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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희가 잠들고 나서 팔계와 산옥은 일행들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오공이 궁금한 게 생겼는지 그들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둘은 아이를 키우고 있잖아.”

“네, 그렇죠.”

“언제가 제일 힘들어?”

“언제가 제일 힘드냐고요?”

팔계는 힘든 일이 딱히 없어 그렇게 대답하려 했는데 산옥이 입을 열었다.

“최근에 축제 갔을 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축제 때 뭐 했는데?”

“아.”

“설마 그날도 그랬냐?”

“네, 맞아요.”

팔계도 뭔가 생각났는지 산옥을 보며 이해한다는 듯 웃었다. 삼장도 뭘 말하고 싶은지 알아챈 모양이었다. 그 때를 말하자면 팔계도 꽤나 힘에 부친 게 사실이었으니.

계희는 산옥을 닮아서인지 언어 부분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발달이 빨랐다. 그래서 길가를 지나다 보이는 글자를 하나하나 다 읽어야 직성이 풀렸고, 호기심도 많아 궁금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아빠. 이건 뭐예요?”

“엄마, 엄마. 저 새는 이름이 뭐예요?”

그러다 보니 둘은 계희가 잠들고 나서 같이 온갖 책을 펼쳐놓고 공부할 때가 많았다. 계희가 궁금해 하는 건 동식물 뿐 아니라 물건, 사람까지 광범위했기에 둘도 가끔 말문이 막혀 제대로 설명을 해 주지 못할 때가 있었다. 심지어 삼장은 ‘삼장 법사’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탓에 뭐든지 다 알 거라고 생각했는지 팔계나 산옥에게 묻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걸 물어보곤 했다. 오공에게도 음식을 두고 이것저것 물었지만 오정에게는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아 그가 직접 말을 꺼냈다.

“넌 그런데 왜 나한테는 아무것도 안 물어보냐?”

“엄마가 ‘변태 말미잘이 뭘 알겠어.’ 이랬는데!”

“야!”

“뭐, 내가 틀린 말 했냐?”

각설하고 며칠 전, 팔계 가족은 축제를 맞아 옷을 차려입고 거리를 구경했다. 맛난 음식을 먹으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계희가 뭔가 발견하고 자리를 박차려 했다.

“안 돼.”

“엄마!”

“밥 다 먹고 가야지. 어디로 가려고.”

“그렇지만, 그렇지만 궁금한데!”

“너 또 뭘 본 거야.”

“저기, 저거!”

계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건 금붕어를 잡는 아이들이었다.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가. 산옥은 혀를 찼다. 저도 어린 시절 이렇게까지 뭘 하고 싶었던 적 없었던 것 같은데. 팔계는 그런 계희에게 숟가락을 건넸다.

“이거 다 먹고도 금붕어 잡는 건 안 없어질 거니까 다 먹고 갈까?”

“진짜 다 먹어도 안 없어져요?”

“응.”

“아빠 거짓말 안 하는 거 계희도 알지?”

팔계와 산옥이 한 마디씩 하자 계희는 잠시 시무룩해지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밥 다 먹으면 저거 하러 갈 거예요.”

“그래, 계희 착하다.”

계희는 팔계에게 착하다는 말을 듣고야 숟가락을 받아들고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 먹고 나서 바로 팔계를 재촉했다.

“빨리, 빨리!”

“그러지 않아도 안 없어진다니까.”

계희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달려 나가자 팔계는 작게 웃었고 산옥은 한숨을 쉬었다.

“진짜 나 어릴 때는 저러지 않았는데.”

“그렇지만 안 된다고 하는 건 잘 알아듣잖아요.”

“당신한테 밉보이기 싫어서 그런 게 대부분인 걸 내가 모르나?”

“그런 건 당신 정말 닮은 거 같아. 나한테 싫은 소리 듣기 싫어하는 거.”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아요? 나나 계희나 당신 사랑하는걸.”

그 말에 팔계는 웃는 얼굴로 산옥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들이 계희가 있는 곳으로 가니 그 애는 둘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거 돈 있어야 할 수 있대!”

“알았어, 알았어. 팔계 씨.”

“응?”

“계희랑 같이 해요.”

“산옥은?”

“난 구경할래.”

“그래요. 계희야, 아빠랑 할래?”

“네!”

팔계가 돈을 받아들고 계희와 함께 금붕어 잡기를 시작했다. 계희가 든 뜰채 속에선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성급하게 뜰채를 움직인 탓이었다. 그걸 본 팔계가 계희에게 방법을 일러주고 있었다. 산옥은 그걸 보며 축제용 책자를 살폈다. 여기 위치가 어디지. 길치는 어디 가지 않았다. 이 근처에 있는 게 새들에게 먹이를 줄 수 있는 곳이 있고, 꽃차를 우릴 수 있는 곳도 있었다. 봐도 봐도 모르겠네. 미간이 찌푸려지기 전, 산옥 미간을 꾹 누르는 손이 있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어요?”

“우리 어디 있어요?”

“응?”

