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심하네. 으음…. …죠스케쨩, 지금부터 헌팅하러 가자.”
이 말을 들은 죠스케는 제일 먼저 이마를 짚었다. 고등학생 시절에 12살 연상의 조카가 저음으로 뱉었던 대사와 더불어 그때 당시에 겪었던 싸움들이 겹쳐 떠오르는 그리운 기시감과는 별개로, 헌팅이란 무시무시한 (어렸을 땐 그렇고 그런 의미부터 떠올렸지만 어른이 된 지금의 죠스케는 달랐다!) 단어를 꺼낸 주제에 젖살도 채 빠지지 않은 귀여운 여섯 살짜리 자식을 옆에 당당히 끼고 있는 건 또 무슨 일이란 말인가. 다른 건 몰라도 황금과도 같은 휴일이 적어도 평범한 휴식으로 소비되진 않을 거라는 강한 예감만이 스칠 뿐이라, 당황한 나머지 크레이지 다이아몬드가 고치려던 리모컨이 졸지에 전위적인 미술 작품의 일종이라도 되는 것처럼 괴이한 형태로 구부러지게 된 것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갈게요. 헌팅이든 쇼핑이든 따라가긴 하겠는데요, 죠아도 데려가려는 검까? 진짜로?”
“당연하지. 아니면, 누구한테 맡기게? 죠타로쨩이나 코이치쨩은 다른 일로 바쁜 것 같았고, 로~한이나 유카코 군에게 맡길 순 없잖아. 오쿠야스쨩은 아르바이트 때문에 바빠 보였고. 또…….”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아가며 세던 입술이 문득 굳게 다물렸다. 아마도 슬슬 생각하기 귀찮아진 거겠지. 죠타로의 허락하에 정식으로 사귀기 시작한 시점부터 부부로서 지내온 이 순간까지의 세월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케이타의 이런 충동적 행동 패턴에 익숙해져 있었던 죠스케이기에,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져 삐뚤빼뚤하게 된 케이타의 셔츠로부터 다시 단추를 올바르게 끼워주며 태연하게 다음 질문으로 말문을 텄다.
“아무리 그래도 헌팅이라면서요. 사냥을 뜻하는 거잖슴까.”
“맞아. 그 사냥. 다른 의미도 있어?”
“그게……그건 몰라도 됨다. 아, 아무튼 제가 하려는 말은 정말 사냥하러 가는 거면 어린아이를 데려가는 게 훨씬 위험한 거 아니냐는 건데요? 게다가 만약 스탠드 사냥이면 더 위험하고! 아무리 케이타 씨랑 저라는 건장한 남자가 둘이나 동행한다지만……!”
“위험한 거야? 난 이만할 때부터 사냥을 배웠었다고. 이제 슬슬 가르쳐도 되지 않나 싶었는데.”
“네? 또 그 여우들이 문제냐고, 진짜~…….”
제대로 대면한 적도 없는 늙은 검은 여우 한 마리와 얄미운 미소를 짓는 붉은 여우 한 마리의 이미지가 죠스케의 머릿속을 맴도는 듯했다. 이즈리하 케이타라는 인간의 목숨을 자신의 자식으로서 길러줬고 모든 행동 양식과 가치관을 심어줬다고 하는 야생의 부모. 어떻게 보자면 사랑하는 이의 은인……아니, 은수라 할 수 있겠지만, 점점 흐려져 종적을 감춘 줄로만 알았던 야생아의 흔적이 이렇게 은연중에 다시 고개를 내밀 때마다 어쩔 수 없는 복잡한 감정에 휘감기고 마는 것이다. 이를테면 고의와 실수를 막론하고 그를 야생에 방치하고 떠난 친족에 대한 분노가. 또는 케이타의 어린 시절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을 두 여우에 대한 유치한 질투가.
그러거나 말거나 둘 사이에서 한없이 올려다보고 있던, 죠아라고 불린 히가시카타 가의 장녀는 입술을 비죽 내밀고서 부루퉁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말았다.
“파파, 마마.”
“엑? 뭐야? 왜 그럴까, 우리 공주님~?”
“나, 배고픈데에, 간식 먹어도 돼?”
나른한 단잠의 유혹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고는 해도 시곗바늘은 점심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니 아이의 칭얼거림은 지극히 당연했고, 케이타의 배에서 울리는 자그마한 소리 또한 지극히 당연했을 테다. 그리고 히가시카타 죠스케가 눈앞에 놓인 찬스를 쉬이 놓치지 않는 타입의 남자라는 것 또한 그러했다.
“많이 배고프지? 맛있는 간식도 좋지만, 조금만 참고 우리끼리 외식하러 나갈까? 산책도 하고!”
“응, 엄청 좋아! ……앗. 그럼 포치도 데려갈래~!”
행여 둘 중 어느 한 명이라도 말리려 들세라, 얌전히 장난감 상자 안에서 단 하나뿐인 친구를 기다리고 있을 작은 테디베어를 향해 긴 흑발을 휘날리며 종종걸음으로 달려가는 뒷모습이 퍽 사랑스럽다.
“우리 귀엽고 사랑스러운 딸도 저렇게 좋아하는데 말이죠~…? 어때요. 위험한 헌팅 같은 건 머나먼 훗날로 미루고 지금은 이 죠스케 군이랑 죠아랑 다 같이 진~하게 가족 데이트나 하는 게? 응?”
귓가를 간질이는 앳된 목소리만큼이나 케이타의 허리에 감기는 굵직한 팔도 어찌나 천연덕스러웠는지. 장난감 사이를 뒤적거리는 사랑스러운 소음을 배경으로 삼는 동안에 이윽고 죠스케는 소리 없이 케이타를 욕심껏 품 안에 가둬버리고야 말았다. 케이타에게 있어선 가장 편안한 장소 중 하나에 해당했기에 저항이야 있을 리도 없지만, 포옹과 더불어 이미 죠스케의 코끝이 케이타의 복슬복슬한 녹빛 머리칼에 부벼지고 있는 건 덤이다. 연하이자 남편이 부리는 응석에 가까운 행위는 케이타로 하여금 간지러운 기분을 들게 만드는데, 다행히도 성장한 지금의 그는 그 간지러운 기분의 이름이 애정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죠스케쨩, 넌 왜 그렇게 내가 산에 가는 걸 싫어해?”
“에, 에이. 싫어하긴 누가요~. 그런 거 아님다.”
“거짓말하지 마. 물어 버린다.”
“……이래서 눈치 빠른 케이타 씨는.”
“싫어?”
“…완전 좋슴다….”
비록 말투는 투덜거림이었으나 기어들어 가는 말 자체에는 안도에 가까운 음색이 묻어 있다. 약간의 창피함과 주저가 뒤섞인 분위기 속에서 먼저 운을 뗀 건 죠스케 쪽이다.
“케이타 씨는 원래 이런 도시보다 자연을 더 고향처럼 느낀다면서요. 그러니까, 거기에서 살고 싶다고 떼라도 쓰시면 어쩌나 해서요. 뭐, 아무리 떼를 써도 떨어질 생각은 없지만. 저희, 누가 뭐래도 부부니까요!”
“어……. 옛날이라면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안 그럴걸?
“……! 진짜임까?
“예전에 까망이가 그랬어. 야생에 있던 짐승은 인간을 한번 따르면 야생으로 돌아오긴 어려우니까 조심하라고. 그게 이런 뜻이구나, 하고 네 덕분에 깨달았다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케이타는 품에서 떨어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건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이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이가 돌아오는 기척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뒤를 따르는 죠스케의 표정에는 불그스름한 행복감이 스멀스멀 번져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