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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깜짝 이벤트 하면 안 돼요?”

 

적당한 볕이 기분 좋게 들어오는 한적한 카페 안에서 자그마한 다리를 왔다 갔다 하던 자그마한 아이는 불쑥 그런 말을 뱉었다. 맞은편에서 덤덤한 눈으로 차를 마시던 돗포의 한쪽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깜짝 이벤트?”

 

“네.”

 

빨대로 생딸기주스를 열심히 마시던 아이는 그의 말에 입을 떼고서 고개를 한 번 천천히 끄덕였다. 돗포는 말랑말랑해 보이는 얼굴을 바깥의 바람 같은 따스한 눈길로 바라봤다. 그리고는 새삼스레 어릴 적의 제 아내가 저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또랑또랑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아이, 쿠니키다 유이는 그와 그의 아내인 코우의 하나뿐인 딸이었다. 마주친 동글동글하고 작은 눈동자와 그 위로 보이는 머리칼은 돗포와 같았으나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는 코우와 판박이였다. 돗포와 둘이서 다니면 이따금 삼촌과 조카 관계 정도로 알 정도로 얼굴은 닮은 곳이 없었다. 종종 아쉽겠다고 말을 붙이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는 저를 닮지 않은 것에 아쉬워한 적이 없었다. 아쉬울 리가 있겠나. 유이는 코우와 제 아이였다. 그런 것에 의미를 둘 필요는 없었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코우를 쏙 빼닮은 유이의 얼굴은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어떤 말이든 다 들어주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왜 하고 싶은지, 어떤 걸 하고 싶은지 말을 자세히 해야지.”

 

“아! 깜빡했다.”

 

실수라는 듯 작은 입을 휘어 배시시 웃는 모습을 따라 돗포는 평소처럼 일자로 다물려 있던 입을 살짝 휘었다. 코우를 만나고 같이 살게 되면서 예전보다 훨씬 느슨해진 입가는 어김없이 제 딸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저를 따라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며 눈을 깜빡깜빡, 하던 유이는 돗포가 묶어준 제 양갈래를 한 번 꾹 쥐었다 놓았다. 그리고는 짐짓 심각한 얼굴로 제 손을 깍지 끼고서 테이블 위에 톡 놓았다. 자신이 진지한 얘기를 할 때 종종 취하는 자세 중 하나를 그대로 따라하는 모습에 유이를 바라보던 그의 입꼬리가 조금 더 위로 올라갔다.

 

“다시 말할래요.”

 

“그래. 다시 말해 보도록.”

 

돗포가 저를 따라하는 제 딸을 또다시 따라하듯 찻잔 손잡이를 쥐고 있던 손을 놓고 깍지 껴 테이블 위에 가볍게 두었다. 카페 창가에 앉아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부녀의 모습에 바깥을 지나가던 몇몇 사람이 두 사람을 힐끔 쳐다봤다. 안쪽에서는 들리지 않았으나 무심코 바라본 시선 끝에는 귀엽다는 말이 꼭 따라붙었다.

바깥의 상황을 알 리 없는 두 사람은 그저 중대한 회의를 하는 것처럼 서로를 마주보고만 있었다. 유이는 부드럽게 풀려있는 제 아빠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하더니 이내 망설임없이 본론을 꺼냈다.

 

“우리 엄마한테 오늘 깜짝 이벤트 해요. 예쁜 꽃이랑 맛있는 케이크랑, 편지도 써서 드리고 싶어요.”

 

아까의 말과는 달리 형태를 온전히 갖춘 유이의 말에 돗포는 가볍게 픽 웃음을 흘렸다. 제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귀여운 제안이었다.

 

“아빠와 둘이서 놀고 싶다는 말은 이걸 위한 거였나.”

 

“그렇기도 한데, 아빠랑 놀고 싶은 것도 진짜였어요.”

 

저번에 엄마랑 둘이 놀았으니까. 유이는 덤덤하게 거짓없이 제 의도를 내뱉었다. 방긋 웃던 웃음이 사라진 곳에는 어쩐지 시큰둥해 보이는 낯만이 남아있었다.