또 시작이구나. 산옥이 보이는 반응에 팔계는 웃음이 터지는 걸 막지 못했다. 산옥이 자신을 향해 밉지 않게 눈을 흘기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려니 한 그가 말했다.

“우리가 지금 이 쪽에 있고, 그러면 새 먹이를 주는 곳은 이 쪽, 꽃차를 우리는 곳은 이 쪽.”“꽃차? 엄마 꽃차가 뭐예요?”

또 시련인가. 다행이도 이 부분은 잘 설명할 수 있었기에 금방 대답했다.

“꽃으로 차를 만드는 거야. 따뜻한 물을 꽃에 부어서 차를 만드는 거지.”

“나, 나. 이거. 이거 해 볼래!”

“그래. 가자.”

계희가 또 먼저 달려갈까 팔계는 계희에게 말했다.

“계희야, 이번에는 먼저 가면 안 돼.”

“왜요?”

“어디에 있는지 모르잖아.”

“그럼 어떡해?”

“엄마 아빠가 비행기 태워줄까?”

“비행기?”

“응, 그 대신 손 꼭 잡아야 해.”

“네!”

계희는 양 손을 팔계와 산옥에게 각각 내어주고 꼭 잡았다. 그에 팔계와 산옥이 눈짓을 주고받더니 말했다.

“하나, 둘, 셋. 슈웅!”

“우와!”

잡은 두 팔이 그네처럼 움직여 계희 발이 공중에 떴다 다시 바닥에 닿았다. 그게 재미있었는지 계희가 말했다.

“또, 또 할래! 또 비행기!”

“차 만들고 나와서 또 해 줄게.”

“약속!”

계희가 두 손 다 새끼손가락만 내밀자 팔계와 산옥은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하듯 손가락을 걸었다. 그 이후로 계희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계속 궁금한 게 있으면 이것저것 물었다. 아까 꽃차를 만들 때 가이드가 한 말을 팔계와 산옥은 잊어버리지 못했다.

“질문 다 받아주시는 것도 힘들겠어요.”

“아하하.”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 삼장과 오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피곤해서 대체 그런 걸 어떻게 다 받아주고 있냐고. 대단한 건지 뭔지.

“그래서 언제까지 물어보디?”

“불꽃놀이 보고 집으로 갈 때까지?”

“불꽃을 어떻게 만드는 지 물어봤었죠.”

“팔계 씨 없었으면 난 진땀 뺐을 거예요.”

“하긴 너 그 쪽 머리 안 되잖아.”

“그러니까.”

산옥은 쉽게 수긍하고 차를 홀짝거렸다. 그 차는 축제 때 만든 것이었고, 이걸 만드는 과정도 꽤나 순탄치 못했다는 걸 떠올린 산옥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팔계는 왜 웃나 하는 생각에 그를 보았다가 차를 눈짓하는 걸 보고 알겠다는 듯 따라 웃었다.

“그래도 계희가 있어서 좋은 점도 있지?”

오공이 묻는 말에 둘은 당연하다는 어투로 말했다.

“그럼요. 그 애는 누가 뭐래도 보물이에요.”

“네. 계희가 가져다 준 게 많으니까요.”

그렇게 계희 이야기를 하고 있으려니 계희가 방에서 나왔다. 잔뜩 졸음이 묻은 얼굴이었다.

“왜 그래? 시끄러웠어?”

“엄마, 나 물 마실래요.”

“물 줄까?”

“응.”

계희는 산옥이 물을 주기 전까지 기다리면서 일행들을 죽 돌아보고 물었다.

“삼촌들이랑 법사님은 언제 가요?”

“왜 갔으면 좋겠냐?”

“삼장.”

“알았다고.”

“계희 다시 자면 그 때 갈 거야!”

“응.”

계희는 산옥에게 물을 받아들고 마신 뒤에 말했다.

“엄마, 나 잘래요.”

“응, 다시 자. 엄마가 재워 줄까?”

“네.”

산옥이 계희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자 팔계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가요. 계희 재우고 우리도 자게.”

“알았어. 쉬어.”

“네.”

일행들은 인사를 건네고 집을 나갔다. 팔계는 다과 접시를 정리하고 설거지까지 마친 뒤에야 방 안으로 들어왔다. 계희는 금세 다시 잠들었고, 산옥은 계희 머리를 가만가만 만졌다.

“이상한 일이에요. 계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진짜 가족이 만들어진 그런 느낌이 들어서.”

“우리 둘 다 그런 것들이 익숙한 이들은 아니었으니까.”

팔계가 한 말에 산옥은 가만히 웃으며 팔계에게 손을 내밀었다. 팔계는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계희를 갖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건 하나 더 늘었는데 하나도 두렵지가 않아요. 당신이 옆에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팔계는 산옥이 한 이야기를 들으며 손깍지를 꼈다. 지켜야 할 것이 늘어도 두렵지 않은 이유. 그건 서로가 있기에 가능했다는 걸 팔계 역시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호기심 많고 궁금한 게 많은 아이를 위해, 그 아이가 만들어 준 가정을 위해 노력하리라 다짐하며 그들은 꽤 긴 시간 동안 손을 맞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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