를 냈으니 에머슨은 당연히 그리핀도르지!"
또 다시 조잘거리기 시작한 두 사람을 감당하기가 힘들어 세베루스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보통 한쪽의 외모를 닮으면 성격은 다른 한쪽을 닮는다던데, 어째 에머슨은 엘레노어와 세베루스가 구 대 일 정도의 극단적인 비율로 섞인 것 같았다. 덕에 셋이 함께 있을 때면 난해한 성격의 두 사람에게 휘말려 세베루스는 정신 차릴 겨를이 없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요?"
"…… 뭘 말이지?"
"에머슨은 그리핀도르가 어울리죠?"
엘레노어가 에머슨을 앞에 내세우고 말한다. 세베루스는 똑 닮은 두 사람을 잠시 바라보았다. 신이 난 에머슨과 그 상황이 마냥 재미있기만 한 엘레노어. 엘레노어의 기숙사를 배정할 적에 모자가 그리핀도르도 염두에 두었다고 했던가? 모자걸이로 소문났던 '엘레노어 밀링턴'이기에 당연히 그랬을 것 같긴 하다. 세베루스는 그리핀도르 망토를 두른 '엘레노어 밀링턴'을 잠시 상상하다가, 다시 그리핀도르 망토를 두른 에머슨 스네이프를 상상했다.
"…… 나쁘지는 않을 것 같군."
"에머슨 다코타 밀링턴 스네이프는 그리핀도르다!"
세베루스의 말에 에머슨이 다시 한번 소리쳤다. 그날 저녁은 그렇게 평화로웠다. 에머슨 스네이프는 그리핀도르에 갈 생각에 흠뻑 빠졌고, 엘레노어 스네이프는 그 모든 상황이 즐거웠으며,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호그와트 입학식 날의 연회장은 북적거렸다. 모든 교직원들이 연회장 앞에 나와 있었고, 그 바로 앞 한가운데에는 기숙사 배정석이 놓여 있었으며, 전교생이 신입생들을 구경하기 위해 앉아 있었다. 맨 앞줄에는 에머슨 다코타 밀링턴 스네이프가 앉아 있었다. 에머슨과 눈이 마주친 엘레노어가 작게 손을 흔들었고, 에머슨은 크게 웃었다.
"다음, 에머슨 스네이프."
에머슨은 당당히 걸어가 의자에 앉았다. 모자가 에머슨의 머리에 씌워지고, 곧 모자가 중얼거린다.
"음? 너라면 분명 슬리데린을 고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으흠……, 정말? 네 생각이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구나. 물론 너라면 어딜 가든 잘하겠지! 그리핀도르!"
그리핀도르 테이블에서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에머슨의 망토가 곧 붉게 물들고, 다시 한번 교직원 - 정확히는 엘레노어와 세베루스 - 들과 그리핀도르 테이블을 향해 크게 웃어 보인 에머슨이 그리핀도르 테이블로 향했다. 엘레노어가 세베루스를 보며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자, 세베루스는 작게 웃음을 내뱉었다. 다른 학생들의 배정이 진행될 동안, 두 사람은 잠시간 그리핀도르의 에머슨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