이제 막 여섯 살, 만으로는 다섯 살을 막 넘긴 유이는 코우와 많이 닮은 외모에 반해 성격 자체는 그를 그대로 닮아있었다. 꾸준히 사근사근하고 밝은 코우의 영향을 받아서 밝고 애교가 많은 면도 있었지만, 일차적인 성격의 베이스는 돗포인지라 대개는 차분했다.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필요한 훈육은 엄하게 하려 했던 돗포와 코우의 결심이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유를 대며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좋게 얘기하면 곧장 수긍했고, 한 번 저질렀던 잘못은 반복하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두 사람을 조곤조곤 혼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코우는 유이가 잠든 후 돗포에게 살짝 묻곤 했다. 돗포 씨 어릴 때 저런 성격이었나 보네, 라고. 하지만 돗포 역시도 어릴 때 저렇게까지 차분하고 이성적인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비슷하지 않다고 부정할 수도 없었다. 이따금 보이는 행동들은 어렴풋한 기억 속의 어린 자신과 판박이였다.

 

“갑자기 깜짝 이벤트가 하고 싶어진 이유는 뭘까.”

 

“엄마가 이런 거 받으면 기뻐하니까요. 엄마가 기쁘면 아빠도 나도 기분 좋으니까.”

 

그리고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 역시도, 아빠인 그와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엄마를 어떻게든 보호하려 든다는 것도 똑같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늘상 사고를 치던 예전과는 달리 지금의 코우는 누구보다도 든든한 나무 같은 느낌에 가까웠지만, 유이는 재밌게도 제 엄마를 마치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걱정했다. 서너 살 무렵부터 추위를 잘 타는 코우의 목도리를 먼저 꼭 챙겨주기 시작한 걸 보면.

그 때부터 유이는 종종 코우 몰래 돗포에게 ‘엄마는 튼튼하고 대단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꼭꼭 지켜주고 챙겨줘야 할 것 같아요.’ 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웃곤 했으나 돗포는 유이의 말 자체를 부정하진 않았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코우는 여전히 지켜주고 챙겨줘야 할 존재였다. 코우가 저와 유이를 챙겨주는 것보다 배로.

그렇게 부녀는 몇 번의 눈빛교환 끝에 ‘코우 수호대’ 를 결성했다. 장본인은 알지 못하는 소소한 수호대의 임무를 할 때면, 코우는 남편과 딸이 아니라 제 보호자가 둘인 것 같다며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

돗포가 잠시 이전의 추억에 잠긴 사이, 빨대로 주스를 몇모금 더 마시던 유이는 불현듯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코우가 챙겨준 손수건으로 제 입가를 톡톡 닦고서 갖고 왔던 가방을 주섬주섬 뒤졌다. 자그마한 손이 불쑥 꺼내든 건 복숭아꽃과 벚꽃이 예쁘게 프린팅된 편지 봉투와 편지지였다.

 

“이건 아빠 거. 이건 내 거.”

 

벚꽃이 가득한 편지지를 돗포의 앞에 꾹 밀어준 유이는 이어서 챙겨온 볼펜까지 꺼내들었다. 몇 주 전 둘이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샀던 편지지와 볼펜이었다. 편지 쓰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면서 드물게 조르던 모습이 그의 머릿속에 곧바로 떠올랐다. 누구한테 쓰고 싶은 건가 했더니. 돗포는 제 몫의 편지지를 한 번 가볍게 훑으며 안경을 가볍게 추켜올렸다. 아까와는 달리 짐짓 엄해 보이는 무뚝뚝한 낯빛이었다.

 

“유이. 아빠는 아직 제안에 아무 대답도 안 했는데.”

 

“눈 보면 알아요. 그러자고 할 거잖아요.”

