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영영.png

“…아키라.”

 

등진 햇살 위로 쏟아지는 그의 시선이, 무던히도 검다.

저가 보고 있는 것이 꿈인지 무엇인지 가늠이 안되는 듯 몽롱해보였다. 키하라는, 두 눈을 한참이나 깜빡인 후에야 제 몸에 덮은 이불에 얕게 벤 소독약 냄새를 느낀 듯 했다.

 

“어떻게 왔어?”

 

제 알기로 미도스지는 도쿄 오쿠타마 힐클라이밍 레이스에 참여하고 있었을 터다. 그러니까, 눈 앞이 까맣게 지워지는 순간에도 아, 적어도 병원에서 그와 마주치지는 않겠구나 하고.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걱정하고 있는거야.’ 그는 그저 말 없이 침댓가에 앉아 키하라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잔뜩 굳어있는 얼굴이 분명히 그리 말하고 있었다. 키하라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날에는 저렇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한시도 뗄 줄을 몰랐다. 특히나 뱃속에 품은 아이 탓에 하루도 몸이 좋은 날이 없는 지금 같은 시기엔, 더욱 그러했다.

 

“아키라.”

 

나직이 그의 이름을 부른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꼭꼭 눌러담아서. 눈치가 귀신보다 더 빠른 그 라면,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아도 다 읽어낼테지.

 

“별 거 아냐. 아기가 엄청 건강한가봐. 오히려 안심해도 될 정도래. …완전 너 닮았을거같지 벌써부터.”

 

빙그레 웃어보이는 카나타에게 시선이, 그저 물끄러미 떨어져 내린다. 오랜 경험에서 미루어보건대 저건 ‘헛소리 하고 있다’의 얼굴이다. 왜그러지?

 

“너는.”

 

언제나와 같이 무덤덤한 말이었다. 안심했어, 다행이야, 뭐 그런 다정한 투로 말하는 위인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런 느낌의 답이 돌아올거라 생각했던 키하라는, 도리어 되돌아온 물음에 순간 무어라고 답할 말을 찾지 못해 멍하니 눈만 깜빡. 방금의 말로 대답이 되지 않았어? 눈으로 묻자 미도스지의 길고 얇은 손가락이 이불에 덮인 키하라의 몸을 조용히 가리키는 것이었다.

 

“니 몸 속에 있는…뭔가의 안부 같은건 하나도 안 궁금해. 너는 어떻냐고.”

 

빙그레 띄운 웃음이 곧 촛불처럼 사그라들었다. 씁쓸함, 알약이라도 씹은 것마냥. 아이가 생긴 후로 키하라는 많은 것을 놓아야 했다. 인생이나 마찬가지인 로드바이크를 그만두어야 하는 것은, 굳이 입밖으로 낼 필요도 없는 너무나 새삼스러운 사실이었다. 아마 그건 키하라 본인에게도, 또 미도스지에게도 큰 실의였을 터다. 타지도 못하는 자전거를 매일 닦고, 정비하고, 그러다가 눈물을 뚝뚝 토해내는걸 보고, 미도스지는 처음으로 후회한다고 말했다.

 

“나? 나두 괜찮지.”

“쓰러졌다며. 웃기는 소리 하지 말래?”

 

수액을 팔에 대롱대롱 달고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주제에. 키하라는 또 대꾸할 말이 없어 그냥 하하 하고 웃어보였다. 웃는 낯에 침 못뱉는 것도 아니거늘, 그는 언제나 그렇게 하하 웃으며 무마하곤 했다. 사실 병원에서 온 연락을 받았을 때는 지금 뭘 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놀라서, 그래서 어떻게 여기까지 제정신으로 왔는지도 기억이 안나지만. 그런건… 말 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도 애기는 하나도 걱정 안돼?”

 

미도스지는 있는 힘껏 미간을 구겨보였다.

‘니 몸 속에 있는 것보다 니가 더 중요해.’ 그는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하곤 했다. ‘자기가 만들어놓고 아무튼 불만은 제일 많아.’ 그냥 우스갯소리로 받아친 말이었는데, 웬걸. 그만 그 철판 같은 미도스지의 얼굴이 급속도로 어두워지는 바람에 진땀을 뺀 적이 있었다.

 

“안돼. 전혀.”

 

일말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응, 진담이다. 뭐 이것저것 재지 않아도 그는 애초에 거짓을 말하는 사람은 아니니.

 

“우와 너무하다 진짜. 애가 들으면…”

“그만해! 자꾸 애기가 어쩌고 얘기만 하면 갈거야.”

“거짓말.”

 

앞서 거짓말은 안하는 인간이라고 하자마자 급변하는 정세. 음, 역시 한치 앞 인간사 모르지. 키하라는 빙그레 웃었다. 계속 조잘조잘 떠들어도 가는 척 하다가, 결국 다시 오잖아. 하여튼 말은 잘해.

다문 입에 병실은 금방 조용해졌지만 물끄러미 떨어지는 시선은 거두어지지 않았다. 가만히, 키하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눈을 맞추었다. 자전거 위에서는 영혼의 탈곡기처럼 온갖 가시를 다 쏟아내면서, 그 밖에서의 미도스지는 생각보다도 더 과묵한 사람이었다. 필요한 말만 한다는 느낌일까. 아마 지금 저렇게 입을 다물고, 담담히 뜬 눈을 하곤, 온갖 생각으로 머릿속이 바쁠 터다.

 

“미안, 나 병원에 있는거 싫지.”

 

그는 답하지 않고 침대 위에 대롱거리는 수액을 한번 쳐다보았다. 반 하고 다시 반. 투명한 물 같은 것이 뚝뚝 한 방울씩 무겁게 떨어지고 있었다.

 

“…아직 더 맞아야 하잖아. 잠이나 자든지.”

“다 맞으면 깨워줄거야?”

“싫어! 니가 일어나.”

“하하 알았어.”

 

대신 어디 가지 말고 있어. 빙그레 웃어보이고는, 이불 너머로 손을 뻗는다. 미도스지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냥 저 작은 손을 마주잡을 뿐이었다. 가만히 전해지는 온기에 스르륵, 키하라의 눈이 감기었다. 창백하게 굳은 손이라도 따뜻하게 잡아준다면, 아마 키하라는 그것으로도 충분할 테다.

Copyright (c) by Esoruen / Free IMG : Pngtree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