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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제 주변 사람들과 영화를 보러 다니는 그가 간만에 함께 영화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딱히 약속이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 제안을 받아들였다. 주변 시선을 받았지만 다들 한 번씩 영화를 보거나 그에 대해 들었기 때문인지 안쓰러움이 서려 있었다. 아마 정환 자신이 제일 많이 그와 영화를 보러 갔었기에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이번엔 어떤 영화를 보러 갈까. 조금은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그렇게 약속 당일이 되었다. 간단히 준비한 후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평소와는 다른 옷차림의 친구가 저를 보고 손을 흔드는 것을 본 정환은 웃으며 손을 들어 인사를 한다. 일찍 도착했는지 팸플릿과 미리 구매한 표를 들고 가자며 제 팔을 잡아 이끌었고 그런 모습이 편해 보이자 조금은 불안했다. 계절이 이른 영화 포스터를 쳐다보다 주인공이 서프보드를 들고 있는 걸 보고는 나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조금의 기대를 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인기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는 남들과는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처음 그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는 말을 들은 부원들은 기대와 기쁨의 얼굴을 했다. 그의 취향을 전혀 몰랐기에 데이트 신청이라는 것만 생각했겠지.

정환은 텅 빈 좌석을 번호를 확인하며 걸어간다. 그러다 보니 멈춰 선 곳은 제일 중앙. 정환은 주변을 둘러보다 좌석에 앉는다. 통째로 빌린 걸까 싶을 만큼 아무도 없었다. 단둘이서 영화를 보는 게 얼마 만일까. 작년 말쯤이었던 것 같다. 최악은 아니었지만, 너무 지루해 잠이 오는 걸 겨우 버티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잠깐의 대화를 나누던 중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 전 몇 개의 광고가 먼저 시작되자 두사람은 대화 없이 스크린만 쳐다보았다. 광고가 끝나고 저런 영화를 본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파도 소리와 함께 누군가 뛰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흐린 화면이 점점 밝아지면서 남자 주인공이 한쪽 팔에 서프보드를 끼고 파도를 향해 달려가는 뒷모습이 보인다.

좋아하는 것이 나오니 정환은 눈을 반짝였다. 파도를 발겮자 들고 있던 서프보드, 숏보드에 올라타 가파른 파도에 맞서는 장면을 보니 직접 타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옆에서 짧은 숨소리가 들렸지만, 시선은 여전히 스크린을 향해있었다. 한창 가파른 파도를 타던 장면이 이어지다 갑작스레 어두워졌다 밝아지니 주인공의 모습과 서프보드가 바뀌었다. 아까보다 작고 왜소한 몸이 롱보드를 낑낑거리며 들고 바다로 들어간다. 

“어땠어?”

“뭐 나름.”

“나름? 너 서프보드 좋아하니까 생각나서 같이 보러온 건데.”

“나쁘진 않은데 역시 직접 타는 게 좋으니까.”

“그렇구나. ”

영화관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는 들고 있던 팸플릿을 내밀었다. 거절하던 정환을 보며 그는 씩 웃는다.

“사실 이 영화. 엄청 인기 있었거든. 그래서 상영은 오늘이 마지막이었고 이 팸플릿이 마지막이야.”

“그래?”

“이거 너 주려고 산 건데 안 받을 거야?”

정환은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다른 곳으로 옮긴 뒤 손을 내밀었다. 그 행동에 그는 좀 더 큰소리로 웃으며 손에 팸플릿이 들어있는 쇼핑백을 걸어준다. 다시 가져갈까 싶은지 주먹을 꽉 쥐고 드는 모습에 입을 가리고 있다 고개를 들었다. 너무 웃어 빨개진 얼굴이 마주치자 정환 역시 소리 내 웃는다.

“그러고 보니 감독이 다음 편도 만든다고 했어.”

“그럼 그때 보러오자고 얘기해줘.”

“재밌었지? 사실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뭐?”

이렇게 인기가 많은데? 정환은 입 밖으론 꺼내지 않았다. 평소 그의 취향을 떠올리면 이 영화는 선택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가 이 영화를 골랐다는 건…

“다음에 볼 영화 정했어?”

“응. 내일은 호장이랑 보러 갈 거야. 고양이가 주인공이고 우주전쟁 하는 내용이야.”

역시 우연일 거다. 정환은 대답 없이 고갤 끄덕인 뒤 몰입하지 못하는데 선배와 함께 보러온 거라 지루함을 겨우 견딜 호장을 떠올리며 쇼핑백을 더 꽉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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