 

돗포는 확신에 차다 못해 당연한 말을 왜 굳이 덧붙이냐는 듯한 눈빛을 보다가 결국 작게 웃고 말았다. 코우와 같이 이 곳에 있었다면 필시 돗포 씨와 판박이라며 즐겁게 웃었을 터였다.

 

“요즘 아빠 일 바쁘다고 엄마한테 꽃 선물 못해줘서 슬퍼했으니까, 둘이서 깜짝 놀래켜요.”

 

“아빠는 슬프지 않았어.”

 

“아빠, 거짓말은 나쁜 거예요.”

 

나무라는 듯한 유이의 표정에 그의 눈매가 일순 살짝 휘어졌다가 다시 팽팽하게 일자로 다물려졌다. 웃음이 갈무리된 날카로운 눈매는 언뜻 보기엔 차가워 보였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눈동자의 빛깔은 더없이 따뜻했다.

 

“어떻게 아빠 말이 거짓말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거지.”

 

“그것도 눈 보면 알아요.”

 

돗포의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꾹꾹 힘을 줘가며 편지를 쓰던 유이는 그의 눈을 힐끔 마주치며 말을 톡 덧붙였다. 눈이라. 돗포는 제 딸의 말에 가벼이 웃으며 다시 열심히 편지를 적는 모습을 지켜봤다. 있는 그대로 사물을 보는 능력을 가진 이맘때의 아이들은, 가끔 어른들의 속을 꿰뚫을 만큼 예리했다. 제 딸 역시도 다르지 않았다. 아니, 또래들보다 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눈치를 보도록 키운 적이 없음에도 그랬다.

유이가 얘기한 것처럼 정말 슬픈 건 아니었으나 그는 확실히 바쁜 와중에도 꽃집을 지나칠 때마다 코우를 생각했었다. 꽃과 소소한 이벤트를 좋아하는 아내와 살면서 원래의 성격보다 더 로맨틱해진 그는 계절마다 코우를 닮은 꽃다발을 안겨다주곤 했는데, 이번에 맡은 탐정사 의뢰가 불규칙하다 보니 그런 걸 해주기가 어려웠다. 코우가 맡은 의뢰와는 임무 시간이 달라서 유독 더 그랬다. 임무 중에 꽃다발을 사면 망가질 게 뻔해 일과를 마치고 살 수 밖에 없는데, 하필 매번 새벽이나 꽃집이 문을 닫을 애매한 시간에 일이 끝나버려 난처했다. 덕분에 몇 주 동안 그의 하루는 마지막 계획을 끝마치지 못한 채 마무리되곤 했다. 그건 돗포의 입장에서는 꽤나 불쾌한 일이었다. 그냥 계획 하나가 틀어져도 속이 뒤틀리는데, 제 이상인 아내를 향한 계획을 매번 실패해버리니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돗포는 임무가 얼추 마무리된 뒤 가지게 된 휴일인 오늘, 마침 같이 나가서 놀자는 유이와 함께 꽃집을 찾아가려 했었다. 애초부터 세웠던 계획이 그거였다. 그런데 제 딸이 저보다 더 좋은 제안을 꺼낼 줄이야.

돗포는 편지봉투 위에 반듯이 놓인 새 볼펜을 가볍게 쥐었다 놓으며 반대 손으로 식은 차를 한 번 마셨다. 그리고 별다른 말 없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코우한테 쓰는 편지는 꽤 오랜만이었다. 결혼 초반에는 몇 번 썼던 것 같은데. 몇 년 전을 떠올리는 그의 입가에 그새 웃음이 담겼다. 힐끔힐끔 아빠를 꾸준히 곁눈질하던 유이의 입이 그의 표정을 보자마자 기분이 좋은지 꿈질거렸다. 바닥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두 다리는 상당히 신이 나보였다.

 

“네 시까지 써야 해요, 아빠. 다섯 시까지 케이크도 사고 꽃도 사기로 계획했거든요.”

 

“케이크 집이랑 꽃집은 어디로 사러 갈지 정했고?”

 

“케이크 집은 정했는데, 꽃집은 잘 모르겠어요.”

 

“꽃집은 아빠가 정해둔 데 있으니까 거기로 갈까.”

 

“좋아요!”

 

유이가 세운 계획을 바탕으로 순서와 목적지를 척척 정한 두 부녀는 차고 있는 각각의 시계를 한 번 슬쩍 보더니 동시에 펜을 들고서 편지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정해둔 네 시까지 편지 쓰는 일을 끝마치고 카페에서 나가기 위해.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볕이 잘 드는 창가 근처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코우는 보고 있던 페이지 사이에 책갈피를 끼워넣고는 탁 덮었다. 힐긋 본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어느새 다섯 시 반 근처에 와 있었다. 한 자세로 있었던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기지개를 쭉 켠 코우는 몇 시간 동안 볼 일이 없었던 핸드폰을 확인해 그동안 왔던 메시지와 알림들을 모두 확인했다. 아직까지 남편이나 딸에게서 온 연락은 없었다. 잘 놀고 있나 보네. 두 사람을 생각하는 낯빛 위로 단번에 웃음이 씌워졌다. 저물고 있는 해보다 더 따스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탐정사의 의뢰는 대개 생활패턴을 해치지 않는 일들이 태반이었으나 이따금 밤늦게 혹은 야간에 해야 할 일들이 들어오곤 했다. 저번에 코우가 맡았던 의뢰, 그리고 이번에 돗포가 맡았던 의뢰가 후자에 속하는 경우였다. 그럴 때면 두 사람이 같은 일을 한꺼번에 맡지 않고 꼭 다른 의뢰를 맡기 때문에 유이가 혼자 잠에 들거나 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둘보다는 셋이서 보내는 시간이 좋다는 건 생각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사실이기에.

하지만 오늘 부녀가 단둘이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바깥에 나간 건 별개의 얘기였다. 유이와 책도 읽고 쇼핑도 다녔던 저와는 달리 제 남편은 몇 주 동안 아이와 제대로 된 시간을 보내지 못했었다. 저번 의뢰를 마친 뒤 제가 유이와 단둘이 나들이를 다녀왔었으니 이번에는 그의 차례였다. 코우는 조그마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오늘 아침의 일을 떠올렸다. 둘이서 나갔다 오라고 마침 제가 얘기를 꺼내려던 차에, 유이가 먼저 아빠랑 나가서 놀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던 그 아침을 말이다.

코우는 이렇게 유이가 엄마아빠와 놀고 싶다는 응석을 부릴 때마다 행복한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어쩜 그렇게 귀여운 응석을 부리는지. 그럴 때마다 그는 제 딸이 천사가 내려온 건 아닐까, 하는 팔불출 같은 생각을 하곤 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어느 한 곳 사랑스럽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돗포와 비슷한 성격 역시도 그랬다. 덕분에 돗포와 유이가 대화하는 걸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점점 표정도 같아지고 말투도 비슷해지는 걸 볼 때마다 코우는 똑같이 귀여운 부녀를 보며 환한 웃음을 몰래 짓곤 했다. 이러니 소소한 일상이 끝없이 행복할 수밖에.

코우는 또다시 행복한 웃음을 작게 뱉었다. 다섯 시 반 쯤에 온다고 했으니 슬슬 두 사람이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았다. 돌아오면 둘이서 어떻게 놀았는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오늘은 어디에 갔으려나. 놀이터? 아니면 카페? 어쩌면 가끔씩 가는 실내 낚시터에 갔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소파에 앉은 채 즐거운 짐작을 하던 그 때, 딩동 울리는 초인종 소리가 집 안에 울려퍼졌다. 코우는 곧장 일어나서 인터폰을 확인했다. 기다리고 있던 돗포와 유이의 얼굴이 곧바로 한 눈에 들어왔다. 얼굴이 같이 보이는 걸 보니, 돗포가 유이를 안아올린 듯싶었다. 코우가 웃음을 터뜨리며 현관문 쪽으로 다가갔다. 문을 활짝 열어 맞이해줄 심산이었다.

 

“재밌게 잘 놀…….”

 

잠금을 풀고 문을 연 코우는 곧바로 쑥 들어오는 무언가에 말을 끝마치지 못한 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떤 게 눈 앞에 있는건지 구분이 되지 않던 것도 잠시, 이내 시야 가득 들어온 건 보랏빛의 풍성한 꽃다발이었다. 가운데 꽂혀 있는 보랏빛 수국 주변으로 같은 보랏빛의 튤립들이 가득했고, 주변에는 앙증맞은 왁스 플라워가 빈 곳을 채우고 있었다.

 

“다녀왔어. 그리고 이건 선물.”

 

“아빠랑 나랑 준비했어요!”

 

눈을 깜빡 거리며 몇 초간 그것들을 바라보기만 하던 코우는, 꽃다발 위로 보이는 두 쌍의 회색 눈동자를 보자마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미 안쪽에 가득 부유하고 있던 행복감이 더 위로 솟아올랐다. 동그란 눈을 예쁘게 휜 코우가 얼마 안 가 그것을 받아들었다. 코끝에 스치는 생화의 향이 기분좋게 은은했다.

 

“갑자기 이러면 어떡해. 둘 다 나 울리게 하려고 작정한 거야?”

 

“기쁠 땐 웃는 거랬어요, 엄마!”

 

“맞아. 당신 웃으라고 준비한 거야. 유이가 엄마 행복하게 웃는 얼굴 보고싶다고 해서.”

 

“맞아요!”

 

죽이 척척 맞게 주고받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코우는 다시 웃음을 크게 터뜨리며 꽃다발에 얼굴을 묻었다. 살랑거리는 부드러운 꽃들이 턱과 볼을 간지럽혔다. 아마 이것보다 더 행복할 순 없을 것이다. 더 행복해지면 정말로, 으레 말하는 것처럼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코우는 활짝 웃으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앞에는 그 어떤 것보다 귀중하고 소중한 두 사람이 웃는 얼굴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마워, 돗포 씨. 고마워, 우리 유이.”

 

“응! 아, 맞다. 아빠, 그것도 보여줘요!”

 

“그거? 또 다른 게 있어?”

 

“네! 엄마 먹고 싶어했던 케이크랑, 이것도 있어요!”

 

유이의 말에 돗포는 나머지 손에 들려 있던 케이크 상자를 살짝 들어올렸다. 다음으로 유이가 가방에서 꺼내든 건, 카페에서 열심히 쓴 편지 두 통이었다. 나머지 선물을 손에 받아든 코우는 무언갈 더 잡을 수 없을 만큼 꽉 찬 제 품과 두 손을 보며 푸스스 웃었다. 행복이 가득 스민 말간 얼굴은 그 어떤 때보다 반짝거렸다.

 

“놀러갔다 오겠다더니, 준비하느라 시간 다 쓴 거 아니야?”

 

“유이랑은 충분히 잘 놀았어. 그렇지, 유이?”

 

“응!”

 

원하던 모습을 만족스럽게 보던 부녀는 서로를 마주보며 생긋 웃었다. 교환하는 눈빛 사이로 작전에 성공했다, 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들어가 있었다. 코우는 눈빛을 주고받는 두 사람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집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일단 테이블에 다같이 앉아 이 깜짝 선물들을 구경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둘 다 얼른 들어와요. 꽃다발은 테이블 위에 장식해두면 되겠다. 아, 저녁은?”

 

“나가서 먹도록 할까.”

 

“좋아요!”

 

“나도 좋아, 돗포 씨. 메뉴는?”

 

현관에서 끝없이 이어지던 즐거운 소란이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을 따라 세 사람의 보금자리인 집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세 사람이 사라진 노을빛의 바깥에는 드문드문 들려오는 즐거운 웃음소리, 그리고 아직까지 옅게 남아있는 달콤한 꽃향기가 그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차다 못해 넘쳐버린 행복의 여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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